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리퍼: 디럭스 에디션
파비오 문.가브리엘 바 지음, 홍지로 옮김 / 시공사(만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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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여러 번 죽는다
삶과 이야기는 그럼에도 이어지고
흥미로우며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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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을 뭉개고
나기철 지음 / 문학의전당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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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자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집이다.

‘나이 오십 되었는데 큰 시인과 사상가가 못 되고‘
’옆자리에서 일 년 동안 같이 쓰던 휴지통, 신학기 되어 아무 말 않고 그의 오른쪽으로 옮겨놨다고, 토라져 여러 달 말 안 했‘다가 ’휴지통이 바로‘ 자기였다고 반성하고,
딸이 다니는 서울 소재 대학교에 가 ’같이 점심 먹고 교수도 만나고‘
‘대학 합격하고 내려와 있는 아들이 홧김에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나와 놀아준 적 있느냐는 말’을 하고
아내는 협심증에 걸렸고,
‘재작년에 간 누이 딸 내일 대학 졸업에 뭘 보내나’ 하고
자신의 ’근본인 칠십의 어머니는 저 신촌 마을에 홀로 건재하시다.‘

짝사랑이었을까, 헤어진 연인일까.
”은난초 피어난 자리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4월 부활절 날 아침
산보 길에서 만난
그 여자“ 63
도 있고,

”그대와 오래도록 함께 있기 위하여
그대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텅 빈 가을 들녘
바라볼 뿐입니다“ 19
라고 전근대 성리학에 짓눌린 여성들처럼 수동적인 연애관을 내비치기도 한다.

딱 거기서 그치고 만다. 일상의 소묘 외에 그 무엇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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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담배가게 요리코 1
아사노 유키코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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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부터 완성형 만화다.
그림도 어설프지 않고, ‘교토의 한 구석에서 담배가게를’ 지키는, 인간미 넘치나 인상 자주 쓰는 여성이 교토의 멋을 소개하는 얼개 또한 틀이 잡혔다.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정지용 시인이 시를 남긴 압천에서 천변을 거닐며 누군가와 앉아 있을 일이 내게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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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씨의 일일 - 개정판 문학동네포에지 6
함민복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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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의 첫 시집이다. 2020년에 복간된 시집을 읽은 것이지만, 1990년에 나온 시집을 읽은 셈 친다.
1962년 생인 시인이 1988년에 등단하고, 등단 전후의 시를 묶은 시집이다.
지금의 충주인 중원군 시골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공고를 다녔으며,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서울예전 문창과에 입학을 했고, 2학년 때 등단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전업 시인이다.

추억으로 환기되고 소비되지 않는, 이토록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가난이 다른 시에 있었던가.

“평지에 살고 싶은 만큼 대가리를 날려 부딪쳐보고
살점이 뭉청 떨어지도록 머리 비벼보아도
빛은 못 벌고 골만 부러집니다
부러진 골은, 머지않아 영원히 지하생활자가 될
어머니를 3년 동안 전지훈련 시켜 드렸습니다” 46 <지하생활 3주년에 즈음하여>

“공중변소에 가 바지 까내리면 낮에도 모기가 엉덩이 물고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웃 사람 똥에 내 똥 몸 섞던 그 집” 48 <상계동 시절>

하도 많아 차고 넘친다. 그중에 독재의 폭력이 일상에 가득하던 야만의 시대, 전교생 앞에서 불우이웃으로서 라면 박스 받다 쓰러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못해 고통스럽다.

“박수 소리. 나는 박수 소리에 등 떠밀려 조회단 앞에 선다. 운동화 발로 차며 나온 시선, 눈이 많아 어지러운 잠자리 머리. 나를 옭아매는 박수의 낙하산 그물, 그 탄력을, 튕, 끊어버리고 싶지만,… 내려서고 싶어요. 둥그런 현기증이, 사람멀미가, 전교생 대표가, 절도 있게 불우이웃에게로, 다가와, 쌀 포대를 배경으로, 라면 박스를, 나는, 라면 박스를, 그 가난의 징표를, 햇살을 등지고 사진 찍는 선생님에게, 노출된, 나는, 비지처럼, 푸석푸석, 어지러워요 햇볕, 햇볕의 설사, 박수 소리가, 늘어지며, 라면 박스를 껴안은 채, 슬로비디오로, 쓰러진, 오, 나의 유년!! 그 구겨진 정신에 유릿조각으로 박혀 빛나던 박수 소리, 박수 소리.“ 52 <박수 소리 1>

그러니, 그의 삶은 지옥보다 고통스러웠다.

“저 잘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 반성하는 자 고통으로 가득찬 날들
차라리 지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75 <우울씨의 일일 8>

“희망아, 이 창녀야
잘 있거라 흐린 날만 들리던
기적소리로 아아, 떠나간다
삶이란 삶을 꾸려 죽음
속으로 떠나는 전지훈련 ”81 <수박>

이렇듯 도저한 고통에 어떻게 잠식되지 않았을까? 한 축은 아마 타고난 선량함일 것이고,

“생의 만능 교정부호 사랑 만들며 살아가기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마침표 하나 준비하기” 25 <방점 찍기>

한 축은 생태적 인식일 듯하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17 <사과를 먹으며>

그가 정의하고 묘사한 가난을 보라. 심지어 서정시 같다. 안 질 것이다. 강인하다.

가난


오늘 아침 식사는 봄볕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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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살이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505
최두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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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식물도감인가. 아마 한국어 시에 처음으로 등장할 식물마저 많이 나온다. 가까이는 감나무, 도토리부터 두메부추, 솔나리, 야고, 금괭이눈, 눈빛승마, 앉은부채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푸나무들을 다룬다.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것은
능소화 같은 덩굴나무의 생태이니
조물주를 탓할 수밖에 없겠지마는
정원을 가꾸면서까지 신의 뜻을 시험해보는 원예의 취향에는 공감하기 힘들다” 55
무슨 교술장르인가. 운문에 기댄 정보와 주장 정연한 산문도 꽤 많다.

그럼에도
“숨구멍이 막힌 씨는 썩는다네
말에 숨구멍 만드는 이가 시인이라면
곳곳에 은밀하게 숨구멍이 있는 시라야
오랜 세월 움틀 날 기다리는
씨가 되리라 생각하네” 47
숨을 틔우는 시를 지으려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야 어떻든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든 없든
송이마다 부처로 피어나 봄을 부르는 꽃들
함부로 짓밟아서는
이 땅에 자비가 없다는 것을
한없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릴 뿐.” 71
이다. 그의 저음은 누가 귀기울이든 말든 오랫동안 ‘돈에 눈먼 자의 탐욕과 검은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울릴 것이다.

족도리꽃은 찾지 않는 애호랑나비
족도리풀만 먹는 애호랑나비 애벌레

도대체 지상의 아름다움은
봄날의 환상 같은 애호랑나비처럼
무엇을 먹고살며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 P105

짚신나물


예전에 씨앗이 짚신에 붙어
산길을 걸었다 하여 얻은 이름 짚신나물
예전에 염소가 먹는 풀잎
사람도 먹어 얻은 이름 짚신나물

걸어서 고개 넘는 대신
질주하는 차로 터널 지나가기 바쁜 세월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 좋아해
살찌는 게 걱정인 나에게

나물아 나물아 짚신나물아
너는 새삼스레 무슨 말을 하려
병아리 혀 같은 꽃 피우고
고개 넘는 산들바람에 하늘대느냐

속도와 재물의 신을 외면한 채
어느 누구도 탐별 일 없는 소박한 꽃 피워
그냥 천성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너의 말
이파리 뜯어 씹으며 되새겨본다 - P58

단풍나무에 기대어


아무리 잘 물든 단풍나무라도
낱낱의 잎사귀를 들여다보면
흠없는 잎은 없다
멀리서 보면 눈부시게 휘황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구태여
가을날 잘 물든 단풍나무를 찾아
기대어 서는 것은
상처 많은 삶을 위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중충하게 늙지 않기 위해서다

때 맞추어 잎 떨구지 못하고
얼어붙은 잎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는
얼마나 추레한가.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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