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각 문학연대 시선 5
고재종 지음 / 문학연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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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지 못했다.
오래
곁에 두고
자주 기댈 것이다.

동짓날


툇마루에 햇볕을 깔고 앉아 고양이들 밥을 주니
그냥 잘 먹고서는 이리 비비고 저리 뒹구는 재롱이다.
멀리 있는 자식보다 낫네 하다가, 대문 쪽으로 귀를 살핀다.

천권독서를 해서 누가 배움을 청하나,
연애질이 처절해서 옛님들이 찾아오길 하나,

돌아보면 눈물만 난다고, 어제 망백의 뒷집 할매가 말했다. - P53

공간이 공간인 것을 느낄 때는
그곳이 텅 비어 있을 때다. - P64

이때쯤 바람은 수수밭 가를 서성거렸지
늘 굽은 등을 보이며 숨어드는
쓸쓸한 꿈들과
짐짓 보람도 없이 저미는 시간의 갈기조차
가만가만 다독이던 바람의 노래 - P74

늘 무릉에 닿고자 하여 무릉에 이르렀으나
무릉에 계속 머물 수 없는
길 끝의 바람 - P87

산방에 쌓이는 고요는
툇마루에 비쳐든 희부윰한 잔광,
무언가 말하려다 오늘도 다 말하지 못하고
아랫녘 강물로 반짝이는 시계 밖의 시간 - P89

길은 늘 가 닿지 못하는 길 바깥들,
가 닿아도 머물지 못하는 길 안쪽들,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덜 미안하기 위해서는
너무 긴 어둠과 짧은 빛이라도 좋았다
읽혀지기보다 쓰여지기 위해 있다는 소설처럼
삶은 헤아리기보다 길 가는 자의 눈물이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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