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이다 정끝별.본명이라니 특이한 이름이고평론가와 겸한다니 또 색다르다.어머니, 아버지, 딸, 당신, 고향과 많은 식물들이 다채롭게 시의 대상으로 나온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결말이 잦아 쿨럭거릴 뿐 지나친 비약과 모호 없이 문장이 졸졸졸 흐른다.유명한 <가지가 담을 넘을 때>가 실려 있다.“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무명에 획을 긋는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64식물 중 능소화를 특별히 좋아하나 보다. 두 편 읊었고, 그 시들이 다 좋다.“꽃의 눈이 감기는 것과꽃의 손이 덩굴지는 것과꽃의 입이 다급히 열리는 것과꽃의 허리가 한껏 휘어지는 것이/벼랑이 벼랑 끝에 발을 묻듯허공이 허공의 가슴에 달라붙듯벼랑에서 벼랑을허공에서 허공을 돌파하며/홍수가 휩쓸고 간 뒤에도더운 목젖을 돋우며/오뉴월 불 든 사랑을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 69 여름 능소화”눈멀었어라 솟은 길바람 타고 기어 올라가입이며 식도며 대장이며 항문이며넝쿨진 구멍으로 단숨에 빨아들인매혹이며 황홀이며 기억이며 상처며기다란 기다림 끝에 피워 올린핏발 선 빨대꽃/맨몸으로 빨아올리겠다고?길길이 뛰는 이 맘을!“ 94제목은 ’바람을 기다리는 일‘인데 바람이 시를 가리키는 것 같다. 특히 시를 만나는 일. 쓰기 위해 기다리거나, 가슴 치는 시를 찾아 읽어 헤매거나 하는. 그렇게 매혹당한 자의 고백. 어떤 ’중독‘의 모습을 보여줄지 탐독해야겠다.“눈이 머는 일마음이 먼저 먹히는 일먹먹한 물이 되는 일갯버들 가지에 치마를 걸어놓고오지 않는 바람을 기다리는 일고여 있으되 오래 썩지 않는 일/여기 중독된 불멸”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