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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세계사 - 6천 년 동서양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 ㅣ 최소한의 교양 수업
이다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6년 5월
평점 :
제목 : 최소한의 세계사
작가 : 이다지
출판사 : 프런트페이지
읽은기간 : 2026/07/22 -2026/07/31
인강에서 유명한 이다지님이 책을 내셨다.
다이제스트된 세계사 책이다.
쭉 읽어나가기에 편하다. 서양사, 서아시아사, 인도사, 중국사, 일본사로 구분되어 있어 지역별 역사를 알기에 좋다.
수능을 강의하는 분이라서 그런가? 최신의 세계사나 여러 논란이 있는 내용은 없고, 교과서 중심의 역사로 책이 이어진다.
학생들이 보면 처음 스케치하는데 좋을 것 같다.
p55 가까스로 탈출한 레오3세는 카롤루스 대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카롤루스는 군대를 동원해 반대파를 제압합니다. 이듬해 교황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카롤루스 대제를 황제로 인정하는 대관식을 열지요. ‘비록 서로마제국은 망했지만, 당신은 서로마 황제로 불릴 자격이 있는 한 사람’이라고 해준 거예요
p63 다시 십자군 전쟁 이야기로 돌아오면, 비잔티움 제국 황제는 빼앗긴 땅을 되찾아 줄 소수의 용병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거였는데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성전이라는 거대한 판을 짜버립니다.
p82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살피다 보면 알게 될 텐데, 결국 돈이 시민 혁명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세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고, 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권리는 시민인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혁명의 시작이거든요.
p133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었는데 인기가 워낙 많아서 많은 사람이 연임을 요청했고, 결국 한 번 더 대통령을 맡았죠. 그 이후에는 연임하지 않겠다고 거절하니 왕이라도 되어달라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해요. 강력한 권력을 쥐고도 스스로 그 자리를 내려온 워싱턴의 결단 덕분에, 미국은 왕의 나라가 아닌 시민의 나라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p138 교회에 대한 비판을 철회하면 화형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후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는 지금 힘없는 거위 한마리를 불태워 죽이는 것이다. 100년 후에는 태울 수도 없고 삶을 수도 없는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후스는 체코인인데 체코어로 후스가 거위라는 뜻이거든요.
p294 석주 꼭대기에 올려진,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상은 오늘날 인도 국장의 바탕이 될 정도로 중요한 상징입니다. 불교에서 사자는 부처님을 상징하거든요. 동물의 왕인 사자가 숲에서 포효하면 모든 짐승이 숨을 죽이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을 잠재운다고 생각한거예요
p303 시타가 불속으로 뛰어 결백을 증명하는 장면은, 인도의 가장 비극적인 관습 중 하나인 사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었죠. 사티는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태우는 장작불에 함께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관습인데, 힌두교의 보수층이 사티를 행하는 여성들을 시타와 같은 성녀라며 미화했어요.
p350 아버지 문제는 중국 역사상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명군인데, 그는 통일 후 체제를 정비하는 데 힘썼어요. 핏줄 중심의 정치 대신 시험을 통한 관리 선발 제도를 정비했고, 이는 훗날 과거제의 본격적인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p437 당시 반란을 일으킨 부하가 남긴 말이 우주 유명합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은 어쩌면 익숙할 수도 있는 말이에요. 원래는 공격 목표가 오다 노부나가임을 알리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적은 내부에 있다!’ 혹은 ‘진짜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p450 일본은 오랫동안 칼의 힘이 지배하는 무사 사회였기 때문에, 강자의 힘 자체를 통치의 정당성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은 일본인들에게 단순한 공포를 넘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새로운 강자는 서양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p453 이와쿠라 도모미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일행에는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여했어요. 서양의 발전된 모습과 서구 문물을 직접 보고 배우라는 국가적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이었죠. 이 사절단에 투입된 비용이 당시 일본 1년 예산의 약 2퍼센트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건 꽤 큰 비중이에요.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건 중대한 프로젝트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