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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속죄] 이후 두번째였다.
영미문학에서는 이미 지울 수 없는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고, [속죄] 역시 굉장히 푹 빠져 읽었었는데, 왠지 그의 전작들은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엄청 하드코어하다는 소문도 알고 있었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아함과 고상함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넛셸]은 솔직히 다 읽은 뒤,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훌륭한 작품이고, 보기드문 소재를 대가다운 빼어난 능숙함으로 잘 버무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은 없었다.
'햄릿' 을 모티프로 했다지만, 나는 비교비평의 '교' 자로 모르는 사람이기에, 굳이 견주어 보려 하지는 않았다.
다만, 직전에 '햄릿' 을 읽었기에, 조금 의식한 정도.
전지적 '태아'시점이라는 스토리 텔링의 접근방식은 대단히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정작 스토리 자체가 새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진부한 스토리를 바라보는 접근법은 사실 국내외의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시도하는 것들이고, [넛셸] 이 보여준 그것도 크게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북쉐어링 모임에서 들었던 이언 매큐언의 토크쇼 동영상이 떠올랐고, 유튜브를 찾아 들어가봤다.
이언 매큐언의 풀네임을 영어로 검색하니 수많은 동영상이 떴다. 영어 일자무식자이지만, 유튜브 번역 자막을 켜서 단어들을 유추해가며 영상들을 몇 편 찾아봤다.
물론, 전작을 고작 한편 읽고, 유튜브로 영상 몇 편 찾아보고, 씨알도 안먹힐 작가주의비평의 흉내를 내려는 것은 아니다.
역시 나는 비평의 '평' 자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단지 그의 눈빛과, 목소리, 인터뷰어를 대하는 태도 등을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얼마전, 나는 [넛셸]을 읽는 새로운 키워드가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인공 태아는 기본적으로 모든 등장인물들을 얕잡아 보고 있다.
태아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볼 수가 없다. 양수를 통해 전달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어머니가 듣는 소리들, 뱃가죽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들을 통해 단지 '추측' 할 뿐이다. 그는 실재하는 것들을 그 어떤방식으로도 실증할 수 없는 상태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잣대로 가치 판단을 하고 평가한다. 심지어 팟캐스트나 뉴스 등의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인류와 문명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는데, 태아가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 '지배층'과 대부분의 '지식층'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탁상공론만 늘어놓는 지도자들, 실천하지 않는 지식층,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다지 인과관계가 없는 낙관론들, 대안 없는 비판과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이론들. 끝 모를 데 없는 오만과 교만, 편견으로 가득 찬 시각.
그리고, 결코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한 수 아래' 로 보고 있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가 실재하는 모든 것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이야기 전체에 관통시키자 [넛셸]의 문장들에서 새로운 느낌들이 생겨났다.
어쩌면, 이언 매큐언은 인류 전체에 대해 영국식 유머를 가득 담은 블랙 코미디 한편을 선사한게 아닐까.
풍자의 대상은 인류 문명 그 자체이자, 지독한 낙관론, 그 자체인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풀어내는 철학이나 예측, 낙관론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태아는 '태어나지 못할 수' 도 있다. 실제로 이 주인공은 유산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공포스러워한다.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삶을 보다 절망적인 쪽으로 이끌어가는데, 어쩌면 이것은 이언 매큐언이 생각하는, '1%의 양심'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결단으로 바닥에 고인 피와 양수 안에서 태아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어머니의 외모' 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 비하나 외모 비하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성,심지어 어머니의 '외모'에 관심을 빼앗기는 인간 남성-특히 엘리트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젊고 예쁜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떠올려보면ㅋㅋ- 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다.
주인공 태아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집단에 대한 메타포로 읽었더니, 이 엔딩이 [넛셸] 이라는 한편의 우화가 갖는 엄청난 완성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물론 내 해석들이 모두 곡해이고, 지나친 독법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책은 독자들의 것이고, 독서의 열매는 각자 알아서 따먹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