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 패러독스 3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다소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이론, 예상 표절


내가 '피에르 바야르'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마주한 것은 몇년 전... 아마 이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봤던 것 같다. 그때는 그저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로 읽었었다.

분량이 적은 편인데 이번에 읽으면서도 평소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책 제목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표절은 과거에 있던 작품을 이후 사람이 베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간 개념'에 대한 생각을 전환한다. 과거의 인물이 미래의 인물의 작품을 훔쳐서 자신의 작품에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일부 비평가들이 믿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일상의 다양한 경험은 시간이 언제나 그렇게 흐르지는 않으며, 굳어버린 이 표상이 문학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게 분명해서 다른 시간 모델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p.18)


충격적인 주장이다. 저자는 이 시간에 대한 개념 재정립에서 더 나아가 표절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의를 할 것을 주장한다. 모든 표절에는 주 텍스트와 부 텍스트가 존재하는데, 고전적 표절(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표절을 의미)에서 주 텍스트가 부 텍스트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것과는 달리 예상 표절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때문에 표절은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를 두고 파악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피에르 바야르가 주장하는 새로운 시간모델에 따른 표절에 대한 개념 재정립은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다. 이 이론을 잘못 활용한다면 일반적인 개념의 표절을 정당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서하는 행위 자체에서 이뤄지는 문학 텍스트의 유동성 때문이다.


독서는 각 독자에게 텍스트를 복합적인 지위를 가진 텍스트로 대체시키는데, 대체된 텍스트는 다수의 시간망 속에 새겨져, 점차 멀어지는 첫 번째 텍스트와 비교해볼 때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텍스트가 된다. (p.61~62)


책을 읽는다는 것, 즉 독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읽히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계속해서 탈바꿈한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텍스트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담게 된다. 때문에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문학 텍스트의 극단적인 유동성은 우리가 대하는 제3의 텍스트가 어떤 점에서 두 번째 텍스트가 주는 효과가 아닌지 알기 힘들게 만들며, 진짜 예상 표절인지 표절에 대한 착각인지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두 텍스트 사이의 우연의 일치는 두 텍스트를 아는 독자의 눈에 소급적 흔적을 안길 뿐인데도, 첫 번째 텍스트가 두 번째 텍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그릇된 인상을 준다. (p.80)


벽에 부딪히는가 싶었는데, 저자는 또다른 쟁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다. 프로이트와 타우스크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피에르 바야르는 '아이디어'라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소유라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이디어가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동시대인의 머릿속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에 가로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주석에서 언급했던 타우스크와 프로이트의 관계에 관한 책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이했던 것 중 하나가 재인용된 구절들을 스쳐갈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니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을 놓칠 수 없었다. <선과 악을 넘어서>라는 니체의 책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앙케트>라는 책의 '카프카의 선구자들'이라는 글은 읽어보고 싶어졌다. 신선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이 책은 독서의 폭을 넓혀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예상 표절>에서 이야기하는 기존 개념에 대한 고정관념 파괴는 인상적이었다. 가끔 황당무계해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사유 자체는 광장히 흥미롭다. 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결말이 다소 모호하게 끝났다는 것. 확실히 예상표절이라는 개념은 아직까지 적용하기에는 확연히 틀이 잡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기존의 개념을 뒤흔드는 생각들을 계속해서 찾아보는 건 나름대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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