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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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건너가는 자』의 저자 최진석은 우리 철학계, 특히 '장자'에 대한 뛰어난 탐구로 잘 알려져 있다. 독자는 지난 2018년 그의 강렬하고도 인상적인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통해 처음 알았다. 『탁월한~』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독자에게 낯선 영감을 주면서 다시 책을 읽게 하는 직장인으로 변모시켜 주었다. 그 책에서 받은 저자의 탁월한 시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산업화 시대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라고 회자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간)보다 탁월한 철학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탁월한~』은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철학의 탄생과 의미를 파고들며,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았고, 우리에게 ‘인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준 책으로 기억한다. 독자가 읽은 책은 개정판으로 초판이 출간된 이후에 전개된 국내 사회 정치의 현실과 전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한 소론까지 추가하여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고 저자가 〈서문〉을 통해 밝혔었다.

『탁월한~』에서 저자는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후 저자의 책은 그의 '노장 탐구' 덕택에 노자와 장자의 철학으로 점점 깊이를 더했다. 이번에 출간한 이 책 『건너가는 자』는 노장 철학과 요즘 우리 서점가를 몇 년째 열풍으로 몰아놓은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과도 결이 비슷한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반야심경〉을 해석하고 있다.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반야심경〉의 사상이 먼저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니체,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하고, 조금은 낯설던 쇼펜하우어의 철학까지 전에 없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철학자들은 인생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세상을 고통스러운 곳으로 바라본다. 그런 동시에 이 고통을 헤쳐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다만 이처럼 비관적인 시선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는 철학이 관심받는 현상은 조금 안타깝다고 철학자 최진석은 말하고 있다. 지금이 여느 때보다 약간은 더 고통스러운 시대라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통이 만연한 시대일 때면, 동양 철학은 어떤 지혜를 건네왔을까. 이 대답을 위해 이 책 『건너가는 자』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철학자 최진석은 인생이라는 고통을 건너는 법, 아주 오랜 시간에도 낡지 않는 ‘건너감의 지혜’가 바로 반야심경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 맞게 읽어내는 ‘타인에게 베푸는 지혜’부터 시작해, 여섯 방식의 지혜와 그 실천법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건너가는 자』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반야심경을 풀어낸 지혜의 정수다.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통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인류의 고전이 답하는 ‘건너감의 지혜’를 탐독해본다.

불교인이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야심경〉을 잘 알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많은 불경 중의 하나라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 사실 TV나 소설 속에서 〈반야심경〉은 자주 인용된다. 심지어는 〈반야심경〉가 주제가 되어 영화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화면 속이나 실제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을 때면 으레 외우는 불경이 〈반야심경〉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야심경〉이 어떻게 알려져 있든 불교의 기본 성전임에는 변함이 없는 고귀한 책이다. 저자도 「세계의 법칙을 비추는 반야의 길」이라는 제목의 〈서문(들어가며)〉에서 〈반야심경〉은 불교라는 종교의 경전이면서 만물의 형성 원리를 다루는 동시에, 삶의 태도에 관한 철학서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 『건너가는 자』가 〈반야심경〉의 지혜를 탐구하는 책임을 전제한다. '익숙한 이곳에서 새로운 저곳으로 건너가는 삶의 태도'라고 〈반야심경〉의 성격을 밝힌다. 이 책 『건너가는 자』가 특별하고 탁월한 이유는 물리학과의 관계를 밝혀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물리학의 이론이 고정불변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리학이란 기존 이론과 이를 전복하려는 새로운 관점들이 제시되고 치열한 패러다임 전환을 노리며 지금도 이론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등 오감으로 느끼는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런 세계를 물리학에서는 '거시세계'라고 한다고 말한다. 거시세계에서 작용하는 운동의 법칙을 첫 번째로 정립한 이가 뉴턴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고전역학'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거시세계가 있다면 당연히 미시세계도 있을 것이다. 미시세계란 원자와 원자 사이의 세계, 즉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작디작은 세계를 뜻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자와 원자간의 운동은 우리가 직접 느낄 수 없는 동시에, 거시세계의 고전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으로는 온전히 해석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된다. 이에 따라 미시세계의 운동 법칙에는 또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그 이름이 '양자역학'이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은 등장 그 자체로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양자역학이 작용하는 미시세계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인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자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고전역학에서는 파동과 입자는 그 성질이 현격히 달라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숱한 논쟁을 거쳐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보니 빛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두 성질을 동시에 띠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밝혀낸 상태다. 또 다른 예로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이 있다. 두 개 이상의 입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 입자에 대한 작용이 다른 입자에도 즉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양자 얽힘 현상을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관측 대상 사이에 아직 알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철학도 어려운 학문이고, 물리학도 어려운 학문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철학자가 물리학을 관심을 갖게 되고, 반대로 물리학자가 철학에 의거에 연구를 한다면 제대로 된 학문이 될까? 하는 의혹만 자꾸 드는 독자는 역시 문외한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철학 물리학 두 분야에만 문외한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배움도 별로 없는 문외한 수준이라고 자인하는 셈이다. 독자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자각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모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철학자 최진석이 물리학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독특하지만 연관이 깊다는 점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이야기가 '건너가는' 태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고전역학이 전부이던 시대의 사람들이 빛의 이중성이나 양자 얽힘처럼 직관을 벗어난 양자역학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양자역학은커녕 상대성 이론이 처음 나올 때도 쉬이 수긍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한참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그 과정 전체가 자연스러운 과학의 발전으로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리고 이는 물리학에서만 일어나는 건너감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영역에서든 적용된다는 저자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저자는 〈반야심경〉의 공(空)에 관해 양자역학처럼 감각과 직관으로 쉬이 이해되지 않지만 재미있게도 〈반야심경〉과 양자역학 사이에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러한 성질인 것은 없다'라는 말이라고 풀어 설명해 준다. 즉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는 말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공이라고 한다. 무엇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없는 것에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잠시 관계를 맺고 얽혀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은 없고, 오로지 관계 맺고 엮이는 방식에 따라 잠시 그것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이라고 분석한다. 이를 불교의 용어로 인연생기(因緣生起)라고 한다. 놀랍게도 빛의 성질과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이를 밝혀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다시 한 번 감복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간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의 진실을 마주한다〉, 2장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니, 반야의 지혜를 딛고 저쪽으로 건넌다〉, 3장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 4장 〈뒤집힌 생각을 바로잡아, 가장 탁월한 길을 선택한다〉, 5장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갈 뿐이다〉 등이다. 5장으로 나눈 것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전문(全文)을 책 앞 부분에 싣고 이를 차례로 설명하기 위함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서 불교의 기본 성전으로 대승불전의 하나라고 한다. 이 책 『건너가는 자』에도 저자가 자세한 풀이를 하고 있지만 산스크리트어에 의한 원제는 『프라지냐파라미타 프리다야 수트라(Prajn?p?ramit? hrdaya s?tta)』(반야바라밀의 심수인경전)이다. 산스크리트 원전(대품·소품의 2종) 외에 티베트어역과 7종의 한역이 현존한다. 일반적으로 당의 현장이 번역한 276자의 한역(소품에 상당)이 알려졌고, 현장의 〈대반야경〉 600권의 정수로 보았다. 내용은 표제대로 광대한 반야경전의 심수를 매우 간결하게 정리한 것으로, 관자재보살(관음)이 반야바라밀다(완전한 지혜)의 행을 수행해서 오온(五蘊, 존재의 5가지 구성요소)이 공(무실체)이라고 깨달은 것에서 발하며, 불제자 사리자(舍利子)에 대해서 일체의 존재가 공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최후에 진언을 주장했다. 특히 물질적 존재는 무실체이며, 무실체인 것이 물질적 존재라는 의미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문구는 잘 알려져 있다고 종교학대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1~5장은 〈반야심경〉 전문에 대한 해석과 여기에 쓰인 용어의 자세하고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저자가 연구해온 결과에 대한 풀이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경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반야심경〉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읽고 음미하는 것이란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구체적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는 뜻이다.

1장의 핵심어로 저자는 '고삐'란 말을 꼽는다. 여기서 고삐가 내포한 의미를 철학 혹은 이상이라고 저자는 풀이하낟. 경영은 비전과 꿈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비전과 꿈을 세상에 펼치는 일을 뜻한다고 밝힌다. '경(經)'에서 시작해 경영(management, manage)를 돌아 고삐에 이른 이야기는 기업과 정당 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도 전개한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해당된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고삐가 무엇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5장에 걸쳐 본론을 설명해가며 마지막 「경전을 족쇄 아닌 등불로 삼길」 바라며 쓴 〈에필로그(나오며)〉를 통해 '고삐'에 대한 의미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다. "우선 내 고삐는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삐라는 화두를 놓치면 안 됩니다. 자기 고삐를 찾는 일은 잊어버린 채, 남이 찾아놓은 고삐만 죽어라 쫓아다니면서 스스로 괜찮게 사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되레 이보다 바보 같은 일을 찾기가 어렵지요. 그러면 어떤 경전을 읽어도 진보가 없습니다. 쌓인 글자 수, 넘긴 페이지 수가 늘어난다고 진보가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답답하고 우왕좌왕하고 행복하지도 않고 빛도 보이지 않고 뭐가 뭔지를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 고삐가 없기 때문이지요. (중략)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이유는 종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경전을 읽고서 주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주인 말입니다. (중략) 붓다가 설법한 주제는 딱 하나입니다. 우리 각자가 붓다가 되어, 붓다의 마음을 품고, 붓다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붓다의 수준으로 사는 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붓다의 이런 마음과 눈과 수준은 모두 '자비심'이 들어 있습니다."(p.306~307)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건너가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건너가라는 것일까? 이 질문에 반야심경은 답한다. 그 무엇은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라고. 내용이 정해져 있다면 모두가 똑같은 노선과 내용을 습득해야 한다. 고정된 어떠한 배움을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고정되고 불변한 것은 없으니, 건너감의 지혜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형식만 존재하니, 그 내용은 자신에게서 채우면 된다.


저자 :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가(道家) 철학자인 그는 원래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독일 유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독일철학을 공부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책을 읽곤 했는데 우연히 책꽂이에서 발견한 장자를 읽으면서 재미에 푹 빠져 편안하게 즐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란 생각으로 동양철학으로 바꿨다. 게다가 유가(儒家)보다는 도가(道家)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짜릿했다. 저자가 노장 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유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이고 욕망에 집중하며 살라고 권한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가 주체적이고 욕망하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2021)』 『나 홀로 읽는 도덕경(2021)』 『탁월한 사유의 시선(2018)』 『경계에 흐르다(2017)』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2015)』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 등이 있고, 『장자철학(2021)』 『노장신론(1997)』 등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으로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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