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눈 안에 넣어두었던 '모털엔진' 드디어 읽었다.

'견인도시' 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시대배경은 대략 수천년 후이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60분 전쟁' 이라고 불리우는 세계대전으로 모든 문명이 파괴되었다. 지구 궤도에서 발사되는 수많은 원자탄과,'60분 전쟁' 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생화학 무기들이 지구 곳곳에 투하됐다.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은 쿼크라는 사람이 주창한 '도시진화론'을 철학삼아 거대한 캐터필러 위에 도시를 '얹기' 시작했다. 오염된 대지는 더이상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강한 도시는 약한 도시를 잡아먹으며 끊임없이 성장한다' 를 모토로, 크고 작은 견인도시(Traction City)들이 황폐해진 대륙 위를 기어다녔다. 


시대는 또다시 흐르고 흘러, 견인도시의 시대도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었다. 

견인도시들의 수가 급감하여, 대도시들은 건기의 초원을 배회하는 맹수들처럼 굶주려 있었고, 약해져 있었다.

한때 대도시로 난폭한 사냥솜씨를 뽐냈던 '런던' 역시 과거의 영화는 잃고 각종 맹수들이 난립하는 '대사냥터' 에서 밀려나 사냥감이 적은 변두리를 떠돌고 있었다. 

주인공 '톰 내츠워디' 는 런던 역사길드의 3등 견습생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고, 도시 진화론을 맹신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하지만 고아인 청년이었다. 

톰은 런던이 작은 도시를 사냥했던 날, 런던 역사길드의 수장이자 당대 최고의 탐험가인 '밸런타인' 을 타겟으로 한 '헤스터 쇼' 의 테러에 휘말리게 되고, 밸런타인에 의해 런던 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움직이는 도시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온 톰이 처음으로 밟은 '대지'.

톰은 대지를 처음 밟은 충격과, 경애했고, 목숨을 바쳐 지키려고 했던 밸런타인이 자신을 도시 밖으로 밀어버렸다는 사실에 공황에 가까운 상태에 빠지지만, 테러범 '헤스터 쇼' 와 동행하게 되면서 자신이 몰랐던 세상의 진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오랜만에 정말 푹 빠져 읽었다. 

이정도로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를 제대로 느낀 SF 소설은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

SF나 판타지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와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기' 로 볼 수 있다. 

예를들면, 스타 워즈 시리즈의 '포스' 와 '광선검' 이나 배명훈 작가의 '고고심령학자'는 '낯선 것을 익숙케 하기'의 정석에 가깝다면, 캐터필러 위에 8층으로 얹혀져 대지를 돌아다니는 런던 시내의 풍광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의 정석에 가까울 것이다. 마치 해리포터의 킹스크로스역 9 3/4 승강장 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이 두가지가 적절하게 섞여있다. 요는 세계관의 핵심이 어디에 더 가깝느냐, 는 정도일 터다.) 

 

이 작품이 사실 새로운 것들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했듯, 이 작품은 새로운 것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보다 '익숙한 것' 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삶을 보여준다.

예를들어, 우리는 CD를 저장장치로 사용하지만, 컴퓨터가 없는 이 세계에서 CD는 굉장히 좋은 장식용 도구이다. 조각을 엮어서 목걸이를 만든다던지, 인테리어 장식 도구로 활용한다. 벽시계를 역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취급 주의' 같은 단어가 특별한 고유명사로 쓰인다. 

흔하디 흔한 것들을 '다르게' 사용하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대단히 신선하게 느껴지게 한다. 


단순히 그것만이었으면 끝이었겠지만, 이 작품의 서사구조 자체도 대단히 흥미롭다.

주인공 톰처럼 견인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도시진화론' 의 맹신자로써 땅에서 사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땅에 사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반 견인도시 연맹' 이다. 이들은 전쟁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자정작용으로 인간이 살만해진 대지에 정착했다. 농사가 가능한 땅도 있어서, 농지도 경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견인도시의 거대한 캐터필러들은 대지에 사는 사람이나 마을을 전혀 거리낌없이 밟아댄다. 결국 정착민들은 산이나 절벽등지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견인도시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갔다. 가스로 공중에 띄우고, 과거의 유물 엔진들을 수리해 단 비행정들이 등장했다. 견인도시의 주 교통수단도 그것이다. 

 견인도시는 기본적으로 큰 도시가 작은 도시들을 잡아먹는 적자생존의 토대에 세워진 이론이지만, 사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도시들도 있다. 이 '비사냥 견인도시' 들은 주로 무역으로 생존한다. 비행선을 탄 수많은 무역인들이 고대 유물에서 채집한 '올드 테크' 기기들을 사고판다. 사냥당해 잔해만 남은 도시들을 수색해 쓸만한 부품이나 고철들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런 설정들이 모두 새로운 것들은 아니지만,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디테일함 때문이다.

올드 테크에 적혀있는 글자들이 그 도시의 유행어가 된다던지, 그런 용어들을 활용한 이름들이 붙는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견인도시의 엔지니어 길드와 역사학자 길드의 반목도 재미있고, 그럴듯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덜컹대는 도시 안에서 유물들을 지키는 역사학자 길드와, 엔진을 개량하고 개발하는 엔지니어 길드의 반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엔지니어 길드 놈들이 엔진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이 진동을 좀 보라고!! 도자기가 다 깨지겠어!!' 등등의 불평이 정말 재미있었다. 도시의 경로를 결정하는 '내비게이터 길드' 도 있다.ㅋㅋ 정말 재미있었다.

도시마다 공화정과 민주정, 왕정을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2권에서는 왕정 견인도시가 등장한다. 이 묘사도 정말 깨알같고 재미있다.


뿐만 아니라, 톰과 헤스터의 심리묘사와, 갈등도 재미있다. 톰도, 헤스터도 각자의 찌질함을 정말 잘 표현했고(ㅋㅋ), 평생 견인도시 위에서 살아온 견인도시 주의자가 겪는 내적 갈등, 윤리관의 충돌이 설득력 있고, 섬세하다. 


서사도 사실 대단히 훌륭하다. 정말 짜임새있고 스펙터클하다. 특히 후반 클라이맥스에 슈라이크 - 아참, 그래, 세계관 안에서 '60분 전쟁' 으로 현대 문명이 일거에 무너진 뒤에, 문명이 두차례 더 있었다고 한다. 슈라이크는 기계 부활 인간이다. '60분 전쟁' 이전 세계는 사이보그를 부릴 정도로 발전한 문명이었고, 그 뒤의 문명이 그 기술을 발굴해서 재사용했다. 죽은 자를 기계로 부활시킨 사이보그. 이들을 '스토커' 라고 불렀고, 헤스터 쇼는 스토커인 '슈라이크' 와 함께 아웃 랜드(세계관 내에서 황무지를 일컫는 말)를 떠돌며 고대의 쓰레기들을 수집하며 살았었다. - 와의 대결부터 런던 공격까지 숨막힐 정도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물론, 그 결말도 크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 무려 피터잭슨이 영화화 한 '모털 엔진' 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발렌타인 박사를 휴고 위빙이 연기하는구나!! 정말 기대된다. 

공개된 출연진들을 보니, 어떤 스토리가 잘려나가고, 어떤 스토리를 중심으로 각색했는지 조금은 감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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