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취한 날
아직 읽지 못한 정일근
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인
줄 알고 옳다구나 들였다.

소포를 뜯으면서 이런
뻘짓을 봤나
하고 던져 두었다가
급하게 나오느라 안 읽은 책 쌓아 놓은 데서
집어 가방에 넣으며 문밖으로 나가면서 이런
된장
하며 하루를 보내고는

취해 꺼내 읽는다.

우와!
현대시조가 이런 맛이 있구나.
덜어내다 보니
그 틀에 맞게
딱 꽂히는 발상과 전개와 표현이
그득하다

편집과 교정의 실수며, 시 자체가 어설픈 것도 많으나
우와!

우선 한 편

“요란한 것이 없다
번잡한 절차가 없다
입관과 운구가 없고
무덤이 생기지 않는다
장례가 따로 없으니
우주가 조용할 뿐이다.” 20 귀뚜라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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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얼굴 ㅣ 문예중앙시선 4
송재학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몸 속에 참 많은 게 들었거나 드나든다.

담쟁이가 딱딱하게 굳은 머리 속을 휘젓다가 기어들어온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고(13),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몸 안에 천 개쯤 되는 개울이 있어 개울물 소리가 나는 것이고(16), 사막이 몸에 터 잡고 있고(20), 얼굴은 흩어지는 모래를 감싸고 여민 흔하디흔한 비닐봉지인 셈이고(23), 분신을 준비하는 산벚나무보다 먼저 천둥소리가 화자의 안에서 먼저 북채를 잡는다(27). 연어 보호구역(50), 일몰(69), 짐승(74) 등이 또 들어있고, ‘내 몸의 간이역’이 있어 온갖 것들이 드나든다.

이명을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귓속에서도 살림이 따로 차려지나 보다”

돈황과 그 서쪽 사막 여러 곳, 이탈리아 등지를 돌아다니고 쓴 시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데,
제목이 가리키는, 권진규의 조각상과 더불어 잘 있다.
묘하게 이질감 없이 다양한 얘기들이 잘 구워져 있다.
진흙 빛으로

순수


오후 1시의 골목을 디딘 순간 내 등 뒤에서 먼저 문 닫는 소리, 그늘이 골목의 입구를 잠근 것이다 나른하다 보자기만 한 햇빛도 간결해서 내 몸은 명암으로 뚜렷이 나뉜다 창문 아래 순한 송사리 떼처럼 몰려 있는 햇빛이기에 맨드라미는 황금빛 꽃잎을 가졌다 흑백의 고요가 담넝쿨을 감아가는 골목은 유쾌해서 몇 번이나 같은 대문을 지나쳤다 달콤하고 씁쓰레하고 매콤하고 쓰디쓴 것들의 맛은 다시 나른하다 매번 향유고래의 회색 등을 디디는 순례자의 발자국을 따라가야만 했다 오후 1시의 긴시계팔이 삶을 부축해 나올 때 골목을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흥, 나는 너무 복잡했구나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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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록빛 물방울
나기철 지음 / 서정시학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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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겉 표지 색깔이 담록빛인가?
짧은 시들이 조롱조롱 흐른다
부평에서 대방까지
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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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37
최정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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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보니 단문들로 이루어져서 집었다.
시집 두께도 굉장히 얇아 금세 읽겠지
했는데
우와 이렇게 짧은데 안 읽히는 글은 처음이다.
모순인 듯 아닌 듯 그럴 수도 있는 듯한 수수께끼같은 문장이 도사리는 정도가 아니라 진을 치고 있어서
양미간을 좁히며 읽었다.
더딜 수밖에 없다.
매력은?
글쎄 그걸 어떻게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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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여성 -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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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젠더 관계에 대한 서구 페미니스트의 저술에서, 음의 수용적 자질은 중국 여성의 열등함과 예속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140

“그러나 음과 양은 하나라도 없어선 안 될 정도로 상호 보완적이다. 음-양 은유에 이원론적인 패러다임을 부과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 젠더 구성 gender construction을 단지 선천적인 젠더 특질들의 모순적이고 존재론적인 두 집합으로 축소시킬 뿐더러, 더 중요하게는 중국 사회에서의 친족 역할이 나타내는 젠더의 관계적 측면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젠더는 여성적 음과 남성적 양과 같이 생물학적으로 성별화된 sexed 몸의 타고난 속성으로 축소될 수 없고, 음양이 모순적이지 않고, 젠더 그 자체가 구체적인 가족적 관계성을 넘어서서 존재론적 범주로 정립되지 않는 세계에선 더욱 그러하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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