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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 기행
최의영.우광호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 : 성당평전
작가 : 최의영
출판사 : 시공사
읽은날 : 2021/02/20 - 2021/02/27
나는 개신교인이지만 성당에 대한 로망이 있다.
유럽에 갈 때마다 성당의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감동받곤 한다.
물론 그 감동의 내면에는 이런 큰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의 땀과 노력과 눈물이 배어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이 주는 아름다움은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성당들도 강화도 성당처럼 즐거움을 주는 곳이 많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의 성당들을 소개한다.
이름높고 거대한 성당을 포함해서 이탈리아 이곳저곳의 소박한 성당까지 약 80여곳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직접 가볼 수 없지만 사진으로나마 그 성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참 좋다.
외관이 광곽으로 더 많이 잡히고 성당내부의 제단화나 천정화가 더 선명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세밀함은 직접가서 느껴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다시 가서 거닐어보고 싶은 피렌체를 비롯하여 가본적 없는 남부 이탈리아의 성당을 보며 이탈이라인들의 신앙심을 생각해보게 된다.
수많은 외적들의 침략과 전염병, 귀족들의 약탈을 신앙으로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성당을 거닐며 벽을 쓰다듬으며 옛사람들의 신앙심에 다시한번 감동하게 된다.
다시 가보고싶다.
p18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p23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캄비오,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p35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천국에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며 감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이 문은 지금까지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세례당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은 두오모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p37 이곳에서 1498년 5월 23일, 사보나롤라 수사가 부당한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받을 뒤 화형에 처해졌다. 사보나롤라 수사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이 기록을 남긴다
p43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한 산 로렌초 성당과 메디치 경당이다.
p48 이 성당은 스마트하다. 성당 2층에는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화클레멘스 7세가 1만 권에 이르는 고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설립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다. 또한 조각 등 미술에 관심있다면 성당 지하 박물관을 가봐야 한다. 르네상스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낸 피렌체 출신 조각가 도나텔로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p50 산타 크로체 성당(성 십자가 성당)에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등 빛나는 별들이 잠들어 있다.
p55 피렌체에 가면 도시 전망을 보기 위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미켈란젤로 언덕인데, 그곳에서 걸어서 5분만 올라가면 산 미니아토 알몬테 수도원 성당을 만날 수 있다
p57 이탈리아 각 지역 성당을 다니다 보면 왕관을 들고 있는 젊은 왕자, 혹은 종려나무 가지로 된 관을 쓴 성자,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모두 성 미니아스를 표현한 것이다.
p60 피렌체의 그리스도교 신앙유산은 우피치가 아닌 이 두 박물관에 모조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피치만 가고,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가지 않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p84 "단체 셀카 한 장 찍겠습니다. 자, 모이세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보살들이 단체 셀카를 찍는 모양새다
p88 가타리나는 신비 신학, 영적 체험과 관련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 성녀였다. 언젠가는 가타리나의 고향 시에나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p110 상상력 갑을 자랑하는 이 그림은 십자가에 사용된 나무가 애초에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예수의 몸을 받았는지, 그리고 이후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열두 개 장면으로 나눠 묘사하고 있다
p135 신영복은 담론에서 "동양사상은 기본적으로 땅의 사상(음의 사상)이며 모성의 문화"라고 말했다
p140 나폴리 거리 곳곳에는 비잔틴과 아랍의 건축양식, 스페인과 프랑스, 바이킹의 문화가 생생하게 공존하고 있다
p142 매년 한 차례 일어나던 기적은 1497년 이탈리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겐나로 성인의 유래를 수습해 나폴리 대성당으로 옮긴 이래, 두 차례로 늘었다. 지금도 매년 5월 첫째 주일과 9월 19일에는 성인의 피가 어김없이 액체 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p154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성당 지붕에 큰 폭탄 하나가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폭발하지 않았다. 5백 년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질 뻔했던 순간이었다
p156 유럽 역사를 바꾼 레판토 해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성당, 그 성당이 바로 나폴리의 산타 키아라이다
p165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를 모토로 하는 이들은 베네딕토 규칙서 대신 자체적인 회헌을 따랐으며, 철저히 은수자적 삶을 지향했다. 이들의 회헌은 지난 1천 년 동안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회헌에 따르면 그들의 하루는 영화 <위대한 침묵>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전례의 연속이다
p169 성모 마리아가 직접 발현해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기념해 설립한 대성당, 언젠가 책에서 연 5백만 명이 방문하는 유명한 성모 성지라는 내용을 읽고서, 죽기 전에 한 번은 방문해야 겠다고 소망했던 그 성당이었다
p177 폼페이 사람들의 유해는 6미터 화산재에 묻힌 채 굳어졌다. 이후 2천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화산재 내부에 갇혀있던 시신이 부패하면서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에 석고를 흘려 넣자 폼페이 최후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p187 이탈리아의 많은 대성당이 고려청자, 조선백자라면 이 성당은 첫사랑의 투박한 미를 닮은 소박한 사발(다완)로 다가온다
p198 제우스 신전의 틀 위에 지어지다 보니, 지금도 성당에는 고대 그리스 신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가 족히 2천 5백 년은 넘었을 법한 두 개의 분홍색 대리석 기둥, 바닥 대리석 등이 그것이다
p221 마르코가 선택한 것은 이야기였다. 마르코는 일반 대중이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다. 그래서 복음서 중에서 분량이 가장 적고, 내용도 술술 읽힌다
p231 16세기 초 이탈리아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르네상스 4대 천왕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가 그들이다
p254 그 현대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중세의 거인이 그곳에 우뚝 서 있다. 생애 꼭 한 번은 직접 만나고 싶었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이 그곳에 있었다
p260 1204년 베네치아 총독 엔리코 단돌로가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루치아의 유해도 함께 베네치아로 옮겨온 것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루치아를 위한 성당을 짓고 그곳에 유해를 소중히 모셨다.
p284 천편일률적인 오늘날 우리의 종교 시설과 달리 베로나 대성당은 산 제노 마조레 대성당, 아나스타시아 성당과는 또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p292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오상의 성 비오, 시에나의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어느 성당을 가더라도 석상과 동상, 그림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p308 산타클로스는 4세기 터키 남부 미라에서 사목했던 주교 성니콜라오를 지칭한다. 이 니콜라오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산 니콜라 대성당이 풀리아주 바리 구시가 광장에 있고, 성당 지하 경당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p315 이탈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인간이 거주한 마테라에는 이후 그리스인, 로마인, 터키인, 바이킹 등이 잇달아 자리를 잡았고, 그들의 후예가 지금도 같은 장소에 거주하고 있다.
p327 오상의 기적이 그의 몸에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1918년. 비오 성인의 두 손과 두 발, 옆구리에서 피가 터졌고, 그와 함께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p339 레체에는 유난히 화려한 성당이 많다. 진흙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돌이 지천에 널려 있다 보니, 성당들도 그만큼 화려해진 것이다. 레체가 '남쪽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이유도 도시 전체에 넘치는 르네상스풍의 화려함 때문이다.
p350 롬바르디아가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손을 탄 이유는 땅이 비옥했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이 먹고도 남을 작물들이 매년 쏟아져 나왔다
p357 성전 출입문이 완성되고 문이 열린 것은 1965년 1월 6일이었다. 첫 삽이 떠진 이후 우리 앞에 명작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 무려 6백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p364 성녀 모니카가 눈물 흘리며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청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런 눈물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p384 사실 나에게는 성의를 둘러싼 이러한 오랜 진위 논쟁이 중요하지 않았다. 성의가 가짜로 판명 난다고 해도 문제 될 것 없다. 성의로 인해 흘린 눈물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걷게 했기 때문이다
p412 산 안드레야 대성당에 들어가면 돔 아래에 유독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곳 대리석 아래에 론지노가 만토바로 가져온 예수의 피가 모셔져 있다
p421 파비아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파비아 대성당이다. 돔의 규모로만 비교하자면 로메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서열 3위 성당이다.
p432 왜 파비아의 많은 성당 중 이 성당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묘를 안치하는 장소로 선택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권이 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