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 개정 증보판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최용범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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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작가 : 최용범

출판사 : 페이퍼로드

읽은날 : 2021/02/27 - 2021/03/13


아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은 아니다

한국사라고는 하지만 통사는 아니고 이곳저곳 스팟으로 뽑아서 쓴 책이다.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꼭지를 뽑은 것도 아니고, 이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을 쓴 것도 아니라서 책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사실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환단고기같은 엉터리 유사역사학을 들이밀며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알아?' 하는 부류들도 어이없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먹이며 일본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듯이 글을 써제끼는 인간들 때문에 짜증난다.

그래서인지 역사책을 읽을 때 저자가 어떤 부류인가를 확인하면서 읽게 된다. 

이 분은 최소한 알면서 거짓말을 쓸 분은 아닌 것 같다. 

여러 에피소드들의 짜깁기이긴 이 책에 더 살을 부쳐가면서 역사를 공부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몇 개의 시리즈가 있는듯하니 더 읽어봐야겠다.

줄거리를 잡아가면서 역사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일듯한 책이다. 


2% 서희장군은 협상전에서 이긴 뒤 거란의 재침략에 대비해 병력을 증강해 조련한 뒤 쳐들어온 거란군을 귀주에서 완파했다

4% 고인돌은 바로 청동기 시대의 일반적인 무덤 형태였던 것이다

6% 기원전 195년, 연나라의 고위 관료였던 위만이 고조선으로 도망왔다

7% 고조선 정벌전에 관계됐던 고위직 사신, 장군 모두 극형에 처해진 것이다. 고조선에서 항복한 왕자와 국상 등만이 제후로 대접받았다. 사마천 사기와 반고의 한서가 전하는 전쟁 전후다. 이상한 정복전쟁이었다

11% 일본이 고대국가 체제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 불교를 처음 전해준 사람도 백제의 성왕이 보낸 노리사치계였다

16% 단재 신채호는 "연개소문은 4,000년 한국사에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영웅"이라며 그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바로 영류왕을 비롯한 실세 귀족들의 당에 대한 굴욕적인 태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19% 발해 땅이 중국과 러시아에 있었던 관계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학자들 역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입장에 따라 발해사를 자국의 역사나 말갈의 역사, 혹은 만주의 지역사로 보고자 한다

20% 발해는 당의 견제와 입지조건의 열악함을 활발한 대외교류를 통해 극복해가면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24% 장보고는 청해진을 기반으로 중국의 칭다오, 양정우, 쑤저우 등 10여 곳 이상의 신라인촌과 네트워크를 구축, 신라를 무역강국으로 키우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30% 원본이 불타버렸다던 훈요10조는 우연히 경주 출신 최항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종에게 바쳐졌다. 현종은 신라계를 외가로 하고, 지지기반 역시 신라계열의 신하들이었던 왕이다

38% 아무 장식 없는 순청자에 돋을새김을 하는 양각청자, 반대로 꽃이나 풀을 새겨 넣는 음각청자, 유약을 바르기 전 붓에 철분 안료를 묻혀 무늬를 입히는 철화청자 등등 무늬를 새기는 데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39% 마이클 H 하트에 따르면 구텐베르크는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인쇄출판에 필수적인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연구 끝에 대량 인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6%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이혼률을 기록해 송의 사신이 고련견문기에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56% 세조의 정권욕이 부른 쿠데타는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십보후퇴를 초래한 일보전진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

61% 일본은 전쟁 중에 수많은 도공과 인쇄공, 학자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이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에도 막부의 문화중흥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던 셈이다

67% 경종이 즉위하면서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 측과 연잉군을 지지하는 노론 측의 당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70% 박제가는 더 나아가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비생산적인 양반들을 상업에 종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신분제의 틀을 넘어섰다

71% 반유교적인 태도로 인해 신윤복은 그 자신에 관한 행적은 물론이고 생몰연대조차도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변부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72% 평안도 농민전쟁은 홍경래라는 몰락양반이 10년간 동조자를 규합해 자금과 조직을 꾸려서 거사를 한 유일한 혁명이었다

86%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에게서 "조선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어찌하여 위임통치 청원자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임명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말 못할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망언을 일삼았다

92% 미군정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지방에서 자치적인 권력체의 위상을 가지고 있던 인민위원회의 반발은 거셌다. 이군정과 인민위원회 간의 대립은 대구인민항쟁, 여순항쟁, 제주 43항쟁 등 숱한 인민항쟁을 가져왔다

94% 프랑스의 2,071건의 사형선고와 3만 9,900여건의 징역판결, 벨기에의 5만 5,000건의 징역형, 일본의 21만여 명 공직 추방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김성수나 이은상, 이갑성(일제 밀정활동) 등 적지 않은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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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했던 43가지 역사 이야기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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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작가 : 박은봉

출판사 : 책과함께

읽은날 : 2021/02/28 - 2021/03/08


다양한 역사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술자리에서 '너 이거 알아?' 하면서 잘난체 하기 좋은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좋았다.

아무래도 책을 읽으면 허세를 떨고 잘난체 하고 싶어지니까...

서양역사를 더 좋아해서인지 동양쪽보다는 서양쪽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다.

특히 서양역사의 어두운 면들, 아메리카 침략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백인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게 된다. 

웃음과 매너로 감췄지만 사실 그 내면에 있는 우월감과 민족차별은 여전하니까...

서양을 동경하면서도 욕을 하게 되는 이중적인 나의 모습을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p38 마리아가 죽은 지 3년 뒤인 1867년,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속기사였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하여 그의 넘치는 헌신과 애정 속에서 죄와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의 대작을 완성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재혼 후에도 마리아의 아들 파샤를 친자식처럼 끝가지 돌봐주었다

p49 13년 후, 1890년 10월에 차이코프스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자기는 파산했으며 앞으로는 연금을 보낼 수 없다는 나데즈다의 이별편지였다

p64 페터 카멘친트처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 대신에 만족을 얻는 것으로는 진정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만족이란 속물들이 얻는 행복이니가요. 하지만 페터 카멘친트는 결코 속물이 아닙니다.

p66 본능과 이성 간의 내적 투쟁은 바로 헤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중심 테마다.

p89 유흠의 설명에 따르면, 제자백가의 유래는 관리와 교사의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전과 예악을 관장하던 자로부터는 유가가, 전술을 관장하던 자로부터는 묵가가, 역법과 점술을 관장하던 자로붜는 음양가가, 이런 식이다

p105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지배층 문화는 이집트 고유문화가 아니라 그리스 문화요, 지배층의 언어도 그리스어였다

p130 14세기 중엽, 그러니까 1346년부터 1350년경가지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 일명 흑사병의 참상이다. 흑사병은 전 유럽을 극도의 절망과 공포에 빠뜨렸다

p149 피사로는 이 금은 세공품을 모두 녹여버렸다. 운반하기 쉽도록 덩어리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잉카의 정교한 세공품들이 이때 상당부분 녹아 사라졌다. 탐욕만 앞설 뿐 문화유산의 가치라곤 모르는 무지한 행위였다

p172 이 의궤는 베르사유 궁으로 유명한 베르사유 시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과 파손 도서 창고에 방치되다가 박병선이라는 한국인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p230 체로키족은 이를 거부하며 최고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지만, 잭슨은 최고재판소의 결정을 너무나도 비상식이라며 무시해버리고 군대를 파견하여 체로키족을 몰아냈다. 3만 명이 넘는 체로키족이 쇠사슬과 채찍 아래 멀리 서쪽의 오크라호마까지 쫓겨났으며, 도중에 4분의 1이 죽었다.

p247 양은 우리 속에 갇혀 인간에게 사육되는 존재다. 반면 늑대는 자유롭게 산에서 사는 존재다. 양은 자유와 해방을 갈망한 나머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늑대를 시기하고 미워하게 된 것이다. 비록 늑대가 자기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을지라도

p264 3년 뒤인 1922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바로 신혼 초, 밀레바와 공동연구하여 발표한 논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상금을 밀레바에게 주었다. 미안함의 표시였을까?

p267 아인슈타인은 인류문화에 기여한 위대한 과학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신화적 명성의 그늘 아래 비틀린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밀레바, 한스, 에두아르트가 바로 그들이다

p273 골계란 익살이란 뜻의 한자어다. 태평한화골계전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의 우스개, 해학, 음담패설을 모아놓은 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골계집으로 꼽힌다. 위엄 넘치는 대제학 벼슬을 23년이나 맡아 한, 육순을 바라보는 점잖은 선비가 골계집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테지만, 사실 이야말로 서거정의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예다

p288 전황 보고서는 언제나 나폴레옹이 국민들로부터 믿어지기를 바랐던 내용대로 발표되었다. 승리에 관한 것은 부풀려진 반면에 패배나 사상자 수에 관한 것은 발표되지 않거나 혹은 줄여서 발표되었다

p297 사드 후작은 괴물, 미치광이, 위험스런 병자, 너무나도 유명한 색광으로 지목되어 사회로부터 격리, 추방되고 그의 작품은 제목조차 말하기 꺼려지는 추잡한 책으로 금서가 되었다

p297 오늘날 사드는 기독교 철학자로, 혁명가로, 문학적 선각자로, 프로이트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사회질서의 근본이 된다고 믿어지는 모든 원칙, 이데올로기에 대한 완강한 반항과 회의를 표출한 작가로 칭송받는다

p306 rational numbers란 합리적인 수가 아니라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는 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는 수와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수를 구별한 것이다.

p316 중국에서 온 쟁이라는 악기를 본 가실왕은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성음이 다르거늘 어찌 단일화할 수 있겠느냐" 하며 악사 우륵에게 가야 말에 맞는 악기를 만들게 했다

p320 우륵은 충주에서 쓸쓸히 가야금을 타며 공주에 대한 사랑과 나라 잃은 설움을 노래로 지어 부르다 일생을 마쳤다. 그가 가야금을 타던 곳을 탄금대라 한다

p331 블로크는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역사학이 파악해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라고.

p332 내가 골동품 연구가라면 낡은 물건들만 찾아다니겠지만 나는 역사가거든. 그래서 생활을 사랑한다오

p351 어제 구순자도 죽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며 우정을 주고받은 꿈 많은 두 여학생이 저승에 가서도 함께 있을 양으로 한낱한시 같은 장소에서 총알을 맞은 모양인가

p360 끊임없는 출산과 육아, 그리고 교정과 정서. 소피아는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을 자본 일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자기는 톨스토이 작품의 유모라고 스스로 칭하면서.

p368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이 여인이 아이들과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철학자에게 심한 바가지를 긁은 무지한 아내, 역사상 악처 제1호라는 아름답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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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거닐다, 소쇄원 - 김인후와 유토피아 이기동 교수의 우리 문화의 재발견 1
이기동 지음, 송창근 사진 / 사람의무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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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국을 거닐다 소쇄원

작가 : 이기동

출판사 : 사람의 무늬

읽은날 : 2021/02/19 - 2021/03/03


아주 예전에 소쇄원을 방문했었다.

야트막한 담장너머 보이는 소쇄원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마루에 앉아 보이는 연못과 주변 풍광은 아주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처럼 정적인 사람이 딱 좋아할만한 곳.

그러나 그안에 숨겨져있는 운치를 알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이 책을 읽으면 소쇄원에서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곳에 담겨있는 조선선비의 멋을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내용을 알려주다보니 받아들이기에 힘들다.

돌다리 하나, 정자의 위치에도 내가 모르는 해석이 들어있다니 신기하다. 

이런 운치를 느끼러 다시금 가봐야겠다.



p60 하서의 수양공부는 절저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수도자의 그것이었다. 도를 닦는 길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며 건전하게 학문에 열중하는 데 있다.

p90 훼손만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천국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하면 그대로 천국이다. 소쇄원은 그런 곳이다.

p95 비 갠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같은 집이다. 그 달을 바라보는 집이기도 하다

p100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위아래를 살펴보니, 하늘 위에는 솔개가 날고 물에서는 물고기가 뛴다. 시경에는 천국을 노래하여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뛴다고 했고, 중용에서도 이 시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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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평전 - 불꽃같이 짧은 생애의 찬란한 시문학
장정룡 지음 / 새문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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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허난설헌 평전

작가 : 새문사

출판사 : 시공사

읽은날 : 2021/02/16 - 2021/03/02


난설헌 허초희

자는 경번. 1563년 출생 1589년 사망

조선의 천재 문장가. 

그 넓은 세상중 여성차별이 심한 조선에서 태어나 그 뛰어난 재주를 펴보지도 못하고, 스물일곱살에 한많은 인생을 마감한 천재.

여성으로 태어나서 대접받지 못하고, 아이들을 먼저 보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불운한 사람.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했다며 저속하다는 평가를 받고, 표절작가라는 비난도 받으며 사망 이후에도 조선의 쪼잔한 사대부들에게 폄하받던 작가. 

왜 신은 이런 천재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주셨을까?


이제는 천국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이 책을 통해 난설헌이 얼마나 뛰어난 천재였는지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다. 

서양에 파니 멘델스존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난설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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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 기행
최의영.우광호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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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당평전

작가 : 최의영

출판사 : 시공사

읽은날 : 2021/02/20 - 2021/02/27


나는 개신교인이지만 성당에 대한 로망이 있다.

유럽에 갈 때마다 성당의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감동받곤 한다.

물론 그 감동의 내면에는 이런 큰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의 땀과 노력과 눈물이 배어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이 주는 아름다움은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성당들도 강화도 성당처럼 즐거움을 주는 곳이 많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의 성당들을 소개한다. 

이름높고 거대한 성당을 포함해서 이탈리아 이곳저곳의 소박한 성당까지 약 80여곳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직접 가볼 수 없지만 사진으로나마 그 성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참 좋다. 

외관이 광곽으로 더 많이 잡히고 성당내부의 제단화나 천정화가 더 선명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세밀함은 직접가서 느껴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다시 가서 거닐어보고 싶은 피렌체를 비롯하여 가본적 없는 남부 이탈리아의 성당을 보며 이탈이라인들의 신앙심을 생각해보게 된다. 

수많은 외적들의 침략과 전염병, 귀족들의 약탈을 신앙으로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성당을 거닐며 벽을 쓰다듬으며 옛사람들의 신앙심에 다시한번 감동하게 된다.

다시 가보고싶다. 



p18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p23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캄비오,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p35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천국에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며 감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이 문은 지금까지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세례당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은 두오모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p37 이곳에서 1498년 5월 23일, 사보나롤라 수사가 부당한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받을 뒤 화형에 처해졌다. 사보나롤라 수사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이 기록을 남긴다

p43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한 산 로렌초 성당과 메디치 경당이다.

p48 이 성당은 스마트하다. 성당 2층에는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화클레멘스 7세가 1만 권에 이르는 고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설립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다. 또한 조각 등 미술에 관심있다면 성당 지하 박물관을 가봐야 한다. 르네상스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낸 피렌체 출신 조각가 도나텔로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p50 산타 크로체 성당(성 십자가 성당)에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마키아벨리,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등 빛나는 별들이 잠들어 있다.

p55 피렌체에 가면 도시 전망을 보기 위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미켈란젤로 언덕인데, 그곳에서 걸어서 5분만 올라가면 산 미니아토 알몬테 수도원 성당을 만날 수 있다

p57 이탈리아 각 지역 성당을 다니다 보면 왕관을 들고 있는 젊은 왕자, 혹은 종려나무 가지로 된 관을 쓴 성자,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모두 성 미니아스를 표현한 것이다.

p60 피렌체의 그리스도교 신앙유산은 우피치가 아닌 이 두 박물관에 모조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피치만 가고,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가지 않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p84 "단체 셀카 한 장 찍겠습니다. 자, 모이세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보살들이 단체 셀카를 찍는 모양새다

p88 가타리나는 신비 신학, 영적 체험과 관련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 성녀였다. 언젠가는 가타리나의 고향 시에나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p110 상상력 갑을 자랑하는 이 그림은 십자가에 사용된 나무가 애초에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예수의 몸을 받았는지, 그리고 이후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열두 개 장면으로 나눠 묘사하고 있다

p135 신영복은 담론에서 "동양사상은 기본적으로 땅의 사상(음의 사상)이며 모성의 문화"라고 말했다

p140 나폴리 거리 곳곳에는 비잔틴과 아랍의 건축양식, 스페인과 프랑스, 바이킹의 문화가 생생하게 공존하고 있다

p142 매년 한 차례 일어나던 기적은 1497년 이탈리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겐나로 성인의 유래를 수습해 나폴리 대성당으로 옮긴 이래, 두 차례로 늘었다. 지금도 매년 5월 첫째 주일과 9월 19일에는 성인의 피가 어김없이 액체 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p154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성당 지붕에 큰 폭탄 하나가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폭발하지 않았다. 5백 년 역사가 한순간에 사라질 뻔했던 순간이었다

p156 유럽 역사를 바꾼 레판토 해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성당, 그 성당이 바로 나폴리의 산타 키아라이다

p165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를 모토로 하는 이들은 베네딕토 규칙서 대신 자체적인 회헌을 따랐으며, 철저히 은수자적 삶을 지향했다. 이들의 회헌은 지난 1천 년 동안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회헌에 따르면 그들의 하루는 영화 <위대한 침묵>에 잘 묘사되어 있듯이 전례의 연속이다

p169 성모 마리아가 직접 발현해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기념해 설립한 대성당, 언젠가 책에서 연 5백만 명이 방문하는 유명한 성모 성지라는 내용을 읽고서, 죽기 전에 한 번은 방문해야 겠다고 소망했던 그 성당이었다

p177 폼페이 사람들의 유해는 6미터 화산재에 묻힌 채 굳어졌다. 이후 2천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화산재 내부에 갇혀있던 시신이 부패하면서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에 석고를 흘려 넣자 폼페이 최후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p187 이탈리아의 많은 대성당이 고려청자, 조선백자라면 이 성당은 첫사랑의 투박한 미를 닮은 소박한 사발(다완)로 다가온다

p198 제우스 신전의 틀 위에 지어지다 보니, 지금도 성당에는 고대 그리스 신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가 족히 2천 5백 년은 넘었을 법한 두 개의 분홍색 대리석 기둥, 바닥 대리석 등이 그것이다

p221 마르코가 선택한 것은 이야기였다. 마르코는 일반 대중이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다. 그래서 복음서 중에서 분량이 가장 적고, 내용도 술술 읽힌다

p231 16세기 초 이탈리아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르네상스 4대 천왕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가 그들이다

p254 그 현대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중세의 거인이 그곳에 우뚝 서 있다. 생애 꼭 한 번은 직접 만나고 싶었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이 그곳에 있었다

p260 1204년 베네치아 총독 엔리코 단돌로가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루치아의 유해도 함께 베네치아로 옮겨온 것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루치아를 위한 성당을 짓고 그곳에 유해를 소중히 모셨다.

p284 천편일률적인 오늘날 우리의 종교 시설과 달리 베로나 대성당은 산 제노 마조레 대성당, 아나스타시아 성당과는 또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p292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오상의 성 비오, 시에나의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어느 성당을 가더라도 석상과 동상, 그림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p308 산타클로스는 4세기 터키 남부 미라에서 사목했던 주교 성니콜라오를 지칭한다. 이 니콜라오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는 산 니콜라 대성당이 풀리아주 바리 구시가 광장에 있고, 성당 지하 경당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p315 이탈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인간이 거주한 마테라에는 이후 그리스인, 로마인, 터키인, 바이킹 등이 잇달아 자리를 잡았고, 그들의 후예가 지금도 같은 장소에 거주하고 있다.

p327 오상의 기적이 그의 몸에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1918년. 비오 성인의 두 손과 두 발, 옆구리에서 피가 터졌고, 그와 함께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p339 레체에는 유난히 화려한 성당이 많다. 진흙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돌이 지천에 널려 있다 보니, 성당들도 그만큼 화려해진 것이다. 레체가 '남쪽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이유도 도시 전체에 넘치는 르네상스풍의 화려함 때문이다.

p350 롬바르디아가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손을 탄 이유는 땅이 비옥했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이 먹고도 남을 작물들이 매년 쏟아져 나왔다

p357 성전 출입문이 완성되고 문이 열린 것은 1965년 1월 6일이었다. 첫 삽이 떠진 이후 우리 앞에 명작이 모습을 드러내는 데 무려 6백 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p364 성녀 모니카가 눈물 흘리며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청하자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안심하시오. 그런 눈물을 가진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p384 사실 나에게는 성의를 둘러싼 이러한 오랜 진위 논쟁이 중요하지 않았다. 성의가 가짜로 판명 난다고 해도 문제 될 것 없다. 성의로 인해 흘린 눈물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걷게 했기 때문이다

p412 산 안드레야 대성당에 들어가면 돔 아래에 유독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곳 대리석 아래에 론지노가 만토바로 가져온 예수의 피가 모셔져 있다

p421 파비아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파비아 대성당이다. 돔의 규모로만 비교하자면 로메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서열 3위 성당이다.

p432 왜 파비아의 많은 성당 중 이 성당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묘를 안치하는 장소로 선택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권이 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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