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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이면우 지음 / 북갤럽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은 2002년에 나온, 이면우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1년 전에 나온,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보다 이전에 쓰인 시들이 많다.
첫 시집 <저 석양>에서 24편과 그 뒤 쓴 27편을 ‘고쳐 다듬고 한데 묶어’ 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그의 출세작 <아무도~>보다 10년쯤 젊다. 앞 시집이 화자 나이 50살에 걸맞은, 잔잔함을 보여준다면, 이 시집은 40살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잘 보여준다.
그는 ‘밥상에 대고 머리 조아리던 겨울 아침을 지나왔‘으며,
“일없는 날 새벽밥 먹고 가는 먼 산 깊은 계곡
얼음장 깨고 냉수욕했다 발바닥 쩍쩍 늘어붙었다
까짓 추위보다 먹고사는 게 더 무서웠다.“ 78
그럼에도 열심히 버티었다.
“내 여름의 자본은
두 장 반바지, 티셔츠 하나
그리고 작업 중 척 늘어져
거추장스런 반 근 불알의 자존
나는 이 모든 장치를 힘껏 강에 던졌다
어느덧 가을이다 나도 한때는 당당히
이 모두를 담보로 세끼니 밥을 샀다
강에는 껍질 벗은 날개의 묵은 집이 떠내려온다
저물녘 강변 자갈들은 발에 밟히며 구슬피 운다
지금은 청춘을 온전히 낭비한 사내들이
묵묵히 떠나야 하는 때다.” 61
아, 그러나,
“강변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성대는 저녁
햇살이 저쪽 폐교된 초등학교 유리창을 쏘고
황금화살처럼 눈에 와 박혔다 돌연 창은 불 붙고
내 눈은 뜨거운 불길로 꽉 찼다.
/저 불의 집을 떠나며 나도 무어든 되어보리라고 작정했었다
그때 흘리지 않은 눈물이 눈꺼풀 새로 뜨겁게 번졌다.
/서늘한 가을강 오래 들여다보다
물 따라 달려온 빈 버스에 올랐다.” 64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저 겨울을 나는 삶이 버겁고 허무하다.
그래도, ‘무어든 지나고 나면 견딜만하게끔만 무거운 법’ 40
아래 시와 같은, 건강한 다잡음을 어느 누가 조롱할 수 있으랴
젖는 것들은 모두 따듯하다
비 젖은 산맥, 무언가 아득하다 비 젖은 뾰족 봉우리, 이건 눈에 선하다 또 뾰족 내민 건 작고 작은 건 돌마저 젖는다 비 젖은 숲, 그 속의 나무 한 그루보다 작는 나는 꼼짝없이 비에 젖는다 또 호수는 정숙한 여자 눈 속처럼 깊이 젖는다 비 내려 품 못판 날, 우리 샘터 붉은 비닐 개숫통 속의 맑은 물도 비에 젖는다 내 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그 속의 스뎅식기 은빛 묵직한 무게로 자맥질하며 가라앉는다.
그래 그래, 오늘 열심히 살아야겠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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