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이 짧은 시를 쓰다니.
45년에 태어나 소위 노가다꾼으로 육체 노동자로 살면서 88년 마흔넷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삶은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에 제목 그대로 고스란하다. 이를테면
“아무도 이꽃을 본 적 없지만, 이 꽃은 있다
땀 흘려 일해보면 안다
/사람의 몸이 씨앗이고 뿌리인, 이 꽃—.
/일하는 사람의 몸이 소금의 꽃인, 이 꽃—.” 41 소금꽃
“손에 못이 박인다는 것은 일에 익숙해지는 것인데 숙련공이 되어간다는 뜻인데 손에 박인 못이 더 아플 때가 있다
/손에 못이 박이도록 일을 하는데도, 늘 빈손일 때가 그렇다” 42 손의 못 1
이런 시에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구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서사 구조의 시’에 몰두해 왔다. 땀과 그 결실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담아 왔다.
그런데, 한 구절만으로 시가 될 수 있다는 시평을 듣고 문득 깨달아 짧은 시를 쓰기 시작했고, 2021년에 모아 낸 것이 이 시집이다.
‘촌철살인적 언어의 세계’,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운 인식의 힘’이 담긴 ‘짧은 시의 매력’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말랑말랑한 서정도 꽤 있다. 그저 짧을 뿐인 시들도 있다. 그러나,
“가슴속
따뜻한 숨결을 담고
오늘도 온갖 생활의 주름들을 펴고 있는
/그대, 웃음—.” 95 다리미
’그대‘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때도 ’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단단히 삶과 노동에 두 다리 박고 서 있다.
“잘 익은, 저 넝쿨의 굵은 땀방울—.” 81 수박
우리는 그저 먹거리로 보는 수박에서 수박의 ‘땀방울’을 노고를 본다.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다
이슬이 꼭 풀의 등에 얹힌
짐 같다
/그 등의 짐 무거울수록
/두 다리 힘줄 버팅겨 일어서는, 풀잎—.” 56 풀과 이슬
“물이 되어 흘러내리다 문득 걸어온 길 뒤돌아보는, 저 서늘한 눈빛!” 69 고드름
‘버팅겨 일어서는’ ‘서늘한 눈빛’을 그는 잃지 않을 것이다.
책 크기도 일반 시집보다 더 조그맣다. 쏙 넣고 다니며 자꾸 읽어야겠다.
물방울
그래, 물방울은 오직 물방울만 소유하고 있다
존재를 꽃 피우는, 그 빈 몸의 소유—. - P24
분수령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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