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문학의전당 시인선 81
김명기 지음 / 문학의전당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갖고 싶다!
어쩌다 이 책은 품절이 되어 이토록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가.
시인의 첫 시집이라 그런가
특히 4부의 말랑말랑한 습작시들은 좀 느끼하지만,
그야말로 ‘찰기 없는 사람’으로서
문학이 언제나 대상으로 삼던, 주체인 적 별로 없는
육체 노동자 혹은 임노동자로서의
뚜렷한 족적이 시집에 가득하다.
빈대 터진 자국 가득한, 꼬린내 지독해도
정겹고 따스했던, 무엇보다 굳세었던
삼촌들의 방을 보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내내 나를 끌고 다니던 알 수 없는 허기와 가물한 궁핍’이 소재에 머물지 않고 깊어질까 궁금하고,
그저 해지는 오후를
‘탄력 잃은 햇살이 잿빛 바람에 밀려 세상 밖으로 소진되어간다’고 하는 묘사가 얼마나 더 빛날까 기대가 된다.
발표 순서대로 찾아 읽어야겠다.

정동진에 관한 몇 가지 기억


몇몇 시인들이 작은 그 동네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누구도 그곳이 알려지지 않은 탄광촌이었거나 포구조차 변변찮은 어촌이었다고 쓴 시는 없다. 불그죽죽한 진달래 철철대는 봄날, 괘방산 아래 탄 먼지 풀풀풀 날리며 헐벗은 7번국도 위를 세월 없이 지나던 제무시 트럭에 대해 빈 궤짝 같은 역사 숨 짧은 플랫폼 끝자락, 엎어놓은 고무다라이 같던 탄 무더기들에 대해 간혹 바다로 내려선 볕들이 비늘이 되어 반짝이면 바랜 나무 울타리 위로 기어오르는 나팔꽃 뒤로 처마 낮은 집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경배하며 늙어가고 있었음에 대해 단 한 줄도 쓰 이지 못한 정동진. 바다를 껴입은 겨울바람이 어린 소나무 모가질 비틀면 옷핀 같은 이파리들이 소름처럼 돋아 파르르 떨던 곳. 한바탕 물큰한 욕망이 휩쓸고 갔어도 가끔 모래톱에 걸려 넘어지는 파도 같은 어설픈 사람도 있어 이런 곤고한 글 하 나쯤 왜 쓰고 싶지 않았을까. 날마다 발밑으로 지랄탄이 빠바바방대던 갓 스물 온 나라가 올림픽에 열광하던 그해 지상에 그런 동네 하나 있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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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의 버디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에서 주인공들은
그림의 선이 가늘고 멋있다.
장발도 흐드러진 꽃 같은 느낌
설정과 줄거리 전개는 좀 유치하고 느닷없지만,
그게 만화지 뭐.
<불가사의한 소년>의 냉소와 약간의 위악,
<천재 유교수>의 아닌 듯 챙겨주는 인간미
가 함께 있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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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 장날 만난 체 게바라 문학의전당 시인선 81
김명기 지음 / 문학의전당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같은 사람이 없으니 같은 삶도 없고, 그러니 시도 다 다르다.
그러나 분류 가능한 범주 안에 다들 있다.
시대나 지향이나 학벌, 고향, 성 등.
김명기는 일반적인 특정이 어렵다. 이런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러시아 선적 대게잡이 배에 조업감독관이’ 되어 ‘수평선 보이지 않는 바다에 간 적이 있’고,
‘목숨 없는 붉은 고깃덩어리에 가해지는 칼질’을 하느라 ‘오른손 검지 끝마디에 콩알만 한 굳은살이 박인’ 사람이다.
그렇다. 잉여로 사는 예술가인 양하는 시인이 아니고, 노동의 의미를 번뇌하는 노동자도 아닌,
‘시작과 끝이 모호한, 아슬한 한 생’을 살고 있다.
대개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시의 대상이 되었던, 소외받는 삶이 자기를 읊는다.
매우 놀랍고 새롭다.
2부까지만 읽었다.
몇 편 밑줄긋기에 남긴다.

문짝 떨어진 통시 속 움츠린 햇살마저도
푸석하게 낡아버린 오후
그래도 때가 되면 저 혼자 피었다 지는
백일홍 나무가 서러워 다가서는 발걸음을
한사코 잡아채는 환삼덩굴이여
긴장한 고양이들 낮은 울음소리여
살아 움직이는 낯선 부재의 모든 슬픔들이여 - P23

숱하게 지나간 시간 속
무수한 각오들은
저 붉은 꽃의 한 호흡 같은 것이라
다만 그 순간만 지독했을 뿐이네
그까짓 혁명성을 버리고
이까짓 시를 택하고서야
비로소 터져 나오던 눈물처럼
채 여물지 않은 봄날
창부타령 같은 옅은 비 한 자락 사이



꽃 떨어지는 소리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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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1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늑대왕 로보 시튼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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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늑대왕 로보는 역시 시튼 동물기의 백미다.
자연주의자이자 집요한 사냥꾼인 시튼이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늑대왕 로보와 대결하는 얘기는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서산데
그것을 다니구치 지로의 정밀한 그림과 함께 보니 더할 나위 없다.


도굴꾼이 문화유산 전문가이듯
자연주의자를 자처하는 이가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것은
웃기게도 아이러니가 아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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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 인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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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왕 교육을 받아도 좋은 임금 되기가 어려운데, 현실과 동떨어진, 한족 중심 중국만 따르겠다는 기치와 자기도 뒷날 친아들과 며느리, 손자를 죽이니 도찐개찐 되는, 광해군이 패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반정을 일으켰으나 자질 없이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
그와 광해군 시기 집권 당파 북인을 절멸시키고 권력을 잡은 서인들의 합작품인 병자호란. 백성들만 죽어 나갔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인조가 거의 최악이 왕이었다고 평가한다. 왕 묘호에 ‘어질 인’자를 넣은 것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 어쩌면 그의 잔혹함을 조롱하기 위해 신하들이 택한 역설은 아닐까”라고 평한다.
김상용의 죽음을 순절로 단정한 것은 의문. 강화도가 함락되자 화약을 일부러 터뜨려 순절했다고 표창, 숭앙하고 그의 자손들이 노론의 핵심이 되어 떵떵거리고 나라를 주무르며 살게 되는데, 당시 사건의 최초 보고자인 강도유수 윤이지는 단순 사고사로 보고했었다. 병자호란 이후 간신히 돌아온 환향녀 중 정절을 잃었다는 명목으로 제일 먼저 이혼당한 윤씨가 윤이지의 조카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습하지 못해 나라를 결딴낸 것들이 지들 때문에 고통 받고 간신히 돌아온 여인들을 모욕하고 배척한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부분을 조금 익살스럽고도 짧게 다뤄 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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