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노래 창비시선 36
김정환 지음 / 창비 / 198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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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가 200권이 넘는 김정환
술술술 써내는 사람의
첫 시집이다.
20대 중후반에
오직 한 사람,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담은 시들이라고 한다. 한 편 빼고.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이 시의 배경인지라
밝지는 않다.
특유의 아포리즘에 가까운 문장이 간혹 빛난다. 꽂히는 재미가 있다.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 바 몰라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 수 없는 어떤 생애 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 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 P129

나는 온통 시끄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비참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것을
목숨은 어떤 비참보다도 끈질기다는 것을
현실은 어떤 꿈보다도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성스러움의 끈적끈적함을, 끈적함의 견고성을 - P15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 P53

목숨을 걸고 살아오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길은 저렇게 아스팔트 길이다 - P58

사랑하는 사이 앞에서
모든 흘러감은 운동에 속하지 않는다.
모든 생활의 때는 타락에 속하지 않는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도회지 깊은 밤, 쾌락과 배설의 찌꺼기, 껍질, 똥, 오줌, 담배꽁초, 껌종이가 흐르고
모든 버려지고 업수임 받고 가라앉는 것들의 슬픔은 강으로 흐른다. - P91

평소에 별빛처럼 아롱진
영롱한 아름다운 우리네 생활이 어디 있으랴
아아 고생 바가지 막걸리, 곪아터진 고름 질질 흐르는
한가운데서 끈끈하게 살아 숨쉬는
비린내 싱싱한 우리네 삶밖에
무엇이 또 남아 있을 수 있으랴 - P102

욕망은 끝없는 고통이 아니다

열쇠는 아무리 작아도 열쇠다.
자물쇠가 아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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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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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것이다
항꾼에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사식 넣어주는 사램 한나 읎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단 한멩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 P47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 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 P110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 P138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멩은 폴쎄 틀레묵은 것이제." - P175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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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 창비시선 10
이시영 지음 / 창비 / 197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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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반
처절하고 피눈물 나는 시절
시가 음산할 수밖에
당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한 줌의 희망도 서정도 없다.

이내 걸어야 할 길
숨막힌 밤 속을 뚫고
갑옷을 뚫고
가야 할 길은 천리
함께 걸어야 할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이름없는 벗들
못내 떨치고 가야 할 길은 만리 - P57

창 밖으로 뛰쳐나간 어떤 가을은
거리의 술꾼들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얻어맞고
통금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하고 피를 흘린다 - P65

이빨이 깨어지고 두 눈 갈라져
새벽 끝을 기는 부싯돌 같은 눈알
오늘 어둠 속에서 불거진 친구
목도 없이 무릎 꿆고 일어서서
너 혼자 잘살아라 한다 - P84

말없이 걸리는 돌멩이에도 새하얗게 질린 사람들. - P85

일어서서 벽을 잡고 다시 굴러도
이 밤은 대답 없고
주먹만 내미는구나
새벽까지 고요히 내미는구나 - P92

잿빛 거리 아래에선 팔다리도 없는 사람들이 어깨를 치고 오랜만이야. 오랜만이군. 심장 속에서 새까맣게 탄 손을 꺼낸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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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 -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품집 창비시선 1
신경림 지음 / 창비 / 197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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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는 지나간다
오늘은 늘 잊혀진다
신문이며 방송 등의 그때 살아 숨쉬던 언어들은 쉽사리 사라지고
문학이 남는다.
그러나, 소설은 픽션. 세계는 넓으나 결국 거짓.
시가 남아 시대를 운다.
1974년에 이 시집에 제1회 만해문학상을 안기면서 김광섭은 말했다. “한국의 현대시가 반세기 후에 얼마나 남을 것인지 예언할 수는 없으나,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 그것이 있다 하겠다.”

빗발 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바람 속에서도 곡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인데도 거리는 새파랗게 얼어붙고
사람들은 문을 닫고 집 속에 숨어 떨었다 - P98

이 외진 계곡에 영 봄이 오지 않으리라는 - P100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
내 모습은 초췌해간다 - P101

나는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이 희한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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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녹천으로 갔다 창비시선 184
장대송 지음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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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소비시켜 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나
언제쯤 껍데기인 채로 모래톱에 버려질 수 있을까?
평야에 발 디디자 나 몰래 몸이 먼저 울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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