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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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볼 예정이다. 가구로는 침대 위에 앉아 태블릿PC를 둘 수 있는 작은 접이식 테이블아이보리 색상의 루돌프 LED 전등만 챙기기로 했다. 책상은 나중에 보고 불편하면 따로 하나 장만하는 것으로 하고, 아직까지 춘천은 춥다고 하니 전기장판은 하나 챙겨둘 예정. 액자는 집에 있는 여러 작품 중에서 선명한 붉은빛이 인상적인 로스코 포스터 하나를 골랐다. 남자 혼자 있는 방에는 화려한 색감의 무언가가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나서다. 정리하다 보니 베어브릭도 하나 들고 가고 싶지만 1000%는 역시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안될 것 같다.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일단 머리부터 비우는 게 중요하다. 복잡하게 두면 안 된다. 공부할 거리는 주택관리사와 스페인어 딱 두 개. 다른 책은 다 놓고 갈 거다. 상반기에는 이전에 공부했던 책으로 복습만 하고, 하반기에 22년도 온라인 강의가 뜨면 바로 신청해서 주말마다 듣는 것으로. 스페인어는 이 러닝 강의를 빼먹지 말고 듣는 게 목표. 호기심에 이것저것 기웃거리지 말고, 그냥 스페인어만 듣는 걸로 말이다. 음악은 그냥 네이버 바이브 회원권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집에 있는 AI 스피커를 챙겨가거나, 가방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턴테이블을 하나 살까 했지만, 다 필요 없다! 저축도 더 해야 하고, 주변에 이것저것 놓아두면 정신만 사납다. 옷도, 나머지 짐들도 일단 최소한으로 챙겨보기로.

지난 주말에는 세차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카페에서 소설 한 권을 읽었다. 떠오르는 현대 이탈리아 소설가인 파올로 코녜티가 쓴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라는 책인데, 주인공인 소피아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모자이크 형식의 열 가지 단편으로 담아낸 책이다. 시대적 배경이 칠십 년대 후반부터 이천 년대 초반을 담고 있기 때문에 딱 우리 삼십 대 후반 친구들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너무 올드하지도 또 너무 트렌디하지도 않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같은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자아 분리와 같은 가상현실/동성애(반대하거나 혐오하는 게 아니라 아직은 어색한 소재인지라...)/난민 이동과 같은 글로벌 이슈 소재로 가득 찬 요즘의 드라마보다는 훨씬 맘에 와닿았던 내용들이었다.

자동차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미술학도였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소피아는 당시 전형적인 이탈리아 중산층 가정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났다. 하지만 늘 위태로운 갈등과 불안함 속에서 자라난 소피아는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가 묵묵히 자라나 어른이 될 수 있었던데는 그녀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같이 놀며, 장래를 이야기했던 소꿉친구와 힘들 때마다 그녀 옆을 지켜준 고모와 룸메이트. 그리고 어려움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같이 보냈던 가족들까지. 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소피아의 시선이 아닌, 대부분 제3자의 시선으로 전개되기에, 마치 배경처럼 지나간 듯 보이지만 말이다.

폭풍보다는 공허함이 더 무섭다고 한다. 폭풍은 빈틈없이 꽉 차 있고, 빛과 소리로 이루어져 생기 있는 반면에 공허함은 어둠과 침묵으로 이루어져 때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 속에 소개된 소피아의 일상을 보면 문득, 폭풍과 공허함의 갈등 속에서 힘들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둘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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