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아는 척하기 - 난생 처음 공부하는 철학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데이브 로빈슨 지음, 주디 그로브스 그림, 양영철 옮김, 이병창 감수 / 팬덤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철학사 아는척 하기

 : 데이브 로빈슨

 : 팬덤북스

 : 2021/05/13 - 2021/05/28


재미있고 쉽게 읽도록 그림도 많이 넣고, 장난기 넘치는 글도 포함되어 있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삽화가 읽는걸 방해하는 느낌..

더구나 전자책으로 읽다보니 삽화와 삽화문구가 더 읽기 힘들었다.

가볍게 한번씩 서양 철학을 터치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될듯..



4%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에 현재 터키 해안의 이주민 도시 밀레투스에 살았던 괴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0%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인 진실은 없고 제한적인 인간의 믿음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4%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을 이용해 형이상학적 진리를 확립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항상 불가능한 모순을 낳는지 보여준다

46% 역사란 항상,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주장하는 서로 다른 역동적 개념들 간의 투쟁이다

52% 삶은 기독교에서처럼 종말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53% 실존적인 삶은 믿음의 도약을 통해 헌신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의미했다

60% 밀은 자유론에서 소수자의 사상과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관용ㅇㄹ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1% 소로는 자신의 세금이 멕시코와의 전쟁에 쓰이고 조예제도를 강화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믿었기 대문에, 지불을 거부하고 하룻밤동안 감옥에 들어갔다

78% 평범한 언어를 모호하지 않게 하려면 논리적인 형태로 세분화되어야 한다

86% 이 모든 성공에는 눈이 멀어 과학에 대한 과도한 숭배는, 과학이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인 과학만능주의의 먹이가 되기 쉽다

87%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 원리가 과학적 절차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로 과학 이론은 항상 잠정적이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랜드투어 그리스 : 고전학자와 함께 둘러보는 신화와 역사의 고향
강대진 지음 / 도도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랜드투어 그리스

 : 강대진

 : 도도네

 : 2021/05/17 - 2021/05/22


그리스라는 나라가 그렇다.

막상 가서 보니 돌기둥 외에는 볼 게 없던데, 신화도 그렇고 책에서 배운 것도 그렇고 서양문명의 원류라고 하니 동경의 대상이 된다. 

수천년 전에 만들어놓은 돌기둥을 보면서 선조들의 생각을 읽어내기엔 내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내용과 예전에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 그리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지식으로 그리스를 대충 돌아다니게 된다.

이 책은 나처럼 대충 돌아다니는 사람을 장소에 붙잡아놓고 강의하는 책이다.

마치 답사여행을 하듯 아테네 지역, 펠로폰테소스 지역, 그리스 북부, 미케네 섬을 비롯한 에게해지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한다.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어느 건물을 지나면 무엇이 나오고, 남쪽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저 유물은 왜 중요한지, 여기서는 뭘 봐야 하는지 등등...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꾼은 아니다. 

나처럼 대충 놀면서 공부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소화하기가 버겁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에 야한(?) 이야기도 좀 섞어서 해주면 더 집중해서 들으련만 너무 열심히 공부를 시킨다.

그리스라는 역사적 장소에 와서 판서를 잔뜩한 기분이다. 

대신, 책을 들고 다니며 지역과 유물을 맞춰보는 재미는 쏠쏠할 것 같다.

언제쯤 그리스를 다시 가보려나... 



p16 아크로폴리스라는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원뜻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란 말로, 대개 그 도시의 내부 요생이다.

p22 디오뉘소스 극장을 보려면 아크로폴리스 위로 올라가서 파르테논 신전의 남쪽 면에서 벼랑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언덕에서 내려온 후 남동쪽으로 가서 따로 둘러보아야 한다.

p27 거룩한 신전을 파괴한 동방인의 무지막지한 행태를 두고 조셉 캠벨 같은 학자는 거듭거듭 비난하지만,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은 희랍 쪽이었다고 여러차례 지적하고 있다

p31 아테네 니케 신전이 이렇게 많이 손상된 이유는 17세기 후반에 터키 사람들이 베네치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 신전을 허물어서 프로퓔라이아 앞에 방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p43 신화에는 여러 판본이 있는 법이니, 어느 하나만 옳다고 주장할 게 아니다

p50 프로퓔라이아 건물의 서글픈 역사를 잠깐 보았는데, 에렉테이온의 운명은 그보다 더 기구하다. 터키 지배 때 고급 관리의 하렘으로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종교적 공간이던 곳이 외국 지배자에게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장소로 변하다니!

p69 튀르크인들은 이 신전을 호약 창고로 이용하고 있었고, 아크로폴리스 먼 서쪽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던 베네치아의 모로시니가 대포로 이 신전을 타격하면서, 2천 년 이상 거의 멀쩡하게 서 있던 고대의 경이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p98 파르테논만 해도 기둥 수가 8x17인데, 이 건물은 가로 방향으로 기둥 두개만큼 더한 8X19에다 동서쪽 입구 앞에 기둥 8개씩을 가로로 덧붙인 형국이었으니, 옛 사람들이 이 계획을 거의 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p104 지금은 매우 현대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사실은 이자리가 2천4백년 정도 된 경기장 자리다

p111 ㅜ미케나이 문명의 대표적 유물은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사실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3세기 또는 12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유물은 그보다 3백 년 쯤 전 것이니 아가멤논의 초상일 수는 없다)을 비롯해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여러 기물들이다.

p113 상고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쿠로스라고 알려진 젊은이 조각상이다

p122 여기까지 우리는 박물관 네 개(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아고라 박물관, 케라메이코스 박물관 등)을 꼽았다. 그 밖에 뷔잔티온-그리스도교 박물관에 가면- 다른 것도 있지만-아이기나에서 출토된 투조 오르페우스상이 있다.

p138 그곳에 가면 여행객이 예상치 못한 유물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집트 신상들이 거기 모셔져 있다.

p140 기록에 따르면 마라톤 경기의 기원은 전 부대 완전 군장 구보 사건인 셈이다.

p149 1959년에 수도 매설 작업 중에 한꺼번에 발견된 것으로 각기 피레우스 아테네, 피레우스 아르테미스, 피레우스 아폴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p169 역사적으로 이 섬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점은 이곳이 미노아 문명(또는 미노스 문명)의 근거지였다는 점, 그리고 신화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도망쳤다는 것이다.

p246 코린토스 유적지는 다소 심심하단 인상을 주는데, 입구에 있는 아폴론 신전 기둥들 말고는 땅 위에 서 있는게 거의 없어서다

p249 코린토스는 아테나이처럼 문화가 번성했던 나라도 아니고, 스파르타처럼 군사력으로 유명했던 나라도 아니었다. 그저 양쪽에 항구를 끼고 지협의 목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서 상업적 번영을 누렸던 도시이다.

p260 현대 경기 중에는 완전무장 달리기가 가장 볼 만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적인 분장을 하고 출전하기 때문이다.

p265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유물은 돼지 이빨 투구이다. 이것 역시 일리아스에 언급되는 물건인데,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크레테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황소 머리 모양 뿔잔도 여기서 발굴된 것이 있다. 지금 여기 언급된 유물들은 모두 아테나이 굴립고고학박물관에 있어서, 약간 어려움이 있다.

p274 아르고스를 포함하는 펠로폰네소스 지역은 십자군 전쟁 이후에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서 뷔잔티온과 베네치아, 오토만제국 등의 요새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p280 이렇게 신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도시에 실제로 가보면 놀랍게도 거의 아무 유적이 없다. 젊은이들이 성년식을 올렸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다소간 초라한 기초를 보이고 있는 게 전부다

p318 지금 이 작품에 닭이 그려진 것은 가뉘메데스가 제우스에게 그정 술 따르는 시동 역할만 한게 아니라, 그의 애인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p319 한 가지만 더 짚고 가자면, 이곳과 델포이 박물관 소장품들은 종교 성지에 속한 것이어서 그런지 작품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아테나이 국립고고학박물관의 경우 생활용품이 많이 끼어 있어서 다소 투박하다 싶은 것들도 꽤 되지만, 여기 있는 것들은 거의가 명품 수준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안병억 지음 / 페이퍼로드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작가 : 안병억

출판사 : 페이퍼로드

읽은날 : 2021/05/10 - 2021/05/20


이게 시리즈인것 같다. '하룻밤에 읽는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시리즈가 있는데 뜻밖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가 있어서 읽어봤다.

한국사에 이어 세계사도 나오려나보다.

가볍게 교양으로 읽기에 참 좋다

내용은 개론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대륙만큼은 아니지만 켈트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이 이 땅에서 전쟁도 하고 화목하게 함께 살면서 민족을 이룬걸 알게 됐다. 물론 지역적으로 다수 민족이 있어 독립요구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잘 관리하며 영국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변방의 섬나라가 스페인이나 네델란드,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잔인함과 가혹한 모습 뿐만 아니라 처세에 능하고 기회를 잘 포착했다는 생각도 든다.

거문도 점거를 빼면 우리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적도 없지만 영국역사에 나오는 식민통치 모습은 결코 인권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우방이란 없다. 단지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호를 다질 뿐...

영국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p9 영국은 이처럼 대륙과 다름, 그리고 역사적 연속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p16 브리튼 섬에 살던 원주민 켈트족은 유럽대륙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2010년에 유전학자들은 이들이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대평원에서 이주했음을 밝혀냈다

p24 런던 의사당 앞 웨스트민스터 다리 옆에는 보아디케아의 동상이 있다. 앞발을 힘껏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두 마리의 말에 올라탄 여왕의 모습이다

p52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은 잉글랜드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그곳에 거주 중이던 켈트족과 싸웠다

p64 솔즈베리 서약은 막강한 왕권을 보여주는 한 예다. 윌리엄은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1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솔즈베리에 왕궁을 세웠다. 그리고 1086년 8월 1일, 수많은 귀족과 소작인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다. 170명의 귀족, 그리고 소작인들이 모여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대 충성을 맹세했다. 영국 역사에서 이런 규모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한 적은 없다

p84 중세 왕권이 매우 막강하던 시기에 몇 차례의 내란을 거쳐 마침내 귀족들이 중심이 되어 왕권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p101 봉건제 붕괴를 가속화한 것은 134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퍼진 흑사병이었다

p114 38년 치세 동안 헨리 8세는 영국 사회 곳곳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트리니티컬리지도 그가 남긴 자취 중 하나다

p118 헨리 8세는 6명의 왕비 가운데 2명을 처형했고, 심복이었던 토머스 크롬웰과 같은 대신을 처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은 잔혹한 군주였다

p136 당시 의회는 젠트리가 주도했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세습 귀족이 많이 죽으면서 귀족들의 세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p147 권리장전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p150 자연상태와 같은 무정부상태보다는 최악의 독재자 통치가 더 낫다고 그는 봤다

p154 윌리엄 3세의 즉위부터 영국이 1815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프로이센 등과 힘을 합쳐 나폴레옹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영국과 프랑스 간 종종 벌어진 전쟁을 제2의 백년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p160 영국이 프랑스와의 계속되는 전쟁에서 안정적으로 값싸게 군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것도 번창한 상공업과 주식회사의 성장덕분이었다

p176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왕위 계승권 허용을 놓고 벌어진 전쟁이다

p179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을 종결한 아헨조약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8년간의 휴전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1756년 유럽대륙과 인도식민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7년전쟁이 발발했다

p203 아메리카ㅗ 운송되는 과정에서 병에 걸려 죽는 노예가 약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p205 영국 안에서 노예무역 폐지는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주로 기독교 인도주의자들이 노예무역 폐지를 요구했다

p211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시기를 중국에서는 강건성세라 부르며 태평성대중 하나로 간주한다

p225 이집트는 로제타스톤을, 그리스는 엘긴대리석을 반환해달라고 영국에게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나 영국은 매번 거부했다. 양국이 소장품을 제대로 보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p227 프랑스의 루브르, 러시아의 에르미티슈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은 8백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중이다. 이가운데 1퍼센트에 불과한 8만점 정도만이 전시중이다

p230 유럽대륙에서 강대국이 성장해 세력 균형을 깨트려 영궁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는 게 영국 외교의 기본 방침이었다

p255 콥든-슈발리에 조약 체결 후 영국과 프랑스의 교역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p267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학자, 실천가, 혁명가로서 삶을 마감했다

p270 영국의 지배계급은 너무 늦지 않게 노동자에게 양보를 하여 이들이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영국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제한적인 영향만 미쳤을 뿐이다

p282 FTA 체결 후 국가 간 교역은 늘어나지만 분배는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 시장개방으로 더 큰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말이다. 17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이런 견해가 나왔다. 밀의 혜안이 놀랍다

p287 대승을 거둔 영국군은 1842년 중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홍콩의 할양과 광동, 아모이 등 5개 항구의 개항, 영사관 설치, 재산피해 배상 등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다

p287 1856년 시작된 2차 아편전쟁에서도 영국은 압승을 거두어 중국과 텐진조약(1858), 베이징조약(1860)을 체결했다

p292 키플링은 영국이 인도 등 각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신이 부여한 책무"이듯 미국에게도 문명화라는 백인의 부담을 질 것을 촉구한다. 당시 상당수 지식인들이 지녔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p298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투르크조차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그때나 현재나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p312 영국군은 퇴각하면서 적에게 넘어갈 수 있는 모든 것-토지와 건물 등-에 불지르는 초토화 작전을 실행했고 보어인 민간인을 질병이 들끓는 강제수용소로 몰아넣었다

p321 통일 후 비스마르크 정부는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고 보호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뒤늦게 산업혁명을 시작하는 후발주자의 따라잡기 전략이다

p340 파리강화조약 참가자들은 앞으로 유럽이 어떻게 살아갈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유럽의 생존방식에 관심이 없었다

p350 영국은 대공황 극복책으로 식민지 및 자치령으로 파은드화 블록을 구성하고 제국특혜관세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다

p362 복지국가의 기틀을 허문 보수당의 총리 대처조차 플레멘트 애들리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p365 현재 영연방은 영국을 포함해 54개 국가로 구성된 느슨한 조직이다. 국제협력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권 발전을 촉진하고자 한다. 아직도 호주와 캐나다 등 16개국은 엘리자베스 영왕을 공식 수반으로 인정한다

p405 경제위기의 와중에 취약층의 복지를 삭감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외부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p414 영국이 외교정책에서 아주 자주 미국을 드러내놓고 지지하기에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 난설헌

작가 : 최문희

출판사 : 다산책방

읽은날 : 2021/05/10 - 2021/05/23


허초희. 자는 경번, 호는 난설헌..

우리나라 역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인물..

조선에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나고,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원망했던 조선의 천재..

유럽에서 요절한 여성중 가장 안타까워하는 인물이 파니 멘델스존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단연코 초희다. 

그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 혼불 문학상을 탄 작품이라고 했다. 

이런 소설이 사실 쉽지 않다. 

초희가 요절했다는 결론은 정해져 있다. 관건은 그 결론까지 얼마나 밀도있게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느냐다. 

그러기엔 소설이 온통 클리셰 덩어리다. 

초희가 시집을 가는 첫장면에 갑자기 비가오고 천둥이 친다. 앞날이 순탄치 않을것이란 예시인가?

마치 홍길동인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듣고 흉할것을 예상하고 점을 쳐서 특재를 죽이는 것과 같다. 

꿈에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를 보면 오빠가 객사한다. 심지어 허균이 누나 꿈을 꾸니 누나가 죽는다. 

아무리 초희가 도교에 심취했어도 이정도면 무당이다. 

사랑과 전쟁에 나올법한 시어머니와 남편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며느리가 시댁에 가서 사는 제도가 정착하지 않은 시대이고 초희가 시집살이를 하는 1세대인 것을 감안해도 시어머니의 태도는 이해할 수가 없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했던 건 허균의 글에도 나오지만 이런식의 막무가내 시어머니는 좀 아닌것 같다. 김성립과의 결혼생활도 연달아 낙방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안좋았지 그 이전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도 있었는데 처음부터 김성립을 너무 나쁜 놈으로 그려놨다. 


소설에서 어떻게 그렸든지 남성중심 사회에서 태어난 여자천재는 너무나 안타깝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초희는 남성들에게 폄하되고 박한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도 문제없는 그의 시가 조선에서, 그리고 현대에서는 중국시를 표절했다는 대접을 받는다. 

세살에 천자문을 떼고 다섯살에 사서삼경을 읽은 남자천재는 있을 수 있어도 8살에 백옥루 상량문을 짓는 여자천재는 있으면 안된다는 희안한 사람들...

초희가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바라본 베토벤의 삶과 음악
에드먼드 모리스 지음, 이석호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작가 : 에드몬드 모리스

출판사 : 프시케의 숲

읽은날 : 2021/05/07 - 2021/05/16


클래식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 악성 베토벤.

아름답기 그지없는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 그리고 웅장한 교향곡까지...

어려서 받은 학대와 청력을 잃는 고난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어마어마한 음악을 만들어 낸 사람..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결코 본받을만한 모습이 아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귀족을 경멸하면서 귀족을 동경하는 이중적 모습.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해야 하고, 괜찮은 여자들에게는 하나같이 추파를 던진 난봉꾼같은 사람이 베토벤이다. 

조카를 카를을 두고 계수씨와 벌인 비열한 행위는 거의 정신병적 수준이다. 

돈에 집착하며, 같은 곡을 여러 출판사에 동시에 팔아먹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이 책에서 전기 작가가 이런 모습을 어떻하든 미화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 나중에는 체념한듯 담담하게 베토벤의 만행을 서술한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파렴치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그의 정열을 다해 만들었다는 건 확실하다. 

질그릇에 보화가 담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대부분의 베토벤 전기가 베토벤을 미화하기에 바쁜데 베토벤 전기가운데 그나마 객관적으로 잘 쓴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p11 바흐는 눈을 감기도 전부터 케케묵은 음악을 한다고 조롱받았고, 모차르트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 의해 작고 귀여운 음악만 썼던 작곡가로 평가절하되었다

p14 대푸가는 지금 들어도(처음으로 듣는 것이건 100번째로 듣는 것이건 간에) 거친 음향만으로도 듣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여전하다. 15분 넘는 시간 동안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및 첼로는 광분해 날뛰는 독수리처럼 꽥꽥대고 비명 지른다

p18 그는 염감과 노력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일 때 비로소 위대한 음악이 나온다고 믿었다

p30 베노벤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독일이 어엿한 나라라기보다는 언어를 핵심 논리로 하는 하나의 사상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p36 소년 베토벤은 숫기도 없고 말수도 적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느 급우의 기억을 빌리자면 "훗날 그토록 찬란히 빛날 천재의 섬광은 단 하나의 징후도 찾을 수 없었다"

p39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대포적인 장르가 교향곡이긴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그가 성악가의 아들이자 손자였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p49 현악기 중에서도 가장 은근히 이 악기를 향한 베토벤의 애정은(모차르트 역시 비올라를 아꼈다)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보다 구조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을 가진 천생 음악가였음을 시사한다

p57 루트비히는 베겔러와의 친분을 이용해 파트타임 수강생으로 본 대학에 등록해 철학 과정을 마쳤다. 당시 본 대학은 과학자, 법학자, 신학자, 인문학자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었고, 한 마디로 지적으로 깨어 있는 젊은이가 지내기에 더없이 짜릿한 환경을 제공했다

p70 베토벤이 1790년에 쓴 "칸타타가 하나" 있었는데 연주가 너무 까다로워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당시 주변인들의 전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문제가 생긴다. 장송 칸타타를 말하는 것인지 즉위 칸타타를 말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것이다

p84 우는 아들을 억지로 클라비어 의자에 앉히던 호랑이 선생님이었던 요한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성인이 된 아들이 제대로 뻗어나갈 도약대를 제공했다

p91 1793년 가을과 초겨울, 베토벤에게 박수를 보내던 귀족들은 두려운 현실을 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p109 베토벤은 돈 문제에 관해서는 책임감 있는 편이 되지 못했다. 언제나 거래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요구했는데, 그에게 돈은 곧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123 우아하고 선율이 풍부한 데다가 색다른 앙상블(클라리넷, 호른, 바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을 위한 작법도 절묘한 이 작품은, 어제까지는 "괴팍스러움"을 취급했던 작곡가가 일단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살롱 엔터테이너들처럼 얼마든지 유쾌한 작품을 쓸 수 있음을 입증했다

p139 음악에 가장 고통스럼은 불협음정인 단9도가 가끔식 등장하여 수면에 파르르 파문을 던지지만 이 역시 잔잔한 물결에 의해 곧 다스려진다

p143 베토벤은 프란츠 베겔러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길, 또 다른 제자(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소중하고 매력적인 여인) 덕분에 쓸쓸함을 많이 덜 수 있다고 썼다. 그 여인이란 귀차르디 백작의 딸 줄리에타였다.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를 그녀에게 헌정했고 청혼 생각까지 품었다가 단념했다.

p154 베토벤에게 나폴레옹을 기념하는 교향곡은 1803년에 처리한 여러 아이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베토벤에게 1803년은 생산성과 독창성,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면에서 음악 역사상 비할 바 없이 훌륭했던 10년 세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해였다

p171 응접실, 피아노, 공간을 가득 채운 에로틱한 긴장감, 숨죽인 발걸음으로 여인의 뒤를 밟는 두 남자, 달빛 속에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레트헨. 무엇이 더 필요할까. 리스! 낭만적인 음악을 연주해주게. 구슬픈 음악을... 격정적인 음악을.

p179 베토벤을 후원하던 귀족들은 거의 모두 수도를 버리고 피신했다. 나폴레옹이 쇤브룬 궁전을 차지하고 들어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250만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99 베토벤이 그들을 모욕해도, 아니면 한 마리 땅딸막한 곰처럼 그들의 금박 거울에 침을 뱉고 무롛ㅏ게 굴어도 귀족들과 부호들은 모두 용납하고 인내했다. 진짜배기와 어울리고 싶어 하기 마련인 사교계 인사들의 공통된 갈망을 채워주는 존재가 바로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p208 그가 편한 마음으로 건반 앞에 앉아 즉흥 연주를 통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 베토벤의 천재성이 얼마나 광대한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p211 마흔 살이 되면서 학문적 충동이 늘어나고 생산성은 갑자기 감퇴한 것을 보면 베토벤이 이 무렵 갱년기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이 더욱 강화된다

p222 그대, 나의 불멸의 연인에게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베토벤이 테플리츠에 도착하기 전날 쓰기 시작한 편지를 인용하기에 앞서, 먼저 안토니 브렌타노가 이 편지의 수신인이었음이 확정적으로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p234 베토벤은 킨스키 공의 부인으로 하여금 부군의 유지를 받들도록 강제하기 위해 쟁송 절차에 들어갔다. 남편을 여읜 아내가 느낄 슬픔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p244 빈의 정신분석가 에디타와 리하르트 슈베트바 부부는 베토벤의 송사를 파헤친 묵직한 책에서, 작곡가 베토벤은 완벽한 예술 작품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했던 반면 인간 베토벤은 "심대한 장애를 지닌, 심지어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결론지었다

p253 피델리오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표현된 감정이 좀처럼 싸구려 감상성으로 흐르지 않으며 그 음악이 순수하다는 면에서 모든 오페라 가운데 단연코 독보적인 작품이다

p264 이 편지는 곧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하게 될 반 요한나 캠페인의 서곡일 뿐이었다

p269 메이너드 솔로몬은 1816년을 전후한 시기가 "음악사의 중대 전환점 가운데 하나"라 했다. 베토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젊은 동시대 작곡가들이 고전파 전성기의 종말에 적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p271 비상 상화에 대처해야 할 것만 같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는 회피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만사형통일 때야 애정을 과시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유사시에 더더욱 절실한 사랑은 그의 감정 창고에는 존재하지 않는 항목이었다

p281 3년간 베토벤은 귀족 관련 사건을 관할하는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카를의 양육권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왔다. 그랬던 그가 이제 송두리째 벌거벗겨져 카를과 요한나, 빈의 언론 앞에서 제대로 망신살이 뻗치게 된 것이다. 진실의 순간이 찾아온 것도 자업자득이었고,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p301 그 문장을 쓴 당사자 카를 페터스는 당시 며칠간 빈을 비우려던 참이었고, 페터스 부인은 잠자리 상대를 만족시키는 솜씨로 정평이 나 있었다. 확실한 점은 베토벤이 페터스 부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p305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쉰들러는 자신이 베토벤의 친구였다고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녔고, 남아 있는 문서들을 적당히 위조하고 조작했으며, 많은 연구가들에게 영향을 준 대단히 왜곡된 베토벤 전기를 집필했다

p307 6년간 출판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포커판 위를 오간 여러수들 가운데 굵직한 것만 정리해도 이정도다.

p309 본인에게 그럴 자격기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소유하고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를 앞세웠던 그가 아닌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오스트리아의 시인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베토벤은 기분이 언짢아지면 "야생 동물처럼 변하곤 했다"고 술회한 바도 있고 말이다

p320 베토벤이 누구인지 알 리 없었던 지역 주민들은 그의 허름한 옷차림과 부어오른 발목을 뚫어지게 쳐다 보면서 동네 바보가 한 명 늘었다고 혀를 찼다

p321 어쨋거나 이 마지막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업이 아니었다. 겨울을 앞두고 빈으로 돌아가기 전에 끝낸 곡이 하나 더 있었다. <현악 사중중 13번 b플랫장조, 작품 130>의 새로운 종악장, 즉 이제는 <대푸가>로 알려진 독립된 악곡을 대체해야 했던 음악이 그것이다.

p330 폰 슈투테르하임 장군은 카를을 어여삐 봐준 대가로 <현악 사중주 14번 C샾단조, 작품 131>을 헌정받음으로써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영예를 누린 군인이 되었다

p335 혈관게 관련 소견과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는 베토벤의 특징을 묶어서 판단컨대 그의 청각 장애는 동맥 질환과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만성 설사병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p336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될 베토벤 전기를 저술해 1840년에 출판한 뒤 쉰들러는 그동안 간직해오던 보물단지를 프로이센 국왕에게 통재로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생활하다가 1864년에 사망했다. 그가 베토벤의 삶을 위조하고 조작했음이 알려진 건 1970년대 들어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