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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형평운동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306
박구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23년 6월
평점 :
돌아가셨다.
3월에. 향년 66세.
일지를 찾아보니 3년 전에 시인의 3번째 시집 <국수를 닮은 이야기>를 읽고 이렇게 적었다.
“절창을 노리지 않는, 서정과 추억과 현실이 모두 살아 있는 간만에 훌륭한 시집을 만남.”
그러고는 잊고 지내다 문득 며칠 전에 신작이 있나 찾아보다 유작을 읽게 되었다.
시가 다룰 수 없는 것은 당연히 없으나
시가 아니라도 서사는 소설이, 역사는 비문학이 잘 다룬다.
물론, 서사시가 없는 것 아니고 한시에도 영사시가 있지만, 아무래도 역사를 담는 그릇으로 시가 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진주 사람 박구경은 진주에서 벌어진 ‘진주형평운동’을 시집에 온통 담는다.
조선조가 철저한 신분제로 노비 수탈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체제였는데, 노비보다 더 하층 계급으로 백정이 있었다. 백정은 심지어 갑오경장이고 망국이고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까지 호적도 없이 차별받았다고 한다. 그 압제에 분연히 일어난 것이 진주형평운동이다.
“왕실과 귀족 양반들의 입에서는
한 철도 고기반찬이 떠나지 않았더라
/농사지을 소를 보존하기 위하여
일소들의 도축을 금하였어도
먹을 놈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눌 놈들은 나눌 만큼 나누었더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백정이 아는 사실이었더라
/흉년이 들었던 극심한 해에는
일반 백성에게는
일소의 도축 단속령을 내려놓고는
뒤편에서는
고기를 찾았던 세도가 양반들의 입” 86
교회에서도 백정들을 한사코 거부했고, 백정의 자식들은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1920년대까지도.
강상호, 이학찬, 장재필 등의 투쟁과 희생이 시집에 담겼다.
진주 사람들에 대한 자부심도 아주 강하게 있다.
서사시인가
행갈이 한 논문인가
판단은 읽는 사람의 것.
칠천인七賤人
조선 시대에 일곱 천민들이 있었더라 최하층인 그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는데 노비 백정 기생 갖바치 상여꾼 광대 무당이 그들이었더라
자식들까지 연좌제를 적용하였으며 백정은 백정질 말곤 다른 할 일이 없었는데 인구조사에 포함되지 않고 호적부도 발급되지 않았더라
장가를 가도 상투를 틀지 못하였고 사는 곳도 제한되어 있었으며 거지보다 낮은 계층으로 평생을 보내야 하였더라
봉건제도가 무너진 구한말까지 신분과 남녀 차별은 여전하였고 매물로 사고팔던 노비체의 악습이 횡행하였더라
갑오개혁 이후에도 법보다 무섭고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관습의 틀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더라
그러니 인권혁명의 중심인 진주에서 봉기한 형평사 운동은 쇠심줄보다 질긴 칠천인의 청산에 바쳐진 숭고한 운동이었더라
형평의 완성을 위해 수많은 목숨들이 지나갔으며 형평의 깃발 아래 수많은 희생들이 쌓였더라 - P84
진주 사람들 2
낡고 부패한 늙은 왕조를 돌아보게 하였던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조선의 반상 논리가 빛을 잃기 시작하였어도
백정을 향한 멸시와 천대는 쇠심줄처럼 질기게 남아 이어지고 고리처럼 엮여 있었더라
백정들이 앞으로 나서 자신들의 사재를 털고 선각들과 청년들이 앞다투어 일으킨 인권운동의 출발이 있었으니
저울衡처럼 공평平한 세상에 이르는 형평운동은 그 시대의 혁명이었더라 진주 민심의 역사였더라
전국 최초로 이 일을 주도해 나갔던 사람들이 바로 경상 땅 진주에서 살아온 진주, 진주 사람들이었더라
인권해방의 붉은 불길이었더라 불꽃은 순식간에 타올라 전국의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가는 들불이 되었더라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공평은 인권의 첫장이라고 만방에 외쳤더라
백정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늘과 땅과 세상에 고하였더라
진주의 하늘 아래 진주의 땅 위에서 진주, 진주 사람들이 맨 처음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더라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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