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공부 전략 -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전문가가 알려주는
방종임 지음 / 스몰빅에듀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 : 초등 공부 전략

작가 : 방종임

출판사 : 스몰빅에듀

읽은날 : 2021/06/12 - 2021/06/29


공부법에 대한 육아책..

조선일보 교육관련 기자라고 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수험생들, 전문가들의 의견을 묶어 공부법, 각 과목별 공부전략, 진학 전략등을 알려준다. 

기존에 읽었던 육아책의 저자들의 인터뷰도 나오고, 대치동 학원가 이야기도 나오면서 자녀입시에 목숨을 거는 부모들이 관심가질 내용이 많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도 어렵고, 사업도 어려운 시대에 이렇게까지 공부와 진학에 매달리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반면 그렇게라도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해야 작은 기회라도 얻을 수 있다는 절박감도 이해가 된다. 

우리 아이의 경쟁자들은 이렇게 공부하며 입시를 준비하는구나 생각하면 조바심도 나지만, 그게 행복해지는 길인가 생각하며 이런 방식으로 교육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육아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린다. 

육아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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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와 읍루 - 숨겨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이야기 ㅣ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0
강인욱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 : 옥저와 읍루

작가 : 강인욱

출판사 : 동북아 역사재단

읽은날 : 2021/06/20 - 2021/06/27


올해 읽은 책중 가장 흥미있게 읽었다.

한국의 고대사라고 하면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 메인이고 여기에 가야가 좀 더해지는게 일반적이다.

3한에 있던 목지국이나 동해안에 있던 옥저, 동예, 북쪽에 있는 우리민족이라고 얘기하기에도 애매한 읍루에 대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옥저와 읍루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문헌과 유물을 통해 이야기한 책은 처음이다. 

대부분 모르고 있겠지만 우리의 온돌문화는 옥저에서 개발되었다.

민며느리제가 있었고 고구려에 시달리다 고구려에 복속된 작은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옥저는 북옥저와 동옥저로 구분될 만큼 상당한 규모에서 정착생활을 했고, 농사와 교역등 나름 괜찮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왕이 없을 뿐 좋은 사회구조를 가진 곳이다.

기록이 없다고 해서 후진 문화는 아니란 걸 깨닫는다.

옥저는 한반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 읍루를?

읍루야 말로 나에겐 생소한 민족이다. 숙신, 물길, 말갈로 불리는 나라라고 알고는 있지만 한 번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연관지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고구려에도 읍루 민족이 있었고, 발해는 백성들 중 많은 비율이 말갈족이었고, 심지어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여진족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모습을 보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연구가이자 저자를 통해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책을 읽다보니 어릴적 꿈이 생각이 나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고고학자 되고 싶은 생각 없니?"

"아빠.. 저에게 왜 이러세요.."

음... 역시 아이와 아빠의 꿈은 다르구나.. 




4% 옥저와 읍루에 관한 자료는 거의 전적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근거한다. 그런데 원문에서도 옥저는 710자, 읍루는 270자에 불과하다

7% 우리 역사에서 북방민족의 역사라 함은 단순히 한반도의 북쪽과 만주라는 지리적 위치를 말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지리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문화를 의미한다

8% 북방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고고학적인 자료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고고학 용어로는 생계경제)과 역사 기록을 종합하면 이들은 크게 예맥계, 흉노계, 말갈계 등으로 나뉜다

9% 수렵과 채집에 주로 종사하던 읍루계는 숙신, 물길, 말갈, 여진으로 이어졌고 청나라 때의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연해주와 송화강 일대에 사는 나나이, 3 니브흐, 울치 등은 바로 이 읍루계 주민들의 후예이다

11% 고고학 자료와 문헌 기록이 서로 다른 것은 어느 한쪽의 연구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고고학과 역사학은 서로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14% 기원전 4세기경부터 잡곡농사를 짓고 집에 온돌을 놓았던 옥저계의 문화인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가 등장하면서 환동해 지역에도 본격적인 마을이 등장하게 되었다

16% 대체로 학자들은 이름만 바뀔 뿐 숙신에 대한 내용은 대체로 읍루와 유사하기 때문에 숙신과 읍루를 같은 사람들로 간주한다

18% 이후 아무르강 유역에서 읍루에 해당하는 플체 유적이 발견되었고, 1980년대가 되어서야 챠피고우 문화는 연해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북옥저인들의 문화로 인정되었다

22% 옥저는 이제 북방 지역의 잊힌 역사에서 한러 공동연구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25% 옥저인들은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깊게 파고 그 위에 벽과 지붕을 얹은 초가집에 살았다

27% 이런 수목장(나무 위에 관을 두는 풍습)은 시간이 지나면 거의 남지 않는다. 한반도와 같은 세형동검을 썼던 족장이나 샤먼들을 제외한 일반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이런 무덤을 만드는 전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8% 기후의 한랭화라는 위기는 옥저인들에게는 큰 도전이었지만, 그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사회를 더욱 발달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적응 과정과 사회 발전은 중국 사서에 옥저 또는 북옥저라는 이름을 기록하게 했다

29% 온돌 시설은 옥저에서 처음 시작되어 철기 문화의 전파와 함께 기원전 3세기부터 한반도 전역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30% 온돌은 옥저계와 읍루계라는 이 지역의 커다란 두 줄기 주민집단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34% 옥저계 문화의 사람들은 추위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대신에 농업 생산력이 높은 이 지역이 한랜화되는 시점에 농경지를 개척했고, 그들의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36% 봉림 문화와 말갈 문화인들은 서로 경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기후가 바뀌면서 이 지역의 문화도 서로 교대하듯이 바뀐 것이었다

37% 옥저가 고구려의 속민으로만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구려 이전에 위만조선, 현도군, 낙랑군 등이 시대를 달리하여 옥저를 복속하려 했다. 그리고 그전에는 극동 지역에서 중원과 단독으로 교역할 정도로 큰 세력이었음이 바로 이 유물로 증명되었다

40% 위만조선이 활동한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전반에 이미 옥저는 무역의 주도권을 위만조선에게 빼앗겼다는 뜻이다

42% 옥저인들이 세형동검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즈웨스토프카에서 발견된 세형동검은 주석성문이 극히 적고 납 성분이 많아서 한반도의 청동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43% 옥저인들은 역사 기록에 일관되게 다른 세력들에 복속된 것으로 나온다. 수백 년 동안 복속되었다면 옥저 사람들은 역사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옥저는 수백 년 이상 그 실체가 계속 유지되었다. 대외적인 정치판도와는 별도로 옥저인들의 교역네트워크가 생존 비결이었다

45%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관구검의 침략으로 8천여 인이 희생되었으며 옥저의 읍락이 모두 파괴되었다고 나온다

52% 벌판은 러시아 말로 플레인데 서쪽 러시아 사람들은 플체(작은 벌판 정도의 의미)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렇게 읍루 유적에 플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53% 플체인들은 옥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퍼져 살았다

58% 연해주의 철기는 제철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제련시설에서 그들만의 노하우로 도끼의 날만을 강철화키셨다는 것이다

63% 숙신이라는 이름은 읍루가 이후 말갈과 여진으로 나아가는 국가의 발달 과정에서 잠깐 일어난 사건이었다

64% 이렇게 고고학적 유물과 명백히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현대 중국의 가장 동북쪽인 삼강평원의 역사를 중원과 연결시키기 위해서이다

68% 고고학 자료는 하루가 다르게 급증한다. 그러니 지금은 부합하는 것 같지만 새로운 자료가 더 많이 나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70% 구한말부터 연해주에 고려인이 정착한 마을의 근처에는 거의 빠짐없이 옥저 유적이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입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옥저, 발해, 그리고 고려인에 이르기까지 같은 지역에 살게 되는 것이다

74% 옥저의 무덤으로 묘사된 것은 오늘날 시베리아 원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수목장을 말한다

80% 중국인들은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기록할 때에는 이 받침 토기의 존재 유무를 반드시 기록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플체 문화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82% 퉁구스-고아시아족이라는 애매한 개념보다는 예맥계(옥저)와 읍루계로 나누어서 극동 환동해 지역의 역사를 보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 편하고, 우리 역사의 틀에서 바라보기도 좋다

84% 환동해 지역이라고 하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다는 뜻이다

86% 정선 아우라지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는 한반도 최초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시베리아의 청동기 기술이 전래된 것이다

88% 환동해의 옥저와 읍루가 우리 역사에서 소외된 이유는 우리조차 부지불식간에 중국 중심의 역사 인식에 젖어 있기 대문이다

88% 우리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옥저와 읍루뿐만이 아니다. 북방의 추운 지역에서 부여와 같은 거대한 성터와 집단을 이루었던 두막루, 함경남도의 동예, 700년 넘게 나라를 이루었지만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신비의 나라 부여, 그리고 강원도에 존재했던 예맥과 말갈(연해주와 송화강 유역의 예맥 및 말갈과의 관계는 정확하지 않은 도 다른 집단이다) 등 너무나 많은 북방민족의 역사가 소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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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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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책, 이게 뭐라고

작가 : 장강명

출판사 : arte

읽은날 : 2021/06/16 - 2021/06/25


소설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였다.

더구나 제목은 팟캐스트에서 따온 것이었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쓴 책인줄 몰랐다.

그저 제목과 작가를 보고, 현실에 대한 소설책이 새로 나온 줄 알았다.

TV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팟캐스트도 했었구나.

독서 팟캐스트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진행자의 에세이를 통해 살짝 그 느낌을 맛본 것 같다.

그래도 난 장강명을 통해서는 소설을 읽고 싶다. 



p11 신작을 내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언론이 관심 가져주고 띄워주기를 바란다

p21 가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냥 아무 데서나 수시로 읽는다

p28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건 어렵다는 명언이 있다. 내 기억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 아니면 피너츠에서 나온 스누피의 대사다

p34 이제는 한국의 출판업이 사실상 '셀럽 비즈니스'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셀리브리티가 쓴 책이 잘 팔린다. 아니, 셀리브리티가 쓴 책만 잘 팔린다.

p48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한다. 말은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p99 어떤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에게 뒷담화를 하는 본능이 있으며, 언어가 바로 그 본능으로 인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p103 나로 말하자면 단행본을 그렇게 읽지 않는다. 따분한 대목을 건성으로 읽기는 한다. 그래도 책장이 정 넘어가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접는다. 세상에는 읽을 가치가 없는 책도 분명히 있고,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책도 분명히 있다. 읽을 가치가 있지만 너무 지루한 책도 있다.

p128 알코올은 이 뇌의 용량을 확 줄인다. 술을 마시면 어려운 사고 활동은 아예 할 수 없게 되고(예컨대 공부) 평소에는 무리 없이 하던 작업도 못하게 된다(예컨대 운전)

p129 스콧 피츠제럴드나 한때의 레이먼드 카버, 한때의 스티븐 킹처럼 알코올에 전 상태로도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카버와 킹은 술을 끊은 다음에 글을 더 잘 썼다.

p136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는 다뤄야 할 책에 대한 비판을 적어놓고 막상 저자 앞에서는 쓴소리를 삼가는 내 모습을 보고 팀원들은 "이중인격자"라며 놀렸다.

p152 아이스란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어서, 그 시즌마다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욜라보카폴로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뜻이다.

p167 암흑의 핵심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도, 서 있던 자리보다 더 밝은 곳이 나온다. 그러기에 결말은 자연스럽게 어떤 희망과 구원을 제시하는 듯 보이게 된다

p180 영화정보와 감상은 인터넷 게시판, 블로그, 유투브에 차고 넘치는데 거기서 나는 역설적으로 비평의 죽음을 확인하곤 한다. 비평따위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게 잘 살 수 있다니까 하는 침묵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p191 외국에 나갈 때마다 공항 서점에서 소설 코너만큼이나 넓은 논픽션 코너를 보며 혼자 부러워한다. 한국에서는 그 자리를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처럼 논픽션 소재가 넘쳐 나는 나라도 흔치 않을 텐데

p191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애정과 보람을 느낄수록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p212 웹소설 시장은 남성 독자와 여성 독자가 읽는 소설이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처럼 둘로 나뉘어져있다

p226 문예지라는 플랫폼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끼는 일반 독자와 한국문학간의 체감 거리가 세련된 디자인과 오디오북 같은 신병기로 간신히 좁혀진다고 본다

p240 덴비는 "고전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점령군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다시 또 독자와 싸우는, 길들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이라고 평했다

p252 1850년 러시아에서는 아예 글을 읽지 못하는 완전 문맹비율이 90퍼센트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책은 끝났다. 문학은 죽었다고 엄살떨지 말라는 게 사사키 씨의 주장이다

p257 다소 섬뜩한 사실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가 지네브라 킹과 외모가 그렇게 닮았다고 한다

p262 누가를 따진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파시즘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 체제라고 믿었다. 어떻게를 살핀 오웰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공통점을 봤다

p270 보는(듣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독서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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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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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작가 : 김범석

출판사 : 흐름출판

읽은날 : 2021/06/07 - 2021/06/17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애 실력은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의사로 만들려고 했다. 

의대를 가라는 거다. 

의사가 되면 평생 환자만 보며 살아야한다. 이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문과를 가게 된 이유중의 하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의사선생님이다. 더군다나 종양내과 의사 선생님이다. 

맡는 환자들은 주로 암환자, 특히 말기 암환자가 많다. 

말기 암환자들을 살려 기적의 의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상당수 환자들은 사망한다.

책의 내용도 대부분 환자들의 사망이야기다. 

2개월 시한부를 받고 결혼청첩장을 가져온 신부의 이야기도 있고(당연히 결혼후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가운데 자기를 찾아온 동생에게 내 돈 갚으라는 유언을 남긴 남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항암치료를 마치고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 평균 6개월인데 우리나라는 평균 1개월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사망 2주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존엄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무엇일까?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는 모습을 나도 보일 수 있을까?

수많은 사망 데이터를 보고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며 회사에서 나는 암보험 상품을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상품이나 담보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마 팔리지는 않고 오히려 고객들 화만 일으킬 것 같다. 

죽음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 암으로 인해 기약된 순간이 환자에게 다가올 때 그것을 조금씩 뒤로 미루는 일, 그것이 나의 일이다

9% 남편분이 너무 열심히 사셔서 그런 거예요. 너무 열심히 산 죄로 죽을 때도 편하게 돌아가시지를 못하네요. 사람이 살아온 천성이라는 게 변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죽기 전에는 한번은 변하기도 하는데... 남편분은 어렵네요

11% 결국 내 돈 2억 갚아라가 환자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된 셈이다

39% 많은 환자를 봐야만 하는 의사에게는 0.1퍼센트의 예외적인 특별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0.1퍼센트의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44% 핏줄들은 하나같이 나를 괴롭혔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47% 나는 그때 알았다. 죽은 아이의 신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한다는 것을

50% 극단적 장기 생존자. 말 그대로 암 환자임에도 극단적으로 오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입원하지 않는다

53% 인생의 마지막 반년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불태운 셈이 되었다. 오래오래는 아니었지만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침표를 찍었으니 그건 그것대로 아름다운 결말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57% 600명 중 한 명과 단 한 사람, 이것이 그가 느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61% 세상에는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눈앞의 환자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므로 완벽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64% 교수가 함께 있는 수업인데도 문제가 될 거라는 인식 자체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앞의 동료들과 대화하지 않고 문자로 토론하던 이들이 환자를 앞에 두고 어떤 의사가 될지 생각하니 두려웠다

66% 종양의 크기를 떠나 최대한 증상을 완화하며 시간을 버는, 완화 의료라고 불리는 이 전략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신 표적항암제가 두달의 시간을 벌어들일 때는 열광하지만 완화 의료로 동일한 두 달의 시간을 버는 것에는 놀랍도록 냉담하다

68% 미국 사람들은 보통 사망 6개월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다. 즉, 그들은 삶을 정리하는 데 적어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에 반해 서울대병원 통계상에서 환자들은 사망 한 달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다. 삶을 정리하는 데 고작 한 달의 시간을 가지는 셈이다

79% 돌이켜 생각해보면 환자들에게 잘했던 때는 내가 푹 자고 푹 쉬고 스스로 편안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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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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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작가 : 배한철

출판사 : 매일 경제 신문사

읽은날 : 2021/06/07 - 2021/06/19


직업이 기자라는데 이정도로 조예가 깊고 다양한 국보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데 놀랐다.

부럽다. 

우리나라 수많은 유물중에서 나름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국보...

국보를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니,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관을 통해 황남대총의 주인공을 유추하는 방법을 보니 유물과 역사가 어떻게 대화하는 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 연구가들에 의해 제멋대로 파헤쳐지고 왜곡되어온 우리 역사와 유물들.. 아직 제자리를 찾기엔 멀었지만 훌륭한 연구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올바르게 유물과 역사가 해석되기를 기대해본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전 국토가 순례할만한 유적지라고 하고, 어떤이는 국보를 찾아 순례하는데, 난 이나이 먹도록 아직도 초보수준이니... 

나도 좀 열심히 살자.. 올해의 책 후보다. 



2% 필자에게 문화재를 찾아가 관람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행위이다

5% 여러 달이 걸려야 하는 세심한 작업을 10시간여 만에 후딱 해치우고 말았던 것이다

5%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108종 3,000여 점에 달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유물은 왕과 왕비 신분을 알려주는 지석 두 점이다

9% 이후 1,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3년 12월, 부여시 능산리 고분군에서 주차장을 건설하던 중 놀라운 유물이 우연히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걸작 국보 중 하나인 백제 금동대향로다

14% 신라가 나뭇가지와 사슴뿔 형상으로 금관을 장식했다면, 가야에서는 풀잎이나 꽃잎 모양으로 금관을 꾸몄다

18% 고려는 한국사의 황금기이자 문화의 절정기였다. 삼국시대 불교가 탑과 불상 등 건출, 조형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고려의 불교는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유행으로 회화가 발달했다

21%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은 11세기를 거쳐 12세기 전반에 정점을 맞는다. 광택이 매우 우아하며 가마에서 구을 때 생기는 자기 표면의 미세 균열도 거의 없는 고품질 순청자가 쏟아졌다

31% 인쇄물이 아닌 목판이 온전한 채로 남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이 유일하다. 1251년(고려 고종 380 완성된 이후 800년이라는 오랜 세월 속에서도 손상 없이 보존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38% 국보 제24호 경주 석굴암 석굴은 우리 문화사에서 독보적 금자탑인 동시에 동양 전체의 건축, 조각 예술을 대표하는 불멸의 업적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43% 알타이, 시베리아 등에서 나무와 사슴은 성스러운 상징이다. 나무는 하늘로 통하는 길이며 사슴은 하늘로 인도하는 전령사였다

43% 왕은 금관을 부장하는 전통이 채 자리 잡기 전에 사망해 무덤에 금동관을 묻었지만, 왕이 세상을 뜬 뒤 본격적인 금관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의 왕비는 금관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황남대총 남분에 묻힌 왕은 바로 첫 번째 마립간, 즉 내물왕이 되는 셈이다

44% 통일신라는 한발 더 나아가 국토 중앙의 수도라는 뜻의 중원경으로 그 명칭을 바꾼다

47% 첨성대 위에 정자 등의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문헌은 설씨 세헌편 외에도 다수 발견된다

48% 한 번도 발굴 조사된 바 없는 첨성대 지하와 그 주변을 파보면 첨성대를 둘러싼 수많은 의문점도 풀릴까

49% 봉영기는 가람을 세운 사람이 다름 아닌 사택왕후이고 그 해가 639년(무왕 40)이라고 전한다. 639년은 무왕 사망 2년 전이다. 사택씨는 성왕의 사비(부여) 천도를 도운 백제 말기 최고 귀족 가문이다

51% 일제강점기에 수리하면서 타설한 185톤의 시멘트를 제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탑은 이제 안전해졌겠지만 탑이 갖고 있던 고색의 정취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쉽다

52% 고유섭은 석탑과 불교 조각 등 불교 미술을 연구해 시대별 양식의 변화와 특징을 처음으로 정리했다. 한국 회화사를 학술적으로 집대성했으며, 고려청자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 이론도 체계화했다

54% 형상과 층수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경주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제 40호),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등이 여기에 속한다

56% 의상의 사당인 조사당은 1377년 재건됐고,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는 무량수전의 해체수리 공사가 진행됐다. 따라서 현재 무량수전은 고려 말 우왕 때의 건물이다

58% 불국사는 전 국민의 수학여행지이자, 경주를 넘어 우리나라 제일의 명소이다. 토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불국사는 "불국정토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통일신라인들의 야심찬 꿈이 드러난 절이다. 국내 사찰 중 치밀한 구성과 미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절이기도 하다

60% 83호는 남산 어귀의 사찰 또는 무덤에서 수습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72% 종합적으로 현재 정족산본 1,181책(완질본),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74책, 기타 산엽본(흩어져 있는 것을 묶은 것) 21책 등 총 2,124책이 남아있다

82% 그는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 것이니, 어찌 늙은 할멈이 규방에서 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인을 세워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고 논평했다

83% 돌 다루는 기술이 앞섰던 백제는 전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목탑에서 바로 석탑으로 옮겨갔다. 목탑 형식으로 쌓은 돌탑인 익사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 11호)이 그 증거로 언급된다

91% 풍속도 화첩은 단오풍정, 월하정인, 주유청강, 청금상련, 상춘야홍 등 신윤복의 명작이 총집결된 화첩이다

93% 안견이 북종화(기술적 연습과 수련을 중시)를 수용해 높은 경지의 이상적 산수화를 구현했다면, 정선은 남종화(작가의 교양과 정신을 강조)를 받아들여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창조했다

95% 정선은 18세기 후반 이후에 행세하는 거의 모든 집안에서 그의 그림을 소장할 만큼 화가로서 위상이 높아졌다. 그의 그림은 한양의 좋은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조선 화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성공한 화가였던 것이다

96% 에밀레종 전설은 근대 이후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에서야 등장하며 일제강점기 자료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조선 후기 유림의 세력이 강했던 경주에서 불교를 폄훼하고자 의도적으로 가공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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