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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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 믿습니까? 믿습니다

작가 : 오후

출판사 : 동아시아

읽은날 : 2021/04/28 - 2021/05/06


이 책은 미신의 역사라기보다는 믿음의 역사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미신이라는 정의가 너무 넓다. 

별자리, 운세, 혈액형뿐만 아니라 심리학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회사에서도 종종 검토되는 MBTI도 미신의 범주에 들어간다. 

종교도 당연히 미신의 범주..

이런식이면 미신 아닌게 뭐가 있을까?

이런 다양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읽고 들어도 전혀 다르게 판단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지도자가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가 되면 그 공동체는 불행할 수 밖에 없을것 같다.

이미 히틀러나 박정희를 통해서 충분히 경험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고, 조금은 너그러워져야 할 이유가 이 책에 많이 들어있다. 


내가 어릴 때 에피소드 하나. 

내가 어릴때 슬레트 지붕이 많았다. 그리고 그 슬레트 지붕을 뜯어다가 고기를 구워먹었다.

얇아서 열전도가 잘되고 슬레트에 구워먹으면 맛있다고 많이들 이야기했다.

지금은? 발암물질 나온다고 아예 사용이 금지됐다.

농사에 획기적인 제초제라는 DDT도 마찬가지.. DDT가 나왔을 때 많은 농부들이 만세를 불렀다.

지금은? 역시 사용금지..

이 책에 보면 MSG는 과학적으로 안전한데 사람들이 미신을 가지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쓰여있다.. 시간이 지나도 과연 그럴까? 과학은 미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p13 여기서 미쳤다는 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이유는 사라지고 믿음만이 남는다

p24 최초의 미신은 600만년 전 부터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분화한 100만년 전, 그사이 어디즘에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p29 한반도는 애니미즘의 전통이 강한데, 문, 부엌, 더 나아가서는 장독, 도자기, 솥처럼 집 안의 소소한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p35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생산력이 폭발하기 전까지 1만 년간 인류는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수렵 채집 시절보다 못 먹고 못살았다

p39 총, 균, 쇠를 쓴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농경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썼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농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라고 표현했다

p54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괴물로 묘사되는 세이렌, 하르피아, 메두사, 스핑크스(넷 다 여성이다)는 로마가 정벌한 이민족에게 추앙받던 신들이었다. 이민족의 신을 그리스 로마의 신과 영웅들이 처단함으로써 우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p54 신화를 보다 보면 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신이 이상한게 아니라 신으로 상징되는 당시 사회규범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p71 델포이의 새 주인이 된 아폴론은 피톤이 기거하던 균열 위에 신탁소를 차리고 영업을 시작한다.

p78 헬리혜성은 기원전 467년부터 기원후 1910년까지 총 32번 나타났는데, 중국 사료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천문 관측기구, 지표 천문학, 기하학, 그 밖의 온갖 수학 도구의 발전이 점성술에 빚을 지고 있다

p80 점성술의 기본은 해와 달, 태양계의 5개 행성, 그리고 황도 12궁이다

p97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성경을 보급하는 데 기여한 만큼 미신이 퍼지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p102 1595년 케플러는 처음으로 별점 달력을 편찬했는데, 그는 여기서 두 가지 인상적인 예언을 해 명성을 얻었다. 하나는 이번 해 겨울이 매우 추울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전적인 터키인들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당연히 둘 다 실현됐다

p105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대중의 사랑은 교육의 여부와 상관없이 엔터테인먼트에 능한 이들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점성가에게는 별을 보는 능력보다 말솜씨가 더 중요해진다.

p111 천연두와 암살에서도 살아남은 미국 초대 대통령은 오래된 미신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p126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는 것이 서양 점성학의 기본이다. 그래서 서양 점성학은 관찰을 중요시했고, 천문학과 함께 발전했다

p142 일이 있을 때마다 전문가를 찾아서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선비들은 주역을 익혀 스스로 점을 봤다

p151 명리학은 사주팔자와 대운(10년에 한 번씩 바뀌는 운), 연운(매년 바뀌는 운) 등을 따져 한 사람의 인생을 예측한다.

p153 명리학뿐 아니라 당대 유행하는 미신을 살펴보면 우리가 사회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은 이성적으로 돌아가겠지만, 인간 사회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그렇게 미신은 합리적이진 않지만 맞기도 한다

p197 2019년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설립하고 장관을 임명해 개개인의 고립이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됨을 선언했다

p204 1914년 크리스마스 정전, 이는 역사상 종교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며 영원히 기억 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다. 이는 단 한 명의 성인이 행한 기적이 아니다.

p237 리건은 점설술사의 조언을 듣고 일정을 바꾸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결국 본인이 해고됐다.

p282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과학의 정의를 반증 가능성에 뒀다. 언제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에 의해 깨질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것이다

p289 일본군 사료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은 특공대원은 총 4,615명이다. 역사적으로 자살공격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가미카제처럼 전 조직원 모두가 죽기를 희망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p298 미국은 환상에 속은 사람들이 개척한 나라이고 이 때문인지 이후 믿고 싶은 모든 것은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p303 진정한 자연주의 실천가였던 존 뮤어는 소로를 두고 "과수원 옆에 있는 작은 숲 속에서 마치 대자연을 즐기는 양 허세를 부린 한낱 구경꾼"이라고 혹평했다

p307 미국인의 2.4퍼센트에 해당하는 총기 애호가들은 평균 17자루의 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체 총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p331 20세기 미국 민주당 원로 정치인 팻 모이니핸은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라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고,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이야기하며 이 말을 끌어다 쓴다

p341 마이클 조던이나 데이비드 베컴이 미신을 믿든 말든 그들은 운동을 잘했겠지만, 징크스를 지킨 것이 그들의 심적 안정과 자신감에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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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메타버스 1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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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메타버스

작가 : 김상균

출판사 : 플랜비디자인

읽은날 : 2021/04/19 - 2021/04/27


꼰대가 되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조류나 신조어에 정말 취약하다.

너무 모르는 것도 세상사는데 불편할 것 같아 요즘 핫하다는 메타버스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인터넷의 가상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을 퉁쳐서 부르는 말인것 같다.

페이스북 같은 SNS부터 시작해서 AR, VR등이 모두 메타버스의 일종이라고 한다. 

범위가 너무 넓다보니 용어를 사용하기가 좀 애매해진다. 

이런식의 정의라면 하이텔시절 사용한 동호회도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당시에도 01410으로 접속해서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대화도 했으니까...

큰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확률적으로 나는 살아온 만큼을 더 살아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내가 전혀 모르는 가상세계를 옆에 두고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는 없을것 같다.

어린 친구들만큼 빠릿빠릿하게 좇아가지는 못하겠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잘 배웠다. 


7%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된 지구를 메타버스라 부릅니다

10% 21세기는 역사상 특이한 시기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많으며,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노화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12%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가면을 씌워줘라. 그러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18% 실제 외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선 요원끼리 물리적으로 충돌한 경우가 있습니다

20%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메타버스를 볼 때 과학, 공학적 요소가 메타버스의 전부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이 담겨있지 않다면 증강현실 메타버스는 단순히 신기술의 전시장이 될 뿐입니다

26% 자신의 삶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기록하여 저장하고 때로는 공유하는 활동을 라이프로깅이라 부릅니다

28% 여행의 동반자로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큰 여정을 상대와 공유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이해하는 편입니다

29% 금연이나 다이어트가 내게 줄 장기적 보상보다는 담배와 군것질거리가 줄 단기적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30% 얼핏보면 샛길로 빠지는 개미가 내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지만, 그 빠진 샛길이 때로는 지름길이 되거나, 그 길에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우기도 합니다

44%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과 손동작을 볼 때와 자기가 직접 표정을 짓고 손을 움직일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같았습니다. 리촐라티는 이런 실험을 통해 발견한 뉴런에 거울 신경 세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56% 댓드래곤캔서는 조엘의 고통, 부모의 고통에 공감을 유도하는 게임입니다

60% 한스 게오르그 호이젤의 저서인 Brain View의 한글 번역서인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서는 이런 우리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을 젊은 야만인 상태라고 했습니다

65% 2018년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13세 미만 아이들은 유튜브보다 로블록스에서 2.5배 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넷플릭스에 비해서 16배 정도의 시간을 로블록스 메타버스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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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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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테라 인코그니타

작가 : 강인욱 

출판사 : 창비

읽은날 : 2021/04/15 - 2021/05/04


믿고 보는 강인욱 교수님의 고고학 책...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의 한국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민족들과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부에 써있는 우리나라 과거 역사는 처음 알게 된 내용들이 많았다.

고조선 시대때 상투를 틀었다는 내용처럼...

과거의 유물, 유적, 책등을 통해 알게된 과거의 역사는 모두가 한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다. 때로는 모순되는 내용이 함께 출토되기도 하고, 시대적으로 잘 맞지 않는 내용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역사가는 겸손해야 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유물만 뽑아다가 마음대로 윤색하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대의 시각을 가진 우리가 과거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더 조심해야 한다. 

역사를 이용해 자기 민족을 고양하거나 다른 민족을 무시하는 건 절대 없어야겠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p5 서구 열강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그 지역의 보물과 역사를 빼앗아 자국의 박물관에 가져다놓았고, 약탈한 문화재의 수를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로 삼았습니다. 세계 4대 문명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공통적으로 서양의 침략이 가장 일찍 시작된 곳에서 4대 문명이 비롯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13 미지의 땅, 미개척 영역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자신의 저서 지리학교정에서 처음 사용했다.

p22 최근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여럿 발견되고 있다. 터키 남부에서 발견된, 1만5000년 전에 만들어진 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 유적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2만년 전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p26 옥스퍼드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는 후기구석기시대에 현생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로 노래와 춤, 신화, 그리고 종교를 꼽았다

p38 이러한 유사과학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의 논의가 나온 데에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 땅을 차지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p52 서양의 중세를 초토화시킨 페스트도 사실 유라시아의 초원에서 유목을 하던 사람들이 설치류로부터 옮았고 그것이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다

p53 홍산문화는 양쯔강 유역의 량주 문화와 함께 약 5000-6000년 전 동아시아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문명으로 꼽힌다. 홍산문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한 거대한 제단과 고도로 정제된 옥기를 만들어냈다

p55 홍산문화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명을 포기하고 새롭게 바뀐 환경에 적응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p56 홍산문화의 제사를 담당했던 신관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옥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관상용이 아니라 옥에 담긴 치유의 힘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p61 지구온난화로 영구동결대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는 점이 또다른 변수다. 자칫하면 얼음이 녹아내려 자연스럽게 무덤이 드러나고 철새나 북극권의 동물들이 시신의 세균을 옮기는 숙주가 될 수 있다

p67 인간 역사에서 보이는 식인 풍습의 대부분은 적에 대한 증오심 표출이 아니라 산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의 육신 일부를 자기에게 체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p74 흉노와 훈족은 비단 몽골,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저 멀리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 등 유라시아 전역에서 다들 관심이 많다

p77 흉노의 후예를 자처한 집단들은 공통적으로 화려한 보석을 박아 넣은 황금과 강력한 마구, 철제 무기를 갖고 있었다

p82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동안 전체 유목민의 구성은 현지인들로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가장 첨단의 군사와 문화를 선도하던 선우와 그들을 보좌하던 세력은 부계를 중심으로 계속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p95 약 2700년 전 남한에서 쌀농사를 짓던 청동기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쌀농사에 유리한 규슈로 이동하면서 일본에 한반도계 청동기 문화가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 시기를 일본에서는 야요이문화라고 부른다

p109 사양과 일본의 침략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고대사를 동원하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동이족에 대한 혼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p113 동이족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불쌍한 광대들의 손발을 자른 공자의 행동에서 공자가 동이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한다

p122 기자조선은 실제 역사라기보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사대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신화에 가까웠다

p129 이러한 상상은 완전히 허구에 기초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가지를 치면서 과장되고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면서 확대된다

p148 문맥상 상투머리와 오랑캐 옷은 고조선의 풍습을 따랐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p156 온돌은 기원전 4세기경 두만강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룬 옥저인들이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p159 초원에 성터를 건설한 것은 유목민족이었던 흉노가 초원의 제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지혜의 발로였다

p161 흉노의 성터에서 극동 지역의 옥저인들이 사용했던 토기들도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꽤 많은 만주와 한반도 사람이 그 지역으로 건너갔던 것 같다

p164 온돌은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관련성을 밝히는 명명백백한 발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p169 최근 다양한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국 만리장성 일대의 유목문화와 그 사람들이 머나먼 한반도 남쪽까지 내려온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p176 적석목곽분은 4세기경 신라가 국력을 키우는 과정에 불현듯 등장해 약 200여년간 만들어지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p189 아틀란티스를 찾는 노력이 아주 헛된 일은 아니었던 게, 지중해 탐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진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p194 기원전 1274년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벌인 세계 최초의 대륙간 전쟁인 카데시 전투 역시 전차문화가 전파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p207 여러 매체에서 언급되는 1947년에 버드는 북극이 아니라 남극을 비행하는 중이었다. 음모론자들은 단순한 팩트체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여전히 지구공동설의 유력한 증거로 사용한다

p211 2000년 전부터 부여계의 사람들은 이곳에 살며 추운 겨울을 견디는 온돌을 만들고, 주변의 호전적인 말갈 세력을 막아내는 성터를 건설했다. 힘든 환경이었지만 세상 어디보다 비옥한 흑토지대에서 잡곡을 키우며 그들만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p220 고대 귀족과 왕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특이한 머리 형태를 고집했다

p222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p227 샤먼의 관도 그런 노력이 표현된 의식도구다. 샤먼의 관은 요즘말로 하면 신의 뜻을 받기 위한 일종의 와이파이 같은 것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요소로는 나무나 사슴뿐 이미지가 널리 사용되었다

p236 신화로만 전해지던 상웅국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가루다강의 은빛 성채라는 뜻의 궁륭은성이라 불리는 이 유적은 해발 4400미터의 산 정상에 약 10만 제곱미터 넓이에 120여기의 대형 건물을 세운, 글자 그대로 하늘에 지은 도시였다

p250 스키타이 문화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중국 만리장성 일대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의 사람들이 일군 문화를 통칭한다

p258 유목미들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할 때에 반드시 적의 무덤을 파괴하고 도굴했다. 전쟁에서 이겨도 정복해야 할 도시나 요새가 없기 때문에 유목민들이 모이는 장소인 조상들의 무덤을 파괴했던 것이다

p262 약 200년이 지난 뒤에 고고학자들이 다시 마야의 유적을 발견했지만, 정작 그들이 남긴 글자를 해독할 수는 없었다. 스페인이 마야와 관련된 유적과 책들을 철저하게 파괴했기 대문이다. 마야 문명 당시에는 수천권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야의 달력과 책들은 현재 고작 세권(또는 네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p266 구밀료프는 두번째 수용소 생활을 겪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어머니인 아흐마토바가 변절을 하고 스탈린과 당에 대한 찬양시를 쓴 덕분이었다. 이 일로 아흐마토바는 살아생전은 물론 죽어서까지도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p273 1990년이 되어서야 그는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크노로조프를 국민적 영웅으로 모시는 과테말라의 대통령이 직접 초청한 국빈급 방문이었다

p274 처음에는 복잡한 상형문자로 시작해 점차 변해갔을 것이라는 문자의 보편성이 마야의 문자에도 적용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발상 말이다

p284 만약 당시 서양인의 관심이 실크로드가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아마 고구려의 고분이 도굴되고 신라의 석굴암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p289 둔황 막고굴에는 워너 일행이 떼어낸 벽화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서양인들이 실크로드 유물을 약탈한 대표적인 예로 전시되고 있다

p296 제국주의 고고학의 폐해는 그들이 성격 파탄자거나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을 암묵적으로 따라가는 연구 경향이 결국 수천만명을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p309 가야에서 발견되는 판갑과 마구는 정복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지배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도구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p311 나라들이 서로 정복하여 통일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고 웬만한 나라 못지않은 거대한 고분도 만들었다

p314 흥산문화는 약 5500-5000년 전 지금의 네이멍구 츠펑시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신석기시대 문화다

p330 유목민이 만든 돌궐제국은 그들만의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한자와 함께 썼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p348 트로이의 황금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거의 무학에 가까웠지만 부도덕한 군수사업으로 부자가 된 뒤 고고학자로 전환해 자신의 신분을 극적으로 바꾼 사람이다

p352 문화를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참신하고 재미있어 보일 수 있지만 그 대상은 대부분 자신들이 침략했거나 국력이 떨어지는 나라들이다

p358 나는 고고학을 현재라는 렌즈를 끼워서 과거를 바라보는 카메라에 비유하곤 한다. 객관적인 과거를 지향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땅의 모든 역사가 놀랍도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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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클래식 -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준 단 한 권의 책
김성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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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이블 클래식

작가 : 김성현 

출판사 : 생각의 힘

읽은날 : 2021/04/21 - 2021/04/27


제목을 읽고 착각을 해서 일게 된 책..

클래식의 바이블이라고 할만한 음악에 대한 책인줄 알았는데 성경을 주제로 한 음악에 대한 책이었다.

제목을 보면 당연히 성경관련 음악이겠거니 생각했어야 하는데 기존 생각들이 내용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은 좋았다.

성경 책별로 정리된 음악이라는 신선한 시도도 좋았고, 다양한 작곡가들이 다양한 종교음악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성경이 창세기부터 시작하니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첫 장을 장식한다. 

이후 삼손과 델릴라라든가 솔로몬, 엘리야 등 유명한 영웅들의 음악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메시앙의 시간과 종말을 위한 4중주까지 성경의 많은 부분을 커버하는 음악들을 소개한다.

들어보지 않은 음악들이 훨씬 많아서 들어볼 음악리스트가 많이 쌓였다.

음악관련 서적은 읽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새로운 걸 알게 되어 좋기는 한데 들어야 할 음악리스트가 쌓이는 부담이 있다. 

바흐를 좋아하지만 아직 들어보지 못한 요한 수난곡이 소개되었다. 마태수난곡보다는 1시간이 짧으니 가볍게(?) 들어봐야겠다..



p7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충돌할 때, 경제적 궁핌과 예술적 자각 사이에서 방황할때, 작곡가들이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종교적인 곡을 썼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p19 전체 3부 34곡의 대작인 천지창조는 가브리엘(소프라노), 라파엘(베이스), 우리엘(테너)이라는 세 천사의 노래를 통해 천지창조의 과정을 전달하고 있다

p21 하이든은 천지창조의 1부에서 하늘과 물, 산과 강, 해와 달이 생기는 첫 나흘간을 보여준 뒤, 2부에서는 물고기와 새, 곤충과 짐승, 인간이 탄생하는 다섯 번째 날과 여섯 번째 날을 각각 표현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천지창조의 마지막 3부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금지된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기 이전의 모습이 작품에 담겼다

p21 극적 갈등의 부재는 천지창조의 약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온전하게 유지되는 결과를 낳았다

p37 쇤베르크는 모세에게 고정된 선율없이 낭송조로 가사를 전다하도록 하고, 아론에게만 화려한 테너의 멜로디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 모순을 드러냈다.

p40 모세와 아론은 무엇보다 질문을 쏟아내는 오페라다. 쇤베르크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정답이 없는 시대에는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특권이자 임무다

p50 작품의 내용은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 속에는 영국 정부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의미였다

p51 이 작품에는 모든 결점을 가리고도 남을 만한 매력이 있다. 바로 헨델 후기 종교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합창이다.

p66 생상스의 낭만적 윤색 덕분에 메조소프라노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아리아가 탄생했다. 오페라 2막에서 델릴라가 부르는 아리아 "당신 목소리에 내 마음 열려요"였다

p80 헨델 연구자인 음악학자 원턴 딘의 평처럼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나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비견할 만한 극예술의 걸작"이 탄생한 것이다

p81 1739년 작품 초연 이후 장송 행진곡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등 세계 지도자들의 국장때마다 연주됐다.

p105 조지1세는 냉소와 조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국 헌정사에는 지대한 공헌을 한 왕이다. 이때 정치적 실권이 총리에게 넘어갔고, 오늘날 입헌군주제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p124 작곡가도 동생 파울에게 "내 작품 가운데 초연 때 이만큼 훌륭하게 연주된 곡은 없었다. 도 연주자와 관객에게 이처럼 열정적 반응을 받은 곡도 없었다"라며 기뻐했다

p149 초기에 러시아의 원시적 매력을 화려한 관현악으로 표현했던 스트라빈스키는 바로크 음악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절의 작품들을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고전적 예술 양식의 부활이나 적용이라는 의미에서다

p166 영국 음악사가 찰스 버니는 메시아는 이 나라와 세계에서 그 어떤 음악 작품보다 더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혔으며, 고아를 돌보고, 오라토리오 매니저들을 계속해서 부유하게 해주었다라고 재치있게 표현했다. 헨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메시아의 악보를 이 보육원에 기부하도록 유언장을 고쳐 썼다

p173 훗날 밀라노 음악원이 베르디의 이름을 학교 명칭에 넣고 싶다며 의사를 타진했을 때에도, 베르디는 젊은 나를 원치 않았으니, 늙은 나를 가질 수도 없다라는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p180 과도한 흥분과 냉정을 넘나드는 서곡의 변화부터 당장 심상치 않다. 좋게 말해서 다이내믹하고, 나쁘게 보면 들숙날쑥하게 들린다고 할까

p191 망국의 슬픔은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당시 정주 오산학교 교사였던 19세의 이광수는 병합소식을 접한 다음 날 새벽 3시에 종을 쳐서 기숙사 학생들을 깨웠다. 예배당에서 새벽 기도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이때 이광수가 낭독한 것이 예레미야 애가였다

p195 번스타인은 언제나 대중음악에 개방적이었다. "팝 음악을 열등하다고 보는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순히 교향곡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노래보다 뛰어난 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p204 월턴은 엄격한 자기 비판과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작곡 속도가 느린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p209 특히 폐막 공연인 프롬스의 마지막 날에는 영국 국기를 든 관객이 공연장에 운집해서 푸른색과 보라색 대형 풍선을 천장으로 날리며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무대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나 미니 폭축을 쏘아 보내는 모습은 엄숙한 음악회보다는 차라리 흥겨운 파티를 연상시킨다

p217 그분은 한 번도 당신의 생애에 대해 뭔가 써보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전기에 여러 빈틈이 있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인 카를 필립 메아무엘 바흐가 1774년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p218 바흐는 편지를 주고받기보다는 차라리 직접 대화하는 편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은 마치 비둘기 집처럼 생기가 넘쳤다"라고 한다

p227 바흐의 후배들이 바흐의 교회에서 바흐의 작품을 부르고 연주하는 모습에서 800년 전통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2시간 40분이 넘는 수난곡이 모두 끝난뒤에서도 신도들은 박수를 보내지 않고 조용히 정적을 지킨다. 경건한 침묵이 뜨거운 박수를 대신하는 것도 이 교회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p234 2부 40곡으로 연주 시간만 1시간 40분이 넘는 요한 수난곡은 마태수난고 이전가지 바흐의 종교곡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

p235 요한 수난곡은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예수의 체포와 재판, 죽음을 다룬 요한복음 18-19장을 핵심적인 텍스트로 삼는다.

p250 슈트라우스는 불협화음을 과감하게 구사하는 음악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전 낭만주의 오페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욕망과 혼돈, 공포와 관능의 심연을 모두 드러낸 것이었다. 질겁한 헤롯 왕이 "저 여자를 죽여라"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다음 장면에서 음악적 질서를 되찾고자 하지만 살로메 이후의 오페라는 결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이 문제적 오페라는 지금도 바그너의 후기 낭만주의와 20세기 현대음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p265 우선 주교가 예수의 일곱 말씀을 하나씩 읽고 강론을 하면, 강론이 끝난 뒤에 한 곡식 들려주는 연주 방식이었다. 수난곡처럼 전례의 일부로 연주하는 종교음악인 셈이다

p278 이처럼 멘델스존은 혹독할 만큼 자신의 작품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내다 버릴 때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듣고 즐기는 그의 작품들은 엄격한 자기 검열의 채로 걸러서 나온 결과물이다.

p291 수용소에서 적군의 감시 아래 동료 포로들과 함께 실내악을 초연하는 광경 자체가 너무나 20세기적이었다. 메상은 훗날 관객이 "이렇게 놀라운 집중력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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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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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작가 : 조 지무쇼

출판사 : 다산초당

읽은날 : 2021/04/06 - 2021/04/20


세계사는 아닌것 같고 30개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인것 같다.

내용에 깊이는 없다. 가볍게 각 도시들의 역사를 터치하는 수준.

각 도시가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있으면 더 좋았을텐데 도시를 설명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챕터들이 엮이지가 않는다.

그냥 도시 역사 칼럼들을 묶어놓은듯한 느낌이다. 

역사 초보자들이 킬링타임용으로 읽으면 좋을듯한 책.



p16 기원전 16세기에 철제 무기를 다루는 히타이트인이 북서쪽에서 침략하여 바빌론 1왕조를 무너뜨렸다. 이후 동방에서 침입한 카시트인 등 여러 세력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했고, 기원전 8세기에 히타이트의 제철기술을 흡수한 아시리아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이집트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p31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예루살렘은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예루살렘에서는 5-6세기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건립됐지만, 614년에 사산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으로 그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p38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고대 그리스세계에서는 발칸반도 남부의 미케네문명이 기원전 1600년부터 발전을 이루었다가 기원전 1200년경에 갑작스럽게 붕괴했다

p72 아우구스투스는 "벽돌로 지어진 로마를 이어받아 대리석의 도시로 남긴다"라고 말했다

p75 이 상황에 종지부를 찍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대로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293년에 로마제국을 동서로 나눠 각각 정,부 황제를 두는 사두정치 체제를 시작했다

p77 로마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비르고 수도를, 교황 식스토 4세는 시스토 다리를 재정비했다.

p79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이탈리아는 문화재 보호를 주목적으로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세 도시를 교전의 의도가 없다는 무방비도시로 선언했다. 이 덕분에 로마는 독일군에 점령당했지만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p110 티그리스강을 따라 펼쳐진 이라크 평원의 중앙에 위치한 바그다드는 고대 바빌로니아왕국의 수도 바빌론에서 북쪽으로 약 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p114 중세의 바그다드는 서양의 동로마 제국과 동양의 당나라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이 도시는 이른바 세계의 십자로라 불리며 수많은 상인과 물자가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p132 751년에는 아바스왕조와 당나라 군대가 충돌하는 탈라스전투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의 제지법이 서역으로 전해졌고,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사마르칸트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대표적인 종이산지로 손꼽히게 되었다

p136 티무르의 또 다른 손자 울루그 벡은 왕위에 오른 뒤 천문대를 건설하여 15세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게 일 년의 길이를 측정했다

p152 카르타고는 439년에 게르만계 반달족에게 점령당해 반달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여러 차례 로마인가 전투를 치르며 전화에 휩싸였다. 6세기에는 동로마제국이 반달왕국을 무너뜨리고 카르타고를 지배했다.

p183 이반 3세는 동로마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인 조이 팔레올로기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동로마 황제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이런 이유로 이반 3세와 신하들은 모스크바를 고대 로마,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이은 제3의 로마로 칭했다

p187 황제의 대관식도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유럽풍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모스크바는 러시아 전통의 분위기가 강했다.

p194 7세기에 이슬람교가 성립하기 전에는 서아시아 대부분이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천하였다. 같은 중동지역이어도 이란의 페르시아인은 아라비아반도의 아랍인과 언어나 문화가 크게 다르다

p201 라구나는 수심이 얕고 물길이 미로처럼 뒤얽혀서 외부의 침입이 어렵다. 그래서 5세기 무렵 이탈리아 본토가 훈족의 습격이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을 겪을 때 피난민이 이곳으로 밀려들었다

p205 4차 십자군은 아드리아해의 동쪽에 위치한 자라를 먼저 공략한 후, 콘스탄티노플과 주변 섬들을 점령하여 라틴제국을 건국했다. 베네치아는 라틴제국을 발판 삼아 상업과 관련한 특권을 독접했다. 현재 산마르코대성당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말은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한 것이다

p213 일곱 개의 왕조가 각각 다른 시대에 델리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도시개발을 했기 때문에 델리는 다면적인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델리는 일곱 개의 도시 혹은 열다섯 개의 마을로도 불린다

p228 1715년부터 시내의 서부에 페테르고프궁전(여름궁전)을 건설했고, 1754년에는 겨울궁전을 완공했다

p236 21세기인 현재 모스크바는 초고층빌딩이 들어선 현대적인 상업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19세기의 풍경과 정취가 감도는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전세계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p240 갈리아에는 게르만계 세력이 뒤섞여 들어왔고, 프랑크인을 이끌던 클로비스가 481년에 메로빙거왕조 프랑크왕국을 건국했다

p259 암스테르담의 상공업도 규모가 확대되었는데, 그 계기는 15세기 후반 스페인에서 발생한 유대인 박해 때문이었다. 박해를 받은 유대인은 프로테스탄트가 많이 거주하고 비교적 종교에 관용적인 암스테르담으로 앞다퉈 이주했고, 정착 후에는 다이아몬드 가공업이나 금융업에 종사했다

p267 5세기, 본국의 내분으로 로마인이 철수하자 게르만계인 앵글로색슨족이 바다를 건너왔다. 앵글로색슨족은 브리튼 섬 중부와 남부를 지배하며 일곱 개의 왕국을 건설했다. 이부렵부터 론디니움은 런던으로 불리게 되었다

p342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푸자이라, 움알카이와인, 라스알카이마 등 일곱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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