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다져지고 만들어져도누군가 가지 않으면길은 곧 사라져 버리는 것그대여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우리들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진 길이다시 잡초로 뒤덮이지 않았는가 아니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길 찾기를 아주 잊어버린 건 아닌가하는 점이다 - P88
그해 여름더위를 피해 옥상에 올랐을 때 우리는 그 밤의 피해자처럼 굴었지 구석에 숨어 울음을 흉내 내던 사람은 분명 너였고 낄낄대며 웃었던 것은 나였고 그제야 가을이 찾아왔는데, 생각해보면 가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을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노랗고 빨갛게 번진 우리는 버릇처럼 말했다 이 잔만 비우고 일어나자 그 잔 속에 가득 찬 것이 기름 같은 우리의 수치여도 - P59
묘합니다.잔잔한 서정시들인데저는 오직 3부만 좋아요.<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가 절창으로 다가옵니다. <미련스럽게>의 따뜻함, “닭의 바깥에서 뾰조록이 더 올라오는 어린 봄”, “파밭에는 매운 맛이 새살처럼 돋았다” 같은 표현과 마무리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