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쿠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파스칼 라바테 글.그림, 알렉세이 N. 톨스토이 원작, 이상해 옮김 / 미메시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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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남는 것이 승리라면
주인공 시메온은
자신의 말대로 ‘세상의 왕’이 되었으니
최고의 승자다.

원작자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레프 톨스토이 아닌
알렉세이 톨스토이도 여러 방식으로 그를 없애 버리려고 했으나 매번 살아남았다는

바퀴벌레
그런 것들의 후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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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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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의 옛날이라 하더라도 옛날은 외국이나 다름없다. 어떤 문법책의 예문에 그런 말이 있었다. 물론 이 옛날은 3백 년 전이거나 천년 전의 옛날, 역사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그런 옛날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30년 전, 내가 철들어 보고 느끼며 살았던 나날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의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문득 몸이 떨린다. 기억이 내 존재의 일관성을 보증해준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간 속으로 내가 찾아내려 간다면, 나는 거기서 다정하고 친숙한 물건들을 다시 만나기보다, "나는 여기서 산 적이 없다"고 말하게 될 것만 같다. - P145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 - P163

덜 끔찍하다는 것은 사실 더 끔찍하다는 말이다. 봉천동의 마지막 작은 집이 허물어지고, 정릉의 고층 아파트들을 둘러싼 원주민촌이 이주를 마저 끝내기 전까지는, 저 빈집의 두터운 빗장이 다 삭기 전까지는, 우리가 제사상 앞에서 울리는 절이 아직 허망하지 않다. 그러나 없는 신에게 절을 하는 것보다 없어질 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 덜 끔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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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을 만지다 작은숲시선 (사십편시선) 24
이면우 지음 / 작은숲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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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찾아보니 2018년에 이 시집을 읽고 이렇게 썼다.

“뭐랄까 내면으로 너무 침잠한달까. 모호하다. 또렷하지 못해 아쉬움. 감정을 지나치게 지움, 세월호 침몰을 배경으로 쓴 <고래의 눈물>마저 슬픔이나 분노가 1도 없음. 생기없는 무채색”

이전 시집들에 가득했던, 삶의 구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14년 만에 낸 시집인데, 그 사이 시인은 보일러공 생업을 유지하면서, 방통대를 거쳐 문창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래서일까. 시집 내내 당신을 호명하고 당신에게 얘기하고 당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의문문이 넘실대고 시의 끝을 그렇게 맺는 것도 잦다는 것.

잘 만든 증류주는 재료의 향이 알콜과 조화를 이룬다. 지나친 증류는 그저 순도 높은 에틸알콜에 이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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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1 0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사람 자살 사건 철학이 있는 우화
최승호 지음 / 달아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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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로 볼 수도 시로 읽을 수도 있다.
따뜻한 시선이 있기는 하지만,


할미꽃

봄날, 무덤 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할미꽃에게 햇살이 물었다.
“할매, 할매는 왜 무덤만 보고 계십니까?”
할미꽃이 대답했다.
“무덤 속의 망자(亡者)가 봄이면 꽃을 보고 싶어 하는데 꽃들은 다 망자를 외면한 채 하늘을 보고 있다오. 그래서 내가 볼품없는 꽃이긴 하지만 누워 있는 망자가 나라도 쳐다보라고 이렇게 얼굴을 숙이고 있는 거랍니다.” 134


최승호는 역시 차갑고 날카로울 때 빛난다.
여러 군데서 멈칫했고, 한 대 맞은 듯 생각에 잠긴 글이 많았다.

고슴도치 두마리


고슴도치 두마리가 가시를 상대방의 몸에 찌른 채 피투성이가 되어 함께 죽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 사랑했던 모양이다. - P29

열등감


황소개구리에 놀란 도롱뇽들이 바위 그늘에 모여서 깨알만 한 심장을 할딱이며 말했다.

"우리 조상님은 공룡이다." - P144

처세술 강의


도마뱀이 뱀들의 초청을 받고 자절(自切)에 대한 강의를했다.
"저는 붙잡히면 꼬리를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도망치는거죠. 여러분도 붙잡히면 꼬리를 끊어보세요. 아마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도마뱀의 강의를 들은 뱀들이 붙잡히면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꼬리를 끊어보려고 애쓰다가 모두 벌꿀오소리의 먹이가 되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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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이면우 지음 / 북갤럽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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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2002년에 나온, 이면우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1년 전에 나온,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보다 이전에 쓰인 시들이 많다.
첫 시집 <저 석양>에서 24편과 그 뒤 쓴 27편을 ‘고쳐 다듬고 한데 묶어’ 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그의 출세작 <아무도~>보다 10년쯤 젊다. 앞 시집이 화자 나이 50살에 걸맞은, 잔잔함을 보여준다면, 이 시집은 40살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잘 보여준다.

그는 ‘밥상에 대고 머리 조아리던 겨울 아침을 지나왔‘으며,
“일없는 날 새벽밥 먹고 가는 먼 산 깊은 계곡
얼음장 깨고 냉수욕했다 발바닥 쩍쩍 늘어붙었다
까짓 추위보다 먹고사는 게 더 무서웠다.“ 78

그럼에도 열심히 버티었다.

“내 여름의 자본은
두 장 반바지, 티셔츠 하나
그리고 작업 중 척 늘어져
거추장스런 반 근 불알의 자존
나는 이 모든 장치를 힘껏 강에 던졌다
어느덧 가을이다 나도 한때는 당당히
이 모두를 담보로 세끼니 밥을 샀다
강에는 껍질 벗은 날개의 묵은 집이 떠내려온다
저물녘 강변 자갈들은 발에 밟히며 구슬피 운다
지금은 청춘을 온전히 낭비한 사내들이
묵묵히 떠나야 하는 때다.” 61

아, 그러나,

“강변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성대는 저녁
햇살이 저쪽 폐교된 초등학교 유리창을 쏘고
황금화살처럼 눈에 와 박혔다 돌연 창은 불 붙고
내 눈은 뜨거운 불길로 꽉 찼다.
/저 불의 집을 떠나며 나도 무어든 되어보리라고 작정했었다
그때 흘리지 않은 눈물이 눈꺼풀 새로 뜨겁게 번졌다.
/서늘한 가을강 오래 들여다보다
물 따라 달려온 빈 버스에 올랐다.” 64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저 겨울을 나는 삶이 버겁고 허무하다.
그래도, ‘무어든 지나고 나면 견딜만하게끔만 무거운 법’ 40
아래 시와 같은, 건강한 다잡음을 어느 누가 조롱할 수 있으랴

젖는 것들은 모두 따듯하다


비 젖은 산맥, 무언가 아득하다
비 젖은 뾰족 봉우리, 이건 눈에 선하다
또 뾰족 내민 건 작고 작은 건 돌마저 젖는다
비 젖은 숲, 그 속의 나무 한 그루보다
작는 나는 꼼짝없이 비에 젖는다
또 호수는 정숙한 여자 눈 속처럼 깊이 젖는다
비 내려 품 못판 날, 우리 샘터
붉은 비닐 개숫통 속의 맑은 물도 비에 젖는다
내 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그 속의 스뎅식기
은빛 묵직한 무게로 자맥질하며 가라앉는다.

그래 그래,
오늘 열심히 살아야겠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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