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인문단상 1 클래식과 인문단상 1
고지수 지음 / 휴앤스토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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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3/09/19 -2023/09/30


유럽의 음악가들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간단한 인문학 칼럼이 포함된 책이다.

느낌으로는 음악을 듣고 느낀 단상을 쓴 것 같은데 음악이야기와 인문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은 아니다. 

내가 음악을 잘 해석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능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시도는 좋았던것 같다. 


p38 17기의 살롱은 문학의 교류와 사교의 장소로서의 기능이 주를 이루었으나, 18세기가 되면서 살롱은 사교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판금된 작가를 보호하며 그들의 작품과 대중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뿐만 아니라, 계몽사상의 전파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p50 1790년경부터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신의 순수한 창작 열의를 작품에 구현해내기 시작하였다. 교향곡 놀람, 시계, 큰북 연타, 현악 사중주 종달새, 황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와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이었던 트럼펫 협주곡 등 수많은 걸작이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p64 군악대의 나팔수만이 자원하였고, 엘리콤 대위는 아들 주머니에서 발견한 구겨진 악보를 나팔수에게 건네주고 연주를 부탁하였다. 숙연한 장례를 치른 후, 이 악보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남북군 모든 진영에서 진혼곡으로서만이 아니라 취침나팔로도 매일 밤 연주되었다.

p75 역설적이게도 빈 시절은 경제적 상황과는 반대로 그의 작품세계는 무르익었으며,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걸작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역시 걸작은 인간의 영혼과 피를 양식으로 하여 탄생되는 모양이다.

p76 신학자 칼바르트는 “천사들이 신을 찬미할 때는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들끼리 있을 때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할 것이고 신도 즐겁게 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p99 작곡 당시 “훌륭한 삶의 특징은 불행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적을 만큼 어려운 시기였다.

p114 현악 사중주 13번은 6번째 악장이 대푸가로 되어 있는 곡으로 1825년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초연 후 제5악장까지는 호감을 받았으나 대푸가는 평판이 좋지 않았으며, 친구들과 출판업자는 새로운 악장을 쓸 것을 권장했다. 베토벤은 하는 수 없이 대푸가를 별도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그가 죽기 4개우러 전인 1826년 말애 새로운 <Finale: Allegro> 악장을 추가하였으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곡이 되었다.

p138 우리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접하면 온 마음과 몸이 허물어져 내린다.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거나, 그르누이의 향수 같은 향기를 맡거나, 달콤한 신의 물방울을 맛보거나, 베르니니나 카노바의 조각을 스치거나, 그리고 베토벤의 대공을 들으면 눈부신 아름다움에 슬픔이 온몸을 휘감고, 오감이 마비되며 정신이 혼미해진다.

p221 알프스 교향곡은 5부 22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연주는 쉼없이 진행된다. 등산 중의 달콤한 휴식도 없이 진행되지만, 이 곡은 피로하지 않고 오히려 충전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p235 느린 단선율 음악은 웅장한 궁륭에 반향되며 스테인드글라스와 조화를 이루어 예배를 더욱 장엄하고 숭고하게 하였기 때문에 종교음악으로 알맞았다

p242 그는 환상 교향곡 이후 유럽 연주 여행에서 작곡자와 지휘자로서 큰 환영을 받았지만, 오페라와 칸타타 등에서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들라크루아, 쇼팽, 리스트 등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으나 옛 명성을 회복하기 못하고 파리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p251 바이올린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고도의 테크닉과 우아함을 요구하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악기의 특성을 한껏 끌어올린 곡이다. 당대의 바이올린 거장인 스페인의 파블로 테 사라새에게 헌정된 곡으로 현재에도 많은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들이 자주 연주하는 명곡이다

p258 비제는 카르멘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초연 3개월 후 눈을 감았다 지금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로 일컬어지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고 있을 것이다.

p281 벨 에포크 시대의 비범하며 매혹적인 팜므파탈 루 살로메. 그녀는 1861년 상트페테를부르크에서 태어나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전성기를 빈에서 보냈다.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들이 머물렀으며 많은 남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가 하면 또는 미치광이가 도고, 일부는 다행이 그 마력에서 벗어났다.

p288 스페인 남서부 세비야를 품은 안달루시아는 신대륙으로 떠나는 이민의 중심지였다. 현재 중남미에서 사용되는 말이 스페인 표준어인 카스티야어가 아니라 안달루시아 방언인 까닭이기도 하다

p305 그의 인새은 그 이후부터 달라지게 된다. 체코 공산 정권은 그를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며 1968년 프라하의 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p314 마지막 24번은 영화나 광고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으며, 리스트의 파가니니 대연습곡 6번,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파카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의 원곡이기도 하다. 특히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변주곡 중 18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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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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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3/09/09 -2023/09/18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는 양반이라 나에게 점수를 좀 잃긴 했지만 책을 참 재미있게 쓰시는 분이다. 

이번 책에서는 근현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설명하며 건축에 숨어있는 디자인에 대해 알려준다. 

건축은 잘 모르지만 이 분 덕에 이것저것 내용을 주워듣게 된다. 

유튜브에서 봤던 내용들을 책으로 다시 정리해주니 잘 알아듣게 된다. 

건축가는 자본가와 결합하며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들 좋은 건축주를 만나지 못하면 그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이 책에 나온 건축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낙수장이다. 이런 디자인을 한 사람은 정말 천재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물과 자연과 하나되는 집이라니... 부럽다. 

살지는 못하더라도 구경이라도 가보고 싶다. 

우리나라도 좋은 건축물이 많이 나와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p8 벽, 창문, 지붕, 계단, 문 등은 만 년 전부터 있었던 인간의 발명품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주변 환경과 필요에 맞게 모양과 크기를 변형시켜 서로 붙이고 떨어뜨리고 배치하는 일이 건축 디자인이다. 건축가는 발명가다

p19 기둥식 구조로 건물을 만들면 나타나는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평면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둥만 남겨두고 나머지 벽체는 구조와 상관없이 평면상에서 직선과 곡선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p20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만드는 다섯 가지 특징인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가로로 긴 창, 옥상 정원을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 부르고 이것을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했다

p33 피라미드나 고딕 성당의 기둥이나 판테온의 돔 지붕을 보면서 감동하는 이ㅠ 중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중력을 이기고 꿋꿋이 서 있기 때문이다.

p36 리처드 의학연구소의 특징은 각종 파이프, 덕트, 엘리베이터, 계단실 같은 설비 시설을 평면도 바깥으로 빼내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서비스를 받는 공간과 서비스를 하는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 낸 루이스 칸의 설계 방식이다.

p64 루브르 박물관에 유리 피라미드를 지을 때 프랑스 국민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테랑은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지금은 프랑스를 문화 대국으로 만든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p68 건축가의 감성이 바뀌면 디자인도 바뀐다. 젊어서는 차가운 직육면체의 빌라 사보아를 디자인하던 사람이 말년에는 직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곡면의 롱샹 성당을 디자인했다.

p80 자연스레 작아진 창문으로 빛의 양도 조절된다. 창문의 크기도 다르고, 깊이도 다르고 유리의 색상도 다르다. 따라서 모든 창문은 각각 다른 모양과 빛의 강도와 색상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다양성이 엄청난 빛의 향연을 만든다.

p104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건물의 투박함이다. 투박해서 멋지다는 게 아니라,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껏 건축을 하면서 건물의 완성도는 디테일에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디자인이 정말 혁신적이고 훌륭하면 디테일이 완벽하지 않아도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라 투레트 수도원을 보면서 느꼈다.

p139 일본에서 낙선시킨 계획안이라도 우리나라가 멋있게 실현하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반일 감정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p162 가장 중요한 점은 내부의 거푸집을 제거할 때 통나무를 태운 다음 숯으로 만들어 부숴서 가지고 나오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방법은 금시초문이다.

p191 퀘리니 스탐팔리아는 바닥에 구역마다 다르게 미세한 높낮이 차이를 두었고, 일부 구역에는 경계부에 댐처럼 높은 턱을 주변으로 둘렀다. 이러한 디자인 덕분에 퀘리니 스탐팔리아에서는 수위에 따라 물에 잠기는 바닥 면이 바뀌면서 다양한 공간적 변화가 생겨난다.

p222 막상 실내 공간에 들어가면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공간을 감싸는 은은한 빛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벽이 얇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벽을 투과한 빛이 실내 공간을 밝히기 때문이다.

p238 인문학적 디자인의 기본은 불편함을 없애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느 ㄴ것이다. 어렵지 않다. 원래 하수들이 어려운 철학을 가져오고 구구절절 설명이 길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런 기본에 충실한 고수의 작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252 훌륭한 건축가는 그때마다 창의적인 해결책으로 문제를 푼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결과가 디자인이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그저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훌륭한 디자인은 모두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p262 안에서는 그 벽들이 투명해져서 바깥의 하늘이 보이는 최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 만화는 그런 반전의 미가 충격적이다. 그와 비슷한 반전의 미를 허스트 타워에서 느낄 수 있다. 1층 거리에서는 백 년 가까이 된 고건축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백색 인테리어에 은색 기둥이 있고 자연광이 가득한 초현대식 고층 건물의 로비가 있다.

p269 낙수장은 떨어질 낙 자에 물 수자가 합쳐진 이름이다. 영어 이름은 Falling water다. 집이 폭포 위에 있기 때문이다. 집이 폭포 위에 있다니, 듣기만 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p273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수십 년 전이고, 이미 그보다 스무 살 어린 1887년생 르 코르뷔지에가 세계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었다. 그러던 라이트가 빌라 사보아가 지어진 지 5년 후에 낙수장이라는 주택 한 채를 완성하면서 “나 아직 안 죽었어”라고 외치듯 재기에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p308 우선 집의 후면에서 진입한다. 대체로 마이어가 설계한 집은 후면에서 진입한다. 마이어가 설계한 집은 보통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하는데, 방문자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 경치를 보여 주지 않으려는 건축가의 의도다

p321 칸의 건축 디자인의 첫번째 원칙은 태양 빛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그림자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이고 건축은 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그는 항상 태양광을 어떤 방식으로 건축물 내부로 들여올지 고민했다

p333 칸이 학교를 설계할 때 교실의 창문을 크게 만들어서 바깥의 자연 경치를 교실 안의 학생들이 잘 볼 수 있게 했는데, 작품 설명을 들은 교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디자인하면 학생들이 밖만 쳐다보고 수업하는 선생님께 집중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였다. 이에 그는 “자연보다 더 주목받을만큼 대단한 선생님이 계신가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p341 ㄴ은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공간을 분리해서 디자인하는 명쾌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고 체계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 이 작은 샤워장 건물이다. 칸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나를 알게 된 건물은 리처드 의학연구소지만, 내가 나를 발견하게 된 작품은 뉴저지 샤워장이다”

p357 도미누스 와이너리 벽면돌 사이로 들어오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빛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마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만드는 나무 아래 공간 같은 시원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p362 불규칙한 아름다움은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고도의 기술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자연도 그러하다. 자연은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기에는 너무 복잡한 시스템이다.

p376 샤프디는 1938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그는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해비타느 67은 그의 20대 학창 시절 논문에서 처음 구상되었다. 캐나다 정부는 그의 논문을 1967년의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실험적인 건축 프로젝트로 선정해서 실행한 것이다.

p388 수천 년 동안 건축은 주로 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뒨드 타워는 건축은 물성을 갖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물질성은 사라지고 빛의 정보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p395 극동 아시아 건축에서 담장은 궁전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낮게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밖을 쳐다보면 시야 상단에 하늘을 가리는 처마가 있고, 다음으로 마당이 보이고, 그 다음에는 낮은 담장과 담장 너머의 나무와 먼 산이 보이는 풍경이 연출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보이는 집의 풍경이다.

p412 코르뷔지에의 영향으로 안도의 건축에는 코르뷔지에가 주로 사용했던 노출 콘크리트가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코르뷔지에는 빌라 사보아와 피르미니 성당을 다룬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편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걸으면서 수직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를 적극 사용했는데, 안도의 작품에도 경사로가 자주 등장한다.

p420 아주마 하우스에서는 모든 방의 창문이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의 방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쳐다볼 수 있고, 내가 있지 않은 방의 공간을 빌려서 넓은 느낌을 갖게 된다. 아주마 하우스의 방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공간감은 내 방의 공간 + 중정 + 건너편 방의 공간으로 총 세 배 넓은 방에 있는 개방감을 느끼게 된다.

p440 고인돌처럼 무거운 돌이 높이 올려져있는 가분수의 거석 건축물은 만든 사람의 권력을 상징한다. 돌이 무거울수록 중력을 거슬러서 그 높이까지 올리기 힘들다. 만들기 힘든 만큼 큰 권력을 상징한다. 상부에 큰 부피를 갖는 것은 곧 권력이다.

p468 첫 번째는 사막의 장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이다. 사막의 장미는 카타르 사막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장미 모양의 돌을 지칭하는 말인데, 신기하게도 진짜 장미처럼 생겼다.

p479 이 박물관의 평면은 딱 그런 중동의 전통 마을 같다. 건물은 총 55개의 박스형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에서 23개가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크기의 상자 모양의 전시장들은 붙어서 모여 있고, 중간중간에 중정이 있어서 전시 중에 잠깐씩 자연을 바라보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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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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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3/08/29 -2023/09/02


톡파원 25시에서 재미있게 봤던 분이 책을 냈다. 

책을 산 지 시간이 좀 됐는데 이제야 시간을 내서 읽었다. 

미술작품, 그중에 프랑스에 있는 미술작품이 주된 내용이다.

루브르, 오르세 등등 유명한 미술관의 작품들도 나오지만 로댕 박물관의 작품도 나온다. 

가봤던 곳이라 더 애착이 간다. 

그리고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나와 친숙하다. 역시 나같은 초보에게는 유명하거나 익숙한 작품이야기가 눈에 잘 들어온다. 

미술이라면 치를 떨었던 내가 이만큼이라도 관시을 갖게 된 것은 다 미술관 덕분이다. 

자꾸 보다 보니 좋아지더라..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그래도 내가 직접 그리는 건 질색이다. 보기만 할 꺼다.

제목을 봐서는 앞으로 시리즈로 나올 것 같은데 기대가 된다. 바라기는 네델란드의 고흐 작품이 빨리 나오면 좋겠다. 


p19 로마 시대 훨씬 이전인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라는 점과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정립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비율, 흔히 캐논이라 일컫는 8등신의 완벽한 비율로 제작된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찬사를 자아냈습니다.

p25 루브르 박물관은 왜 이 같은 찬사를 받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루브르 박물관 최고의 가치인 큐레이팅 능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작품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데 있어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밀로의 비너스처럼 복원하지 않아야 더 아름다운 작품은 우리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사모트라케의 니케처럼 복원을 할수록 아름다운 작품은 그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복원을 진행합니다.

p44 암굴의 성모는 외경 속 이야기인 아기 예수가 이집트 피신을 떠나던 중 자신의 사촌인 세례 요한을 만나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다빈치의 작품 중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그만큼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p66 시선을 돌려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곁눈질로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면, 살짝 올라간 오른쪽 입술과 스푸마토 기법으로 표현된 우측 큰광대근의 음영으로 인해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발견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모나리자의 미소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p72 프랑수아 1세에게 다빈치는 너무도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과학과 수학, 건축, 지리, 역사, 시와 음악, 미술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갈망하던 그에게 다빈치는 언제나 해답을 주곤 했습니다. 프랑스아 1세는 늘 다빈치 곁에 머물럿고 그를 찬양했으며, 다빈치를 아버지라 칭하기도 했지요. 아마도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가 평생토록 바랐던 완벽한 후원자였습니다.

p76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현재까지도 책의 내용은 거짓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이미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못되 내용이 너무 많이 퍼진 터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요리사였다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듯 합니다.

p78 라파엘로와 같은 로마-피렌체 화파의 화가들은 아테네 학당에서 보는 것처럼 성서나 신화 속 사건을 이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베로네세와 티치아노와 같은 베네치아 화파의 화가들은 과거의 사건을 현실에서 재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p92 이 작품은 앞서 보았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영웅에게도 이러한 선택은 쉽지 않았으며, 비극적이고 고통스럽지만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이익보다는 국가가 더 중요하며 언제나 대의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p102 자신의 모습에 무척이나 만족한 나폴레옹은 추가로 네 점을 더 제작해 속국의 왕들에게 작품을 보내기도 하지요. 다비드는 이 그림 하나로 미술사상 가장 품위 있고 완벽한 승마 초상화를 그려냄과 동시에 그를 살아 있는 영웅 자체로 만들어줍니다.

p108 조제핀은 당시 마흔한 살의 나이임에도 20대 초반의 총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나폴레옹은 평소 불륜과 잦은 바람으로 문제를 일으켯던 콧대 높은 조제핀이 평생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남겨지게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p119 무능한 인물을 함장에 위임한 부패한 정권의 그 누구 하나 이 사건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품을 그리게 된다면 자신의 이력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과감하게 붓을 든 제리코의 용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메두사호의 죄 없는 희생자들처럼 부패와 무능, 책임회피, 안전 불감즘 등으로 인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우리의 아이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아른거렸습니다.

p131 많은 활약으로 마리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실어준 인물이 바로 이 전시관의 이름이기도 한 리슐리외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로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악당으로 등장해 오해를 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최고의 재상이자 루이 13세와 함께 프랑스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p155 연작을 통해 루벤스는 마리 드 메디치의 삶 자체를 신격화하고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일대기 작품을 남김니다. 그는 지인과의 편지를 통하여 “나의 모든 능력을 다 쏟아부었으며, 역사적 진실을 완벽하게 변조하고 기만하는 데 성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지요

p161 이에 방치된 오르세 기차역을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근대미술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후 약 8년간의 공사 긑에 1986년 12월 1일, 오르세 기차역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재탄생합니다.

p169 현재 오르세 미술관은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의 작품들만 전시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1848년은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 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제2공화정이 수립된 해이며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파리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던 벨 에포크, 즉 아름다운 시절과 맞물려 있으며 그 중심에는 미술사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인상파 화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p174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가 되기 전인 10대 시절 부모님과 함께 농부의 삶을 살았던 밀레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밭을 일구는 성실한 바르비종 마을 농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p182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농부의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라는 밀레의 말은 노동을 신성시했다고 보기보다는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치 않는 농부들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p191 밀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루소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그의 가족을 돌보기 시작했고, 폐렴이 재발해 정상적인 작품 활동이 힘들었던 말년에는 자신의 화풍이 아닌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이자 동료인 테오도르 루소의 화풍으로 자신의 유작인 봄을 완성합니다.

p202 사실주의란 다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상을 거부하는 것일 뿐이다. 쿠르베가 이야기하는 사실주의란 본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무언가를 좇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닌 눈으로 본,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p214 인상주의 품들이 전시된 오르세 미술관 5층 첫 번째 갤러리 벽면에는 “인상주의의 기원”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자리 잡고 있지요.

p217 그 모습은 직설적이지 않고 자신들의 품위와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신화와 역사 또는 문학작품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름답게 포장해야만 하죠. 비너스의 탄생은 이렇게 비너스라는 포장지로 여성의 육체를 감싸 관람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완벽한 작품이라고 볼 수있네요

p243 그룹의 정신적 리더이며 친구이자 동료였던 바지유를 떠나 보낸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등은 그를 추억하며 바지유가 꿈꾸었던, 오직 자신들만의 새로운 전시회에 대한 열망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바지유가 꾸었던 꿈은 동료들에 의해 1874년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지요

p246 바지유는 사람들이 시선이 많이 머무는 소녀의 얼굴과 어깨선까지는 정성스레 붓질을 이어가지만, 화면 아래쪽으로는 마치 스페인의 거장 벨라스케스처럼, 훗날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기법처럼 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ㅇ낳으려 빠르고 간결하게 붓 터치를 이어나가고 있네요.

p255 에밀 졸라만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모네의 작품들에서는 기차의 기적소르가 들려오며, 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거대한 기차역을 서서히 뒤덮는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의 그림에는 과거가 아닌 우리의 오늘이 담겨있다”

p270 힘겨웠던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며 서로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1년 6개월간 병치레만 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 모네는 그런 아내를 떠나보내며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화폭에 옮겨 담는데요. 임종을 맞은 카미유라는 작품입니다.

p275 무릇 화가라면, 예술가라면, 인생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한 번쯤은 작품으로 표현할 법도 한데, 그는 고통의 그 순간에도 오직 아름다운 장면만을 담아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네. 기쁘고 행복한 그림만을 그리기에도 인생이 이토록 짧은데, 왜 슬픔을 그린단 말인가”

p282 르누아르는 분명 빛의 효과와 인상을 작품 속에 담아내긴 하였으나 빛 자체의 인상에 탐닉하기보다는 그 빛에 비친 인물들의 인상을 담아내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모네가 찰나의 순간 빛의 인상을 품은 풍경을 그리려 했다면, 르누아르는 빛의 인상이 담긴 그들의 삶을 그리려 했던 것이지요.

p311 산책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들로 치장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아이리스가 가득 채워져 있을 때의 풍경을 자랑스러워하며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지요. 유달리 보라색 꽃을 좋아했던 모네의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이라는 작품입니다

p321 내가 비록 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사용하는 물감 튜브에 적힌 글을 보고 원하는 색을 찾고 있다오. 내 팔레트 위에 짜놓은 색들이 어떤 느낌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칠해야 하는지 나의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소

p340 정부 측에서는 청동문이라는 형식만 정한 채 나머지 주제와 그 안을 채우는 작품의 형태는 모두 로댕에게 위임했기에 그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세례당을 장식한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과 짝을 이루는 지옥문을 제작하기로 합니다.

p358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불륜을 저지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주받은 연인들의 모습보다는 로댕 자신과 연인 카미유를 담아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 속 프란체스카의 모습 또한 당시 수동적인 여성들과 달리 당돌하게 사랑을 쟁취하고 만끽하는 카미유의 모습인 듯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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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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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화로 읽는 영국역사

 : 나가노 교코

 : 한경arte

읽은기간 : 2023/08/24 -2023/08/28


일본 작가들의 책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데 이 시리즈는 의외로 잘 읽힌다. 

명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알아간다는 재미있는 컨셉..

아무래도 명화의 상당수가 왕, 귀족 등 권력자들이다 보니 역사를 풀어나가기에 미술만큼 좋은 도구가 없는 것 같다. 

단순히 글만 읽었을 때에는 이해가지 않던 영국의 왕실이 그림과 함께 보니 좀 더 이해가 쉬웠다.

특히 메리여왕, 블러드 메리가 다른 사람인 걸 최근에 알다 보니 이 책에서 좀 더 관심이 있었다.

메리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관계도 재미있었다.

헨델과 연관이 있었던 하노버 왕조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런 걸 보면 프랑스왕조가 내겐 더 친숙한 것 같다..

이 시리즈는 계속 읽어갈 생각이다. 재미있다. 


p23 이 책에서는 영국 왕실의 세 왕조, 즉 잉글랜드 혈통의 튜더가, 스코틀랜드 혈통의 스튜어트가, 독일 혈통의 하노버가와 하노버에서 이름을 바꾼 왕가의 이야기를, 각각의 명화 속에 감추어진 역사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 보려고 한다.

p35 육체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너무 무시무시해서 오히려 강렬한 매력과 흡인력을 가진다.(튜더 시대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8세, 앤 불린, 제인 그레이, 엘리자베스 1세 같은 네 명이나 되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다)

p37 누가 뭐라든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앤 불린의 비극일 것이다. 그녀가 헤치고 지나간 짧은 인생은, 마치 영국의 종교를 마꾸고, 이 세상에 엘리자베스 1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내놓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더구나 그녀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엘리자베스를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p45 제인이 런던탐 안 타워그린(앤 불린과 같은 처형 장소)에서 참수당하기 직전의 모습을 들라로슈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았다. 왕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야심가에게 이용당해 열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무참히 짓밟힌 생의 가련함이 보는 이의 마음에 사무친다.

p56 증오하는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는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힌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눈 딱 감고 목을 치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튜더가를 단절시키는 꼴이 된다. 죽이고 싶다. 죽일 수 없다. 흔들리며 신음하던 메리는 결국 엘리자베스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그녀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p61 카톨릭 세력은 틈만 나면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 에스파냐, 바티칸과 손잡고 여왕 암살을 계획했다. 세실은 엘리자베스 앞으로 온 선물, 특히 의상 등 몸에 걸치는 물건에 독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체크하라고 메모를 남겼다.

p68 카톨릭 세력은 메리를 이용해 엘리자베스를 쫓아내고자 여러 번 음모를 꾸몄다. 엘리자베스는 신하가 메리를 처형하라고 아무리 진언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매사에 결단이 느렸다. 우유부단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속전속결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운한 시절의 경험이 가르쳐주었다. 우선은 뒤로 미룰 것. 그러면 운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p71 엘리자베스는 아무한테나 온갖 욕설을 퍼부었을 뿐 아니라 궁녀를 때리거나 꼬집고 조정 신하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으며, 침을 뱉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준 높은 학실을 겸비한 독서가였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p79 그녀가 영국에 자신을 바쳤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사소한 결점은 눈감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예뻐하던 궁녀나 신하가 결혼하면 크게 화를 내거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단기간일지언정 런던탑에 감금하거나, 노년에 접어들어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애인을 여럿 만들거나, 궁전의 거울을 전부 떼버리라고 명령하거나 한 일 등 말이다.

p110 청교도가 이 시기 의회파의 중심 세력이었기 때문에 1642년부터 왕정복고 해인 1660년까지를 청교도 혁명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시민 혁명이다

p126 이렇게 딸 메리는 메리 2세, 그녀의 남편 빌럽은 윌리엄 3세가 돼 영국 사상 최초의 공동 통치가 시작됐다. 이미 의회 주도하에 이루어진 즉위였기에 권리장전에는 둘 다 저항 없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권력이 제한되는데 심리적 저항이 없었을 리 없다) 서명했다. 국왕의 자의적 법정지를 금하고, 모든 중요 법안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카톨릭은 왕위 계승권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p140 영국 국민은 새 왕 조지 1세가 어떤 인물인지 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물을 접하고는 소문 이상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풍모와 무례한 행동거지에 놀랐다.

p142 고향이 제일이다. 그래서 일 년의 대부분을 하노버에서 지내고 영국에는 단기간만 체재했다. 내정은 신하한테 맡길 테니 적당히 상의해서 해결하라고 하는, 영국인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정치 스타일을 일관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영국 입헌군주제는 조지 1세의 무능함과 무관심 덕분에 확립했다고 여겨지는데,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p157 이러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조지 3세의 인기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높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란 만큼 하노버보다 영국에 더 큰 애착을 느꼈던 그는 영국인의 취미인 정원 가꾸기도 매우 좋아했다. 개인 농장이 세 개나 있었고 숲과 밭을 산책하면서 서민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친근감을 담아 국민이 붙여 준 별명은 농부 조지였다.

p194 앨버트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현명한 부군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인간은 아니었다. 자신의 역할은 경제적인 면에서 왕실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간파한 앨버트는 궁정의 불필요한 씀씀이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등 뛰어난 재정 능력을 보여줬다. 도 학문과 예술 애호가 기질을 살려 세계 최초의 만국 박람회를 개최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p211 의자의 다리라고 말하는 것조차 품위 없고 부끄러운 짓이라고 여기면서, 창녀의 수는 런던에만 8만 명, 여섯 집 중 한 집이 매춘관이었다. 부부간에도 속읏을 입은 채 잠자리를 하면서 아카데미 회화에는 올누드가 넘쳐났고, 부유층 옆에서 빈민들이 굶어 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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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속닥속닥 - 경주박물관 속 신라인 이야기 동원고고미술연구소 동원학술총서 5
이난영 지음 / 진인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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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에서 속닥속닥

 : 이난영

 : 진인진

읽은기간 : 2023/08/17 -2023/08/23


이런 역사책 너무 좋다.. 

왕, 궁궐, 금관 등 화려하고 웅장한 유적과 유물이 아니라 토기나 토우같은 작은 유적에도 깊은 의미가 숨어있음을 배운다. 

저자가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오래 하신 분이시다. 연세도 꽤 있으시다.

그런데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고, 글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늙은걸까?^^

토우 장식을 통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신라인들의 의식주와 정신세계도 얼핏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특히 금령총 이야기는 추정일 뿐인데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금령총의 주인공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니...

다음에 경주에 가면 금령총과 금령총의 유적을 자세히 봐야겠다.

경주에 갈 이유가 자꾸 생긴다. 경주.. 참 좋다..


p12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이러한 헌화가를 바쳤다고 하니, 삼국유사의 기록에 나오는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무시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황성된 석실분에서는 노인과 소가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이 스토리에 매우 잘 어울리는 유물들이 아닌가?

p21 신라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상은 아마도 경주 용강동 석실분에서 출토된 복두를 쓴 남자상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황성동 출토 수로부인과 함께 신라 제일의 남자상이라고 모두가 칭찬하는 상이다.

p27 서역인이 가진 천문, 수학, 과학에 대한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 재능을 배우고 이용하기 위하여 그 인물됨을 과장하였을 것이다.

p29 현존하는 신라 유물 중에도 서역인과 관련된 형상이 종종 나타나는데, 괘릉의 무인상이나 불교의 사천왕상은 가장 서역적인 인물상을 잘 보여주는 상들이다.

p67 안압지에서 나온 다량의 신라 왕실 문물들은 일본 쇼소인 소장 문물들 중 상당수가 신라 제품이었음을 밝혀 주었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안압지라고 불려왔다.

p77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수백여 점의 장식토우가 남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주역의 차고를 만들기 위해 흙을 퍼 나르는 과정에서 황남동 미추왕릉지구의 땅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p88 고구려의 고분 벽화나 일본의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의 여인들은 색동으로 길게 주름을 잡은 치마를 입고 있는데, 모양과 길이가 같고 치마폭은 널찍하다. 치마 아래로 살짝 발을 내밀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의 고구려, 신라, 일본이 같은 패션 양식의 치마를 입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p96 추녀 끝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유리창에 성에가 하얗게 서려서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보이기도 했다. 부지런을 떨면 저녁 짓는 아궁이에 깨짓 기왓 조각을 구워서 잘 싸두었다가 이불속에 넣어 자리를 덥히기도 했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p109 종종 토우에서는 개도 보이는데, 사냥용이었는지 애완용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삼국 시대에 개가 사냥용과 애완용 이외에, 희생제물이나 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잇다.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는 개가 푸줏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p124 보통 그릇은 음식을 먹고 마시기 위한 식기가 많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그릇, 음식을 덜어내기 위한 그릇, 제사와 같은 의례를 행할 때 음식을 바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재례용 음식을 담는 의례용 용기, 즉 공헌용기 등과 같이 다양한 기능이 있다.

p139 옛날 우리들은 수저의 사용을 밥상머리에서 기본예절로 배워야 했다. 어른보다 먼저 수저를 들어도 안 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도 안 되는 것이다. 어른들이 얘기가 길어져 먼저 일어나도 좋다고 허락이 있어야만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요즈음처럼 거의 앉지도 않고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어린 사람이 숟가락 던지며 먼저 가버리는 일은 동서양 어디에도 없었던 이상한 식사 매너이다.

p151 신라인들이 집 안에서 보내는 나날은 어떠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유적으로 신라인들의 주거지 모습을 상상하기는 다소 어렵고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뜨듯한 온돌을 깔고 좌식 생활을 했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p164 삼국시대 백제의 미륵사지에서부터 석등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에는 대부분 석등이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등은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이며,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석등도 비슷한 형식으로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다. 법주사 팔상전 앞의 쌍사자 석등은 두 마리 사자가 등을 받쳐 들고 있는 독특한 형식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p170 향은 덥고 습기가 많은 인도에서 피우기 시작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 즈음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가 향의 사용법을 신라에 알려주었다고 한다.

p176 백제 왕실에서 발원한 불교 사찰인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유명한 백제금동대향로는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거향로중 하나이다.

p214 황남대총의 금동제안교는 한쪽 편에만도 비단벌레 수백 마리의 날개가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금속판 아래에 부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비단벌레 날개를 깔아서 장식한 안교의 화려함은 상상 이상이다.

p232 성애의 장면을 나타낸 토우들을 보면 보통 남자보다 여자가 크게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여자의 생산능력을 위대한 자연의 섭리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성애 장면을 표현한 토우들은 번영을 추구하는 기원과 주술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단순한 본능적인 쾌락을 나타내는 것 이상의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석된다

p256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장식 토우들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경주역의 차고를 만들기 위해 흙을 퍼 나르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토기에 토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발견한 일본인들이 토우가 재미있는 것이 많고 신기해서 , 원래 몸체에서 하나씩 뜯어내 버려서 지금과 같이 다 따로따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p272 서양의 성당이나 교회 종은 종 아랫부분이 나팔꽃 모양으로 떨 벌어져 있어서 소리가 밖으로 쉽게 퍼져나가게 된다. 그러나 동양의 종은 아랫부분을 오므려서 소리가 안에서 한번 모였다가 흩어지며 울려 퍼지는 효과를 살리고 있다.

p278 출토유물이 대부분 작고 귀여운 것이여서, 무덤에 묻힌 주인공은 어린이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작은 공자가 금방울을 허리에 차고 돌아다니면, 그 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공자 곁애 있던 부모는 자식의 존재를 실감했을 것이다. 경쾌하게 뛰면 건강할 것이고 느리면 걱정을 했겠지. 일찍 죽은 어린 공자의 허리에 방울을 채워 묻어주면서 그 부모는 얼마나 아프게 오열하였을까?

p284 종 명문 중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만든 사람을 주종대박사라고 부르며, 그의 직위는 대나마, 이름은 박종일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대나마는 신라의 관직 17등급 중에서 10번째의 관등으로 5두품에 해당한다. 이 명문은 당시 사회에서 장인을 존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p287 성덕대왕신종은 30여 년간의 고생 끝에 완성된 대종으로 당시 봉덕사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종은 봉덕사종이라 불려왔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봉덕사라는 절의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p293 현존하는 고려종은 대부분 중형이나 소형종이 많으며, 대종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세종대왕이 성덕대왕신종과 함께 지켜준 연복사 대종은 개성 남문에 걸려 보관되어 온 고려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대형 범종이다. 연복사종은 전통 신라종이나 고려종과는 완전 다른 형식으로, 고려 범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러한 중국식 범종의 출현은 전통범종 양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p300 출토 유물이 대부분인 전시품들은 어두운 무덤이나 땅속에서 오랜 세월 묻혀 있다가 세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박물관 내부의 지나친 조명과 관람객의 입김 및 눈총에 익숙하지 않아서 매우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p309 나 자신이 그런 다리미를 어렸을 때 실제로 사용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이 책을 쓰면서 새삼스럽게 기억해내게 되어서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다만 내가 옛날에 사용하던 다리미는 백제계 형식이 아니라 신라계 형식의 다리미를 사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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