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기원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기후가 만든 한국인의 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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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기원

 : 박정재

 : 바다출판사

읽은기간 : 2024/12/23 -2024/12/31


기후변화에 따라 인종이 이동을 시작했으며, 그 이동으로 인해 인류가 구분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한국인의 기원이지만 사실 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부는 기후변화에 따라 아프리카에 있던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유럽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후반부는 아시아쪽의 이동경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핫한 트렌드라서 그런지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한국인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더 관심이 갔다. 

아직은 가설을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류세라고 불리우는 우리 시대는 더더욱 기후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지구별은 사람이 살기 힘든 행성이 될지 다시금 복원력을 발휘할 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따라 한국인의 미래까지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p12 기후 자료와 고유전체 및 고고학 자료를 함께 살펴보면 과거 동북아 지역민들의 이동을 부추긴 요인들 가운데 핵심은 기후 변화였음이 잘 드러난다. 왜라는 빈칸에 기후변화가 들어갈 때 동북 아시사의 대대적인 인구 변동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p16 한반도인은 홀로세 초기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과 홀로세 후기 산동, 라오동,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이 섞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p44 수십만 년 전 한반도에서는 베이징 원인으로 알려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의 주인공들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후에는 데니소바인들이 잠깐 들락거렸을 가능성이 있다.

p82 지금까지 설명한 매듭무늬토기문화, 비커 문화, 아파나시에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는 모두 암나야 유목민의 후손이 이룬 성과라 할 수 있다. 폰틱-카스피해 초원에서 출발한 유목민이 넓게 퍼져나가면서 각지의 농경민과 교잡하고 유목과 농경을 혼합하여 지역문화를 창출했다.

p86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선조들의 이동은 활발했다. 이는 인류가 꽤 이른 시기에 말을 가축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인에 대한 자료 없이 현대인의 자료만으로 인류의 이동 역사와 경로를 정확하게 복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96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집단으로 아무르강 집단이 있다. 아무르강 집단은 티안유안 계통에서 분기하여 아무르강 유역, 몽골, 시베리아 등 아시아 북부의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던 수렵채집민 사회다.

p108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의 차이(이형집합도)를 분석하면 집단 내 유전적 다양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인 집단 내에는 대략 0.08%의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 사람의 전체 염기 수가 30억개 이므로 한국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균적으로 240만여 개의 서로 다른 염기를 갖는다.

p126 우리 인류는 과거의 간빙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는 간빙기를 겪는 중이다. 여기에 인류가 초래한 지구 온난화까지 더해져 홀로세는 전례 없이 새로운 형태의 간빙기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인위적 간빙기를 인류세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p140 영거드라이아이스 말기의 빠르고 짧았던 온난화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세에 접어든 후에야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수렵채집민에게는 농경은 한 해의 대부분을 투자하면서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위험한 모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p151 태양활동과 기후 변화의 관계는 이미 여러 고기후 자료에서 확인된 바 있다. 태양 활동이 홀로세의 기후 변화를 결정했던 핵심 요인이라 믿는 학자들은 태양 활동의 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충분히 증폭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158 정리해 보면 홀로세 초기(그린란드기)에는 북대서양의 열염순환이, 홀로세 후기(매갈리야기)에는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변화가 기후 변동의 주된 원인이었다.

p168 최적기 시기 지중해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문명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몇몇 유물만이 남아 흐릿하게 과거를 비춰줄 뿐이다. 이시기의 유럼 분화를 대표하는 유물을 고르라면 거석 무덤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p175 최근에 고DNA 분석결과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중국 내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랴오허 문명과 홍산 무화를 해석하기 어려워졌다. 신석기 시대 홍산 문화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p194 하지만 유라시아의 유목민은 이러한 생태적 취약성 문제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극복하였다.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질 때면 이들은 여지없이 주변의 정주 국가를 침범하여 약탈하였다. 금속과 특히 말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은 유목민이 정주민과의 싸움에서 항상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p230 한반도에서 수렵채집민의 존재를 나타내는 세석기, 슴베찌르개, 돌날 등의 유물은 2만 9000년 전부터 증가한다. 그리고 2만 1000년 전 사이에 정점에 달한다.

p244 전라남도 비금도와 광양의 꽃가루 분석 결과는 8200년 전에 한반도의 식생 구성이 크게 달라지느 ㄴ모습을 잘 보여준다. 참나무를 위시한 나무의 비율이 급감한 반면, 이끼나 양치류 등의 포작식물의 비율은 크게 높아졌다. 이런 생태계 변화는 당시 한반도의 기후가 갑자기 춥고 건조해졌음을 시사하는데, 한반도 또한 8200년 전 북반구 전역을 덮쳤던 한랭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p252 악마문 동굴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또한 한국인이 주로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계열과 동일했다. 이는 8200년 전 추위가 심해지자 동북아시아에서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와 한반도를 채웠던, 즉 한민족의 바탕이 되었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악마문 동굴에서 살았음을 보여준다.

p264 로베이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수렵채집민의 수가 늘어나는 5500년 전 이후의 한반도 고DNA 자료가 필요하다. 더불아 조몬인의 영향을 받은 해안가가 아니라 해안에서 먼 내륙 안쪽의 자료가 확보되어야 홀로세 중기의 인구 변동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p290 북방에서 밀려 내려온 사람들에 의해 수도작 문화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송국리형 문화가 정확히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금강 중하류에 나타났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p298 히타이트족은 무엇보다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민족으로 유명한다. 같은 시기의 이웃 국가들인 미케네,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이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 있을 때 히타이트는 도구 제작에 철을 이용했다.

p307 강력한 가뭄이 도래한 2800년 전과 2300년 전뿐 아니라 그 사이 기간에도 기후는 점차 한랭 건조해지는 경향을 띠었으므로 동북아시아의 지역 사회가 연이은 기후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를 주도하던 송국리 문화인은 두 차례의 가뭄을 겪으면서 인구가 많이 감소했다.

p311 한반도 남부에서는 대략 2600년 전부터 점토대토기가, 2300년 전에는 세형동검이 나타난다. 모두 기후 변화와 사회 갈등에 지쳐 북쪽의 랴오시와 야로둥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전한 것이다.

p314 로베이츠와 달리 코넬대학교의 언어학자 존 휘트먼은 원시 한국어가 2300년 전 랴오허 지역에서 세형동검을 지니고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 문화 배경의 집단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원시 일본어는 그 이전에 벼 농경과 함께 랴오둥에서 한반도 그리고 일본 순으로 순차적으로 전달되었다고 보았다.

p319 제트 기류의 남하로 편서풍이 강해짐에 따라 서유라시아에서 강수량이 증가하여 초원의 생산성이 높아졌는데, 그 결과 많은 야생 동물이 서유라시아의 초원 지대로 모여들었고 수렵을 병행한 스키타이족 또한 사냥감을 좇아 중앙아시아를 떠나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p332 많은 이가 궁금해하지만 신라와 흉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한 사실 관계르 ㄹ파악하기는 어렵다. 설령 어던 특수한 관계가 밝혀지더라도 그러한 발견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선진 문화는 북쪽에서 들어왔고 북방의 기마 문화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p350 온조 집단과 김수로 집단 모두 북방의 선진 문물을 앞세워 토착 세력을 누르고 어르면서 지역의 지배권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서 거주하던 토착민들은 이전에 내려와 정착한 고조선 유민의 후손들로 보인다.

p353 철기 저온기 때 스키타이족이 서쪽으로 넓게 확산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목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동성 덕분에 이들은 이주가 필요할 때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p360 그리스 도시들의 파괴는 유럽에 긴 암흑기를 불러올 만큼 파장이 컸지만, 이는 게르만의 대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지칠 줄 모르던 알라리크는 이번에는 동로마가 아닌 서로마 제국을 향해 움직였다.

p395 한반도인은 양쯔강, 랴오허강, 황허강, 아무르강 등의 4개 유역에서 기원한 사람들이 이동하고 섞인 결과 형성되었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특히 랴오허강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기여를 많이 했다는 점도 여러 번 강조했다.

p410 랴오둥의 농경민은 북쪽에서 내려온 외부인과의 갈등과 기후위기에 따른 사회 내부의 혼란을 피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여 최초의 수도작 문화인 송국리형 문화를 발전시켰다. 다른 한랭화 시기와 달리 3200년 전에는 기후가 나빠졌음에도 한반도 남부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없다. 외부 세력이 대거 진입한 후 수도작 농경을 기반으로 빠르게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p414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p428 한반도에서 마운더 극소기에 경신대기근(1670-1671년)과 을병대기근(1695-1699년)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아사하거나 난민으로 전락하면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 두 대기근은 마운더 극소기 내에서도 흑점 수가 특히 적었던 시기(1670-1700년)에 일어났는데 당시 태양 활동에 한반도 사회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p441 기온이 높아져 지구가 아간병기로 들어설 때마다 지구의 자기 조절 매커니즘(여기서는 열염순환)이 작동하면서 다시 정상 상태인 아빙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영거드라이아스기가 끝난 1만 1700년 전 밀란코비치주기에 의한 기온 상승은 열염순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큰 변화였다. 결국 지구는 현 간병기인 홀로세로 진입하였고, 빙기의 저온 상태로 회귀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p449 과거 이주의 흐름은 인구증가라는 인문 지리적 요인과 기후변화라는 자연 지리적 요인이 겹칠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나곤 했다.

p478 기후 변화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이동을 야기한 주요인이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생물이 과거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아야 지금이 생물 분포를 설멸할 수 있듯, 인간이 과거에 왜 그리고 어떠한 경로로 움직였는지를 알아야 현 인간 집단의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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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전주 여행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5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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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 전주여행

 : 황윤

 : 책읽는 고양이

읽은기간 : 2024/12/13 -2024/12/20


페이퍼백으로 여행다녀며 읽기 좋게 만들어진 나혼자 여행 시리즈..

전주는 유명하긴 하지만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전주는 이성계의 본관이 있는 곳이고,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천주고의 성지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단지 전주 한옥마을을 다니는 것만으로 전주가 알려지는 것은 아쉽다. 

전주를 구석구석 다닐 수 있도록 안내가 되어 있어 여행기로도 그만이다. 


p74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가 있었던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 등 천주교인들이 성문 밖으로 끌려가 참수를 당했던 순교지를 1891년, 즉 딱 100년이 지나 매입한 후 전동성당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p96 이는 곧 함락시킨 무주, 즉 광주 지역을 시작으로 겨눤이 가까운 시일 내, 전주 공주까지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우연치 않게 과거의 백제 영역과 일치했다.

p150 익산시의 이리여고 화단에도 이런 식으로 완주 봉림사지에서 반출된 남중동 오층 석탑이 있다. 고려 말 작품으로 추정되며 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이 역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이렇듯 완주 봉림사지의 주요 유물 중 석등과 석탑 등은 군산, 익산 등에 나뉘어 위치하고 있다.

p170 한때는 교통로의 중심지로서 발달했던 남원과 상주인지라, 견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상당한 지위를 가진 도시였다. 이로 미루어 견훤은 나름 대도시 출신이라 볼 수 있겠다.

p187 원래 이 바위는 이성계가 1380년 황산 대첩 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8명의 장군과 4명의 종사관 이름을 자신의 이름과 함께 새겨서 그 업적을 영원히 함께 나누고자 했던 장소다. 즉, 총 13명의 이름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던 것. 이것을 일본이 1945년에 정으로 일일이 글씨르 ㄹ쪼아 없애고 전각 역시 부수어버렸다.

p237 이 내용은 1705년 저술된 균여전에 등장하는데, 이 책은 균여 대사의 전기로서 무엇보다 귀중한 향가 11수가 담겨 있어 한국 문학 연구에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고 하더군

p270 조선 영조 때인 1725년에 금산사에서는 대규모 법회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주변에서 무려 14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할 정도였다. 이에 놀란 정부에서 당시 법회를 개최한 환성지안이라는 승려를 역모 죄로 몰아 제주도로 유배시켜 죽이게 된다.

p293 박순은 1402년 11월 8일, 살해당하고 만다. 그렇다. 함흥차사에 나오는 박순은 실제로는 이성계를 만나지도 않았으며 함경도 반란 세력에 의해 죽었던 것. 이것이 나중에 함흥차사 속 이성계를 설득하던 박순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p324 전북대학교에서 봉림사지 삼존 석불을 보았고, 실상사에서는 철조 여래 좌상을 보았으며, 금산사에서는 미륵불을 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개태사 삼존 석불까지 만났으니 말이지. 그런데 여행에서 만난 순서는 위와 같아도 제작 시기에 따라 배치하면, 실상사 철조 여래 좌상 —> 봉림사지 삼존석불 —> 개태사 삼존 석불 —> 금산사 미륵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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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QWER이다 - 어느 40대 아재의 밴드 아이돌 덕질 일기
이주강 지음 / 빈티지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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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세상이 QWER이다

 : 이주강

 : 빈티지하우스

읽은기간 : 2024/12/20 -2024/12/28


이런 덕질류의 책은 언제나 즐겁다.. 

요즘에야 여자아이돌 팬이라는 것이 낯설지 않지만, 내가 카라를 좋아하뎐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변태이야기 듣기 딱 알맞았다. 

이젠 이런 덕질이 자유로와져서 이런 책도 나오고...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나도 꽤 관심을 갖는 그룹 QWER에 대한 덕질이야기다. 

내용은 그저그렇다. 

그런데 이런 책이 내용이 그저그래야지, 세상을 바꾸는 내용이 나오면 더 이상핮지 않을까?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다채롭고, 변화하고 있는데 나만 멍청하게 있는건 아닐까 자극을 받는 정도랄까... 

사실 아이돌 걸그룹이 화려하고 인기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모래위에 바늘처럼 일부의 이야기..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그라든다.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야 하고, 재능도 따라가야 하고, 타이밍도 따라야 한다. 

그들의 노력을 알기 때문에 아이돌 걸그룹 아이들이 다들 잘되었으면 한다. 

이런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성공하길...


p13 취미생활이야말로 뇌를 떼어놓고 함께 즐기는 것이지요. 물론 제대로 덕질하려면 생각보다 뇌가 많이 필요하지 말이죠.

p32 20대 초반 소녀의 살아남기 위한 가짜 광기가 제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시요밍은 QWER 데뷔 전부터 4차원 소녀 이미지가 있엇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QWER 자체 콘텐츠나 마젠타의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은 확실히 그녀가 남다른 똘끼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해줍니다. 하지만 일본 예능을 20년 넘게 즐기고 있는 제게, 그녀의 복장이라든가 기타 여러 상확극은 벼랑 끝에 선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매 순간을 방송각으로 만들고자 애쓰는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p45 그렇다면 QWER은 도대체 무엇을 참고로 해서 만든 성장형 걸밴드일까요? 정답은 일본 애니메이션 케이온, 붗치 더 록으로 대표되는 어설프지만 풋풋하고 진정성 있고 밝은 여고생 동아리 밴드입니다.

p55 QWER의 대중성은 더욱 치솟았죠. QWER을 키운 것은 8할이 안티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롤의 바위게처럼 얻어터지는 게 일상인 QWER 팬덤은 내성과 내공을 늘리고, 그들만의 즐거운 덕질을 이어갔습니다.

p64 이 영상으로 빙튜브는 팰들 사이에서 빙정우(빙튜브+하정우)로 승화하고, 소다단 또한 성불했습니다. QWER의 소속사인 3Y코프레이션의 특징은 팬덤의 니즈를 정확히 캐치한 뒤 할술 더 떠서 제공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p72 저는 주위를 둘러보고서 대림대학교 축제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크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 사람이 꽉 차지도 않았으며, 상당수가 동네 주민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흰머리 아저씨들이나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학축제를 가장한 동네축제였습니다.

p77 40대 언론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 강다니엘에 빠진 ‘이 나이에 덕질이라니’의 작가 원유처럼, 3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 아이돌 덕질로 삶의 활력을 되찾는 분들의 에세이 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p91 원래 밴드라는 것이,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괴짜들이 모여 좌충우돌 뚱땅뚱땅하면서 커가는 성격인데도 말이지요. 해외에서 더욱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헤비메탈 밴드인 신스네이크도 QWER 관련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원래 락 밴드는 미숙한 상태로 세상에 나와서, 많은 평단들의 질타와 비난과 라이브 논란… 이런 지적은 지금 세계적 밴드들이 다 겪는 일입니다.

p112 그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고가 아닙니다. 특히 주인공 강백호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야말로 농구 초짜입니다. 하지만 그는 짧은 시간동안 영혼을 갈아 넣으며, 눈을 가린 노새처럼 오직 최선을 다해 앞으로 돌진합니다. 불꽃 남자 정대만 또한 자신의 부상을 포함한 여러 악조건에 대해 불평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 어떤 부정적 에너지를 타인에게 표출하지도 않고 신세 한탄도 하지 않은 채 “Just do it”합니다.

p124 부정이 자기에게 닥쳐올 때마다 항상 더 큰 긍정으로 덮어버린 초긍정 아희돌! 하찮아질수록 그녀는 위대해질 것이며, 낮은 곳에 임할수록 높아질 것입니다.

p134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게임에는 문외한이고, 게임 음악 또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애니메이션 주제곡도 이렇게 대놓고 큐트를 드럼통으로 들이부어 공구리를 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가사가 대놓고 “이게 우리 real power, cute”인데 이 정도로 노골적인 귀여움 찬양 노래가 또 있나요.

p140 단순히 그녀들이 “찐”으로만 남았다면, 세상의 흔한 덕후와 다를 바가 없겠죠. 그녀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인기 밴드가 먼저 된 뒤, 다신 본래의 찐을 극강으로 보여줍니다. 애나마 파워 속 그녀들은 4인조 밴드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밴드로서의 QWER을 옹호해왔던 애호가들조차 머쓱해질 수가 있습니다.

p153 아무런 배경 없이 타고난 재능 하나로 400만 틱톡커의 자리에 올랐으니, 안티 또한 산더미처럼 많았죠. 그래서인지, 온라인상에서 유명해지고 난 뒤에도 그녀는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전설의 포켓몬으로 불렸죠.

p169 QWER이 광고하는 마운틴 듀 제로슈가 블루에다 라면을 끓어 먹기도 하고, 자기 가수를 희화화하는 웹툰을 신나게 그리기도 합니다. 물론 QWER 멤버들이 그 웹툰을 리트윗하며 함께 즐기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작품을 쏟아내고 있지요. QWER만큼 가수와 팬덤이 병맛으로 하나 된 사례를 달리 찾기 힘듭니다.

p179 별의 하모니를 커버한 가수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 모두 이 감정선 문제에서 난항을 겼었음에 틀림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별의 하모니는 불안한 희망, 확신 없는 기쁨, 사그라드는 벅차오름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양가감정들이 뒤얽힌 난곡이기 때문입니다.

p187 다만 나이가 들면서 차츰 과거의 똘끼가 사라지고 겁만 많아지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카스쿨 페스티벌이 끝난 뒤 귀가해서 피부가 까질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벅벅 문질러서 결국 스머프끼를 빼고 출근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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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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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 유시민

 : 생각의 길

읽은기간 : 2024/12/09 -2024/12/12


도서관에서 예약을 걸어놓고 있던 책인데 게엄령 시기와 맞춰 시의적절하게 책을 일게 됐다. 

무도하고 잔인한 그의 공직에 대한 결말을 예견하는 책이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지 않았을까? 무식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무엇을 하든 우리나라를 힘써 망가뜨리는 데 최선을 다한 정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불행한 시기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결국 그는 탄핵을 받아 물러나겠지. 그리고 내란범으로 사형을 당하겠지. 

국민에게 총을 들이댄 자의 최후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길 빈다.

책에서는 몇 가지 퇴로정책이 있지만 그가 누군가? 

절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아닌가. 지옥에나 가길 빈다. 


p21 플라톤의 잘못은 의미 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미덕인지 아는 철학자가 과연 존재하는 지는 따지지 말자.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권력을 쥐어줄 방법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p89 용핵관들은 언론이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찌만, 조중동 사람들은 스스로를 국힘당의 두뇌이자 총선 사령관으로 여긴다.

p94 언론 엘리트는 신문사나 방송사에 고용되지 않고 활동하는 저널리스트를 저널리스트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러 해동안 우리 국민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를 손석희 앵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손꼽았다. 그러나 언론 엘리트는 김어준을 유튜버라고 한다.

p96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p118 내가 문재인과 이재명을 비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해도 된다.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유시민이 문재인과 이재명을 욕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p122 김어준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 사실을 토대로 논리의 규칙에 따라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한다. 저널리즘 규범을 모두 거부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언론보다 더 철저하게 준수한다. 김어준은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p137 대통령 주재 공개회의는 정보를 나누고 생각을 모으는 곳이 아니다. 대통령의 참모와 공무원들이 만든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언론 이벤트다

p151 생각과 판단과 스타일과 정치성향이 제각각인 기자와 피디들이 서로 견제하고 타협하면서 균형을 지켰다. 그래서 뉴스와 다큐가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p153 최근 박민의 KBS는 보도 부문에서 TV조선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렇지만 여당 의석이 적어 법을 고칠 수 없기 때문에 공영방송을 민영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관영방송으로 만드는 차선책을 쓴다.

p165 취임사에서 비판했던 반지성주의 행동을 자신이 한다. 설마 알면서 그렇게 하겠는가. 몰라서 그러는 게다. 모르면 말과 행동이 상충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해석할 길이 없다. 그는 반지성주의자가 아니라 무지성이다.

p168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저을 직시하는 능력 또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능력을 과소평가했따. 이것을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이 현상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포스트 트루스를 참고하시라

p174 적국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할 때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동맹국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대답은 분명하다. 적국이든 동맹국이든 도청할 수 있으면 한다.

p176 사대는 생존의 방편일 뿐이다.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통일 신라 이후 우리가 사대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어떤 중국인은 조선을 명과 청의 속국이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존의 방편으로 사대를 했지 마음으로 굴복하지는 않았따.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p187 헌법이나 특정한 이념에, 충성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윤석열의 인생을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사법시험을 아홉 번 본 것은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검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p190 나이든 김문수는 휴일 서울 도심의 태극기 집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극우 노인이었다. 국회의원과 도지사 경력을 내세우면서 극언의 망언을 내뱉었지만 세상에 해를 끼칠 위험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필이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도모해야 할 경사노위위원장 자리에 앉힌 게 잘못이었다.

p197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정치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1920년 출간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사용한 부류법이다.

p208 정의당은 심상정이 빈약한 득표율로 낙선했고 비례득표율도 2.14퍼센트에 그처 국회밖으로 밀려났다.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행위를 유권자가 응징한 것이다.

p238 민주당은 야당이다. 당원들은 윤석열과 잘 싸우는 정치인을 도구로 선택했다. 의석수는 4년 전과 비슷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전투력은 훨씬 강해졌다.

p242 언론이 세대 대표로 간택한 청년들은 재벌언론과 족벌언론과 건설사언론이 보도하는 사실과 그 사실을 해석하는 논리를 받아들여 그들이 원하는 인터뷰를 하고 그들이 칭찬하는 칼럼을 기고한다.

p252 국힘당은 총선을 앞두고 동네마다 야당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하나같이 화를 내는 문장이었다. 당선자 시절부터 윤석열이 격노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지금도 여전하다.

p270 2천여 년 전 사마천은 사기의 백이숙제열전에서 하늘의 도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러나 도적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도당을 모아 천하를 더렵혔는데도 천수를 누렸다. 나는 의심한다. 하늘의 도는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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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밤 -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밤 이야기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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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가 사랑한 밤

 : 정우철

 : 오후의 서재

읽은기간 : 2024/12/08 -2024/12/08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설명하는 정우철 님의 시리즈...

내용이 어렵지 않고 많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쉽게 읽고 넘긴다.

그렇지만 그림은 내용을 읽는 것보다는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 장르같다.

한번 쭉 읽었지만 그림은 좀 더 멈춰 서서 봐야할 것 같다.

역시 미술관에서 멈춰서서 봐야 그 맛이 더 나는 것 같다. 

가보고 싶은 장소가 점점 넓어진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p18 달빛에 비친 풍경은 루벤스의 마지막 시기를 로맨틱하게 담아낸 걸작입니다. 이미 부와 명예를 얻은 루벤스는 말년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엔트워프 외곽의 시골 저택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한 그림을 그리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p28 그는 생전에 세상에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했죠. 그의 바람은 결국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p72 그의 예술은 독창성과 깊이, 그리고 체코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아내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무하는 작품을 통해 체코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을 표현하며 예술적 혁신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면모는 그를 단순한 상업 예술가가 아닌, 진정한 거장으로 만들어줬습니다.

p102 예술가 부부는 가구도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하며 가족의 따스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는데요. 그의 그림 속 인테리어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이케아라는 걸 아시나요? 한 화가가 세상에 주는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p139 꿈을 꾸던 화가의 끝은 참으로 창대했습니다. 그의 상상력은 후대에 등장하는, 꿈을 그리는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작가들은 쟁쟁한 예술가들을 제치고, 루소를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지목했습니다. 이는 루소가 시대를 앞선 위대한 화가였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p160 호안 미로는 고야, 달리, 피카소의 계보를 잇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2022년 그의 전시 해설을 진행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그의 이름처럼 미로에 빠진 얼굴이었습니다. 알아볼 수 없는 형태들,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 같은 색채까지, 하지만 점점 아이처럼 웃으며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며 미로의 의도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p169 그의 그림 속 단골 주제는 푸른 밤하늘과 꽃, 그리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엔 어느 마을의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요. 벨라를 만난 고향, 비테프스크입니다. 벨라를 마주한 다리도 보이네요. 생전에 왜 이렇게 꽃다발을 많이 그리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꽃다발이었다”라고 대답한 것이 참 로맨틱합니다.

p173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다. -에드워드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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