매우 탁월한 취향 - 홍예진 산문
홍예진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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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첫 게시글이 이맘때쯤이었나 보다. 보통은 새해나 연초에 무언가 스타트를 끊는 게 관례일 텐데 나는 특이하게도 무더위의 여름에 새로운 맘이 섰던 것 같다. 2006년의 7월 말. 추측건대 1학기 성적 확인이 끝난 계절학기였을 것이고, 시사경제 토론 동아리 활동에 한창일 때였을 것이다. 또 지금은 교회 건물로 바뀌어버린 우리 동네 헬스장에 등록해서 러닝과 근력운동에도 나름 열심이었던 시절.

후회란 그림자와도 같아서 나이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그 사람을 따라다닌다. 이제는 -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 중학생이었던 그때에 '국민학교 다닐 때는 왜 그랬던 걸까나 그때 이렇게 해볼걸' 하고 후회(?) 했던 기억이 떠오르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은 옅어지고 또 다른 색으로 덮어지면서 과거의 후회는 새로운 아쉬움으로 바뀌고 만다.

글쓰기를 업으로 가져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반복적인 일상, 그리고 꾸준히 지속되는 활동이 무언가를 채워가는 느낌말이다. 제목이 너무 맘에 들었던 홍예진 님의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처럼.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처럼. 취미, 취향, 기호.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속내는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분석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공감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이 참 맘에 들었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온 앵커 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스레 다듬어간 느낌이 종이마다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일상의 순간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자가 느끼고 정리해간 마음의 기록들을 동의한 건 아니지만 그런 모습들을 스냅사진처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천천히 오래 읽었고, 문구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을 좋아한다고 내향적이라든지 조용한 걸 좋아할 거라고 단정 지어버리면 곤란하다. 그냥 책 읽는 게 좋을 뿐이고, 그 시간 동안은 잔잔한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할 뿐이다. 오히려 책장을 덮고 나면 더 밖으로 나가고픈 그런 맘이 속에서부터 충동질한다. 우리 몸과 맘은 마치 시소와도 같아서 언제나 정반합을 찾아가는 것처럼.

속을 터 넣는다는 것과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비슷한 듯 분명 전혀 다른 종류의 처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친해지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고 결국 그 대화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다시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이걸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모두 다 그렇고 그 과정을 다듬어 가면서 만남을 유지하고 일상을 꾸려나간다. 이런 것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완벽하게 없애버려야 할 바이러스도 아니다. 그냥 우리와 함께 계속해서 같이 가야 할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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