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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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경채 볶음 요리를 해보았다. 집 근처 롯데마트에 가서 구이용 한우 고기와 대패 삼겹살, 그리고 명절 선물을 구매하다가 생각한 음식이다. 신선한 푸른 채소와 짭짜름한 간장 베이스의 밑반찬이 가끔 입맛을 돋우게 하는데, 청경채가 딱이다 싶었다. 마침 점심때 근처 식자재마트에 갔다가, 고기 구워 먹을 때 곁들이기 위해 사둔 게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다만 물기를 꽉 짜지 않아서 그런지 볶음요리 치고는 국물이 좀 많았다. 나중에 보니, 먹고 남은 소스에 마늘과 파가 듬뿍 담겨 있어서, 밥에 살짝 비벼 먹었더니 딱 맞았다.

2. 삶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요리라고 한다. 작은 반찬 하나라도 직접 해보는 것 말이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변화가 필요할 때, 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무언가를 할 때 요리를 한다면 조금이나마 채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시월애>에서는 우울할 땐 요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남자 주인공이 다른 시간 속의 여자 주인공에게 말하는데, 이십 년이 지났지만 김현철의 OST와 함께 계속해서 맘속에 떠오르는 대사 중의 하나다.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매일 설거지를 하고, 집 청소와 빨래를 직접 하는 것도 좋겠다. 사무실이라면 책상 정리를 주기적으로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3. 자살을 앞두거나, 죽음을 목전에 둔 수많은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 인생에 있어서 수많았던 후회의 장면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용기가 없어서, 자신이 없어서, 그냥 지금 이대로가 나쁘지 않아서 지내왔던 시간들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심판>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멍청이들"이라고 말하며, 결국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영화 <2010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빛으로 된 터널을 지나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과정을 계속하는 것처럼.

4. 희곡 <심판>의 주인공인 아나톨은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폐암 수술 중 사망하고 만다. 수술을 하던 의사가 주 근무시간을 지키기 위해 집도 중 자리를 떠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참고로 그때 의사는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론, 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나톨의 폐암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한 아나톨은 천계로 올라와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이러지리 뜯어보고, 검사와 변호인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받는다. 또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낭비한 시간들을 추궁 받는다. 물론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위해 선택했던 순간들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시간들을 어필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답변하지 못한 채로 판결이 내려진다.

5. 결말은 다른 독자들을 위해 잠시 비워두기로 하고, 그래도 약간의 정보를 드리자면 베르나르 특유의 반전과 유머 코드로 마무리된다. 좀 더 덧붙이자면, 잊고 있었던 인물이 말미에 등장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 느낀 거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명상과 함께 영혼의 진화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게 아닐까 싶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훈련하고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왠지 베르나르 역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베르나르의 작품을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개미>와 <나무>, 그리고 <파피용> 이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 이유는 없이 - 멀리했는데, 결국에는 다시 이렇게 찾아 읽게 된다. 최근에 다시 읽은 장 자크 상페의 그림책도 그렇고,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도 그렇다. 다음 휴가 때는 - 요즘에 다시 모으고 있는 - 파울루 코엘류의 작품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읽지 못했던 소설들로 북캉스를 떠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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