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보다 1 - 선사.고조선.삼국 한국사를 보다 1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한국사를 보다1

 : 박찬영

 : 리베르스쿨

 : 2022/03/07 - 2022/03/12


사진이 많아서 역사 유물들을 많이 보여줘서 좋다.

역사이야기, 특히 고대사는 유적이 발견될 때마다 내용이 바뀌기 때문에 꾸준하게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단적인 예로 내가 어릴때는 장군총이 광개토태왕의 묘로 추정됐었는데 광개토태왕의 묘가 발견되어 발굴중이기 때문에 장군총은 장수왕의 묘로 추정되고 있다.

그외에도 금동대향로의 발견으로 백제의 문화수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참고서로도 좋고 일반인들의 교양쌓기로도 좋다.

나는 환단고기때문에 상고사에서 국뽕이 잔뜩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책에서 고대사의 국뽕의 느낌을 조금 받다 보니 그런 부분은 아무 이유없이 의심하게 되고 경계하게 된다.

그런 것만 빼면 화보도 많고 설명도 쉬워 추천할만한 한국사책이다. 


p30 작물을 재배하기 전이었지만 인간은 고기잡이를 하면서 비로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석기인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수렵이나 채집 활동을 했다면 신석기인은 점차 한곳에 정착하면서 짐승을 돌보거나 농사를 지었지요

p56 단군 조선이 아사달에서 건국됐지만 평양성,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 등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즉, 수도를 옮기면서 단군 조선의 세력을 확대한 것이지요

p61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돌도끼나 괭이,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해 곡식을 심었어요.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지요. 농업은 주로 조, 보리, 콩, 수수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도 지었답니다.

p81 랴오허 문명의 흥산 문화는 중원의 양사오 문화와 교류를 시작했고, 이어 산둥 반도 일대 량주 문화, 다원커우 문화가 중원과 교류했어요.

p94 치우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구려족의 우두머리로서 헌원과 전쟁을 벌였지요. 전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중국에서는 전쟁의 신이나 병기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지요

p126 왕검성은 함락됐지만 한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에 참여한 한의 장수 대부분이 처벌을 받았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p130 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양이, 양주, 발, 유, 옥저, 기자 조선, 진, 비류, 행인, 해두, 개마, 구다, 조나, 주나, 한, 삼한 등은 모두 단군 조선의 거수국이라고 합니다.

p133 낙랑은 고구려 대무신왕 때 멸망했는데, 삼국사기에는 300여 년이 지난 미천왕 때 멸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대무신왕 때의 낙랑은 단군 조선의 거수국 가운데 하나이고, 미천왕 때의 낙랑은 한사군 가운데 하나였다고 봐야 해요

p159 삼한의 지배자 중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자를 신지, 작은 세력을 형성한 자를 읍차라고 불렀어요

p186 고구려의 고분 양식은 초기에는 돌무지무덤이 주를 이루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어요. 돌무지무덤은 시신 또는 석곽 위에 돌을 정밀하게 쌓아 올려 만든 무덤입니다. 그래서 적석총이라고도 하지요.

p188 삼족오에는 고구려의 통합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삼족오 또는 세발 까마귀는 단군 조선과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의 신으로 널리 숭배받았던 전설의 새예요. 삼족오를 숭배하는 지역은 곰 토템 지역과 대부분 일치하지요. 랴오허 문명의 주축인 흥산 문화 유적지에도 삼족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p192 고구려에는 신라의 화랑과 유사한 조의선인이 있었어요. 조의선인이란 검은색의 조복을 입은 선인이란 뜻입니다. 조의선인은 선비 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인재로서, 어린 나이에 선발돼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을 통해 심신의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을파소, 을지문덕, 강이식, 양만춘, 연개소문 등이 조의선인 출신이에요

p207 광개토호태왕의 업적은 무엇일까요? 일일이 열거하자면 굉장히 많지만 그 업적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단군 조선을 계승해 고구려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했던 정신이예요

p221 중화 문명의 세계관은 황제가 하늘을 대신해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황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이 국력이 강해지면 주변국을 지배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인 이유가 바로 이 세계관 때문이랍니다.

p268 4세기에는 아직기가 일본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쳤습니다. 아직기는 근초고왕의 명으로 두 필의 말을 일본의 왕에게 선사한 후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았다고 해요. 일본 왕은 아직기가 경서에 능한 것을 알아보고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노리사치계는 성왕의 명으로 불경과 불상을 일본에 전했어요

p302 후기 신라 이후에 후고구려, 후백제 등이 다시 일어섰고, 고려 시대엔 묘청의 난을 계기로 서경천도론과 삼한 정통론이 맞서기도 했습니다.

p308 신라의 건국 신화는 단군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과 해양 세력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어요.

p324 고구려에서는 귀족이 제가 회의를 통해 수상인 대대로를 선출했지요. 또한 백제에는 수상인 상좌평을 투표로 선거했다는 정사암 회의가 전해지고 있어요

p341 풍류의 연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그 가르침 속에는 이미 유불선 3교가 포함돼 있다. 안으로는 부모에 효도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하니 이는 공자의 가르침과 같고, 매사에 무위로 대하며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고, 악한 일들을 행하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석가의 가르침과 같다라고 기록돼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여섯 도읍지 이야기

 : 이유진

 : 메디치 미디어

 : 2022/02/20 - 2022/03/07


재미있게 읽었다.

장안의 화제라고 아직까지 이야기되는 시안을 비롯하여, 뤄양, 카이펑, 항저우, 베이징 등 중국의 여섯 수도의 역사를 배웠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각 도시를 수도로 삼았던 왕조들이 정리되어 있어 중국사에 대한 이해도 높힐 수 있었다. 

각 도시의 지리를 잘 모르다 보니 글로만 읽어서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그건 내가 지식이 짧아서 그런것이지 책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수도를 대상으로 이렇게 책을 써도 꽤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수도라는게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배경도 있고, 그로 인해 어떻게 발전하고 멸망하게 되었는지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테니까...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3% 중국이 세계 중심이자 최고라는 중화사상은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그들에게 각인된 일종의 컬쳐코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건국 이후 30년과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지나온 중국이 이제 새로운 30년을 펼쳐가고 있다. 지난 두 단계 30년의 모토가 각각 계급투쟁과 경제발전이었다면, 향후 30년의 모토는 위대한 중화의 재현이다

4%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꼽히는 시안은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곳이기도 한다. 서주, 진, 한은 물론 수, 당 등 13개 왕조가 이곳에 도읍했다

6% 주왕과 달기는 주지육림의 주인공이다

13% 군막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바깥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위로하며 군량을 보급하고 운송로가 차단되지 ㅇ낳도록 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여 이기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재인데, 나는 그들을 쓸 줄 알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얻게 된 까닭이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다

18% 소릉에서 영원히 이세민과 함께해야 할 여섯 준마는 죄다 제자리에 있다. 지금 소릉에 있는 육준 석각은 복제품이다. 각각의 무게가 2.5톤이나 되는 이 석각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여섯 준마 가운데 삽로자와 권모과는 1914년 미국으로 반출되어 현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나머지 넷 역시 해외로 반출될 위기를 겪을 뒤 1918년 산시성도서관에서 보관되다가 1949년 비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 실제 역사에서 현장이 태종의 부름을 받고 낙양으로 간 때가 정관 19년 2월이고, 태종이 고구려로 쳐들어간 때도 2월이다. 태종이 현장을 만난 뒤 바로 침략 전쟁에 나섰던 것이다. 춘추시대 공자도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지 못했듯 현장도 그러했다. 왕은 그들을 존중하는 척했을 뿐 그들의 진심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24% 최악의 폭군이 걸왕과 주왕을 자신과 비교하라는 태종의 위협 앞에서도 장현소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로 건원전을 수축한다면 걸왕이나 주왕과 마찬가지라고 직간했다. 결국 태종은 건원전 건립을 포기했고 장현소에게 비단을 하사했다. 태종과 장현소의 일화는 태종이 신화의 간언을 얼마나 잘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27% 낙갈발과 홍화공주는 양주로 이주했다. 낙갈발은 고토 수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당나라에 계속 지원을 청했다. 드디어 함형 원년(670년)에 고종은 설인귀에게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토번을 치게 했다. 결과는 당나라 군대의 대패였다. 잠깐 덧붙이면, 당나라와 토번의 이 대비천 전투가 신라에는 천우신조였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신라마저 직할지로 삼으려 했다. 바로 이때 토번 덕에 신라와의 전투를 준비하던 설인귀가 대군을 이끌고 서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신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0% 지위 높은 어떤 이가 젊고 잘생긴 과거 합격자를 점찍어 억지로 집까지 오게 한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젊은이에게 귀인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나에게 아주 괜찮은 딸이 있다네. 자네와 짝을 맺어주고 싶은데 어떠한가?” “가난하고 미천한 제가 높은 집안에 의지할 수 있게 되면 실로 행운이지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집사람과 아이랑 의논해봐야 하는데 어떠신지요?”

32% 당나라는 견우, 직녀 신앙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 현종은 칠석을 중시해서 1000척(약 30미터)에 달하는 아주 높고 큰 걸교루를 궁중에 세워놓고 칠석이면 이곳에서 즐기며 밤을 새웠다고 한다. 칠석날을 위한 누각이 걸교루다. 궁중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뜰에 누각을 세우고 등과 꽃과 채색 끈으로 장식해 걸교루로 삼았다

33% 평안남도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408)에도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 때 그 지역 사람들도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믿었기에 무덤에 그런 하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설 속에 담긴 인간 삶의 원형에 많은 이가 공감했기에 이야기가 확산되고 여러 지역에서 공유했을 것이다.

34% 장안에서는 이국의 패션과 오락과 예술이 유행했다. 외래 문물에 개방적이었던 만큼 조로아스커터교, 마니교, 경교(네스토리우스교) 등 다양한 종교가 유입되었고, 외국인이 밀집해 거주하던 서시 주변에는 다양한 종교 사원이 세워졌다. 페르시아 상인은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사원에서 예배를 드렸고, 시리아에서 온 이들은 경교 사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36% 모든 도시는 자신의 상징물을 지닌다. 베이징에 천안문이 있다면 시안에는 종루가 있다고 할 정도로 종루는 시안의 상징이다

41% 공자가 평생 흠모하여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 바로 주공이다. 질서와 조화로 대변되는 주나라의 예악제도는 훗날 유가의 예악사상으로 이어져 수천년간 중국의 정신을 지배했으니, 주공은 중국을 만든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뤄양을 찾게 되면 주공 사당을 잊지말고 둘러보자

44% 관우의 머리가 묻힌 곳이 바로 뤄양의 관림이다. 중국 역사상 무덥에 림이라는 말이 적용된 사람은 공자와 관우 두 명뿐이다. 공자가 묻힌 공림, 관우가 묻힌 관림, 그들의 역사적 비중이 무덤 호칭에 반영된 것이다

46% 프리스트는 반양중동뿐 아니라 반양남동,연화동, 봉선사, 고양동의 유물 역시 비열한 방식으로 손에 넣어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와 추악한 계약을 맺었던 웨빈은 용문석굴의 유물을 일본인에게도 팔아넘겼다. 그렇게 그는 국보를 팔아넘기고 큰 돈을 벌었다

47% 봉선사 주불인 노사나불은 크기부터 사람을 앞도한다. 17.14미터 높이의 좌상에 머리 높이는 5미터, 귀의 길이만도 1.9미터나 된다. 노사나불을 비롯해 가벗과 아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천왕과 두 역사로 이루어진 봉선사 조각은 당나라의 위대한 시대적 상징으로 칭해진다

48% 엘긴 마블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선 떼어낸 조각들을 이렇게 부른다.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에서 파로테논신전 조각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수많은 조각물이 원래 자리에서 떼내지면서 파괴되었고 운반되면서 유실되었다. 영국박물관 듀빈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들은 바로 이런 약탈의 결과물이다. 듀빈갤러리에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강의 신 일리소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얼굴이 없다. 다름 아닌 약탈의 흔적이다.

52% 북망산에는 빈 땅이 없으니 죄다 뤄양 사람들의 옛 무덤이로구나라는 시구처럼, 우리에게 북망산으로 익숙한 이곳에는 역대 왕조 왕후장상의 무덤이 수두룩하다. 나당연합군에 멸망당한 뒤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도 이곳 망상에 묻혔다

54% 정저우의 황하박물관에 소장된 민국도구합용기사비는 국민당이 1946년의 제방 복구를 기념하려고 만든 것이다. 비문에 적힌 제국안란이라는 글귀는 장제스 친필인데 나라를 구하고 물길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비문의 기록에 다르면 일본군이 폭파해 화위안커우 제방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진실이 이렇게 엄폐, 왜곡되었고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퇴각한 이후 수십 년 동안 타이완에서는 이 일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었다

54% 카이펑의 지층 단면은 수천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가자 ㅇ아래족에는 전국시대 대량성이 있고, 그 위로 역대 도시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시대별 도시가 묻힌 깊이는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위나라(12-14미터), 당나라(10-12미터), 북송(8-10미터), 금나라(6미터), 명나라(5-6미터), 청나라(3미터) 성루성 즉 이렇게 도시 위에 도시가 포개진 상황은 바로 황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황하의 범람과 그에 따른 재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57% 종이 ,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형상화함으로써 세계 4대 발명품을 탄생시킨 중국의 문화를 전세계에 자랑하지 않았던가. 4대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 화약, 나침반은 바로 송나라때 실용화되었다

67% 하이난의 소수민족인 리족과 더불어 지냈고 하층민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리쩌허우 말대로, “소식은 끊임없이 자아를 위로하며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고 만족하는 낙관의 정서를 지닌 사람이었다. 철종이 죽은 뒤에야 유배에서 풀린 소식은 북쪽으로 돌아가던 중 창저우에서 세상을 떴다. 이대가 1101년, 그의 나이 예순다섯이었다

69% 호설암의 성공와 몰락은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장사를 하려면 기댈 사람이 있어야만 하니, 권력이 있으면 이익도 있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좌종당이라는 권력에 기대어 비상했던 호설암, 결국 그는 이홍장이라는 권력 때문에 날개 없이 추락했다.

72% 육화탑은 천재 또는 인재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 하지만 늘 재건, 보수되며 그 자리를 지켰다. 970년에 처으 ㅁ세워졌던 육화탑이 지금도 육화탑으로 존재하는 것은 탑을 지켜온 많은 이들 덕분이다. 지담 스님의 청동좌상은 바로 그들의 노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리라

73% 명나라 우겸은 몽골의 공격으로부터 베이징을 수호했다. 그보다 300년 전 남송의 악비는 여진족의 금나라와 맞서 싸웠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이건만 모반죄를 씌워 죽게 한 것이다

75% 난징이 무더운 도시 10위권 밖이긴 하지만 여름철 매우 무더운 도시임은 분명하다. 창장 연안에 자리한 충칭, 우한, 난징이 화로처럼 무더운 데는 아열대 고기압의 영향 외에도 지리적 영향이 크다

76%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외국과 체결하게 된 첫 번째 불평등 조약은 난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난징조약 이후 난징은 줄곧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하는 곳이다

80%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 해도 그저 여러 첩 중 하나일 뿐이고 여의치 않으면 내쳐질 수도 있는 존재, 그게 바로 기녀의 운명이었다

83% 쑨원의 유해를 증산릉에 안장하는 봉안대전이 거행된 1929년 6월 1일 정오를 기해 전국의 교통이 3분 동안 멈추었고 전 국민이 3분동안 애도를 표했다. 국부에 대한 최고 예를 표한 것이다. 이후 수많은 이가 사후에 증산릉 곁에 묻히길 바랐다. 장제스 역시 중산릉 서쪽에 자기 묏자리를 봐둔 적이 있다. 만약 훗날 벌어졌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승리했다면 장제스는 바로 그곳에 묻혔을 것이다

84% 9층 유리탑은 난징을 방문했던 유럽 여행자들에 의해 중세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힐만큼 예술성이 뛰어났다. 대보은사 유리탑에 대해 ‘큰 규모였다’, ‘뛰어났다’라고 과거형으로 서술한 이유는 그것이 이미 파괴되었기 대문이다. 1856년 벌어진 태평천국의 내분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탑이 파괴된 것이다.

89% 천안문 성루에 걸린 초상화는 중국의 정치 지형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개국대전 이후 마오쩌둥 초상화는 해마다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1일 국경절에 맞춰 열흘가량 천안문 성루에 걸렸다. 마오쩌둥 초상화가 지금처럼 1년 내내 걸리게 된 건 1966년 8월부터다. 바로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가 이루어진 문화대혁명 기간이었다

94% 건륭제가 조지 3세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천조는 물산이 풍부하여 없는 것이 없으며, 만국을 다스리는 천조는 일시동인(모두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어짊을 베풀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94% 약탈로 끝이 아니었다. 연합군 요구대로 포로는 석방되었다. 하지만 포로 몇 명이 이미 죽은 것과 포로들이 학대를 받았다는 것을 빌미로 연합군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게다가 원한을 씻는다는 명분으로 원명원을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10월 18일, 원명원은 불길에 휩싸였다

97% 현재 유교는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지적 힘으로 작용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국문화의 주체적 정체성을 담보해주고, 시장경제화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해결해주고,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국민 통합을 이뤄낼 열쇠를 유교에서 찾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류동현

 : 고유서가

 : 2022/02/20 - 2022/03/02


고유서가의 책들중 인문학이나 미술관련 책들은 수준이 높은 편이다. 

이 책도 고유서가에서 나온 책이라 기대가 많았다. 

길지 않은 미술관 설명과 많은 미술관 작품들 사진..

나처럼 출퇴근 하면서 책을 읽거나 커피숖에 앉아서 읽기에 좋은 분량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에 이렇게 가봐야 하는 곳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껏 큰도시들밖에 가보지 않아서 중간중간 숨어있는 소도시들과 소도시들이 품고있는 멋진 미술관을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자세히 볼 수 있어도 실제로 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더 늙기 전에 하루빨리 방문해서 작품들을 느껴보고 싶다.

이탈리아는 선조들 덕분에 정말 복받은 동네다. 부럽다. 


p17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외적에 쫓긴 롬바르디아 피난민이 베네치아만 기슭에 마을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p34 단테 알레기에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수로 지내고, 지동설을 제창한 니콜리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수학한 파도바대학이 있는 파도바는 볼로냐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학 도시로 명성이 높다.

p45 베로나는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가 아니라 로마시대의 아레나를 비롯하여 다양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멋지 ㄴ도시였다. 구시가지에 자리잡은 2000년 전의 로마시대 아레나가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근사한 무대로 사용되었다

p46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 외에도 줄리에타의 묘와 로미오의 집인 몬터규 저택(실제로는 몬테키 가문의 저택) 등이 있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필수 탐방 코스라고도 할 수 있다

p59 무능한 황제였던 호노리우스의 취미는 닭을 기르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인 황제가 로마의 함락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손바닥 위에 로마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p95 이탈리아 역사에서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는 해양 강국으로 꼽혔던 공화국인데, 이 네 공화국 문장이 현재 이탈리아 해군 깃발의 문장으로 쓰이고 있다.

p108 구스미 마사유키가 우연한 산보에서 산책이란 “우아한 헛걸음”이라고 했는데, 좁게 난 오솔길과 바닷길을 허허롭게 걷고 있자니, 그 우아한 헛걸음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다가오는 듯했다

p151 대지의 수확물로 인물화를 그리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16세기 프라하 합스부르크왕가의 막시밀리안 2세와 루돌프 2세 통치 시절에 궁정화가로 활동한 밀라노 출신의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르침볼도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파의 그림같이 과일, 채소, 동물, 책 등의 사물을 배치하여 인물화를 그렸다.

p190 아그리투리스모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독특한 숙박형태로 농업의 이탈리아어인 아그리콜투라와 관광이라는 의미의 투리스모가 결합된 합성어다

p220 아레초는 과거 로마시대 이전부터 발달했던 유서깊은 도시다. 기원전 5세기 에트루리아인들이 조성한 도시는 기원전 3세기 로마에 정복된 이후에도 로마까지 연결되는 카시아 가도의 군대 주둔 도시로 발전했다

p266 산프란체스코성당은 프란체스코가 선종하고 2년 뒤인 1228년 카톨리교가 그를 성자로 시성한 직후 거대한 규모로 짓기 시작했다. 사실 청빈함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삶을 살아온 프란체스코 입장에서 볼 때 산프란체스코성당의 규모는 꽤 아이러니했다

p276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지만 이곳을 찬찬히 걷고 있노라면 고대 로마의 위대함과 인류 역사의 깊이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바로 옆 콜로세움이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한 데 비해 이곳은 의외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히 산책하기도 좋다

p277 작품들이 모여 있는 미술관이면 편하련만, 벽화들을 보려면 그 장소에 가야만 한다. 여행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나하나 찾아가야 하는 곳, 그 장소, 그 흔적을 내 발로 디디는 것은 나름 짜릿한 긴장감을 인생에 선사한다

p318 로마시대의 도시 폼페이는 79년 8월 24일 정오에 폭발한 베수비오산으로 인해 파편과 재가 덮치면서 그 시대상이,그 뜨거운 날의 정경이 순식간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느 여름날 도시의 정경을 포착한 스냅사진처럼.

p349 나폴리 남부 해안가를 아말피 해안이라 부르고, 아말피 문장이 베네치아, 제노바, 파시의 문장과 함께 이탈리아 해군 깃발 문장으로 사용되는 것에서 아말피가 과거에 얼마나 큰 위세를 떨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p356 나폴리, 소렌토, 포시타노, 아말피 등 해안가 마을의 인상이 강한 남부 이탈리아에서 산꼭대기에 위치하여 독특한 위상을 드러내는 작은 마을 라벨로로 향하는 길이었다

p368 아르키미데스의 원리를 비롯하여 도형의 넓이 계산, 원주율 계산, 지레의 원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업적을 쌓았다. 그는 공학자로서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포에니전쟁중 제2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18년~201년) 때 카르타고와 손잡은 시라쿠사를 위해 수많은 무기를 만들어 로마를 괴롭혔다

p370 만화를 보고 이곳을 찾다니... 내가 생각해도 꽤 무모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고 말았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오르티자의 좁은 골목을 거닐고, 주변 바닷가 길에서 고흐의 감성을 떠올리고, 성당 앞 광장에서 연주하는 악사를 보고 있자니 무모함이 여행의 원동력이라는 여행의 기본이 절로 떠올랐다

p406 성당 자체로는 뭐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이 성당이 위치해 있는 동네와 비교하면 그랬다. 12세기 노르만왕조가 팔레르모 대사제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과시용으로 지은 성당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 나무옆의자

 : 2022/03/13 - 2022/03/13


스타일이 달러구트 꿈백화점과 비슷하다.

이런 스타일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구나.

편하게 읽을 수는 있는데 너무나 쉽게 갈등이 풀려나가다 보니 정말 소설(?)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여자 사장님이 파우치를 잃어버렸는데 한 노숙자가 그 파우치를 찾아주게 된다.

사장님은 노숙자를 편의점의 야간 아르바이트로 고용한다.

그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고 업무능력도 향상된다.

이 편의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노숙자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노숙자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나간다는 게 주된 줄거리다. 

엄마와 대화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하던 아들은 노숙자의 조언대로 삼각김밥과 손편지를 통해 엄마와 화해하게 되고, 외부영업을 하며 매일 늦게 집에 들어와 딸들과 사이가 멀어진 아빠는 소주대신 옥수수수염차를 마시고 딸들에게 초콜릿을 사다 주며 다시 화목한 가정이 된다. 

모두의 고민이 해결되고 행복해진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세상살이가 워낙 팍팍하고 힘들어서인지 이런 따뜻한 이야기가 인기가 있나보다.

연탄길이나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읽는 기분이다.

어쩌면 이런 소통이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다.

편안해서인지 한번에 다 읽었다. 가벼운 소설이 주는 장점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 : 송 과장 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3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김부장 이야기3

 : 송희구

 : 서삼독

 : 2022/03/03 - 2022/03/03


백신을 맞고 회사에 휴가를 냈다.

약간 두통이 있지만 심하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그동안 미뤄놨던 김부장 이야기3을 읽었다.

소설형식의 자기계발서 되시겠다. 

1편과 2편이 50대와 20-30대에 대한 내용이어서 3편은 40대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3편은 송과장이 어떻게 투자에 성공하게 되었는지를 소설로 풀어냈다.

소설이긴 하지만 목적성이 강하다 보니 개연성은 사실 좀 떨어진다. 

최근에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다보니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서 읽기 쉽게 풀어낸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나보다.

예전에 재테크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소득세법에 나온 항목에서 모두 세금을 내야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열심히 부동산 투자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걸 확실히 느낀다. 

노동소득만 가지고 먹고사는 나는 언제 그런 생활로 바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