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 백조 시인선 2
김신용 지음 / 백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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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이 짧은 시를 쓰다니.
45년에 태어나 소위 노가다꾼으로 육체 노동자로 살면서 88년 마흔넷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삶은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에 제목 그대로 고스란하다. 이를테면

“아무도 이꽃을 본 적 없지만, 이 꽃은 있다
땀 흘려 일해보면 안다
/사람의 몸이 씨앗이고 뿌리인, 이 꽃—.
/일하는 사람의 몸이 소금의 꽃인, 이 꽃—.” 41 소금꽃

“손에 못이 박인다는 것은 일에 익숙해지는 것인데 숙련공이 되어간다는 뜻인데 손에 박인 못이 더 아플 때가 있다
/손에 못이 박이도록 일을 하는데도, 늘 빈손일 때가 그렇다” 42 손의 못 1

이런 시에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구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서사 구조의 시’에 몰두해 왔다. 땀과 그 결실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담아 왔다.

그런데, 한 구절만으로 시가 될 수 있다는 시평을 듣고 문득 깨달아 짧은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21년에 모아 낸 것이 이 시집이다.

‘촌철살인적 언어의 세계’,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운 인식의 힘’이 담긴 ‘짧은 시의 매력’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말랑말랑한 서정도 꽤 있다. 그저 짧을 뿐인 시들도 있다. 그러나,

“가슴속
따뜻한 숨결을 담고
오늘도 온갖 생활의 주름들을 펴고 있는
/그대, 웃음—.” 95 다리미

’그대‘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때도 ’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단단히 삶과 노동에 두 다리 박고 서 있다.

“잘 익은, 저 넝쿨의 굵은 땀방울—.” 81 수박

우리는 그저 먹거리로 보는 수박에서 수박의 ‘땀방울’을 노고를 본다.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다
이슬이 꼭 풀의 등에 얹힌
짐 같다
/그 등의 짐 무거울수록
/두 다리 힘줄 버팅겨 일어서는, 풀잎—.” 56 풀과 이슬

“물이 되어 흘러내리다 문득 걸어온 길 뒤돌아보는, 저 서늘한 눈빛!” 69 고드름

‘버팅겨 일어서는’ ‘서늘한 눈빛’을 그는 잃지 않을 것이다.

책 크기도 일반 시집보다 더 조그맣다. 쏙 넣고 다니며 자꾸 읽어야겠다.

물방울


그래, 물방울은 오직 물방울만 소유하고 있다

존재를 꽃 피우는, 그 빈 몸의 소유—. - P24

분수령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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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낸 산길 오후시선 7
조해훈 지음, 문진우 사진 / 역락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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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서 시인은 3년째 임도도 없어서 기계가 못 들어가니 낫으로 쳐들어오는 자연과 싸우면서 차를 기른다. 예순의 나이이고 어머니가 여든둘이신데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큰아들 생각에 시인 거처로 왔다가 허리를 크게 다쳐 시인의 동생네로 간다.
… 그렇게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짧은 일기처럼. 담백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문체로.

책이 가로로 넓다. 왼쪽에 문진우 작가의 흑백사진이 오른쪽에 시가 있다. 시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닿는 지점이 뭘까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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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0代가 됐다
이랑 지음 / 소시민워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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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 거기,
어떤 사람이 30대가 되는 건지 알려줄까?

20대야
건배”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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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금요일엔 역사책 1
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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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의문

“물론 박지원처럼 언문 글자는 평생 알지 못하여 50년 해로한 아내에게도 편지 한 자 써 주지 못했다고 한 인물도 있다. 박지원은 아들을 시켜 고모(즉 박지원의 누이)에게 언문으로 편지를 보내는데, 아들 역시 언문을 쓰지 못할 것이니 딸을 시켜 써서 보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자기 누이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자기는 언문을 쓸 줄 몰라 아들에게 시키고 아들도 쓸 줄 모를 것이니 딸에게 시키라고 이중의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박지원과 아들 둘 중 하나만 언문을 쓸 줄 알았어도 몇 단계는 줄일 수 있는 일이었다. 언문을 쓰지 않은 것은 정약용 역시 마찬가지다.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는 그렇게 많지만, 딸이나 아내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는 전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사례가 도리어 희소했을 것이다. 언문을 익히고 한문을 공부하면 훨씬 쉽고 가족들과도 직접 문안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 면에서 박지원의 언설은 여러 모로 의심스럽다. 언제고 할 수 있는 언문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여성 가족과 직접 편지를 교류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도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임금도 자기 가족과 스스럼 없이 언문 편지를 주고받는 마당에 왜 이들은 스스로의 언문 쓰기를 차단해 버린 것일까? 이 결벽증적 태도가 나타내는 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156-7

이 책에 담긴 질문

“문자가 사라지며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없는가?
정말로 다른 문자는 다른 역사상을 보여 주는가?
보편 문어는 늘 보편 문어였는가?
보편 문어와 구어의 세계는 어떻게 교섭하고 변화하는가?
새로운 문자의 창제는 당대에 어떠한 비중을 가진 것이었는가?
새로운 문자가 불러온 새로운 현상은 무엇인가?
문자의 소유가 불러온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문자 생활의 젠더화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문자가 변경에 놓였을 때, 변경이라서 얻는 것은 없는가?” 174

200쪽도 안 되는 책이지만,
매우 묵직한 의미가 담겼다.
심지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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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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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공감이고 감동이지. 서로 울리니까.

아버지를 잃고도 아내가 떠나가도 울지 못하던 할아버지가 눈물 수집하는 아저씨에게 눈물을 받아 크고 길게 울고 하는 말
“정말 이상하구나. 이런 기분은 평생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슬픈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기쁜 일들과 감사할 일들이 있었는지, 고통스러운 시간과 평화로운 시간들이 함께 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깊이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건•••••• 영혼을 물로 씻어낸 기분이구나.“ 49

아저씨와 헤어지면서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눈물을 참는 마음이 어떤 것인 지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구나. 숨겨진 눈물은 그 가슴 가운데에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지는구나.“ 66

박용래 시인이 그렇게 울었다던데, 어떤 ‘빛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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