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씨의 일일 - 개정판 문학동네포에지 6
함민복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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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의 첫 시집이다. 2020년에 복간된 시집을 읽은 것이지만, 1990년에 나온 시집을 읽은 셈 친다.
1962년 생인 시인이 1988년에 등단하고, 등단 전후의 시를 묶은 시집이다.
지금의 충주인 중원군 시골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공고를 다녔으며,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 서울예전 문창과에 입학을 했고, 2학년 때 등단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전업 시인이다.

추억으로 환기되고 소비되지 않는, 이토록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가난이 다른 시에 있었던가.

“평지에 살고 싶은 만큼 대가리를 날려 부딪쳐보고
살점이 뭉청 떨어지도록 머리 비벼보아도
빛은 못 벌고 골만 부러집니다
부러진 골은, 머지않아 영원히 지하생활자가 될
어머니를 3년 동안 전지훈련 시켜 드렸습니다” 46 <지하생활 3주년에 즈음하여>

“공중변소에 가 바지 까내리면 낮에도 모기가 엉덩이 물고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웃 사람 똥에 내 똥 몸 섞던 그 집” 48 <상계동 시절>

하도 많아 차고 넘친다. 그중에 독재의 폭력이 일상에 가득하던 야만의 시대, 전교생 앞에서 불우이웃으로서 라면 박스 받다 쓰러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못해 고통스럽다.

“박수 소리. 나는 박수 소리에 등 떠밀려 조회단 앞에 선다. 운동화 발로 차며 나온 시선, 눈이 많아 어지러운 잠자리 머리. 나를 옭아매는 박수의 낙하산 그물, 그 탄력을, 튕, 끊어버리고 싶지만,… 내려서고 싶어요. 둥그런 현기증이, 사람멀미가, 전교생 대표가, 절도 있게 불우이웃에게로, 다가와, 쌀 포대를 배경으로, 라면 박스를, 나는, 라면 박스를, 그 가난의 징표를, 햇살을 등지고 사진 찍는 선생님에게, 노출된, 나는, 비지처럼, 푸석푸석, 어지러워요 햇볕, 햇볕의 설사, 박수 소리가, 늘어지며, 라면 박스를 껴안은 채, 슬로비디오로, 쓰러진, 오, 나의 유년!! 그 구겨진 정신에 유릿조각으로 박혀 빛나던 박수 소리, 박수 소리.“ 52 <박수 소리 1>

그러니, 그의 삶은 지옥보다 고통스러웠다.

“저 잘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 반성하는 자 고통으로 가득찬 날들
차라리 지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75 <우울씨의 일일 8>

“희망아, 이 창녀야
잘 있거라 흐린 날만 들리던
기적소리로 아아, 떠나간다
삶이란 삶을 꾸려 죽음
속으로 떠나는 전지훈련 ”81 <수박>

이렇듯 도저한 고통에 어떻게 잠식되지 않았을까? 한 축은 아마 타고난 선량함일 것이고,

“생의 만능 교정부호 사랑 만들며 살아가기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마침표 하나 준비하기” 25 <방점 찍기>

한 축은 생태적 인식일 듯하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17 <사과를 먹으며>

그가 정의하고 묘사한 가난을 보라. 심지어 서정시 같다. 안 질 것이다. 강인하다.

가난


오늘 아침 식사는 봄볕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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