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바흐다 - 시공을 넘은 바흐 수용사
나주리 지음 / 모노폴리(monopoly)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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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흐는 바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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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1 - 2022/11/01


책설명에서 바흐 수용사라고 되어 있고, 제목도 괜찮아보여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 책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이 아니다.

바흐이후 음악가들과 대중이 어떻게 바흐의 음악을 깨달아서 현재의 바흐가 되었는지를 논문과 악보를 통해서 설명해 나가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멘델스존이 마태수난곡을 발굴하면서부터 바흐열풍이 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전부터 바흐의 전기와 논문이 나와서 많은 음악가들이 바흐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는 그렇게 유명하거나 많이 연구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일 많은 음악가들이 바흐를 연구하고 존경했다면 악보들이 제대로 보관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이용하여 바흐가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부분이 악보속에 남아있다보니 악보 설명이 많은데 일반인인 내 눈으로 보기엔 다 그 악보가 그 악보 같아서 이해하는게 힘들었다.

바흐를 좋아하고 악보를 잘 보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울 것 같다. 

내 수준을 넘어서는 책이라 한 번 읽어봤다는 데 만족해야겠다. 


p10 바흐의 음악이 부자연스럽고 과장되어 있으며 혼란스럽다고 한 샤이베의 비판도 그에 한 몫을 했다

p16 18세기 후반기의 문헌 및 기록들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러한 글들은 바흐의 음악을 학습용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새로운 바흐상, 다시 말해서 바흐의 음악은 시대적인 규범이나 유행하는 양식보다 예술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음악,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천재의 음악이라고 이해하는 바흐상이 태동했음을 말해준다

p23 모차르트가 아주 진지하게 무릎을 꿇은 채 주위에 널려있는 파트보들을 두 손으로 옆 의자들로 나누어 놓는 모습, 다른 일들은 완전히 잊고 거기에 있는 제바스티안 바흐의 악보들을 다 흝어볼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에게 큰 기쁨이었다

p29 민족적 예술작품과 가창성, 단순성, 자연성 등을 겸비한 독창성, 그리고 역사를 초월한 천재성의 세 테제는 1802년에 출판된 첫 바흐 전기이자 음악사상 첫 작곡가 평전인 포르켈의 바흐의 생애와 에술 그리고 작품에서 핵심 테제로 자리잡는다

p37 위의 인용글에서는 포르켈 특유의 시각, 즉 바흐는 생애 후반에 들어서야 걸작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감지된다. 이는 발전과 완성의 개념에 기반을 두는 그의 역사철학관에 기인한다

p42 포르겔의 민속노래 비하는 바흐 음악의 대위법적, 전문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p51 이후의 바흐음악 연주 및 출판 관련 보도들, 평론들은 대부분 로흐리츠의 가상 편지와 유사한 논조를 보인다. 바흐의 음악은 더 잘 알아야 하는, 그 진가를 인정받아야 할 비범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p57 마태수난곡 바흐 사후 초연은 1829년 3월 11일 수요일 저녁 6시에 베를린 징아카데미의 연주홀에서 거행되었다

p64 마태수난곡은 작품의 본질과 바흐의 음악언어를 소중하게 보존하면서도 수난사의 극적 전개를 밀도있게 드러내는 예술작품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바흐 르네상스로 이어져 마침내 음악예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었다

p75 베토벤은 여기에서 진정한 예술의 가치, 천재적 독창성까지 갖춘 바흐의 옛 음악을 수용하고 더해서 음악예술의 진전으로서 한층 더 발전된 융합적 음악(더 나은 예술의 결합)을 이루어낼 수 있으며, 그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p102 슈만은 바흐의 푸가를 음악과 시적 상상력의 결합을 지향한 그의 낭만주의적 음악관으로 이해했다

p128 푸가의 정수들을 담아내면서 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19세기 중반에 음악적 교양을 갖춘 엘리트들의 스탠더드로 자리 잡고 당대의 교양인들 혹은 교양인이고자 한 시민들에게 쾌히 소비되었던 것이다

p138 200여 년의 역사를 거쳐 내려오면서 여기에 최고의 대위법 교본, 영원한 독일 예술의 걸작, 구약성경, 일용 양식, 작품 중 작품, 공공의 소유물, 논 플루스 울트라 등과 같은 수식어들이 달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p158 위의 주제구에서는 서서히 순차 하행하는 하성부의 후반부에서 이 하성부와 7도 병행을 이루는 중간성부가 눈길을 끈다. 이러한 7도 병행은 힌데미트의 독특한 작법 가운데 하나로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거친 음향으로 뒤따르는 종지의 효과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p177 19세기의 작곡가들은 복합적인 여러 음악적 사상과 현상들이 공존하는 가운데에서 바흐의 음악을 음악 예술의 견고한 토대로 여겼다. 옛 음악을 새로운 음악 창작의 원천으로 본 멘델스존과 슈만은 바흐를 가장 중요한 최고의 음악가라 칭했다

p186 제2빈악파는 바흐의 음악 언어를 복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대위법가 화성학을 융합하는 바흐의 작곡기법적 사고를 새로이 발전시키려한 것이다

p191 그렇게 주목을 끌게 된 것이 1729년 초부터 1737년 여름까지, 그 후에 다시 1739년부터 1741년까지 바흐가 이끌었던 콜레기움 무지쿰이다. 1960년 곧 노이만은 당시의 라이프치히 신문 보도들을 자료로 한 논문 바흐의 콜레기움 무지쿰을 통해 바흐의 숨겨왔던 활동을 드러내 밝혔다. 바흐는 이제 더 이상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작곡을 한 교회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야심찬 세속음악가이기도 했다

p200 바그너는 탄호이저의 파리 초연 이후 예술 장르들 간의 상호 교류 및 융합에 강력한 영감을 주는 예술가로 부각되었다

p202 칸딘스키가 말해주고 있듯이, 가시적인 사물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순수하게 색채를 통해 자신의 내적 세계를 표출하고자 했던 화가들에게 음악은 가장 순수하고 추상적이면서도 엄격하고 수학적인 예술이었다

p219 20세기 전반기에 발행된 바흐 평전들에서 푸가에 관해 언급되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푸가는 엄격한 규칙을 따르지만 자유로운 구성 안에서 고유의 음악적 성격을 표현하는 악곡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p230 안톤 베베른 역시 바흐의 푸가를 가장 추상적인 음악이라 칭했다. 바흐의 마지막 작품이 푸가의 기법이라는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푸가의 기법은 완전히 추상에 이르게 하는 작품이며, 기보되는 음들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은 전혀 품고 있지 않은 음악이다. 푸가의 기법은 진정한 추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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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좋다 여행이 좋다 - 위대한 소설의 무대로 떠나는 세계여행 여행이 좋다
세라 백스터 지음, 에이미 그라임스 그림, 이정아 옮김 / 올댓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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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6 - 2022/10/19


이런 스타일의 책을 좋아한다. 어떤 장소가 무언가의 배경이거나 의미가 있거나...

이번 여행에서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촬영지였던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그곳에서 사진찍고 서성이다 보니 관광객 무리들, 개인관광객이 나처럼 그 장소에 와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 실제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장소에 가면 그 소설의 느낌과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20여곳의 소설과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책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책이 안좋은게 아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많다보니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읽어봤거나 영화를 본 책의 장소는 훨씬 몰입이 잘 됐다.

그러나 처음 들어본 책도 꽤 있어서 정말 내가 문학작품은 안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작품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많이 가보고 싶을 것 같다.

좋았다. 


p14 레 미제라블의 시간적 배경이 되었던 1815~1832년까지 파리는 여전히 위고가 사랑했던 옛파리였다.

p16 오스망은 분명 장 발장과 그가 보살피던 코제트와 그녀의 구혼자인 마리우스, 그리고 위고가 그린 나머지 혁명가와 부랑자와 창녀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p31 1966년에 닥친 홍수 탓에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었으며 관광객들은 훨씬 더 맹렬하게 밀어닥쳤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는 여전히 사람들의 넋을 잃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p38 남부에 자리한 나폴리는 2차 세계 대전 전에도 가난한 도시였지만 전후에 더 황폐해졌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200번 가까이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p60 디킨스의 런던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또한 절망적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페테르스부르크만큼 인간의 영혼에 암울하고 혹독하며 이상한 영향을 미치는 곳은 거의 없다고 썼다

p64 죄와 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웅장함을 담아내는 대신 그곳의 더러운 밀실과 사창가와 침 자국이 끈적거리는 여인숙을 천천히 흝는다.

p72 전쟁으로 파괴된 스페인을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의 언어학 교수인 로버트 조던이 과다라마 산맥에서 공화파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 이야기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p101 바스는 제인 오스틴과 동의어가 되었다. 1942년 4월의 바스 공습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1960년대에 이른바 바스 약탈 때 사려 깊지 못한 도시개발로 일부 문화유산이 사라졌지만, 바스에는 여전히 조지 왕조 시대의 정신이 살아 있다.

p104 이와 같은 세상에 올리버 트위스트가 등장했다. 디킨스의 두 번째 대작이자 인정사정없는 이 소설은 런던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를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p132 1991년에 만델라가 감옥에서 석방되고 인종격리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을 때, 네이딘 고디머는 “인류에게 엄청 유익한 … 서사 소설”을 쓴 공로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버거의 딸은 허구에 사실을 녹여낸 이야기를 통해 현실 세계를 치유하는 소설이다.

p154 수년간 미국에서 살다 온 아미르는 그와 같은 카불을 보는 심경을 빗대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동안의 삶이 녹록치 않았는지 그 친구는 노숙자로 아주 궁핍하게 살고 있는 상황 같다”고 말한다

p158 행잉록에서의 소풍은 1900년 성 밸런타인데이에 행잉록으로 소풍을 간 기숙학교 학생들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p186 헉은 학대하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손 씻기와 식사 시간 지키기, 그리고 풀을 먹여 빳빳한 반바지처럼 내내 자신을 귀찮게했던 문명 사회의 제약에서 탈출한 참이다. 짐은 다른 데로 팔려 갈 위기를 피해 도망가는 중이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뗏목을 타고 노예제가 없는 일리노이주로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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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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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01 - 2022/10/08


어릴때 가졌던 꿈이 천문학자나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며 산다는 건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질까?

어느덧 우리나라도 달탐사를 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가지게 됐다.

달 연구자인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 에세이다.

줄을 한 번 잘못(?) 선 죄로 타이탄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고 한다. 

천문학 에세이답게 별연구와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별 관측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천문대에 계획서를 써야 한다든가, 별관측보다는 관측결과를 분석하는 일에 더 많이 매진한다든가, 점성술에서 쓰이는 12별자리 외에 뱀자리를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스시대부터 논란이 있었다는 등등.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해야할까?

부러움을 가지고 읽었다. 재미있었다. 


p12 논란의 주인공인 뱀주인자리는 한쪽 끝이 황동에 약간 걸쳐 있어서 황도상의 중요 별자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무려 그리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나는 또 생각에 빠져든다. 황도상에서 각 별자리가 차지하는 넓이가 처녀자리 같은 것은 넓고 전갈자리는 좁은데, 그러면 생일 별자리를 나눌 때 실제 별자리의 크기에 비례해서 날짜 구간을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아, 뱀주인자리요? 그거 원래부터 거기 있던 거예요. 근데 자기 별자리가 뱀주인자리로 바뀐다고 하면 기분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p15 이공계 대학원에서 흔히 랩 미팅이라고 부르는 이 회의는 그야말로 대학원 생활의 꽃이다. 꽃 같다는 말이 중의적으로 쓰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하지 않겠다. 회의 준비로 이틀 전부터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하루 전날은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수식의 오타나 그래프와 씨름을 하다가, 살벌한 회의 끝에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져 허덕이다보면 다시 다음 회의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 흔한 대학원 생활이다

p20 관측은 잠깐이지만 관측자료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데는 여러 날이 걸린다. 이틀치 관측자료를 몇 개월씩 붙잡고 있는 일도 다반사인데, 그 기간은 옰이 연구자 개인의 몫이다

p20 교수님이 구인 공고를 냈다. “목성 스펙트럼을 직어 왔는데 처리할 사람이 없어. 누가 해볼래?” 대학원생 선배들은 이미 각자 맡은 연구 주제가 있었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1AU 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 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그때의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든 바로 그 주문을. 그건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p23 1997년이라니, 어느 대학 무슨 과는커녕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도 모르던 때였다. 발사됐는지 어쨌는지 알지도 못했던 카시니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그 시점에 7년이라는 시간을 날아 -내 머릿속에서는 빛이 속도로- 타이탄 코앞에 도착해버린 건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p29 연구한 내용을 학회에서 발표하면 그 자리에서 곧장 신랄한 지적이 들어온다. 논문으로 써서 제출하면 심사자가 이것저것 고치라고 하거나, 이건 논문감이 아니라며 승인을 거절해버릴 수도 있다. 허접한 논문을 제출했는데 운이 좋게 너그러운 심사자를 만나 출판이 되어도 문제다. 내 잘못이 박제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p34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p38 2019년,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빨려들어가면서 휘어지는 빛,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물질 일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한 것이다. 그런 기법을 고안하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마침내 블랙홀의 사진을 얻어낸 놀라운 천문학자들 덕분에 나는 다시 강의하게 된다면 첫 시간 퀴즈를 수정해야 한다

p40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p44 나는 학생들이 큰돈을 치르며 이십대 초반을 낭비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그 시간과 비용을 내 강의에 낭비해야 먹고살 수 있는 처지였다

p58 과제가 끝나면 계약직 연구원인 나의 고용 기간도 끝난다는 뜻이므로, 과제가 끝나기 전에 미리미리 다음 과제 혹은 다음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 과제 제안서나 자기소개서, 연구 계획서를 쓰고, 그간의 연구 실적을 모아서 양식에 맞게 입력하고 증빙 자료를 만드는 일,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새로 발급받는 일은 아주 지겹지만 먹고사니즘과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좌우할 수 있는 신성한 작업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p65 내가 코스모스를 읽을 때의 모습은, 동생이 끼워준 이어폰을 차마 내던지지 못한 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좋은 작품이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지만, 뭐 꼭 나까지 그렇게 같이 좋아야만 하는가 싶은 바로 그 표정 말이다

p69 인터뷰 요청을 받는 등대지기의 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천문학자의 경우 사회의 부름에는 대체로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천문학을 비롯한 많은 과학 분야가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과학계 종사자임을 밝히면 듣는 사람은 대개 “오~”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이 직업을 존중해준다. 물심양면 지지를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겠고, 이렇게 기회가 주어질 때 대중과 소통하는 것 또한 부수적이면서도 중요한 임무다

p89 아는 교사가 환경 교육 자료를 공들여 만들면서 초록별 지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했다가 이래서 이과생은 안 된다며 의절당할 뻔했다.

p93 학과 건물 옥상에 선배들이 지었던 간이 천문대에서는 관측자가 돔 천장 여는 것부터 망원경 조작, 관측까지 모든 일을 다 했지만, 제대로 된 천문대에서는 오퍼레이터가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

p95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해지고 공기가 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p100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직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그때까지 지구상에서 그 그래프를 본 건 이 탁자에 앉아 있는 오직 두 사람뿐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교수님은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게 말했다. “심박사, 사고 쳤네?”

p105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 하고 싶어서 이 세계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다. 하지만 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큼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월급도 계약 기간도 과제에 달린 박사후연구원들에게는 학문의 세계가 그렇게 신성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p107 지구에서부터 준비해가야 하는 연료와 에너지원, 그리고 여행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절약할 수 있는 궤도, 176년에 한 번 씩만 가능하다는 그 최적의 경로를 따라 보이저는 질주했다.

p109 보이저의 모든 가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

p116 거대한 태양의 아래쪽 끝이 지평선에 닿을 때부터 위쪽 끝마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열여섯 시간. 지구에서는 해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p143 500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이 무덤의 주인은 매년 동짓날마다 자기 자리에서 일출을 맞이했다고 한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 무덤을 건설한 사람들은 밤의 길이가 규칙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계절에 따라 해가 뜨는 방향과 고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이들이 어떤 종족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훌륭한 천문학자를 보유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p146 브라헤의 관측기록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자료를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성은 태양 근처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태양에서 멀 때에는 느리게 움직이며, 공전 궤도의 장반경이 공전 주기의 3분의 2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세 가지는 케플러 법칙으로 불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본 규칙이 되었다

p153 매일 같은 시각에 달의 위치를 관찰하면 매일 동쪽으로 옮겨가는데, 한 달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달이 하루 묵어가는 자리라서 숙자를 쓴다

p155 오로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흑점은 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시대를 불문하고 관측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조선의 기록가지 합치면 오로라 기록 건수가 700회를 넘는다. (아마도)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만 가진 놀라운 자산이다

p188 2024년 다시 달로 향할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BTS를 들으며 우주를 항해할 예정이다. 우주에서 그들이 떠나온 지구를,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볼 것이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가. 손에 무엇 하나 쥔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p192 연구는 내가 인규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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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 - 돌·물·불·돈·발·피·꿈이 안내하는 색다른 문화 기행
윤혜준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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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

 : 윤해준

 : 레드리버

 : 2022/06/29 - 2022/10/16


7개 코드로~ 로 진행되는 두번째 버전이다.

중간에 읽다가 다른 책들을 읽었더니 호흡도 끊겼고, 첫번째 책보다는 흥미롭지도 않았다. 

대신 유럽의 여러 소도시를 사진과 이야기로 만날 수 있어서 유럽 여행할 때 참고가 될 것 같다. 

어려서 유럽과 미국에 대한 환상을 많이 주입받아서인지 유럽은 다 좋아 보인다.

그나마 미국은 환상이 많이 사라졌지만 유럽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다.

그리고 실제로 유럽을 가보면, 특히 소도시를 가보면 예뻐서 그 환상이 계속 유지된다.

유럽 참 좋다.. 사대주의인지는 모르겠지만..



p18 길을 낼 자리는 먼저 땅을 판다. 그리고 나서 그 속을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돌들로 메운다. 표면에서 약 1미터 깊이까지 돌을 채운다음에는 빈 틈새를 모래로 채우고, 그 위는 자갈로 덮는다. 자갈 위에 다시 시멘트를 바른 후 숨마 크루스타라고 불리는 납작한 사각형 돌을 깔아 마무리한다

p24 사방에서 불러와 모아놓고 보니 기둥들의 색깔과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기둥 높이가 제각각이라는 더 큰 문제도 있었다. 혼합과 절충의 대가인 알안달루스의 장인들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이내 찾아냈다. 기둥이 짧으면 밑에 돌을 더 깔거나 위를 코린토스 양식 기둥머리로 덮었다.

p51 아이다는 비극이다. 해피엔딩은 절대 금물.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선택하고 이집트의 영웅은 반역죄인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p63 1878년 바스의 건축가 겸 고고학자 찰스 에드워즈 데이비스가 로마 목욕탕의 흔적을 발견하고 발굴에 착수했으며, 1897년에 처음 부분적으로 발굴된 유적이 공개된다. 그러나 로마 목욕탕이 신전과 함께 옛 모습 그대로 다시 복원된 것은 20세기 후반부다.

p81 교회를 파괴하고 기독교를 조롱하던 프랑스 혁명가들의 극단적 행각에 신물이 난 많은 이들이 기독교가 서구 문명을 지탱하는 문화와 예술 그 자체이며, 얼마나 자상하고 아름다운 종교인지를 설득한 샤토브리앙의 저서에 깊이 공감했다.

p85 그들은 맥주를 발명한 이가 다름 아닌 풍요의 신 오시리스라고 믿었다. 신이 준 음료로 목을 축이던 이집트인들이 포도주밖에는 마시지 않던 그리스인들에게 맥주를 전해줬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나 이들의 문명을 계승한 로마인들은 와인을 사랑했지만 맥주는 외면했다.

p91 맑은 안시 호수를 북쪽에서 바라보는 이 도시는 양편으로 셈노산과 베이리에산을 끼고 있는 분지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p98 두 사람은 영국 리버풀 출신, 왜 그들이 북아일랜드 문제에 흥분했을까? 이들이 아일랜드 이주자의 후손이기 때문이었다. 레넌은 부친, 매카트니는 양친 모두 아일랜드에서 리버풀로 이주한 집안이다. 이들 외에도 리버풀에는 아일랜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비틀즈의 나머지 두 멤버인 드러머 링고 스타와 리드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또한 아일랜드 혈통에 닿아있다.

p111 샤르트르 대성당은 유독 불에 취약했다. 지금의 우아한 고딕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 다섯 채의 선배 건물들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건물은 다시 지은 원인은 늘 불이었다.

p115 20세기 중반에 샤르트르는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독일군 간의 치열한 전투 한복판에 있었다.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샤르트르 시민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미리 제거해서 근처 시골에 분산해 보관해놓는다. 전쟁이 끝난후 이 유리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p127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집에 가둬놓기 전인 2019년 11월 루이스 본파이어에서는 뚱뚱한 보리스 존슨 수상 인형이 횃불 행렬에 끌려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p142 시위대의 배후는 이 교회의 젊은 목사 크리스토프 보네베르거와 크리스티안 퓌러. 무신론이 공식 이념인 공산주의 국가 동독에서 매주 월요일 5시에 몇 명의 용감한 기독교인이 모여서 열던 기도회는 몇 년 새 집권당과 정부가 가장 거북해 하는 반체제 모임으로 발전해있었다.

p150 이들이 코린토스에 도착하면 언덕 위에 하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지어놓은 아프로디테 신전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이 도시의 섹스 산업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본부였다.

p159 이렇게 지어진 아시시의 대표명소,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가난과 결혼했던 프란체스코와는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다

p173 크레모나가 바이올린의 성지가 된 것은 과르네리와 스트라디바리라는 두 현악기 명장의 가문이 크레모나 출신으로 이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p201 이 돌다리는 12세기에 지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망가졌다. 알프스산맥에서 흘러오는 론강의 물살이 워낙 세서 홍수가 나면 견디질 못했다. 17세기에 심하게 무너진 후의 모습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p220 1920년에 개시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이 작은 도시를 여름마다 유럽 최고의 고전음악 공연장으로 바꿔놓는다

p230 방랑하는 유태인 전설은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인 채 홀로 이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는 19세기 낭만주의 신조와 잘 맞아 떨어졌다

p253 세비야의 레알 마에스트란사는 투우사들로서는 가장 만만치 않은 경기장이다. 그곳에서 명성을 얻으면 스페인 최고의 투우사가 되지만, 작은 실수 하나도 놓치지 않는 까다로운 애호가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이곳에서 성공하기는 쉽지않다.

p257 주인공 토스카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는 푸치니의 대표적인 명곡 중 하나로, 오페라 무대가 아닌 일반 성악 공연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p263 바다가 남긴 소금과 육지 동물 돼지가 남겨준 라드가 자기 몫을 하면 그 이후는 시간이 책임진다. 시간, 기다림, 침묵. 매달려 있는 돼지 뒷다리는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숙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시작부터 끝가지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기계가 할 수 없다. 소금과 라드 외의 그 어떤 다른 물질도 개입할 수 없다. 프로슈토디 파르마는 오직 장인의 손길 속에서만 탄생한다

p269 독일군은 단치히에 진주하자마자 1천 500명의 열등인간을 폴란드인을 색출해 총살했다.

p276 부르고뉴 명품 와인 중 하나인 클로 드 부조는 혁명이전에는 부조 수도원 수도사들이 가꾸던 51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산출되었다. 오늘날 이 브랜드를 사용할 권리는 약 80명의 재배업자가 공유한다. 이들은 모두 원산지 통제법에 따라 클로 드 부조라는 이름을 쓸 수 있으나, 종교적 헌신의 자세로 포도밭을 관리하던 수도사들의 클로 드 부조와는 그 맛과 향이 같을 리 없다.

p290 루이 14세, 표트르 대제, 프리드리히 2세는 모두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는 데 들인 돈의 몇 배 되는 거금을 전쟁에도 소비했다.

p294 구스타브 2세는 30년 전쟁 기간인 1632년, 독일 작센 지방 뤼첸에서 전사했다. 몸을 사라지 않고 앞장서 부대를 지휘하다 무참히 살해되었다. 개신교도에게 그는 위대한 영도자이자 순교자였다. 그의 적들 눈에 그는 악랄한 전쟁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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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1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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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 임용한

 : 레드리버

 : 2022/10/01 - 2022/10/08


국방TV에서 본 임용한 박사님의 전쟁사..

텔레비전과 유투브에서 전쟁사를 너무 재미있게 봤었다. 책도 참 재미있게 쓰신다. 

청나라에게 항복하고 수많은 포로가 발생했던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고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조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없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곡성의 유명한 대사처럼... "뭐가 중한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지휘체계를 세우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각개격파당하는 군대의 모습을 읽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무능한 지도자 밑에서 피를 보는건 백성들 뿐이다.

지금은 지도자를 국민들이 뽑는데 어쩌면 그렇게 무능한 사람을 지휘자로 뽑는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 역사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p9 병자호란은 치욕의 역사이고 누가 보아도 짜증나는 이야기만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교훈이 풍부한 사례이기도 하다

p20 그는 “우리가 갈 수 있다면 적도 올 수 있다”라고 반박했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는다. 이때가 놀랍게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걸까?

p23 누군가가 이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갑자기 하면 분명 흑심이 있는 것이다. 조선은 이때부터라도 건주여진 전담부서를 만들어 첩보를 수집하고 세심한 연구를 했어야 했다

p34 누르하치는 자신이 직접 북경까지 가서 조공을 하면서 간교할 정도로 명 조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누르하치의 탁월한 정략이가리보다는 뇌물의 힘이었음이 분명하다

p39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경험 덕분인지 명군과 누르하치의 전력에 대해 비교적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조선의 군사력이었다. 광해군은 말했다. “조선 군대가 형편없다는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안다. “

p4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만의 급제자 속에 24세의 임경업도 있었다. 사대부들이 걱정했던 대로 집안은 보잘것 없었다. 천얼 집안 출신이라는 말도 있었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무과급제도 쉽지 않은, 이번 같은 전시에조차 운 좋게 무과급제는 가능해도 관원으로 승진하기는 어려운 그런 집안 출신이었다. 난세에 탄생한 이 젊은 장수는 훗날 조선의 제1방어선 의주를 책임지게 된다

p48 적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한 번 움직이면 조선의 능력으로는 전투 능력과 수비면에서 모두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광해군 시절에 비변사는 후일 인조 때보다 후금의 군사력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솔직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정의 결론은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부모를 배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p54 명은 다른 건 몰라도, 수, 당, 거란, 몽골이 한반도를 침공했다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이 하는 걸 보니 그것도 옛날이야기라 여기긴 했지만, 혹시 아는가? 조선이 각성하고 옛날 모습을 되찾을지? 명의 노림수는 바로 그것이었다

p78 중국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중국인들은 송의 악비와 원숭한의 죽음을 지금도 애통해 한다. 이들은 한족 왕조를 수호하기 위해 여진 왕조인 금과 청에 맞선 한족의 영웅이었다

p84 인조는 모시기 쉽지 않은 군주였다. 어리석은 군주보다 어리석고 고집 센 군주가 모시기 힘들다. 똑똑하면서 고집이 센 군주는 더 모시기 힘들다. 인조는 똑똑한 편이었다. 그런데 고집이 센 타입이라기보다는 보신주의 성향이 강한 군주였다. 판단은 정확한데 정치적으로 눈치를 많이 보면서 결정을 회피했다

p89 옳고 당신들이 그르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겠다. 교역을 안 하면 당신들만 손해다. 내가 손해 볼 것 없다. 척화파는 이런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정의라면 반드시 상대에게 강요해야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상대방이 싫어하더라도 강제로 먹여야 한다. 그게 성리학의 정의관이고 사대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판단하다 보니 척화파는 당시 홍타이지의 답변을 허세가 들통난 것으로 받아들였다

p94 병자호란에 관한 기록을 읽다 보면 화가 나는 경우보다 어이없는 경우가 더 많다. 제일 짜증나는 경우는 황당한 탁상공론이다. 뻔하디뻔한 전략,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대간이나 예조판서가 늘어놓는다. 인조도 답답했는지 “이런 일에 관심을 끄고, 맡은 직무에 충실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p107 티레 주민들은 최대한 방어를 강화했지만,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쳐들어와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티레를 끝끝내 함락시켰다. 그 뒤로도 티레는 무수한 침공을 받았고 수없이 파괴됐지만 전쟁이 끝나면 바로 재건되곤 했다. 불사신 같은 티레 재건의 비결은 바로 재화였다. 티레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지중해 세계에 무역의 가치를 알린 페니키아인이었다. 티레에 아시리아와 알렉산드로스, 십자군을 불러들인 것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한 힘도 무역이 낳은 재화였다

p112 현실을 무시하는 규정과 관행에 묶여 살면서 모두가 언제든 탄핵을 당하거나 반대로 탄핵을 할 수도 있는 사회가 조선의 관료사회였다.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것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생산역량의 문제이다

p127 궁과 관청의 종들 중에는 정묘호란을 겪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로부터 정묘년의 어처구니없는 비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들의 충고는 한결같았다. “난리가 나면 무조건 도망쳐야해. 난리통이라 나중에 돌아와도 처벌 못 한다니까?”

p146 조선 조정에는 이러한 자칭 행정의 달인들이 너무 많았다. 전쟁위원회라 할 수 있는 비변사마저도 행정의 마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p209 절반은 비겁한 변명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점은 양반이라 배낭을 멜 수 없다는 말이 당당히 핑계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뛰어난 전사라는 선전관도 배낭 메고 수통 차는 것을 거부했다

p248 조선군을 얕잡아 보았는데, 의외로 실전을 겪으면 빨리 배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간, 미스터리한 나라였다. 황제의 당부가 떠올랐다. “조선군은 쉬운 상대지만 절대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황제의 경고는 조선의 이런 이상한 잠재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p256 구원부대는 이렇게 사실상 전멸했다. 충청, 강원, 경상부대들은 부대 간의 협력도, 심지어는 제대로 된 정찰도 없이 제각각 적진의 코앞까지 진군했다가 각개격파당했다. 전술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이 패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p290 조선 왕이 여진족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충격은 이해가 가지만 책임 있는 리더라면 항복 협상 중 산성에 있는 군인과 백성의 철수 문제를 논의했어야 했다. 명분 논쟁만 하다 이 문제가 속 빠졌다. 질서정연하게 산성으로 들어와 남문을 사수했던 수원병사들은 성을 나서자마자 절반이 청군의 포로가 되었다

p297 척화파는 김류와 최명길을 비겁자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김류는 군비강화를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이건 완전한 왜곡이다. 두 사람은 협상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외교와 전장의 역학관계를 한 번도 무시하지 않았다. 팔도 근왕군의 궤멸에 책임이 큰 사람은 오히려 인조와 척화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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