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교토의 1만 년 - 교토를 통해 본 한일 관계사
정재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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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교섭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교토의 역사를 비롯한 이모저모를 상세히 알려준다.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이 우리 소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바로 한반도 제작설에 무턱대고 힘을 싣지 않고 사서와 교류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 답을 건네는 식이다.
역사학자의 서술이니 깊고 세세하다.
재밌다. 드물게 웃기기도 한다.

오늘날의 명당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옛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점, 역사와 문명은 그 터전 위에서 사람이 지지고 볶으면서 켜켜이 쌓아 온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 P28

어쩌면 자기의 전공에 부합하는 소원만 들어 주는 일본의 신은 모든 소원을 다 들어 주어야 하는 한국의 신보다 훨씬 덜 바쁠지도 모른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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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시집 14
김소형 지음 / 아침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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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니 혁명이니 사랑이니 이런 거 말고”93
상상 속에 있다.
퍼즐 같고 환상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무도 내 거위를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내 슬픔을 본 적이 없겠지” 66

“그래, 나는 푸른 머리칼 그 애를 기다려. 그 애는 숨어 있는 걸 좋아했지. 아홉 개의 구멍으로 빛 뿜는 분수 뒤에, 흰 부리 다듬는 겨울 뒤에, 그는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했어. 어떤 날에는 토끼 굴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지. 비밀처럼 입을 쫑긋한 채 몸 둥글게 말고 어서 나오라고 연기를 피웠어. 한참 뒤에야 나온 것은 불붙은 토끼 한 마리” 44

시인도 알고 있는 듯하다.
“왜 너는 이따위 이야기만 한 거야“ 79
”미안, 또 망쳤군
난 생각이 너무 많아“ 75-76
“이건 이상하지 않아?
요즘 시는
다 이러더라 누가 읽겠어?” 15
자기 시의 난해함을.

“여전히 시위를 하고 여전히 곤봉을 들고 사람들은 이 보기 좋은 세상에서 서둘러 사람의 흉내를 낸단다
/네가 아끼던 물푸레나무를 이웃이 도끼로 찍을 때 사람의 흉내를 견딜 수 없더라” 11
시인은 현실의 사람들이 ‘사람의 흉내’를 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는 환상’26 이 걸어다니고 얘기하고 밥 먹는 것이다.

그래서 금세 상상의 나래를 펴서 현실과 상상이 함께 버무려지나 보다.
그 상상이 아주 멀리 가지 않고 여기 있는, 아래 시가 좋았다.

7월 4일*


우리는 걸었지. 꿈속에서 잠들고 종소리 들었어. 푸른 보리밭, 곰 세 마리가 춤출 때 아빠는 꿈에서 우리를 만난 거라고 해.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7월 4일은 단원고 수정이의 생일이다. 수정이는 춤을 좋아했고 세 자매 중 둘째였으며 태몽은 곰이었다고 한다. 이 생일을 기억했으면 한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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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금요일엔 역사책 3
여호규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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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나 장소라는 개념은 종전 역사 연구에서도 종종사용되었지만, ‘공간‘ 개념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소‘가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성격을 지닌 개념이라면, ‘공간‘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개념이다. 이에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보편적 요소를 찾고자 할 때, 장소보다 ‘공간 개념을 사용한다. 역사 연구에서도 다양한 사람이나 집단이 공유하는 사회구조나 정치체제를 연구할 때는 ‘공간’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168

‘공간’ 개념을 설명하면서 ‘사회적 생산 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출하고 그것을 차용하여 고대인들이 도성을 바둑판 모양의 계획도시로 건설한 까닭, 삼국 초기에 왕궁을 건설하지 못한 이유, 신라의 5소경이나 고구려의 별도와 같이 ‘또 다른 서울’을 건설한 배경을 풀어낸다.

두 나라 지방의 서울을 ‘재화의 공급 집적지’로 영역 통합의 구심점이라 설명하였다. 백제의 도성은 하천을 끼고 있어서 정치적 부도만 존재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저자의 바람대로 공간을 통한 역사 연구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시간 우위 역사관의 기준은 서구가 이룩한 근대문명이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기준으로 세계 각지의 역사와 문화를 시간적으로 서열화하고, 심지어 미개와 문명으로 구별하면서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시간 우위 역사관의 밑바탕에는 서구 중심적 편향성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계가 서구 중심 역사관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필자도 이러한 분위기의 영향을 받으며 공간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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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저녁이 왔다 오후시선 1
복효근 지음, 유운선 사진 / 역락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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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가 시인의 집에 둥지를 틀었다. 담벼락 앞에 나무를 심으려 구덩이 파려는데 박새 부부가 달겨든다. “네 집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기도 하다 점유권을 주장한다” 그러자 시인은 ”나무 심기를 포기하고 이 봄을 저 박새부부에게 맡기기로 하는데“, 그러고는 ”어라, 그래 그으래! 이 어처구니없는 침탈로 내 것이라고 부를 게 아무것도 없는, 빼앗겨서 즐거운“ 마음이 된다.
우기지 않고 깃드는 마음. 그것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말에 탄환을 얹으면
누군가 어딘가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질 수도 있다” 101
사랑도 당연히 사랑하는 나만큼 받을 그도 생각해야지.

그렇게 잔잔히 흘러가는 것이다. 사랑도 삶도.

“아니 그냥….
그래, 지금 그냥이라는 말보다 적절한 말은 지상에 없을 것 같다
열 손톱에 물든 봉숭아꽃물처럼
희망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절망도 좌절도 이 즈음에는 서로 같은 표정 같은 빛깔
왜 사느냐 물어도
당신 나 사랑해 물어도 그냥” 85

야생


설악산 여행 기념으로 다들 하나씩 사들고 오던
천연기념물 에델바이스 압화
몽골 초원엔 에델바이스 널려있다

뿐이랴 온갖 야생화가 융단이다
염소가 뜯거나
말똥에 깔려 피기도 한다

간절한 것들이 염소똥처럼 널려있을 때
세상이 갑자기 맹물처럼 싱거워지기도 한다

마유주를 따라주는 여자에게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있어 행복하겠어요 했더니
관광용으로 말하면, 행복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피는지 지는지도 몰라요 한다

행복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산단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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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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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1914년에 망국 조선의 유학자가 중국 여행을 하고 남긴 글이다.
여행의 시작은

“아, 나는 풍파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 근심만 깊어지니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가눌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몸을 떨치고 일어나 중국으로 유람을 떠났다. 다녀온 여정이 수만 리에 이른다. <시경>에는 ”말에 멍에 씌우고 길을 떠나 나의 근심 풀어보리라“라는 시가 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에게 유람이란 고작 집을 나서 교외에 가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쌓인 근심은 교외에 이르면 다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근심은 집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내 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 갈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 <시경>의 시인과 비교해도 고생이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1

수많은 선인들이 직면한 망국과 그 답답함 때문이다.
그 활로가 중국 ‘여행’인 경우는 처음 보는 듯하다. 여러 가지 길의 항일 독립 투쟁이거나 관망, 아랑곳없는 일신 영달의 길은 보았지만.

자못 궁금한 사람의 궁금한 여행이다.
아주 꽉 막힌 중화주의자는 아니었다.

“명나라가 조선을 구원해 준 의리는 비록 잊을 수 없지만,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우대해 준 것이 과연 명나라에 미치지 못한 것인가? 더구나 지난날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한 사람들은 오만하게도 존화양이를 구실로 삼아 거만하게 도포를 휘날리고 상투를 틀고서 ”천하에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금수다“ 라고 말했다. 가령 도포를 입고 상투를 튼 것이 백성들의 삶을 위한 가장 큰 의리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복식을 보존하고 우리의 상투를 지켜왔던 것은 청나라가 그것을 관용해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보존하고 지켜온 것은 아니었다.
남한산성에서 항복하던 날에 청나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변발을 강요하고 복식을 바꾸게 하려고 했다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청나라가 중국 민족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겠는가.“ 38-39

여정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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