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를 통한 역사 여행 - 영화가 말해주는 과거의 이야기
심규훈 지음 / 상상력집단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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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대중매체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한다. 영화 관람을 위해 영화관을 가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이제 한갓 취미를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관객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에게 ‘희로애락’을 선물한다. 영화는 꿈과 희망, 기쁨과 슬픔, 낭만과 사랑, 시련과 아픔 혹은 악몽과 불안감 등을 반영하며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와 인간과 조우한다.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와 역사의 공통점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점이라고 이 책 『시네마를 통한 역사 여행』의 저자 심규훈은 말한다. 

저자는 「히스토리가 스토리가 되는 순간」이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역사 영화는 대개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으로 완성된다"고 전제하고 "영화 자체가 하나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기록물로 평가받는 작품도 있지만 가끔 우리에게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영화는 마치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우리를 안내해 '역사 속 특별함'을 선물한다고 역사 영화를 설명한다. 저자는 영화에서 왜곡된 역사가 대개는 감독과 작가의 의도에 의하는 것이지만 자칫 그릇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기에 이 책에서 가급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영화 감상과 역사 공부를 함께할 수 있도록 주력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영화나 역사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종대왕의 육중한 말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무릇 잘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재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의 자취를 보아야 할 것이요, 그 자취를 보려면 오직 역사의 기록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 『시네마를 통한 역사 여행』은 한국 영화는 물론 다양한 국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영화 속에 숨어있는 역사와 인물을 살펴보고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경 지식을 전달한다.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을 다룬 영화를 보고나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인지 궁금해진다. 역사나 영화를 따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궁금증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취지이다. 이 책은 모두 2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전쟁 등)을 다룬 것들이다. 〈트로이〉, 〈라이언 일병 구하〉], 〈플래툰〉 등을 통해 역사를 바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알렉산더〉, 〈라스트 킹〉 등에서는 영화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인물들의 자세한 내용과 일화까지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은 영화를 색다르게 감상하는 즐거움과 자세히 알지 못하던 역사 상식은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이 던지는 다양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자칫 재미와 스케일에 묻힐 수도 있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왜곡된 사실이 있다면 바로잡기 위함이다. 영화의 제목만 들어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인데다 감독과 배우 등도 걸맞춤된 영화들이다. 또 인기있는 작품들이어서 케이블 TV나 인터넷, 스마트폰 영화 목록에 올라 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관람 가능하다는 말이다.

첫 장은 우리가 '트로이의 목마'로 잘 알고 있는 영화 〈트로이〉다. 이 영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원작으로 한다. 『일리아스』는 현존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51일간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영웅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된는 인간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거의 무한적으로 반복 재생된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룬 작품 중에서 제작 규모, 출연진 등 대작으로 꼽힌다. 브래드 피트, 올랜드 블룸 등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는 물론 피터 오툴, 브라이언 콕스 등 연기파 배우도 많이 출연했다. 신화로만 여겼던 트로이 전쟁은 1871년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며 실제 있었던 전쟁으로 밝혀졌다는 소개도 저자는 잊지 않고 적었다.



신화 속 전쟁의 발단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토로이로 데려간 것에 그리스인들이 분노해서 벌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기록은 조금씩 다르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먼저 그리스의 기록에서는 올림포스에서 인간의 아들 펠레우스와 티탄 족의 딸 테디스의 결혼식이 열렸다. 그러나 불화와 다툼을 관장하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결혼식의 입장을 거절당했고 이에 격분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사과를 신들의 자리에 선물로 보낸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는 서로 황금사과를 가지려 다투었고 제우스는 이 사과가 누구에게 적합한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다. 파리스에게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힘을, 아테나는 어떠한 전쟁도 이길 힘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파리스에게 주었는데 그녀가 바로 스파프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던 헬레네였다.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헬레네의 반환과 트로이를 징벌하기 위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헤로도투스가 남긴 페르시아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서 지중해를 건너간 여인들은 사실 납치혼의 피해자들이고 신화 속 파리스가 헬레나를 데려간 것도 그 납치혼의 복수였다는 것이다. 이오가 처음 이집트로 납치된 후, 에우로페가 그리스인들에게 반대로 납치되고 이에 일리온(트로이)의 왕자 알렉산드로스(파리스)가 보복의 목적으로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서 헬레네를 납치했고 이것 때문에 전쟁으로 확산했다는 것이다. 트로이는 단단한 성벽으로 보호되어 있었고, 사방에 탑이 있어 접근하는 적의 움직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트로이는 그리스군의 공성 작전을 막아내며 무려 10년 동안 전쟁은 지속되었다.

전쟁 중 그리스의 지휘관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의 지휘관 헥토로가 싸웠는데 둘의 대결에서 헥토르가 죽게 된다. 지휘관이 쓰러졌지만, 트로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도 전쟁의 결판이 나지 않자, 그리스 군은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앞에 놓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야기의 전개는 여기에 굳이 쓰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트로이의 목마'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유래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으로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컴퓨터 악성 코드의 대명사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 전쟁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해 확실한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가 그리스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영화 〈스파르타쿠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난(3차 노예의 난)'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 개봉했다.(1960) 이 영화의 감독은 연출한 작품의 수는 적지만 제작한 영화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 스탠리 큐브릭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 소설가인 하워스 패스트와 각본을 담당한 돌턴 드림보. 둘 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 때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감옥 생활을 하고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장(章)의 서두에 저자는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하워드 패스트가 감옥에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적시한다. 이에 따라 이 영화의 제작을 결정할 당시 매카시즘의 압력을 받았는데, 돌턴 트럼보의 인생을 소재로 한 영화 트럼보에서는 주연인 커크 더들라스가 매카시즘의 압박을 무시한 채 트럼보를 믿고 뚝심있게 영화를 제작하고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인다고도 한다. 하지만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은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주연 배우였던 커크 더글라스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신의 색깔로 영화를 만들지 못해 버린 자식 취급을 하였고, 이 영화 이후 그는 좀 더 자유롭고 간섭 없는 작품 활동을 위해 영국에서 후속작인 〈롤리타〉를 촬영하기로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제3차 노예 전쟁'이다. 제1차, 제2차 노예 전쟁은 시칠리아의 농장에 있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군이 진압한 사건이었다. 로마는 정복 전쟁을 벌이며 정복지의 수많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들은 가혹하고 무자비한 대우를 받았는데,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받았다. 검투사들은 강제 노동을 당하는 노예들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기는 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합을 하며 살아야만 했다. 제3차 노예 전쟁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 칭하기도 한다. 이 전쟁은 기원전 73년 검투사 양성소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검투사 74명이 무기를 들고 집단으로 탈주해 베수비오산으로 도망친다. 그들이 탈출한 이유는 로마인들을 위한 정화의식에 제물로 사용될 예정이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는 도망이 아닌 전쟁을 선택했다. 그는 주변의 광산, 농장의 노예들에게 합류를 권유했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이후 세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노예군은 로마군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이들이 로마군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스파르타쿠스가 노예 이전 신분이 로마군이었다는 '설'도 있다. 스파르타쿠스가 로마군의 전법을 잘 알고 있고, 탁월한 전술과 지도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예로 살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결의로 뭉쳤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유럽의 문명은 '전쟁의 문명'이라 할 만큼 유럽 지역은 전쟁이 많았다고 한다. 세계 어느 지역이나 전쟁은 계속 있어 왔지만 특히 유럽은 많고 길었다. 어쩌면 도시국가로부터 출범한 탓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이 가운데서도 십자군 전쟁(1096~1270)은 200년에 걸친 전쟁이어서 역사상 가장 장기간 이어진 전쟁으로 알려졌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십자군 전쟁은 가톨릭과 이슬람의 종교 전쟁이기도 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80살이 넘은 고령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3차 십자군 원정 직전 불안정한 예루살렘 왕국과 살라딘과의 관계, 그리고 하틴 전투 이후 예루살렘 항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영화의 인기에 비해 몇 가지 지적들이 있다고 밝힌다. "성과 소품 등의 고증에 대한 평가는 좋지만, 대부분 역사 영화들처럼 등장인물들의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고증은 문제점을 지적받았다는 것. 대표적인 예로 발리앙 같은 경우 원래부터 신분이 귀족이었지만, 영화에서는 대장장이 출신의 사생아로 나오며, 왕녀 시빌라와의 관계는 실제 연인이 아닌 사실상 정적에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킹덤 오브 헤븐〉은 한쪽 편에 치우치지 않은 결말과 두 종교 간의 반목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50여 분의 분량이 늘어난 감독판 기준) 관걕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는 점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독자의 짧은 시선으로는 이 영화가 개봉 시점이 9.11테러 직후 미군이 아프간을 침공한 가운데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이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마지막에는 다시 대장장이로 돌아간 발리앙에게 제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잉글랜드의 사자심왕이라 불리는 리처드 1세가 찾아와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저자의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예루살렘 왕국의 발리앙이나 사빌라가 아닌 바로 이슬람의 살라딘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서양에서는 살라딘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본명은 유수프이다. 3차 십자군 원정 당시 이슬람을 이끌었던 그는 전성기에 이집트, 시리아, 예멘, 이라크, 메카, 헤자즈를 아우르는 아이유브 왕조를 세웠다. 살라딘이 TIME지가 선정한 12세기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훗날에 인정받는 이유는 지도력과 군사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룩한 업적 이외에도,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십자군의 군주들과 다르게 '정의와 신념'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온건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자비로운 군주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살라딘의 기품은 다른 군주들과 비교된다. 쓰러진 십자가를 탁자 위에 올바로 세워놓는 모습은 그가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에도 관대한 군주로 묘사된다. 그리고 자신의 맞수였던 보두앵 4세의 묘도 밟지 않고 지나가는 승자의 예의와 관용의 자세를 보여주었다."(p.73)



우리 영화도 몇 편 이 책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명량〉, 〈남한산성〉, 〈암살〉 등 주로 침략에 대한 수비군의 역할이었다. 이 가운데 두 편은 일본의 침략을 다루었고, 〈남한산성〉은 청나라의 공격에 치욕의 삼전도의 굴욕을 담은 영화다.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이고 〈남한산성〉은 소설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특히 〈암살〉은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모티프로 상상력이 돋보이는 스토리로 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전지현 배우의 활약을 볼 수 있어 특히 애정이 간다. 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투사의 활약을 담았으니 비장미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화면은 오히려 코믹한 부분을 곳곳에 배치해 무거운 분위기를 엄중하고 밝은 분위기로 탈바꿈한 감독의 연출력에도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도 그렇지만 전쟁에서의 유머 장면은 역시 전쟁을 치르는 전투병들의 치열한 전투를 책임감과 신념으로 치르고 있다는 유머를 섞어내면서 비장미와 치열함이 오히려 돋보이게 해준다. 

〈암살〉은 2015년 개봉한 영화다. 조선 총독과 친일파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독립투사들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실명의 독립운동가와 가상의 인물도 나오는데, 좌익 사회주의자 그리고 월북했다는이유로 그동안 미디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약산 김원봉이 비중 있는 배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연출, 연기, 스토리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들어맞은 '완벽한 영화'라는 데 공감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이 좋은 영화다. 김원봉을 비롯해 잊혀가던 독립투사들의 삶과 희생정신, 그리고 밀정과 친일파에 대해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수작이라고 독자는 동의한다. 책에 따르면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은 1920년 부산, 밀양 경찰서 폭탄 투척, 1921년 조선총독부 폭탄 투하,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등 국내 일제 기관과 파괴, 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전개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특히 김원봉과 함께 처음 의열단을 조직한 단원들은 광복이 되는 순간까지 단 한 명도 배신하지 않고 활동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독자의 독립투사에 대한 지식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해준 데 대해 감사한 영화다. 

“나중에 우리 후손 아그들이 우리가 이러고 개고생한 걸 알까?”

“아따 모르면 참말로 호래자식들이지.”(p.128)

〈명량〉에서 승전의 배 안에서 노꾼들의 입담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선조들의 애국심과 가족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최고의 조미료 역할을 해낸다. 


저자 : 심규훈


역사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많은 관심을 가졌던 영화와 역사에 대한 애정으로 쓴 글입니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리며,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책에 소개된 영화를 감상하며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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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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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건너가는 자』의 저자 최진석은 우리 철학계, 특히 '장자'에 대한 뛰어난 탐구로 잘 알려져 있다. 독자는 지난 2018년 그의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통해 처음 알았다. 『탁월한~』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독자에게 낯선 영감을 주면서 다시 책을 읽게 하는 직장인으로 변모시켜 주었다. 그 책에서 받은 저자의 탁월한 시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산업화 시대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라고 회자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간)보다 탁월한 철학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탁월한~』은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철학의 탄생과 의미를 파고들며,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았고, 우리에게 ‘인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준 책으로 기억한다. 독자가 읽은 책은 개정판으로 초판이 출간된 이후에 전개된 국내 사회 정치의 현실과 전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한 소론까지 추가하여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고 저자가 〈서문〉을 통해 밝혔었다.

『탁월한~』에서 저자는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후 저자의 책은 그의 '노장 탐구' 덕택에 노자와 장자의 철학으로 점점 깊이를 더했다. 이번에 출간한 이 책 『건너가는 자』는 노장 철학과 요즘 우리 서점가를 몇 년째 열풍으로 몰아놓은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과도 결이 비슷한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하고 있다.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반야심경〉의 사상이 먼저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니체,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하고, 조금은 낯설던 쇼펜하우어의 철학까지 전에 없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철학자들은 인생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세상을 고통스러운 곳으로 바라본다. 그런 동시에 이 고통을 헤쳐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다만 이처럼 비관적인 시선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는 철학이 관심받는 현상은 조금 안타깝다고 철학자 최진석은 말하고 있다. 지금이 여느 때보다 약간은 더 고통스러운 시대라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통이 만연한 시대일 때면, 동양 철학은 어떤 지혜를 건네왔을까. 이 대답을 위해 이 책 『건너가는 자』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철학자 최진석은 인생이라는 고통을 건너는 법, 아주 오랜 시간에도 낡지 않는 ‘건너감의 지혜’가 바로 반야심경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 맞게 읽어내는 ‘타인에게 베푸는 지혜’부터 시작해, 여섯 방식의 지혜와 그 실천법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건너가는 자』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반야심경을 풀어낸 지혜의 정수다.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통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인류의 고전이 답하는 ‘건너감의 지혜’를 탐독해본다.

불교인이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야심경〉을 잘 알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많은 불경 중의 하나라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 사실 TV나 소설 속에서 〈반야심경〉은 자주 인용된다. 심지어는 〈반야심경〉가 주제가 되어 영화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화면 속이나 실제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을 때면 으레 외우는 불경이 〈반야심경〉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야심경〉이 어떻게 알려져 있든 불교의 기본 성전임에는 변함이 없는 고귀한 책이다. 저자도 「세계의 법칙을 비추는 반야의 길」이라는 제목의 〈서문(들어가며)〉에서 〈반야심경〉은 불교라는 종교의 경전이면서 만물의 형성 원리를 다루는 동시에, 삶의 태도에 관한 철학서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 『건너가는 자』가 〈반야심경〉의 지혜를 탐구하는 책임을 전제한다.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라고 〈반야심경〉의 성격을 밝힌다. 이 책 『건너가는 자』가 특별하고 탁월한 이유는 물리학과의 관계를 밝혀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물리학의 이론이 고정불변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리학이란 기존 이론과 이를 전복하려는 새로운 관점들이 제시되고 치열한 패러다임 전환을 노리며 지금도 이론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등 오감으로 느끼는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런 세계를 물리학에서는 '거시세계'라고 한다고 말한다. 거시세계에서 작용하는 운동의 법칙을 첫 번째로 정립한 이가 뉴턴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고전역학'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거시세계가 있다면 당연히 미시세계도 있을 것이다. 미시세계란 원자와 원자 사이의 세계, 즉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작디작은 세계를 뜻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자와 원자간의 운동은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없는 동시에, 거시세계의 고전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으로는 온전히 해석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된다. 이에 따라 미시세계의 운동 법칙에는 또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그 이름이 '양자역학'이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은 등장 그 자체로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양자역학이 작용하는 미시세계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인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자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고전역학에서는 파동과 입자는 그 성질이 현격히 달라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숱한 논쟁을 거쳐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보니 빛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두 성질을 동시에 띠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낸 상태다. 또 다른 예로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이 있다. 두 개 이상의 입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 입자에 대한 작용이 다른 입자에도 즉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양자 얽힘 현상을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관측 대상 사이에 아직 알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철학도 어려운 학문이고, 물리학도 어려운 학문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철학자가 물리학을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로 물리학자가 철학에 의거에 연구를 한다면 제대로 된 학문이 될까? 하는 의혹만 자꾸 드는 독자는 역시 문외한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철학 물리학 두 분야에만 문외한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배움도 별로 없는 문외한 수준이라고 자인하는 셈이다. 독자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자각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모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철학자 최진석이 물리학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독특하지만 연관이 깊다는 점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이야기가 '건너가는' 태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고전역학이 전부이던 시대의 사람들이 빛의 이중성이나 양자 얽힘처럼 직관을 벗어난 양자역학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양자역학은커녕 상대성 이론이 처음 나올 때도 쉬이 수긍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한참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그 과정 전체가 자연스러운 과학의 발전으로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리고 이는 물리학에서만 일어나는 건너감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영역에서든 적용된다는 저자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저자는 〈반야심경〉의 공(空)에 관해 양자역학처럼 감각과 직관으로 쉬이 이해되지 않지만 재미있게도 〈반야심경〉과 양자역학 사이에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러한 성질인 것은 없다'라는 말이라고 풀어 설명해 준다. 즉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는 말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공이라고 한다.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없는 것에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잠시 관계를 맺고 얽혀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은 없고, 오로지 관계 맺고 엮이는 방식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이라고 분석한다. 이를 불교의 용어로 인연생기(因緣生起)라고 한다. 놀랍게도 빛의 성질과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이를 밝혀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다시 한 번 감복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다〉, 2장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니,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넌다〉, 3장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 4장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등이다. 5장으로 나눈 것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전문(全文)을 책 앞 부분에 싣고 이를 차례로 설명하기 위함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서 불교의 기본 성전으로 대승불전의 하나라고 한다. 이 책 『건너가는 자』에도 저자가 자세한 풀이를 하고 있지만 산스크리트어에 의한 원제는 『프라지냐파라미타 프리다야 수트라(Prajn?p?ramit? hrdaya s?tta)』(반야바라밀의 심수인경전)이다. 산스크리트 원전(대품·소품의 2종) 외에 티베트어역과 7종의 한역이 현존한다. 일반적으로 당의 현장이 번역한 276자의 한역(소품에 상당)이 알려졌고, 현장의 〈대반야경〉 600권의 정수로 보았다. 내용은 표제대로 광대한 반야경전의 심수를 매우 간결하게 정리한 것으로, 관자재보살(관음)이 반야바라밀다(완전한 지혜)의 행을 수행해서 오온(五蘊, 존재의 5가지 구성요소)이 공(무실체)이라고 깨달은 것에서 발하며, 불제자 사리자(舍利子)에 대해서 일체의 존재가 공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최후에 진언을 주장했다. 특히 물질적 존재는 무실체이며, 무실체인 것이 물질적 존재라는 의미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문구는 잘 알려져 있다고 종교학대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1~5장은 〈반야심경〉 전문에 대한 해석과 여기에 쓰인 용어의 자세하고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저자가 연구해온 결과에 대한 풀이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경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반야심경〉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읽고 음미하는 것이란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구체적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는 뜻이다.

1장의 핵심어로 저자는 '고삐'란 말을 꼽는다. 여기서 고삐가 내포한 의미를 철학 혹은 이상이라고 저자는 풀이하낟. 경영은 비전과 꿈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비전과 꿈을 세상에 펼치는 일을 뜻한다고 밝힌다. '경(經)'에서 시작해 경영(management, manage)를 돌아 고삐에 이른 이야기는 기업과 정당 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도 전개한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해당된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고삐가 무엇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5장에 걸쳐 본론을 설명해가며 마지막 「경전을 족쇄 아닌 등불로 삼길」 바라며 쓴 〈에필로그(나오며)〉를 통해 '고삐'에 대한 의미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다. "우선 내 고삐는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삐라는 화두를 놓치면 안 됩니다. 자기 고삐를 찾는 일은 잊어버린 채, 남이 찾아놓은 고삐만 죽어라 쫓아다니면서 스스로 괜찮게 사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되레 이보다 바보 같은 일을 찾기가 어렵지요. 그러면 어떤 경전을 읽어도 진보가 없습니다. 쌓인 글자 수, 넘긴 페이지 수가 늘어난다고 진보가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답답하고 우왕좌왕하고 행복하지도 않고 빛도 보이지 않고 뭐가 뭔지를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 고삐가 없기 때문이지요. (중략)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이유는 종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경전을 읽고서 주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주인 말입니다. (중략) 붓다가 설법한 주제는 딱 하나입니다. 우리 각자가 붓다가 되어, 붓다의 마음을 품고,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붓다의 수준으로 사는 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붓다의 이런 마음과 눈과 수준은 모두 '자비심'이 들어 있습니다."(p.306~307)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건너가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건너가라는 것일까? 이 질문에 반야심경은 답한다. 그 무엇은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라고. 내용이 정해져 있다면 모두가 똑같은 노선과 내용을 습득해야 한다. 고정된 어떠한 배움을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고정되고 불변한 것은 없으니, 건너감의 지혜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형식만 존재하니, 그 내용은 자신에게서 채우면 된다.


저자 :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가(道家) 철학자인 그는 원래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독일 유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독일철학을 공부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을 읽곤 했는데 우연히 책꽂이에서 발견한 장자를 읽으면서 재미에 푹 빠져 편안하게 즐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란 생각으로 동양철학으로 바꿨다. 게다가 유가(儒家)보다는 도가(道家)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짜릿했다. 저자가 노장 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유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욕망에 집중하며 살라고 권한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가 주체적이고 욕망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2021)』 『나 홀로 읽는 도덕경(2021)』 『탁월한 사유의 시선(2018)』 『경계에 흐르다(2017)』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2015)』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 등이 있고, 『장자철학(2021)』 『노장신론(1997)』 등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으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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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슛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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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 수용소』, 『노비 종친회』, 『평양골드러시』 등 표제어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드라마로 제작 방영하겠다는 계약도 체결된 작품도 있다. 고호 작가의 소설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세상이 자주 등장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를 상상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고호가 늘 우리 사회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문학적 상상력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미 두터운 고정 팬을 이끌고 있는 고호의 신작 『레디 슛』이 또 한 번 독자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책의 표지화의 톤이 핑크빛 얼굴로 가득하다. 출판사 델피노 편집진과의 교감이 두터운 탓이리라. 강렬한 핑크빛의 얼굴은 어쩌면 탐욕, 욕망의 색으로 쓰였으리라. 거기에 주요 등장인물은 교도소이지만 참 재밌게 지낸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누구나 죄 지었기에 교도소 생활을 하지만, 모두가 재밌게는 지내지 못할 터 그들의 핑크빛 얼굴(가면)에 감춰진 욕망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탐욕의 붉은빛으로 변할 것이다. 작품 속 사건의 발단은 교도소로부터 시작되지만 책의 〈프롤로그〉는 새벽 2시 인천의 한 부둣가가 배경이다. 시간상 이 시간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선량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모는 '신토불이'가 아니다. 동남아, 몽골, 러시아도 더러 섞인 데다 옷차림도 그만큼 다양하다. 공장 작업복, 트레이닝복, 고무 앞치마에 장화까지···. 예사롭지 않은 그들 앞에 나타난 검정 슈트 차림의 한 신사. 살인 등 강력 범죄의 냄새가 짙게 드리워진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한 손으로 살며시 쓸자 손목에 찬 리차드 밀*이 유난히 돋보인 인물이 폭력조직의 보스 포스다.

보스와 하수인들이 나눈 몇 마디 대화 속에 자루 속에는 시체가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이 보스의 명령에 따라 가져온 자루를 물 속으로 가라앉힌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깊이 잠식해 버린 한 자루 속엔 누가 들어 있을까.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골똘히 내려다보던 보스가 입을 열었다. 

"인생 별거 없어, 저 봐. 세상에 올 때만 해도 둘인데, 갈 땐 다 혼자잖아. 근처에 어디 문 연 데 있나? 



*리샤르 밀(Richard Mille)은 리차드 밀이란 발음은 영어식이다. 자동차 엔진을 보는 듯한 혁신적 기술의 시계로서 2001년 RM001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나돌아 흔해졌지만 첫 제품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시계의 트렌드를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인으로서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알려졌다. 이 시계 이름은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다.(독자 주)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는 저자 고호에 대해 고사리 식물론이 등장한다. "고사리를 아는가? 봄철에 고사리를 꺾고 나면 꺾은 그 자리에서 아홉 번 다시 돋아난다. 고호 작가의 샘솟는 상상력은 마치 고사리의 그것과 닮았다. 이전 작품의 실감 나는 북한 사투리가 독자들을 평양으로, 또 노비 문서를 들추며 독자들을 조선시대까지 데리고 갔던 그녀가 이번에는 독자들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급 연기를 펼치는 교도소와 인천으로 무대를 옮겼다." 어쩌면 저자 고호와 자주 교감과 교류로 충분한 이해가 있는 듯하다. 

자칭 '비운의 배우'인 혜수는 교도소에 복역하는 것을 삼재 탓으로 돌린다. 어중간한 똑똑함, 재빠른 눈치로 나름 편안한 감옥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도 눈엣가시가 있다. 바로 왕언니다. ‘5세 여아 살해 및 사체 유기 혐의’로 들어온 왕언니는 모범수로 나가기 전에 혜수에게 이렇게 으스댔다.

“옛날 인천 바닥에서 홍 마담이라고 들어봤냐?”

재벌가의 첩. 그러나 버림받은 뒤로 종적을 감추다가 30년 만에 복수를 위해 나타났다는 여자. 그리고 왕언니는 그녀에게 사주를 받아 재벌의 손녀를 대신 죽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집안의 유산을 혼자 차지하려고?”

“맞아. 더 대박은 뭔지 알아? 두구 두구 두구 두구···. 그 홍 마담이 근래에 치매에 걸렸댄다. 흐흐흐.”



교도소 감방에서 혜수가 만난 왕언니는 전신에 새겨진 문신만큼이나 비호감인 인물로 5세 여아 살해 및 사체 유기죄로 복역 중이었다. 왕언니는 인천의 유명 기업 신건 그룹의 손녀 살해를 사주받았던 것. 신건 가의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외아들 내외의 교통사고, 연이은 김 회장의 죽음까지 비극적 사건과 얽혀 있었다. 설상가상 왕언니의 의문사까지. 혜수는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주인 없는 유산에서 풍기는 강렬한 돈 냄새에 곧장 새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요즘 TV나 영화에서 교도소 생활을 다룬 극들이 많이 방영·상영되고 있다. 교도소 수형자라면 으레 들어가 있는 '폭력' 부분은 줄이고, 탐욕과 법 처벌 부분은 살려서 드라마를 만든다. 이 작품도 인간의 탐욕(특히 돈 욕심)이 빚어낸 추악한 현실을 보여준다. '5세 여아 살해 및 사체 유기 혐의'는 왕언니의 죄목이다. 이 정도 되면 보통 표독한 여인이 아닐 듯한데 작품에서는 폭력성을 제외하니 평범한 '이웃집 드센 아줌마' 정도로 순화된다. 어쩌면 폭력을 없앤다면 옛날 삶의 현장에서 악다구니 써가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 치열한 모습을 보였던 산업화 시대의 우리 어머니·아버지들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천 한 부둣가에서 일을 묘사하던 저자의 손끝이 가르키고 있는 곳은 열흘 후의 청주 OO여자교도소. 이날 석방되는 사람들이 철커덕! 하는 쇳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고 물밀듯이 밀려나온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자 혜수만 남았다. 저자는 재빨리 그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165센티미터의 키에 야구 모자를 대충 눌러쓴 단발머리. 마중 나온 사람은 한 명 없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툭! 하고 보스턴 가방을 내려놓더니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마음껏 빨아들이며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다. 대합실 속으로 스며들자 혜수는 그저 평범한 30대 여성의 모습일 뿐이다. 아무도 그가 교도소에서 이제 막 나온 사람으로 보진 않는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활기찬 인파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편의점 냉장고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와 시원한 냄새가 전율을 일으킨다. 유제품 진열대와 라면 코너에 눈이 가면서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낀다.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음료수 하나 사먹지 못하고 슬쩍 소매에 감추고 나온 혜수의 행동은 범죄 습관을 버리지 못한, 바깥세상에 융화되지 못한 혜수의 모습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아무렇지 않게 터미널 전광판을 살피던 혜수의 눈에 비친 TV 화면이 혜수의 눈을 반짝이게 한다. [속보] 인천 부두 인근 해상서 40대 여성 시신 발견.

사건 현장이 TV 화면에 비춰지고 있다. 솨아~ 인양되는시신에서 대량의 바닷물이 쏟아졌다. 시신은 마치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이 하얀 천에 덮인 채 구급 차량에 실렸다. 이때 TV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된 사체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교도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왕언이의 호랑이 문신의 일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함께 목욕하던 혜수에게 문신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돌아서서 인파를 빠져나오는 혜수의 입가에는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헛웃음이 감돈다. 

여기까지 〈프롤로그〉에서 보여지는 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이 등장한 모습이다. 〈프롤로그〉에서 보여진 사건이 이 작품 속 주요 사건이라고 독자들이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는 앞으로 5부에 걸쳐 벌어지는 사건의 하나의 암시일 뿐이다. 소설은 이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1부의 맨 앞머리에 저자 고호는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한 마디로 인간 세상 모든 일들은 전적으로 어리석음의 독무대라 하겠습니다."

헤수가 다시 사회로 나와 생활하려면 당연히 주거지가 급선무다. 혜수는 인천의 변두리, 전망은 바다가 보여서 그런 대로 괜찮은 그저그런 동네의 집을 임대 계약한다. 우연히 동인천여고(실재하는지는 모르지만) 9회 졸업생이라는 동기 세영을 만나게 된다. 동창이 세를 내어줄 집주인이다. 묘한 기분에 혜수의 온몸이 활활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혜수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저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다음 표현으로 슬쩍 예측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얻는 지혜라는 게 있다.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해선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반가운 조우가 다른 누군가에겐 고통일 수 있으니까. 가령, 과거와 단절하고 결혼생활에 찌든 기혼여성과 수년 만에 마주친 옛 미혼 친구가 딱 그렇다. 반가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안 그래도 없는 형편에 축의금을 뜯어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 살 저 살 보태서 어디에 또 말을 나를지 모르는 사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 버렸으니 미래를 점치는 것 또한 어려울 게 없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그런데 김세영, 저 계집애는 아무래도 나이만 허투루 먹었지 싶다."(p.20~21)



이 소설의 소설 외적인 재미 중의 하나가 〈쿠키(cookie)〉의 활용이다. 쿠키란 인터넷 발달과 함께 정립된 용어로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임시 파일을 말한다. 이용자가 본 내용, 상품 구매 내역, 신용카드 번호, 아이디(ID), 비밀번호, IP 주소 등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일종의 정보파일이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인터넷 브라우저는 사용자가 방문한 웹주소를 지우지 않고 기억했다가 다음에 사용자가 이전에 방문한 주소를 몇 자 입력하면 나머지를 기억하여 모두 나타내어 사용자가 나머지 주소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 그렇게 기억된 이전에 방문했던 주소를 쿠키라고 하고, 쿠키를 통해 다시 방문할 때는 주소를 다 입력하지 않아도 되며, 아이디나 비밀번호도 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쿠키라는 명칭은 파일 용량이 작고, 이용자의 방문정보들이 마치 과자를 먹으면 으레 남겨지는 과자부스러기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이 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웹브라우저는 쿠키 기능을 갖고 있으며, 네티즌이 쿠키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쿠키는 원래 네티즌들의 홈페이지 접속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웹사이트에서 쿠키를 사용할 경우 이용자는 처음 들어갈 때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다른 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ID와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쿠키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용자는 동일 웹사이트에서 다른 서비스 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회원정보를 계속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전자상거래를 할 경우 대부분의 전자상거래용 웹서버에서는 이용자가 쿠키를 반드시 사용토록 하고 있다. 

이런 의미의 쿠키를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에필로그처럼 덧붙였다. 그것도 본문체가 아닌 변형 고딕으로 눈에 훨씬 잘 띈다. 쿠키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주 늦은 밤. 분홍색 줄무늬 윗도리, 청색 멜빵ㅈ바지, 강아지가 그려진 파란색 양말, 녹색 찐빵 모자. 그때 나의 옷차림새가 그러했고, OO각 내부 깊이 자리한 작은 방 문을 열었을 때, 안에서는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드라마는 우리 엄마도 즐겨 보던 것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여자가 철조망을 붙들고 울부짖는 모습이었는데,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 모습이 마치 아까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 같았다. 엄마도 날 보며 그렇게 울었다. '어서 도망쳐! 빨리!' 나쁜 아저씨들한테 끌려가면서 그렇게 울었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그 드라마 제목이 〈여명의 눈동자〉였다. 그러니 그때가 아마 1991년 10월 내지 11월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p.326)




쿠키의 마지막 부분은 저자의 이 작품 집필 취지도 살짝 더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척 센시티브한 작가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부모와 자신 간의 인연은 '천륜'이라 한다. 혜수 언니는 이제 그마저도 '철륜'의 시대가 왔다며 충분히 끊어낼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까닭은 천륜에 버려진 나를 구원한 '인륜'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보잘 것 없는 인륜이 저주받은 천륜ㄴ보다 그 매듭이 더욱 견고할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의 한켠에 혜수 언니도 자리 했었노라고, 또 언제 나와 엮은 그 매듭은 그 자리에 두고 왔을 뿐이라고 언젠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소설에서 쓰인 문장 가운데 얼핏 많이 들어본 문장 같기도 하고, 확실치는 않지만 생각할수록 '맞는 말' 같기도 한 문장들이 자주 발견된다. 저자의 글쓰기 능력에 따른 것이겠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써 전체 내용을 더욱 강조하는 문장들이다. 몇 개만 여기에 적어본다. 


"명문 같기도 하고, 이래서 신은 공평하다고들 하는 걸까? 옥녀는 스스로 얼마나 예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미모를 이용해 먹을 머리는 없었다."(p.48) 

"혜수는 할 수만 있다면 그 작고 쪼글쪼글한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p.172)

"이번 일은 세영 못지않게, 아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극한 인생을 살아온 홍희란 자식의 목숨값을 훔치려는 일이다."(p.245)

행운을 보낸 건 여신이지만, 그 행운을 활용하는 건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p.254)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드라마 계약 체결)』,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드라마 계약 체결)』, 『노비 종친회』,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평양골드러시(드라마 계약 체결)』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황토현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국회의장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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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 강대국을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폴 몰런드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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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구 문제는 세계적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국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른바 '인구 절벽'이라는 문구가 크게 부각된 상태다. 이는 불과 10년 전 '100세 시대' 개막이란 소식과 함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점점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두 차례 세계대전 직후 인구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전 세계 인구는 꾸준히 증가돼 왔다. 이대로 가면 '100억 인구'의 시대가 곧 닥칠 거라는 인구 증가의 폐해를 말하는 경고성 발언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문제로 국가적 위기의 시대로 인구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취업률이 감소하고, 실업 상태의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는 상태를 지속하다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은 결혼을 포기한 채 혼자 살겠다고 돌아섰다. 

이 현상을 자조적 유행어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어려운 수학 때문에 대학을 못 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신조어가 '수포자'였다. 이와 비슷하게 나타난 신조어가 '3포 시대', '5포 시대'다. 취업이 어렵고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도 없어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이들 양육비(사실상 교육비)가 너무 많아 결혼 상태에서도 자녀를 포기하겠다는 사람, 뛰어오르는 집값을 따라잡지 못하는 데 따른 '내집 포기'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8명에서 또다시 감소하여 0.72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실 지난 2015년부터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결혼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내집 등 포기하는 항목이 늘어나 지금은 'N포 시대'란 말도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삼포시대나 오포시대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결혼을 안 하겠다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들이 독립하여야 한다는 당위적 압박감으로 '1인 가구'가 늘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이 없고 아이들이 커서 경제활동을 할 나이가 되면 인구는 급감하게 된다. 이때부터 인구문제를 해결하려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론적 주장도 있다. 경제 인구의 감소로 인한 연금이나 건강보험 문제 등도 현안으로 떠오른다.



급격한 인구의 감소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일까, 아니면 또 다른 역사적 변곡점의 시작일까? 이 책 『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는 전 세계 인류의 증감에 따른 사회 문제, 나아가 전 인류의 존속의 문제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집필됐다. 유엔은 세계 인구가 2100년까지 멈추지 않고 증가하여 110억 명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인구 성장이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나라는 폭발적인 인구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또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인 나라들도 있다. 세계적인 인구학자인 저자 폴 몰랜드는 이 같은 변화들이 모두 정상적인 인구 물결의 흐름 중 하나라고 말한다.

지난 200년 동안 인류는 역동적인 인구 물결의 흐름 속에서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인구 혁명은 국가의 흥망성쇠나 권력과 경제의 대대적인 전환에도 관여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 책은 역사를 관통하는 역동적인 세계사일 뿐 아니라 자녀 대부분이 성년기 이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평생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본 적 없이 아파트에서 고독사하는 일본 노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기회를 찾아 지중해를 건너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 논저에 담았다. 저자는 이 같은 인류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서술하였으며, 역사를 관통하는 인구 물결의 변화와 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개의 파트(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구와 역사〉, 2부 〈유럽에 밀려드는 인구 물결〉, 3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몰아친 인구 물결〉 등이다. 저자는 1부 「서문」에서 역사 속에서 인구 변화가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추적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그렇지만 출생률과 사망률의 상승과 하락, 인구 규모의 팽창과 위축, 이민의 급증과 감소 같은 중요한 인구 추세가 역사를 결정 짓는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인구가 운명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구 자체가 원인이며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발적이든 다른 무수하고도 복합적인 요소를 원동력으로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구의 꾸준한 성장 추세가 역병, 기근, 전쟁으로 역전되는 암담한 이야기는 수천 년에 거쳐 되풀이되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삶은 열악하고 야만적이며 짧았다. 식생활에서부터 주거 환경, 출생과 죽음의 모습, 무지, 열악한 위생과 건강에 이르기까지 산업화 이전이나 산업화 초기 사회에 살았던 보통사람의 생활상은 오늘날의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이를 테면 스페인 포도주 생산 지역의 농가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농번기가 닥치면 어린아이를 둔 여성을 비롯한 모든 일손이 동원되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악취 나는 기저귀'를 찬 채로 홀로 울고불고 배고파하는' 상태로 방치되곤 했다. 혼자 남은 아이가 집 안팎을 돌아다니던 닭에게 눈을 쪼이거나 돼지에게 손을 물어뜯기거나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무심코 문간에 놓아둔 양동이와 물통에 빠져 죽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러니 18세기 스페인에서 첫돌을 맞이하기 전에 목숨을 잃은 영아가 25~30%에 달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피레네 산맥 너머 프랑스의 (인구 과반수를 차지하던) 일반 농민 역시 그리 나을 것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대다수 지역의 농촌 생활은 18세기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시골 주민들이 살았던 삶과는 판이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선진국의 도시에서조차 비참한 생활이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되었다. 변화는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몇 년 동안의 뚜렷한 발전에 주목했다. 한때 어두침침했던 거리는 전깃불이 밝게 비추었고, 좀 더 산뜻하고 좀 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둔 상점이 "유혹적이고 기발한 신제품"을 진열했으며,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가 등장했는가 하면 한때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쾌적한 설비와 사치품이 중산층으로 전파되었다. 더 이상을 물을 우물에서 길어 올리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불을 "수고롭게 벽난로에서 지필" 필요가 없어졌다. 위생이 개선되었고 오물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기본적인 생활수준이 해를 거듭하며 향상하여 "대중의 빈곤이라는 궁극적인 문제마저 이제는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저자는 이와함께 극적인 변화가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19세기는 물질적 환경, 영양, 주거지, 건강, 교육이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 경제적인 현상이었지만 인구학적인 현상이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성년기까지 생존할 확률, 그때까지 생존한 사람들이 낳을 자녀의 숫자, 사망하는 아이, 다른 지역이나 나라나 대륙으로 이주할 가능성 등과도 관련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생활수준 향상은 인구 데이터와 그 가운데서도 출생률과 사망률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최근 200년 동안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은 현저히 낮아진 영아 사망률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영아나 유아가 사망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고 거의 모든 출생자가 최소한 어른이 될 때까지는 생존하는 데 따른 결과다. 이외에도 기대수명이 대체로 연장된 것도 차이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기대수명의 연장은 영아 사망률과 아동 사망률뿐만 아니라 중년 사망률까지 크게 하락하고 노년기는 물론 100~200년 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나이까지 생존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늘어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렇게 인간 수명의 대폭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세계 인구수는 18세기 중반 이후 크게 늘어났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세계 인구는 10억 명도 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70억 명이 넘는다. 현재의 정치·경제·사회가 과거와 속속들이 다르듯이 인구 역시 그때와 매우 다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추세는 1800년경에 영국제도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으로 확산되더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아프리카의 대다수 국가는 여전히 과도기를 거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로이 진행하는 중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현재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여성 한 명당 자녀 수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의 세계 평균(4명)을 웃도는 나라는 6개국도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전한다. 또한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기대수명이 60년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한 군데도 없다. 참고로 기대수명 60년은 1970년대 세계 표준이자 그 얼마 전인 1950년대의 유럽 표준에 가까운 수치라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철학자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기본 요소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떤 학자는 물질의 어마어마한 힘이 (인류 역사의 세부사항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적인 윤곽을 결정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사상의 전개 과정이 역사의 핵심을 이룬다고 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돌발 사고와 우연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므로 전개되는 사건의 배후에서 큼직큼직한 원인을 찾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위인들의 창조물'로 보던 때도 있었다. 이 가운데 그 어떠한 접근법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며 역사에 대해 타당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오랜 시간과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난 인류의 상호 작용은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하여 이론가 한 사람이 요약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중심 이론이다. 과거를 이해하려면 물질의 힘, 사상, 운명은 물론 위인과 위인간의 상호작용까지도 전부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지난 2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인구 혁명은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고 단언한다. 인구 혁명은 국가의 흥망성쇠나 권력과 경제의 대대적인 전환에도 관여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인국 혁명의 이야기는 한 세대 만에 낳은 자녀 대부분이 성년기 이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평생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본 적 없이 아파트에서 고독사하는 일본 노인들의 이야기이자, 기회를 찾아 지중해를 건너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구 문제는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인구는 삶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인구는 기술 혁신, 경제 발전, 신앙과 이념의 변화 같은 원인 요소와 나란히 이해해야 할 사안이지만 인구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게 저자의 소신이다. 예컨대 페미니즘 운동이 인구 변화의 전조인지, 원인인지, 아니면 그 결과물인지 확실히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인구 변화가 어떠한 상호작용을 나누었는지 도표를 그릴 수는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 이념은 (여전히 불균형을 탈피하지 못한) 사회와 경제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혼전 성관계의 용인이나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가 그 단적인 예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성관계와 성별에 대한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은 경구피임약이 발명되고 그에 따라 출산 선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경구 피임약 역시 여러 남녀의 독창성과 투지가 낳은 산물일 뿐 아니라 성생활, 성적 취향, 성별에 대한 인식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서 용인될 뿐 아니라 기업과 비영리 단체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페미니즘, 피임 기술, 성관계와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모두가 출산율 저하에 일조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구학을 유사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관과 혼동하여 세계 모든 역사의 숨겨진 요소를 '계층'에서 '인구'로 대체하려는 것도 그릇된 시도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구학만을 분리하여 보는 태도는 지난 200년 동안의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를 놓치는 길이기도 하다. 인구의 꾸준한 성장 추세가 역병, 기근, 전쟁으로 역전되는 암담한 이야기는 수천 년에 걸쳐 되풀이됐다. 그러나 1800년경부터 인류는 자신들의 숫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고 그로써 아주 멋진 결과를 얻었다. 인구학은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학문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학문으로 바뀌었다. 출산률과 사망률의 하락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몇 세대씩 걸렸던 전환이 이제는 수십 년 만에 이루어진다. 디지털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트렌드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산업혁명의 시작과 대영제국의 흥망성쇠, 독일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도발,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로 부상한 미국, 중동에 대변혁을 몰고 온 아랍의 봄, 일본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번지고 있는 저성장 기류,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까지. 이 모든 역사적 현상의 기저에는 바로 ‘인구’가 있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다. 


미국이 유럽의 그 어떠한 강대국보다 몇 배나 많은 인구를 보유하게 됨에 따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럽 열강들의 세계 지배는 끝이 났다. 미국은 유럽보다 시장도 더 컸고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잠재력도 더 컸기 때문에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의 절대적 규모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요소는 인구 규모였다. 1870년에 미국 인구는 영국보다 3분의 1가량 많았으며 경제 규모는 동일했다. 두 나라 경제의 상대적인 위치가 1인당 소득 기준으로 반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의 상대적인 규모가 뒤바뀐 데는 인구의 상대적인 규모가 뒤바뀐 것이 훨씬 더 크게 작용했다.(p.200)


저자 : 폴 몰랜드(Paul Morland)


영국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의 연구원으로 인구학 권위자이다. 독일과 영국 두 개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런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인구 공학 : 인종갈등과 인구전략 Demographic Engineering: Population Strategies in Ethnic Conflict』이 있다.


역자 : 서정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냇웨스트, 크레딧 스위스 등의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근무했고, 이화여대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엘리트 세습』, 『인구의 힘』, 『부의 선택』, 『너를 놓아줄게』, 『리스크의 과학』, 『증거의 오류』, 『에지전략』, 『은행이 멈추는 날』, 『치킨쉬트 클럽』, 『정면돌파』,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화성: 마션 지오그래피, 붉은 행성의 모든 것』, 『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음악』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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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라이즈 포 라이프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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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대로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경향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 책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의 편역자 김요한은 지적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칭할 수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능을 가진 인간이란 뜻인데 '지능'이란 단어와 '생각'이란 말은 동의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비슷한 의미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인공지능(AI)에도 뒤떨어지고 마침내 AI의 로봇의 지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과학이나 철학의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미래'에 대한 문제이다. 이 책 표제어에서 문득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니체다. 이 두 사람은 거의 19세기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들이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삶이 곧 고통'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끝없는 사유로 삶의 지혜를 제시했다. 많은 세계 명사들에게 영향을 미친 니체 역시 삶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깊은 성찰로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또 두 철학자는 19세기 독일 철학자라는공통점도 있다. 세계 어느 대륙이나 전쟁이 잦았지만 유럽은 로마 제국 때부터의 영향인지, 이웃한 각 나라들이 친구처럼, 또는 적처럼 지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듯하다. 국경이 있지만 오가는 데 큰 어려움도 별로 없다. 개방된 문화 탓이리라.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백인종으로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자신들이 이어받았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 철학자가 19세기 독일인이지만 쇼펜하우어가 1788년 생이고, 니체는 1844년 생이니만큼 쇼펜하우어가 더 앞선 세대의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독일, 독일인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가 1870년 비스마르크 이후라고 보면 두 철학자가 살았던 독일은 서유럽에서 조금은 뒤떨어진 문명임은 틀림없는 시대다. 상대적으로 넓고 비옥한 영토의 프랑스와 섬나라의 한계를 해외 개척으로 세계 최대의 나라를 확장한 영국에 비해 조금은 뒤처진 국토 환경이다. 산악지형인데다 바다에 접한 해안선이 짧고 그마저 대서양으로 가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야 한다. 해외 진출의 조건이 열악한 셈이다.



두 사람의 철학은 신(神)의 개념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었던 배경도 있다.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것은 프로이센에서 저먼(게르만)이란 명칭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 비스마르크 재상 이후부터다. 독일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가장 밑바탕이 된 학문은 철학도 인문학도 아닌, 과학이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지만 독일은 두 차례 모두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이었다. 억눌렸던 그들의 민족성이 과학의 탁월한 발달로 서구뿐만 아니라 세계 패권을 꿈꾸었으니 서양 문명이 호전성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의 역자 김요한은 철학은 '생각과 창조'를 무기로 발달한 학문이고, 유효한 수많은 사상과 지혜를 선도해 왔는데 오늘날 현대인은 미디어가 쏟아내는 콘텐츠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역자는 생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쇼펜하우어의 수많은 아포리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 니체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여야 ‘내일의 나’가 태어난다. ‘새로운 나’로 변하려면 기존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지금 내 삶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은 니체의 저서 중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았다. 또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짧고 간결한 문장과 쉬운 번역을 택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니체의 번역서가 나왔지만, 니체 철학이 지닌 독특함으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니체의 핵심 사상에 바로 접근할 수 있으며, 무수한 삶의 위기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늘날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역자는 책 앞 부분 〈옮긴이의 말〉을 통해 4차 산업의 혁명과 함께 인공지능(AI)의 발달, 무수한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의 삶은 버겁고 힘들다고 말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니체의 메시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니체의 번역서가 나왔지만, 니체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논쟁은 독자들에게 ‘읽기 어려운 책’으로 각인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니체의 철학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독자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도록 도와준다. 책의 출간 이유다.

이 책은 세 가지 큰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현대사회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엄선했다. 둘째, 니체 원문의 느낌과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개인적 해석이나 표현을 최소화했다. 셋째, 글보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현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했다. 이 책은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하여 독자들이 니체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따라서 삶 속 모든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도, 항상 희망의 빛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여정이 이 책을 통해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2장 〈깊은 질문에 답하다〉, 3장 〈깨달음으로의 고통스러운 여정〉, 4장 〈우리,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의 삶〉 등이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이해하기로는 쇼펜하우어가 삶의 바탕을 '고통'에 두었다면 니체는 '절망'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독자의 느낌이어서 내세울 바는 못 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세상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절망서 시작하게 된다.



역자는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책 앞 부분에 두고 '서문'을 대신하고 있다. 그 마지막을 책의 이해를 위해 역자가 제시한 문장 「지금 절망 속에 있다면」도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다 할지라도, / 작은 틈 사이로 비춰 나오는 태양을 추구하라. // 절망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니." 4개의 장에는 모두 166개의 문구가 제목을 이루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을 연결해 읽는다면 이 책의 구성이 역자의 니체 철학에 대한 이해에서 선정된 유기적 구성이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현대인은 존재의 의미(생각을 잃어버려서)를 되찾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깊은 질문을 하고 성찰과 사색을 거듭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내야 한다. 그 길의 여정은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존재하는 한 감내하고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 우리,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의 삶'이다. 이 책의 130번째 소제목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용해 본다.

이 거리의 혼란 속에서, 필요한 목소리들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우울한 행복을 준다. 얼마나 많은 즐거움, 급함, 욕망이 여기서 매 순간 드러나는가. 얼마나 많은 목마름과 흥분이 나타나는가. 그러나 곧 이 모든 시끄러운, 생기 넘치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곧 조용해질 것인가. 모두의 그림자, 그의 우울한 동반자가 그 뒤에 서 있다.

이것은 항상 이민선이 출발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과 같다. 사람들은 서롤에게 할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많고, 시간은 촉박하며, 모든 소음 뒤에는 외로운 침묵으로 기다리는 바다가 있다. 그렇게 탐욕스럽고, 자신의 먹잇감을 확신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모두, 모두가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사소한 일이었다고, 가까운 미래가 모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이러한 서두름, 이 소리 지르기, 이 자신을 귀머거리로 만들고 자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있다.

모두가 이 미래에서 가장 앞서고자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죽음의 고요함만이 이 미래에서 모두에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유일한 것들이다. 이 확실하고 모두에게 공통적인 유일한 것이 사람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죽음의 형제애로 여기는 것에서 가장 멀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죽음을 전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삶에 대한 생각을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 심지어 백 배나 더.(p.179~180)



자본주의가 덜 익숙했던 니체의 시대에서도 당연히 가난에 대해 좋아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가난'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가난함을 필연적인 것으로 아름답게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그것 때문에 고통받거나 운명을 원망하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고 풀어간다. 그리고 니체는 "이건 마치 현명한 정원사가 자기 정원의 작은 물줄기를 분수로 만들어 자연의 여신의 손에 맡기는 것처럼 가난함도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연의 여신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라고 되묻는다. 다만 "그 누군가가 당신은 아니길 바란다."(p.41)고 덧붙인다.

25번째 「삶이란 무엇인가?」도 눈길을 끈다. "삶이란, 우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것이다. 삶이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약해지고 늙은 모든 것에 대해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다."라는 가설을 앞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죽어가는 자, 고통받는 이들, 나이 든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말라는 것일까?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을 해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지혜로운 모세는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p.43) 

이 책의 2장 〈깊은 질문에 답하다〉 34번째 소제목은 이 책을 펴낸 역자 김요한의 생각과 가깝게 이해된다. 역자는 현대인의 삶이 생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전제했다. 34번째 소제목은 「고통에 관한 생각조차 견디기 어려워하는 시대」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과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가다. 이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영혼의 고통에도 해당된다.

현대인들은 아마도 과거에 사람들이 폭력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폭력적이 되어야 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신체적 고통에 대해 잘 모르는 허풍쟁이와 환상가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신체적 고문과 박탈을 오랫동안 견뎌냈으며, 고통을 자신의 보존을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봤다. 그들은 고통에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고, 기꺼이 고통을 가하며 다른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일을 보고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했다.

영혼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을 통해 알든 설명을 통해 알든 간에, 일부는 그것을 고급문화의 징표로 여긴다. 호긍ㄴ 일부는 영혼의 슬픔을 전혀 믿지 않으며, 그것을 언급할 때 신체적 고통의 경험을 떠올린다. 역자의 주석도 명쾌하다. 비관주의적 철학의 출현은 실제 고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삶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이미 사람들이 겪는 작은 불편함을 너무나도 크게 느끼는 시기에 나타난다. (중략) "결국, 고통에 대한 해결책은 고통 그 자체다."(p.61~62)



'신은 죽었다' '망치를 든 철학자'로 깊게 각인된 니체는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했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망상으로 도덕이나 종교, 문화, 역사 등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는 유대인 혐오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니체도 '음악'과 '사랑'에는 매우 부드러웠던 것 같다. 157번째 제목 「음악과 사랑」(p.209)에서 니체는 "음악을 강상하는 경험은, 우리가 먼저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뚜렷한 주제나 멜로디를 정확히 듣고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음악은 우리를 사로잡는 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황홀하게 한다."고 말했다.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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