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조선 - 시대의 틈에서 ‘나’로 존재했던 52명의 여자들
이숙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또 하나의 조선

 : 이숙인

 : 한겨레출판

 : 2021/10/21 - 2021/10/28


또하나의 조선이란 여성의 삶을 말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살았던 여성의 삶을 조선시대 문헌을 통해 알아본다.

여성들이 쓴 글도 있지만 남편이나 다른 남자에 의해 남겨진 모습도 담겨있다. 

이 수많은 여성들중에 아는 사람이라곤 신사임당과 허초희뿐이다.

그만큼 다른 여성들의 삶은 철저히 감쳐줘있다.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이 살았고, 그들도 감정이 있고, 분노도 있고, 욕망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당연한 것인데 생각을 못하고 있던 부분이다.

그만큼 여성은 억압받고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런 연구가 계속 책으로 나와야 할 이유다.


p20 조씨에게서 일상을 긍정하는 힘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세상을 보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섬세하면서 담대하고, 낙천적이면서 감성적인 남평 조씨의 삶과 꿈의 기록인 병자일기는 사대부가 안주인이 쓴 17세기 조선의 또 하나의 역사이다

p32 사십 줄에 앉은 김돈이는 제사에 무성의하다는 질타를 자주 듣는다. 남편이 아내에게 언짢은 언사를 보내면 아내는 남편에게 '애교스러운 말'을 돌려주는 것으로 보아 김돈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김돈이는 제사보다 세상의 화려한 이야기에 관심이 더 컸다

p37 송덕봉은 술을 잘 마셨던 것 같다. 술기운을 비려 읊은 시가 수편이고, 술로 인해 자아가 커지는 경험을 한다. 취함 김에 읊다에서는 천지가 넓다고 하지만, 규방 안에서는 그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p41 생전의 그는 빈궁하고 고단한 삶을 산 것 같다. 그림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창작되었을 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p77 조선에서 가장 미천한 신분이 여비에서 출발해 세자의 유모가 되고 종1품의 관작을 얻어 죽을 때까지 권세를 휘두르며 뒤탈을 남기지 않은 것을 보면 보통 총명은 아닌 것 같다

p93 늦게 낳은 아들을 너무 사랑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으로 내탕고의 모든 보물을 받게 된 영응은 노비 1만 명을 거느리는 거부가 된 것이다

p97 바뀌는 왕마다 통 큰 거래를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 그 자체로도 송씨의 능력은 특별하다

p102 홍혜완만큼 부부관계가 원만하고 남편의 존중을 받으며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산은 가족의 중심에 아내가 있음을 두 아들 내외에게 주지시켰다

p107 묵은 가지가 다 썩어가는 즈음에 갑자기 푸른 가지가 나와 꽃을 피웠다라는 내용이 있어 소실과의 만남으로 다산의 스러져가는 심신이 되살아났음을 알 수가 있다. 논어고금주 등 다산의 대표적인 저술들이 그녀를 만난 이후 쏟아지듯 나온 사실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p119 난설헌이 시인으로 성장한 데는 오빠 허봉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허봉은 아무 허균에게 "경번[난설헌의 자]의 글재주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누이의 재능을 살리고자 형제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p138 당파적 이익에 빠져 적군을 응원하는 믿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통해서도 수긍이 간다

p143 그녀는 지금 나이 71세의 할머니가 다른 방법으로는 정을 표시할 길이 없다라며 자신을 혈족으로 돌본 정미수 부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p145 내훈의 저자 내지는 성종의 모후로 주로 언급되는 소혜왕후는 무엇보다 가부장 사회의 비호 속에서 자기의 욕망을 실현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p150 자신의 책이 민간의 우매한 여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그 내용은 주로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서술은 학식과 정치적 감각을 두루 갖춘 이 여성 앞에 펼쳐진 세계 자체가 하나의 역할만을 고집하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

p173 경국대전에 첩은 처가 될 수 없다라고 규정해놓았지만 당시의 권력 문정왕후의 승인으로 난정은 외명부 정1품 정경부인에까지 오른다. 신분의 수레바퀴에서 신음하던 한 여자의 인간 승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란 늘 명암이 있고 모순적인 것들이 뒤섞인 흥미로운 해석의 장이다

p184 소현세자가 청국 황족과 친교를 맺고 원만한 관계를 이룬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왜곡된 권력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p206 끌려가는 사람들의 원한이 하늘을 찔렀고 이로 인해 팔도의 민심이 크게 돌아섰다. 신분제를 공고히 하려는 지배층의 요구와 맞물린 어처구니없는 국가의 이 대책을 역사에서는 옥비의 난이라고 한다

p211 국왕 정조가 김은애의 행위에 주목한 것은 성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만연했던 시대에 용기와 기백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코자 했다는 데 있다

p219 남명이 뭐라고 하든 무시하고 아예 상대를 하지 말라는 투의 조언이 퇴계 사후 선조 33년에 간행된 퇴계집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정인홍을 비롯한 남명 문도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명과 퇴계, 그 문인들의 관계가 벌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p238 2백년 전 피해자 박씨가 그랬던 것처럼 성범죄 피해에서는 여전히 자기 파괴적으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성범죄 피해자의 명예는 죽어야만 회복되는 것인가, 죽어도 회복되지 않은 명예는 누구의 몫인가

p258 조선의 정치 이념은 감정 가는 대로 욕심 나는 대로 즐기려는 삶을 규제하는데 유독 여성이 그 대상이었다.

p263 세조는 윤덕녕과 같은 민초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지만, 홍윤성을 국문하여 죄를 밝히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빗발치는 상소에는 귀를 닫았다. 홍윤성이 정난 원훈이라는 이유로 따로 불러 책망만 할 뿐이었다

p266 가부장제 가족에서 자식의 존재 증명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면, 종모법 아래 노비의 존재 증명은 어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p274 왕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세 사람, 황치신은 정승 황희의 아들이고, 전수생과 배상동은 개국공신의 아들이다

p285 남의유당의 구경욕망은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 보편의 것이라 치더라도, 특유의 언어와 열정이 밴 기록들은 길이 남을 유산이 되었다

p297 그녀는 아들이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에 주목하였다. 사주당이 세운 자녀 교육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성품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p303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초영이 무딘 글만 못하다"라는 옛말에 힘입어 나중을 생각하여 적어두었다고 한다. 틈틈히 읽고 정보와 생각을 정리해놓은 것인데, 그것이 저술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p313 성인의 시대에 살지 않아 성인 모습은 보지 못했으나, 성인이 남긴 말씀 들을 수 있고 성인의 마음 볼 수 있다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 다산초당

 : 2021/10/29 - 2021/11/07


현대판 윌든을 읽은 느낌이다. 

기자도 하고 박사까지 딴 학자가 미국의 숲속의 집을 구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다.

윌든보다는 재미있다. 

이 책에서도 윌든을 의식했는지 윌든에 대한 내용이 참 많이 나온다. 

출세나 잘나가기를 포기하고 자기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낭만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여러 모양으로 느낀다. 

혼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족이 함께 숲에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뭔가를 만들어 어떻게 팔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팔리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은 정말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나도 항상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미니멀하게 살아보자고 꿈을 꾸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포기하며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역시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일한다. 

쩝.. 역시 난 속물이고 소시민이다. 부럽다. 


3% 여왕이 그 비밀을 알려준다. "여기에서는 말이야, 같은 자리에 있고 싶으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하는 거야"

4% 이토록 외진 곳에서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숲속에서 내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6% 그날그날 밀을 갈아서 하루 넘게 숙성시킨 통밀 빵은 일반 빵집에서 취급하기 힘들기 때문에, 나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또 돈을 내고 사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속한 현대인이 지갑을 여는 행위는 신 앞의 고백만큼이나 진실된 마음이다

9% 이렇게 넓은 땅을 우리가 가진 자금 안에서 구하려면 집이 허술한 건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계획은 앞으로 돈을 열심히 벌어 진짜 집을 사는 것이었다

11% 크리스의 일기장은 점점 자연주의 철학이 아니라, 배가 고프다는 호소와 먹을거리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채워진다

14% 시골에서 이것저것 뜯어 먹었더니 입맛이 굉장히 관대해져서 제철 채소를 찐 것이 반찬의 전부인 날도 많다. 그랬더니 식비가 한 달 평균 40만원으로 줄어버렸다

15% 돈을 모아봤자, 전체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아끼는 것으로는 절대 치솟는 집값을 댈 수 없다. 절약은 투자의 시작이 될지는 몰라도 끝일 수 없다

24%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33% 사람들이 내 바구니를 사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팔지 않아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42% 재료도 바뀌어요. 요리를 하면서 왜 이걸 넣는지 알아야 하고, 재료가 바뀌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전에 하던 방식이니까 이유도 모르고 따라 해서는 안됩니다

45% 기자를 할 때도, 연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승진과 임용으로 이러질 만한 일들은 재미가 없었다

47% 소로는 돈이 많으면 불행하다거나 돈이 없는 소박한 삶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짜피 인간으로 태어나 자기 한 몸이라도 간수하기 위해 먹고사는 일은 누구나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49% 카뮈는 시시포스가 이 형벌을 자신의 운명으로 만드러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다'라고 스스로 선택하고 선언함으로써 그는 신이 부여한 형벌에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창조자로서 돌을 밀어 올리게 된다

63% 소로의 실험을 비하하는 사람은 나이트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로가 자연에 살면서 고독을 찬미하지만, 실제로는 오두막을 지은 땅도 친구가 공짜로 빌려준 것이고, 자주 마을에 내려가 친구나 가족들과 만찬을 즐겼으니 문명을 등지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74% 교수는 말했다. "자기 생각을 담는 글이 겨우 A4 10장 정도라면 인용은 하나나 두 개만 담아도 넘칩니다. 글의 주인공은 본인의 생각이고, 아무리 유명한 천재의 인용도 조언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의 글에서 자기의 생각이 가장 빛나야 합니다. 그게 세상을 위하는 길입니다. 천재의 글을 사소하게 만들 만큼 당당하게 학생의 생각을 쓰세요. 무지가 창피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게으름이 창피한 겁니다.

79% 시간의 흐름을 잊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이 순간에는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도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따지지도 않는다. 행복은 이 순간을 돌아볼 때 깨닫는 것이다

82% 천사는 부자가 곧 죽을 거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는데, 부자는 자기가 1년이나 신을 구두 생각을 했다. 인간은 그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게 천사의 깨달음이었다. 인간이 이렇게 한심하다니. 하지만 이 깨달음을 놀라움으로 끝난다. '이렇게 한심해도 잘 살다니, 심지어 고아가 된 갓난아기도 살아가고, 마지막 남은 돈으로 술이나 퍼마실 정도로 대책이 없는데도 잘 살다니'

87% 놀라웠다. 감동적이었다.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숫자도 모르고 말 한다디도 못해 장애라고 규정되는 상태에서 극치의 만족감을 느꼈다니. 저자는 오히려 회복이 꺼려졌다고 말한다. 언어와 논리, 시간 개념을 회복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테니까

94%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거나 해본다. 혹은 해볼까 하다가 여건이 안 맞으면 안 해도 그만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로 보는 유럽사 - 아테네, 로마부터 파리, 프라이부르크까지 18개 도시로 떠나는 역사기행 도시로 보는 시리즈
백승종 지음 / 사우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 사우

 : 2021/10/17 - 2021/10/29


유럽사는 언제 읽어도 즐겁고 재미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나름 역사가 있고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큰 도시들 위주로 책이 씌여지다 보니 큰 사건들 위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큰 사건들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쓰나, 사람을 중심으로 쓰나, 국가를 중심으로 쓰나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왕이 나오고 군대가 나오고 전쟁이 나온다. 

작은 소도시 이야기도 나오면 좋겠다.  


2% 유럽의 종교인 기독교도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유교, 불교에 못지않게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별로 구애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조상과는 달리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5% 그리스 반도에는 언어와 신화,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비잔티움 등 수십 개 도시국각가 때로 연대하고 때로 갈등하면서 공존하였을 뿐이다

7% 그리스는 탈세의 나라이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내가 자주 찾아간 자그만 음식점이 하나 있다. 처음 몇 번은 꼬박꼬박 영수증을 끊어주더니, 서로 낯이 익자 영수증이 자취를 감추었다. '세금은 내서 뭐 해? 재벌들도 안 내는데, 우리 같은 서민이 왜' 이런 식이었다

9% 유난히도 변화와 실용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타민족의 기술, 특산품 및 장점을 수용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좋게 말해 로마 사람들은 실질을 숭상했다

11% 생태계의 재앙 앞에 천하의 로마제국도 속수무책이었다.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로마제국 말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심했다고 주장한다

14% 스웨덴은 강대국으로 착실히 성장했다. 그 정점에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있었다. 왕은 신교와 구교가 정면충돌한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에 참전하였다. 그는 신교 측의 명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이름을 떨쳤다

15% 바이킹은 술이 셀수록 남자답고 영웅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전통이 아직도 스웨덴에 남아 있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유독 많은 사회이다

21% 그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동방의 찬란한 기독교 도시가 이른바 십자군원정대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혔다. 기독교 국가가 십자군원정대의 침략으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25% 상인들 수중에 있었던 베니스 공화국, 그 정식 명칭은 좀 길다. 가장 고귀한 공화국 베니스이다. 그들의 자존심이 그대로 반영된 국호였다. 8세기부터 1797년까지 베니스는 무려 1천년 동안 독립성을 유지했다

32% 브뤼헤는 문자 그대로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도시 경제가 힘차게 회생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이래 그 물길이 막히고 트이고를 반복할 때마다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였다. 역사에 보기 드문 사례였다

37% 체코 지식인들은 이른바 2천어 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시민운동으로 맞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얀 후스의 후계자임이 명백했다

40% 스페인은 계속해서 대항해시대를 열어갔다. 16세기가 되자 스페인은 아즈텍과 잉카에서 막대한 금은 보물을 찾았다. 용감하다 못해 잔인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송두리째 약탈하는 데 성공했다

42% 가세트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돈키호테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스페인의 혼이라고 했다. 언제까지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말이다

49% 영국 사회의 특징이 무어냐고 묻는 나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실용주의에 기초한 합리성이라고. 그래서일까, 영국에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계몽사상가는 많았으나 독일의 칸트나 헤겔에 견줄 만한 형이상학적 철학자는 없었다

54%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궁전에서 즉위했다. 여제는 오늘날까지도 비엔나 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계몽적 전제군주였다고 볼 수 있다. 테레지아는 재위 기간에 걸쳐 많은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여제가 다스리는 동안 오스트리아 황실(합스부르크 왕가)은 전성기를 맞았다

55% 여제는 조상 전래의 결혼정책을 유지했다. '축복받은 오스트리아여, 전쟁일랑 다른 나라에게 맡기고, 너희는 결혼에 힘쓰라!' 이것이 조상의 유훈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대로 결혼정책을 중시했다

60% 내 친구 알랭이 몇 차례나 강조했듯, 프랑스인 입장에서 보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특정한 종교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천 년 동안 프랑스가 겪은 역사적 경험의 총체가 응축된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5% 프랑스의 위그노는 조국을 등지고 베를린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낙후된 베를린을 개조하는 데 공헌했다

71% 어린이는 내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읽는다. 성숙한 어른이라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안데르센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복잡한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고발하기 위해서 동화라고 하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72% 키르케고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자로 살기를 원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타인과 균질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시대적 풍조를,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74% 미국 같은 강대국의 신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왜곡할 때가 많았으나, 스위스 언론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었다

82% 인기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얽힌 사연이다. 1936년,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이 상연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 스탈린도 볼쇼이 극장에 왔다. 그러나 독재자는 혹평을 남기고 중간에 극장을 떠났다. 다음날이 되자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는 쇼스타코비치를 거세게 비난했다. 스탈린의 한 마디 때문에 영웅적 작곡가로 추앙받던 음악가가 인민의 정서도 모르는 형편없는 3류로 추락했다. 무섭고 웃기는 사건이었다

84% 현재의 푸틴 대통령은 스탈린 시대의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스탈린 시대를 미화하기에만 급급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퍼스트를 외치듯, 푸틴은 강한 소련을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러시아에서 인권문제는 아직 뒷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장우진

 : RHK코리아

 : 2021/10/21 - 2021/10/29


무하는 이름만 들어봤지 사실 잘 모르는 화가다. 

프라하에 여행을 갔을 때도 성비타성당에서 무하의 작품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보긴 했지만 장식적이고 화려하다는 것만 알았지 그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거나 알고 싶은 맘이 들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삶에 대해 파편적으로 알게 되었고, 무하라는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이 책은 무하에 대한 전기이자 그의 작품 모음집이다.

상당한 양의 무하의 작품들이 천연색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마치 무하의 도록을 보며 해설을 듣는듯한 느낌이다. 

보헤미안의 정서, 어려서부터 친숙하게 접했던 비잔틴 양식, 그의 창의성이 합쳐지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그를 세계적인 아르느보 기법의 대가로 만들었다.

뜬금없이 포스터를 그리게 되었고, 그 포스터는 사람들이 떼어갈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당시 사람들은 상업미술가로 폄하하고 그를 무시했지만 무하는 많은 화가들을 후원하고 도와주고 보헤미안을 잊지않는다.

슬라브 서사시를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만으로도 애국심이 절로 솟아난다.

늙은 무하가 두려워 그를 고문하고 죽게 만든 나찌의 치졸함이 무하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지게 한다. 

애국자이자 많은 화가들의 헬퍼이며, 아름다운 장식예술을 펼쳤던 무하...

꼭 알아야 할 미술가를 알게 되서 참 좋다. 


p38 빈은 무하에게 중요한 두 가지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첫 번째는 극장과의 만남이다. 무하는 공방의 일로 자유롭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었고 그곳은 무하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과 자신을 단련시킬 교습소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스 마카르트와의 만남이다

p60 미망인인 샤를로트 부인이 운영하는 크레므리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크레므리는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 무리의 아지트요, 어미 새의 품 같은 곳이었다

p67 동방 교회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모라비아에서 자란 무하에게 비잔틴식 의상과 무대, 음악은 매우 친숙한 것이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극에서 느낀 감동을 자연스럽게 스케치로 옮길 수 있었다

p87 이 포스터는 무하 양식의 전형이 된 몽환적 여인과 장식, 인상적인 타이포를 보여준다

p172 무하의 보석 디자인은 간소하고 기능적이기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하며 이국적이다. 그것은 그가 오랜 극장 경험을 통해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212 무하의 작업식에서는 화려한 파티와 모임들이 이어졌고, 언제나 곤궁에 처한 예술가나 동포를 기꺼이 원조했기에 정작 그에게 필생의 작업을 위한 자금은 수중에 없었다

p234 1909년 크리스마스의 밤, 거룩하고 고요한 그 밤에 무하는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크레인으로부터 슬라브 서사시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받게 되었다

p240 체코 시대의 포스터는 파리 시대의 화려함은 사라졌고 단순하고 민속적인 요소들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p249 이미 고령의 나이임에도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를 제작하는 거의 20년 동안을 식사하고 잠자며, 잠깐 갖는 티타임을 뺀 아홉시간 내지 열 시간을 꼬박 작업실에서 보냈다. 슬라브 서사시는 그야말로 수도승에 가까운 그의 성실한 노동과 열의의 결과였다

p278 무하는 당시 나치가 가장 눈에 거슬려 하는 애국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앓았던 폐렴과 나치의 고문은 이미 고령의 무하에게 죽음을 불러들였다. 1939년 7월 무하는 80번째 생일을 열흘 남겨두고 79년의 생을 마감했다

p323 이국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풍만한 육체로 남성들의 환상을 자극할지언정 퇴폐적이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 문학사를 바탕으로 교과서 속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다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채호석.안주영 지음 / 리베르스쿨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2

 : 채효석

 : 리베르스쿨

 : 2021/10/12 - 2021/10/19


해방이후부터 현시대까지의 한국문학사의 정리..

일제강점기의 근대에 비해서 현대문학사는 좀 더 다이나믹하다.

살아계신 분들이 많아서 평가를 내리기에는 너무 빠른 분들이 많다.

내가 학교에 다닐때는 대부분 죽은 문학가만 다뤘는데 요즘은 최신의 현대 영역까지 커버하나보다.

요즘 애들 부럽다. 


p26 운명에 따르기로 했기 때문일까요? 성기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길을 떠납니다. 이렇게 해서 성기는 계연과의 비극적인 인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예요. 소설가 이문구는 역마를 읽고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섬진강처럼 흐르는 한국 소설 문학의 백미"라는 감상평을 남겼답니다.

p34 유예는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억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어요. 사형을 앞둔 한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은 많이 복잡했을 테니까요

p60 지금까지 청록파 세 시인의 작품을 차례로 살펴보았어요.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라는 소재를 통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작품 안에 담았다는 점이랍니다.

p67 서정주는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많이 창작했지만, 삶은 작품만큼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다. 뛰어난 예술가일지라도 잘못된 모습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겠지요?

p75 나중에서야 그 책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릴케의 시집을 읽고 아찔한 충격을 받은 김춘수는 그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두고 시 습작을 시작했어요. 김춘수의 작품 가운데 특히 꽃은 존재의 본질을 많이 다루었던 릴케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이랍니다.

p91 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지요. 남산골샌님이 딱 이런 인물이었습니다. 고지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의지와 자존심이 강한 남산골샌님은 딸깍발이를 쓴 이희승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어요

p125 구한말부터 시작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최 참판 댁의 가족사는 곧 우리 민족의 역사라 할 수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토지는 방언과 속담, 격언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한껏 살렸답니다. 이런 점에서 토지는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p143 혼자 기차에 오른 백화는 "내 이름은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에요"라고 본명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진속하게 표현합니다.

p165 이처럼 샤갈의 작품에 이끌린 김춘수는 196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샤갈의 나와 마을이 김춘수라는 시인을 통해 어떤 시로 탄생했는지 살펴보도록 해요

p178 피천득은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준에서 정말 명성 그대로라고 느낀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금강산이고 또 하나는 도산 안창호였다라고 말했답니다

p183 피천득 수필의 특징은 단정하고 절제된 문체를 사용하면서도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수필에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지요.

p186 법정이 승려인 것은 맞지만 무소유에 나타난 법정의 모습은 승려라기보다는 소유욕을 지닌 인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난초 역시 인간이 가지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요

p195 우선 촌장은 이리 떼가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네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촌장이 거짓말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240 황지우는 현실이 일그러지면 시도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형식을 쓰려고 했다. 나는 시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급했다라고 말했어요

p253 지란지교는 공자의 이 말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지란지교는 지초와 난초의 교제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나타내지요

p261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오구-죽음의 형식은 죽음이 지니고 있는 비극성을 춤과 노래 그리고 웃음으로 잘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해 관객들이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지요

p270 유재필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일했고, 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요

p289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절대 평등하지 않아요. 남자는 큰방에서 소리를 치고, 여성은 부엌에서 계속 일해야 하니까요. 문정희는 이러한 여성의 처지를 종신 동침 계약자, 외눈박이 하녀라고 표현했답니다.

p298 1연 1행에는 지나치기 쉽지만 인상적인 표현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매화꽃이 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왔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화꽃을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했던 것이지요

p306 윤오영은 주변에 있는 평범한 소재로 쓰되, 기존에 있던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문체와 표현을 창조하는 것이 수필이라고 생각했어요

p307 윤오영이 현대문학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해는 50세가 넘은 1959년이었답니다. 등단 이후 윤오영은 20여 년 동안 많은 수필과 평론을 발표했어요. 심지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작품을 집필했다고 해요

p312 장영희의 아버지는 서강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이었던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딸이 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브루닉 신부는 "무슨 그런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겠습니까?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해요. 이렇게 해서 장영희는 서강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