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 최정례의 시읽기
최정례 지음 / 뿔(웅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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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 존재의 근원적 슬픔”이 깔려 있다. 자주 볼 수 있는, 한 시인의 다른 시인 시 읽기 책인데,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시인의 글이기도 하고, 워낙 시리게 날카로운 시각이 단단하게 들어앉아 있어서 특별하다.

그는
“이미 나 있는 길만 따라가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간 시들, 개척된 땅에 포진하여 잘 살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시의 극지에 닿은 시들을 나는 사랑한다” 10

싫어하는 시를 설명하고, 그래서 최승자를 사랑한다.
“시를 쓴다는 것이 단지 일상의 언어를 능숙하게 좀 더 풍부한 수사와 이미지를 동원하여 그들의 음악적 자원을 조화롭게 늘어놓는 것은 아니리라. 멋진 풍경이 있다, 그럴듯하다, 거기서 한 깨달음을 얻었다, 라고 반복하여 늘어놓은 상투적인 시들을 볼 때마다 최승자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의 허망함에, 거짓 의식에,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업고 그의 창가를 스쳐 흘러갈 때 자신만은 결코 흘러가지 않겠다고,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했던 그의 고독한 의지와 에너지를 생각한다.“ 24

시는, 예술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것이 시가 되기 이전에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기존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고 그 형식을 복제하려고 하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아름다운 것이라 믿었던 것은 저만치 굴러가 시들어버린다.” 28

인간은 절망인가, 희망인가?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그렇다. 한번 간 것들, 그것들은 가서는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 내 곁을 떠난 후 처음 첫 얼굴 그대로 고스란히 돌아와 있는 것이 지금 무엇이 있단 말인가? 첫 키스? 첫 여자? 첫 슬픔? 그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 것으로 여행 가버리고 우리는 그날 떠나는 그 순간의 이미지만을 기억 속에서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44

“이곳에서 우리와 얽혀 있던 무엇인가가 우리를 끈끈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붙잡고 늘어지더라도 우리는 결국 가게 될 것이고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하는가? 그것은 시인의 말대로 틀린 말이다. 여행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우리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눈부신 존재로 잠깐 여기에 더욱 찬란하게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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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에게 시를 묻다 청동거울 문화점검 49
안희진 지음 / 청동거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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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북경대에서 소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얼마나 소식을 연모하는지 소식의 고향인 사천에 정착해 살 계획이었다고 한다.
“공부하고 일을 하며 그냥 거기서 살다가 죽을 생각이었다.” 6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고쳐 쓴 책이며, 제목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동파육만 먹기엔 거대한 이, 소동파에게 시를 묻다니.

시를 짓고자 하는 뜻이
“봄을 맞아 저절로 터지는 꽃봉오리처럼 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찬찬히 읽어야겠다.

맑고 고요한 영혼의 눈을 회복했을 때, 비로소 참된 자아와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여기는 소식은, 또한 숙련된 기예만이 이를 자유자재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시와 예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 세계는 오히려 담담하고 질박한 표현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소식은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시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는 자연스러움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하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노래하고자 하는 대상의 내적 본질을 파악해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아를 순수하게 하는 일은 곧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첩경이 된다. 이렇게 해서 참된 자아(시인의 정신)와 참된 대상(사물의 정신)이 만나게 될 때 시인은 비로소 노래하고자 하는 시의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은 감동으로 그려낼 수 있다.
여기까지의 단계를 시의(道)의 숙성과정이라고 한다면, 그 숙성된 시의가 언어로 표현되기 위한 창작의 과정이 필요하다. 소식은 여기서 법도에 바탕을 둔 언어의 기예(技)를 강조한다. 자연스러운 시의는 또한 자연스러운 언어로 노래돼야 하는 것이다. 시의의 자연스러움이란 치열한 사유를 통해 회복된 맑 은 영혼을 말함이요, 언어의 자연스러움이란 현란한 기교가 극치에 달에 오히려 담백하고 평범한 경지로 되돌아온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어우러진 시를 소식은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여겼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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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사람 - 다니구치 지로 마지막 대담
브누아 페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타니구치 지로 / 이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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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났다.
종로에서.
아끼고 아껴 읽는다.
갑자기 가 버린 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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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차례 - 제20회 편운문학상 본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67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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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예 접히는 길도 서로가 그은 상처 아니라는 것!” 15

“무릇 강이란 피차가 일상이어도
건너다보는 맞은편 불빛에는 물기 돋곤 하는 것” 38

그는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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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여성 -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정환희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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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대체로 보아, 조정의 수많은 금지령을 견뎌내고 천 년 동안 지속된 문화적 관행인 전족은 너무나도 빤한 관점 그 이상으로 이해되어 야 한다. 즉, 전족은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표식이자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의한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표식 그 이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신에 전족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중국 문화의 예의범절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즉 여성은 천싸개의 바늘을 통해, 여자 조상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만들고 전수하였다. 둘째, 젠더 규범의 표식이다. 즉 ‘여성성‘은 여성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가린 한 쌍의 묶여진 발을 통해 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민족적 정체성의 표식이다. 즉 청 조정의 권위에 대해 끈질기게 저항함으로써, 한족의 예의범절이 표현되었다.“ 292

”다만 여기서의 나의 논의가 전족 - 여성에 대한 승인된 사회적 폭력-의 잔혹성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6-7세의 소녀들은 자신들의 자연적 몸을 손상하여야만 했는데, 문자 그대로 생살을 잘라내고 발 뼈 구조를 재배열하면서 위험한 감염과 끝없는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9센티 정도의 아름다운 발‘이란 규범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머니나 가족 구성원 중 여성 연장자에 의해 발이 묶여진 처음 2년 동안에는 충격적인 고통을 견뎌내야 했으며, 그 기간 이후에 소녀들은 남은 인생 내내 자신의 발을 감싸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오늘날 여성의 신체를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미용문신과는 달리, 전족은 생애적 과정lifelong process으로 여성 스스로 발을 묶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었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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