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의 베토벤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바라본 베토벤의 삶과 음악
에드먼드 모리스 지음, 이석호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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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작가 : 에드몬드 모리스

출판사 : 프시케의 숲

읽은날 : 2021/05/07 - 2021/05/16


클래식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 악성 베토벤.

아름답기 그지없는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 그리고 웅장한 교향곡까지...

어려서 받은 학대와 청력을 잃는 고난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어마어마한 음악을 만들어 낸 사람..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결코 본받을만한 모습이 아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귀족을 경멸하면서 귀족을 동경하는 이중적 모습.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해야 하고, 괜찮은 여자들에게는 하나같이 추파를 던진 난봉꾼같은 사람이 베토벤이다. 

조카를 카를을 두고 계수씨와 벌인 비열한 행위는 거의 정신병적 수준이다. 

돈에 집착하며, 같은 곡을 여러 출판사에 동시에 팔아먹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이 책에서 전기 작가가 이런 모습을 어떻하든 미화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 나중에는 체념한듯 담담하게 베토벤의 만행을 서술한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파렴치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그의 정열을 다해 만들었다는 건 확실하다. 

질그릇에 보화가 담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대부분의 베토벤 전기가 베토벤을 미화하기에 바쁜데 베토벤 전기가운데 그나마 객관적으로 잘 쓴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p11 바흐는 눈을 감기도 전부터 케케묵은 음악을 한다고 조롱받았고, 모차르트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 의해 작고 귀여운 음악만 썼던 작곡가로 평가절하되었다

p14 대푸가는 지금 들어도(처음으로 듣는 것이건 100번째로 듣는 것이건 간에) 거친 음향만으로도 듣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여전하다. 15분 넘는 시간 동안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및 첼로는 광분해 날뛰는 독수리처럼 꽥꽥대고 비명 지른다

p18 그는 염감과 노력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일 때 비로소 위대한 음악이 나온다고 믿었다

p30 베노벤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독일이 어엿한 나라라기보다는 언어를 핵심 논리로 하는 하나의 사상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p36 소년 베토벤은 숫기도 없고 말수도 적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느 급우의 기억을 빌리자면 "훗날 그토록 찬란히 빛날 천재의 섬광은 단 하나의 징후도 찾을 수 없었다"

p39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대포적인 장르가 교향곡이긴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그가 성악가의 아들이자 손자였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p49 현악기 중에서도 가장 은근히 이 악기를 향한 베토벤의 애정은(모차르트 역시 비올라를 아꼈다)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보다 구조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을 가진 천생 음악가였음을 시사한다

p57 루트비히는 베겔러와의 친분을 이용해 파트타임 수강생으로 본 대학에 등록해 철학 과정을 마쳤다. 당시 본 대학은 과학자, 법학자, 신학자, 인문학자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었고, 한 마디로 지적으로 깨어 있는 젊은이가 지내기에 더없이 짜릿한 환경을 제공했다

p70 베토벤이 1790년에 쓴 "칸타타가 하나" 있었는데 연주가 너무 까다로워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당시 주변인들의 전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문제가 생긴다. 장송 칸타타를 말하는 것인지 즉위 칸타타를 말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것이다

p84 우는 아들을 억지로 클라비어 의자에 앉히던 호랑이 선생님이었던 요한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성인이 된 아들이 제대로 뻗어나갈 도약대를 제공했다

p91 1793년 가을과 초겨울, 베토벤에게 박수를 보내던 귀족들은 두려운 현실을 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p109 베토벤은 돈 문제에 관해서는 책임감 있는 편이 되지 못했다. 언제나 거래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요구했는데, 그에게 돈은 곧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123 우아하고 선율이 풍부한 데다가 색다른 앙상블(클라리넷, 호른, 바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을 위한 작법도 절묘한 이 작품은, 어제까지는 "괴팍스러움"을 취급했던 작곡가가 일단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살롱 엔터테이너들처럼 얼마든지 유쾌한 작품을 쓸 수 있음을 입증했다

p139 음악에 가장 고통스럼은 불협음정인 단9도가 가끔식 등장하여 수면에 파르르 파문을 던지지만 이 역시 잔잔한 물결에 의해 곧 다스려진다

p143 베토벤은 프란츠 베겔러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길, 또 다른 제자(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소중하고 매력적인 여인) 덕분에 쓸쓸함을 많이 덜 수 있다고 썼다. 그 여인이란 귀차르디 백작의 딸 줄리에타였다.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를 그녀에게 헌정했고 청혼 생각까지 품었다가 단념했다.

p154 베토벤에게 나폴레옹을 기념하는 교향곡은 1803년에 처리한 여러 아이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베토벤에게 1803년은 생산성과 독창성,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면에서 음악 역사상 비할 바 없이 훌륭했던 10년 세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해였다

p171 응접실, 피아노, 공간을 가득 채운 에로틱한 긴장감, 숨죽인 발걸음으로 여인의 뒤를 밟는 두 남자, 달빛 속에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레트헨. 무엇이 더 필요할까. 리스! 낭만적인 음악을 연주해주게. 구슬픈 음악을... 격정적인 음악을.

p179 베토벤을 후원하던 귀족들은 거의 모두 수도를 버리고 피신했다. 나폴레옹이 쇤브룬 궁전을 차지하고 들어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250만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99 베토벤이 그들을 모욕해도, 아니면 한 마리 땅딸막한 곰처럼 그들의 금박 거울에 침을 뱉고 무롛ㅏ게 굴어도 귀족들과 부호들은 모두 용납하고 인내했다. 진짜배기와 어울리고 싶어 하기 마련인 사교계 인사들의 공통된 갈망을 채워주는 존재가 바로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p208 그가 편한 마음으로 건반 앞에 앉아 즉흥 연주를 통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 베토벤의 천재성이 얼마나 광대한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p211 마흔 살이 되면서 학문적 충동이 늘어나고 생산성은 갑자기 감퇴한 것을 보면 베토벤이 이 무렵 갱년기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이 더욱 강화된다

p222 그대, 나의 불멸의 연인에게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베토벤이 테플리츠에 도착하기 전날 쓰기 시작한 편지를 인용하기에 앞서, 먼저 안토니 브렌타노가 이 편지의 수신인이었음이 확정적으로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p234 베토벤은 킨스키 공의 부인으로 하여금 부군의 유지를 받들도록 강제하기 위해 쟁송 절차에 들어갔다. 남편을 여읜 아내가 느낄 슬픔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p244 빈의 정신분석가 에디타와 리하르트 슈베트바 부부는 베토벤의 송사를 파헤친 묵직한 책에서, 작곡가 베토벤은 완벽한 예술 작품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했던 반면 인간 베토벤은 "심대한 장애를 지닌, 심지어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결론지었다

p253 피델리오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표현된 감정이 좀처럼 싸구려 감상성으로 흐르지 않으며 그 음악이 순수하다는 면에서 모든 오페라 가운데 단연코 독보적인 작품이다

p264 이 편지는 곧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하게 될 반 요한나 캠페인의 서곡일 뿐이었다

p269 메이너드 솔로몬은 1816년을 전후한 시기가 "음악사의 중대 전환점 가운데 하나"라 했다. 베토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젊은 동시대 작곡가들이 고전파 전성기의 종말에 적응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p271 비상 상화에 대처해야 할 것만 같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는 회피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만사형통일 때야 애정을 과시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유사시에 더더욱 절실한 사랑은 그의 감정 창고에는 존재하지 않는 항목이었다

p281 3년간 베토벤은 귀족 관련 사건을 관할하는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카를의 양육권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왔다. 그랬던 그가 이제 송두리째 벌거벗겨져 카를과 요한나, 빈의 언론 앞에서 제대로 망신살이 뻗치게 된 것이다. 진실의 순간이 찾아온 것도 자업자득이었고,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p301 그 문장을 쓴 당사자 카를 페터스는 당시 며칠간 빈을 비우려던 참이었고, 페터스 부인은 잠자리 상대를 만족시키는 솜씨로 정평이 나 있었다. 확실한 점은 베토벤이 페터스 부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p305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쉰들러는 자신이 베토벤의 친구였다고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녔고, 남아 있는 문서들을 적당히 위조하고 조작했으며, 많은 연구가들에게 영향을 준 대단히 왜곡된 베토벤 전기를 집필했다

p307 6년간 출판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포커판 위를 오간 여러수들 가운데 굵직한 것만 정리해도 이정도다.

p309 본인에게 그럴 자격기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소유하고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를 앞세웠던 그가 아닌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오스트리아의 시인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베토벤은 기분이 언짢아지면 "야생 동물처럼 변하곤 했다"고 술회한 바도 있고 말이다

p320 베토벤이 누구인지 알 리 없었던 지역 주민들은 그의 허름한 옷차림과 부어오른 발목을 뚫어지게 쳐다 보면서 동네 바보가 한 명 늘었다고 혀를 찼다

p321 어쨋거나 이 마지막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업이 아니었다. 겨울을 앞두고 빈으로 돌아가기 전에 끝낸 곡이 하나 더 있었다. <현악 사중중 13번 b플랫장조, 작품 130>의 새로운 종악장, 즉 이제는 <대푸가>로 알려진 독립된 악곡을 대체해야 했던 음악이 그것이다.

p330 폰 슈투테르하임 장군은 카를을 어여삐 봐준 대가로 <현악 사중주 14번 C샾단조, 작품 131>을 헌정받음으로써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영예를 누린 군인이 되었다

p335 혈관게 관련 소견과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는 베토벤의 특징을 묶어서 판단컨대 그의 청각 장애는 동맥 질환과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만성 설사병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p336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될 베토벤 전기를 저술해 1840년에 출판한 뒤 쉰들러는 그동안 간직해오던 보물단지를 프로이센 국왕에게 통재로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생활하다가 1864년에 사망했다. 그가 베토벤의 삶을 위조하고 조작했음이 알려진 건 1970년대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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