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창비시선 158
이대흠 지음 / 창비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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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20대 후반에 낸, 첫 시집이다.

* 뜨겁게 젊다. 숨기지 않는다.

“사랑이란 머릿속의 포르노 테이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
그리움이란 성욕의 다른 이름
나는 그다지 타락한 것 같지 않는데
널 만나면 관계하고 싶다”
- 꽃핀 나; 검증 없는 상상, 32쪽

* 패기가 넘친다. 삶을 사랑한다.

“누구도 나의 미래를 커닝할 수 없고
살아 있다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
위대한가”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13쪽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씹다 뱉는 희망보다
얼마나 큰 선물인가 노래를 부르며
나는 걷는다”
- 지나온 것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 17쪽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 마침표를 먼저 찍다, 10쪽

* 성찰이 있고.

“지네인 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다”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12쪽

“아무리 버티어도 저승의 문은 발랄하게 열리고 아무리 꿈꾸어도 결국 꿈은 삶이 아니다 시인은 아무것도 예언하지 못하고 모든 법과 점술가는 과거만을 되새김질한다”
- 내가 나에게 들켜버렸을 때, 나의 위증이 나의 양심에 취조당할 때,, 38쪽

일찍 결혼하고, 건설노동자로 일을 했나 보다. 3부가 온전히 그 얘기인데 이질적이다.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이 걸어다니지만 땅이 아니듯 붕 뜬 느낌이다. 시인의 경험이긴 하되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4부는 습작 시기의 시가 많이 섞여 있는 듯 고조된 감정이 정돈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고향 이야기가 시인의 고갱이가 될 듯하다.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시인 특유의 표현이 군데군데 돋보인다.
시집 전체에 아포리즘처럼 있어 보이는 문장을 많이 담았는데, 치기에 가까운 뽐냄이 느껴져 매력이 줄어드는 감 없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살림 가운데 화자의 형이 대학에 합격하자 당혹스러워하는 아버지와 대조적인 어머니의 행동을 묘사한, 아래의 시구는 너무도 단단하고 기발하여 한참을 머물렀다.

어머니는
지문을 풀어
멍석을 짜나갔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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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반점 민음의 시 60
윤제림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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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힌다.
양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난삽이 없어서
평이한 언어라 그런 것이지만,
숨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도 표현도 의미도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시집 제목이 제일 인상적이라니.

내려다 보네
밥주머니에 똥자루,
길게 누운 바지 저고리를
내려다 보네

날 보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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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사랑 이야기 - 초기 지구 백과사전
이사벨 그린버그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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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들들
인간보다 심술궂은 신과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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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그물 창비시선 451
최정례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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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삶 자체다.
고독하고, 아프고, 슬픔이 울컥 쏟아지고, 한강 다리가 아주 약간 휘청할 만큼 네가 보고싶다.
부모를 잃고, 자식을 앞세우고, 시인도 투병하다
그예 가시고 다시 오지 못한다.

기쁨이 지나갔다
슬픔이 지나갔다
발을 굴렀다

공중제비를 돌았다

혼자였다 - P10

어둠도 늙는다 앓는다. 어둠은 비대해지다 스스로 삼켜지다가 더 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곳으로 영혼이 조용히 앞질러 간다. 천천히 내 앞에서 걷는다. 따라오나 안 오나 뒤돌아본다. 안 보인다. - P17

여행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고 짐을 싸고 나면
병이 나거나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가기 싫은 마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고서
태풍이 온다

태풍이 오고야 만다
고요하게 제 눈 속에 난폭함을
숨겨두고

내일은 결혼식인데 하필 오늘
결혼하기 싫은 마음이 고개를 쳐드는 것처럼 - P23

여행이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맘에 드는 곳에 고여 있는 것이다
거기 머물며 내 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집이 어디 있는지 과연 내 집이
어디 있기는 있는 것인지
국을 그리워하며 떠내려가보는 것이다 - P59

가고 싶으면 가고
날고 싶으면 난다
새들은 그렇게 산다
가도 되냐고 좋아해도 되냐고
묻지 않아도 되는 여름이 오고 있다 뻐끔거리며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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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각 문학연대 시선 5
고재종 지음 / 문학연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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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지 못했다.
오래
곁에 두고
자주 기댈 것이다.

동짓날


툇마루에 햇볕을 깔고 앉아 고양이들 밥을 주니
그냥 잘 먹고서는 이리 비비고 저리 뒹구는 재롱이다.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네 하다가, 대문 쪽으로 귀를 살핀다.

천권독서를 해서 누가 배움을 청하나,
연애질이 처절해서 옛님들이 찾아오길 하나,

돌아보면 눈물만 난다고, 어제 망백의 뒷집 할매가 말했다. - P53

공간이 공간인 것을 느낄 때는
그곳이 텅 비어 있을 때다. - P64

이때쯤 바람은 수수밭 가를 서성거렸지
늘 굽은 등을 보이며 숨어드는
쓸쓸한 꿈들과
짐짓 보람도 없이 저미는 시간의 갈기조차
가만가만 다독이던 바람의 노래 - P74

늘 무릉에 닿고자 하여 무릉에 이르렀으나
무릉에 계속 머물 수 없는
길 끝의 바람 - P87

산방에 쌓이는 고요는
툇마루에 비쳐든 희부윰한 잔광,
무언가 말하려다 오늘도 다 말하지 못하고
아랫녘 강물로 반짝이는 시계 밖의 시간 - P89

길은 늘 가 닿지 못하는 길 바깥들,
가 닿아도 머물지 못하는 길 안쪽들,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덜 미안하기 위해서는
너무 긴 어둠과 짧은 빛이라도 좋았다
읽혀지기보다 쓰여지기 위해 있다는 소설처럼
삶은 헤아리기보다 길 가는 자의 눈물이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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