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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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설득하려 할 때 논리란 그 과정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상황에서 논리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하수이자 초짜일지도 모른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논리'는 그 결과를 쉽게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법론일 수도 있는 셈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논문이나 대학 교재보다도 <구토>라는 문학작품 한 권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구토>에서 "형이상학적 진리와 감정을 문학적 형태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한국외대 변광배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구토의 의미와 극복을 문학을 통한 구원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논리나 공식을 통한 이해가 겉모습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라면, 감각적으로, 마음에 기반한 즉각적인 이해는 -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있다. 물론 아직 범인에 불과한 우리들은 언제나 도표와 공식으로 포장된 과정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언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진정한 자아와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항상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업무와 사람 간의 대화에 있어서 논리로 표현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제한 체, 그냥 느낌대로 따라가자고 주장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이거야말로 마음으로 글을 읽지 않고, 그냥 텍스트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기막힌 사고(?) 방식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무언가를 정의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언어로 그 성격을 단언하는 것이지만, 이는 반대로 무언가의 본질을 한 단어로 구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물체들은 결코 언어에 포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어란 인간이 무언가를 지칭하는 텅 빈 기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존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먼 옛사람들이 말의 힘과 언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어란, 그리고 논리라는 무언가로 포장된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존재들의 본래 모습을 파악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초현실적인 계시(illumination)나 우연한 사건·사고와 같은 무언가가 더 진실의 순간에 가까워지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는 노력은 다양하겠지만, 결국에 사르트르가 말하는 방법은 바로 책을 쓰는 일이다. 완벽한 순간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CEO들은 이를 명상을 통해 미리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에 사람이란 창조적인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앙투안 로캉탱이 책을 쓰기로 선택한 것은 그가 가진 재주가 바로 글쓰기였으며, 이를 통해 구토를 극복하고 구원의 길에 이르고자 한 건 아닐까? 중요한 건 이 역시 완전한 정답은 아니며, 무수한 과정 속에서 얻어진 하나의 방법 중의 하나라는 사실. 내가 주의하지 않는 사이에 무수한 작은 변화들이 내 안에 축적되다가, 어느 날 말 그대로 혁명이 일어나며, 그래서 내 삶은 이렇게도 급작스럽고 일관성 없는 양상을 띄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책이었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제대로 읽긴 한 건지도 모르겠다. 더 무서운 건, 나이를 먹어 좀 안다고 생각해서, -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선입견은 버리고자 마음먹었지만 - 그동안 익히고 배워왔던 무언가가 이 책을,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필터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로캉탱의 아내는 로욜라의 영신 수련을 통해 집중력을 기르고, 무언가를 생생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특별한 상황을 완벽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너무 몰입하진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배경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러면 자연스레 가운데에 위치한, 우리가 바라보고자 하는 무언가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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