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은 언제나 정갈하다. 허술한 구석이 없다.그렇지만, 남의 이야기를 그릴 때, 그의 만화는 빛을 더욱 발한다. 하현우처럼.아마도, 만화를 시작한 무렵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단편 연작집은 자기 이야기임에도 좋다.따뜻하고 쓸쓸하다.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끝나는데,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데? 안타깝다.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 죽겠다.
기차기차를 처음 보았다 미운 아홉 살 무렵이었다 먼 곳이 와서 지나가며 있었다 기러기같이 날아가야 할 날들이 너처럼 길어져 가고 있었다. - P38
소설가 이문구의 박용래 약전 중 일부.
일찌기 "배추씨처럼 사알짝 흙에 덮여 살고 싶다"고 했던 그는, 꽃그늘과 풀그늘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능히 알면서도 셈은 남과 같지 않았으니, 마침내 몸소 자기 곳을 찾아 오십추(五十秋) 남짓 되는 생애를 초야에 묻혀 다하였다. 그는 조상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더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詩篇)의 행간에 마련해 두고 살았다. 그는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다. 달팽이집이라도 머리만 디밀 수 있으면 뜨락에 풀포기를 길렀고, 저문 황토길 오십리에도 달빛에 별발이 어리면 뒷덜미에 내리던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와하였다. 아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情恨)의 시인이여. 당신과 더불어 산천을 떠난 그 눈물들, 오늘은 어느 구름에 서리어 서로 만나자 하는가. - P231
해방 후 공동체 성원의 도덕적 의무딸은 어떻게 됐는가? 유감스럽게도 김기복은 김익상의 아내와 딸의 소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과연 김익상은 그의 가족과 재회를 했던 것일까? 제 한몸과 가족을 희생하여 피억압 동포의 해방을 꾀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유언은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던 것 같다. "딸을 공부시켜 여성 혁명가가 되도록 교도하기를 부탁한다." 이 유언을 이행해야 할 사람은 이제 의열단장 김원봉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해방된 세상에 살고 있는 공동체 성원들이 마땅히 지키고 이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다. -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