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들판 - 완결편 견인 도시 연대기 4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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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한참을 반추했다.


톰과 헤스터가 처음 만나 아웃 랜드에 떨어져 광야를 헤맸던 그 순간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던 그 사건들을.

한쪽 눈도 어그러지고, 반만 남은 코도 그나마 거의 뭉개지고, 크고 끔찍한 흉터를 갖고 평생을 살았던 트라우마와 컴플렉스 덩어리인 헤스터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톰의 삶을. 

눈 앞에서 부모님을 잃고, 죽었다가 기계로 되살아난 스토커와 함께 고철 폐기물 더미를 뒤지며 살았던 헤스터의 증오 가득했던 삶을.


견인도시 연대기의 전반부 두권이 간결하고 계획적으로 쌓아올린 서사였다면, 후반부 두권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사건의 중첩이었다.

전반부 동안 잘 쌓아올린 캐릭터들이 생명을 얻어 후반부는 제 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달까. 

3,4권은 1,2권보다 훨씬 활력 넘치고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사건들이 터져댄다.

물론, 톰과 헤스터의 딸인 렌의 등장으로 인물 자체가 늘어났고, 견인도시들과 반 견인도시 주의자들의 전쟁이 과열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정, 증오, 집착, 애착, 모성애, 부성애, 트라우마와 컴플렉스, 거기에 과거의 사건까지 수면위로 드러나며 감정의 화산들이 정신없이 터져댄다. 


이 책들이, 어쩔 수 없게도 뒤로 갈수록 점점 볼륨이 두꺼워지는데, 4권은 대강 봐도 1권의 두배는 된다. 

그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담겨있고,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연 영화화가 4권까지 된다면...

4권만 세편은 만들 수 있겠더라.

피터 잭슨이 워낙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즐겨 만들기는 하지만...이 시리즈는 순수하게 볼륨만으로 봐도 반지의 제왕보다 많을텐데...



3권에서 주역으로 등장했던 렌과 테오를 보며, 이제 이야기의 축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나 싶었는데, 그래도 역시 중심엔 톰과 헤스터가 있었다. 슈라이크도 다시 등장하고, 나가 장군과 위논 제로(나가 부인), 페니로얄과 피쉬케익까지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한다. 

안나-스토커 팽도 마찬가지. 


필립 리브가 이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이 있었음은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참 팔불출 딸바보 아저씨 같은 작가이다.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결코 숨기는 법이 없다. 

인물들이 아파하는 장면들을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하지만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고른 티가 역력하다.

그래서, 마지막 권을 맞아, 작가로서 감내해야했을 고통들이 느껴져서, 뭐랄까, 참 좋았다고 해야할까. 복받쳤다고 해야할까.


1권의 첫문장과 이어지는, 4권의 클라이맥스는, 아주 예상치 못한 바도 아니었고, 신선하지도 않았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시리즈의 대단원에 정말이지, 완벽한 마무리였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와,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기의 조화는 2권을 넘어서면 신선함을 잃지만, 3권부터는 인물들이 그 간극을 충실히 메꿔낸다. 예측 가능한 전개를, 예측 불가한 미로속에 적절히 잘 넣어서, 뻔한 사건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스토리 텔링의 센스 역시, 엄밀히 따지면 '익숙한 것을 낯설게하기' 와 맥이 닿아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센스 역시 1,2권보다는 3,4권에 빛을 발하는데, 생동감이 더해지니 전형적인 인물들조차 입체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등장인물들에 이렇게 깊이 이입한 책도 정말 오랜만이었던 듯.

이제 톰과 헤스터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안타깝고, 벌써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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