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한 때 이 책이 엄청 유행했던 적이 있다. 

나는 20대 후반에 처음 접하고, 이 책을 고등학교때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을 삼켰다.

그리고, 40을 바라보는 30대 후반에 다시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연장통' 에 대한 부분이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스티븐 킹은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을 위한 '준비' 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연장통이 바로 그것이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의 기본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최선의 능력' 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장이 필요하고, 연장의 활용법을 충분히 익혀야 하며, 많은 연장을 담을 통과 그 통을 들고 다닐 수 있는 팔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연장통의 맨 위칸에는 '낱말' 이 있다. 그 옆에는 '문법' 이 있고.

적확한 낱말을 간결한 문장 안에 넣는다.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닙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고 믿는다." 와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아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뽑아버리지 않으면~~' 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p.151) 그리고, 관용구를 피하는 방법과 수동태를 자제하고 능동태를 지향하라는 주장이 여러 예문을 통해 쏟아진다.

문장들이 알맞게 모인 "문단"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 그래.

이 부분은 대충 읽었었지. 

스티븐 킹은 수많은 대가들도 잘못된 문법을 사용한 예가 있지만, 탄탄한 문법적 기초 위에서 파생된 것이고, 수동태는 작가의 소심함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설파한다. 시종일관 유머러스 한 그의 책은 거의 중반인 이 즈음부터 상당히 진지해진다. 


그 뒤에 등장하는 "창작론" 역시 재미있다.

그는 작가란 "화석을 캐내는 고고학자" 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다른 작가들의 수많은 창작론을 인정하고, 자신의 창작론을 진리로 따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각자 자신만의 창작론을 따르라고.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 어떤 인물을 훅 던져 두고, '관찰' 함으로써 이야기를 '발굴' 해낸다고 한다.

작가의 역할은 그 이야기를 최대한 원형 그대로 캐내는 것이다. 적절한 연장을 적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붓이나 솔을 사용해야 할 곳에 망치나 끌을 들고 덤비면 큰일이다. 그것이 '연장통' 의 중요성이다.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평범한 작품과 아주 한심한 작품들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을 쌓아두면 나중에 자기 작품에 그런 단점들이 나타났을 때 얼른 알아보고 피해갈 수 있다. 또한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훌륭한 작품과 위대한 작품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과연 이런 작품도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독서는 작가의 창조적인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맞아. 이 뒤에, 어디서든 읽으라, 러닝 머신 위도 좋은 공간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그래. 내가 헬스장에 책을 갖고 다니게 된 이유였다. 러닝 머신은 좀 위험하고, 인도어 사이클 위에서 읽는다.  

이 책도 헬스장 러닝 머신 위에서 다 읽었다. 


스티븐 킹은 시종일관 겸손하고, 유머러스하다.

에세이처럼 시작한 이 한권의 작법서는 수많은 '주의사항' 을 설파하고, 수많은 예제를 던져주며 마무리된다.

아마, 이 책을 다 집필하고도, '아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한 부분들도 많았겠지.

수많은 '지망생'. 장래의 동료들을 위한 존중과 배려, 따뜻한 시각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아마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향하는 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선' 을 그리는 것이다. 

아...이제는 컬러로 면을 표현하기가 쉬워진 시대라서 이런 지향점은 고루한 것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선'.


 어린 시절에는 그 선이 도구의 차이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그런 선을 그리는 작가들은 날카로운 쇠붙이에 제도용 잉크를 찍어서 사용하는 원시적인 도구를 벗어어나지 않더라. 가끔 플러스펜이나 제도용 만년필등을 사용하는 작가들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능을 지닌 필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종이는 뭐, 조금 다르긴 했다. 물론 잉크도 조금 달랐다. '만년필용' 과 '제도용' 은 엄연히 다른 잉크이긴 하다. 

제도용 잉크를 만년필에 넣으면, 그 만년필은 거의 못쓰게 된다. 경유차에 중유나 등유(휘발유도 아니다)를 붓고 시동을 거는 격이랄까.

그러나, 역시 본질적으로 가장 간편하고 구하기 쉬운 도구들이었다.  


조금 지난 뒤엔 작가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 줄 알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나? 

종이를 비스듬하게 기울여서 쓰나??

뭔가 특별한 비법이나 수련법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무공 비급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게 사사받았을법한 드로잉의 비밀 필살기를 업계 스승들로부터 은밀하게 배웠을 것만 같았다. 


최소한의 선으로, 최대한의 것들을 표현한다.


항상 시간의 제약에 쫓기는 만화가는 더더욱 그 경지를 바라본다. 


물론, 여기서 '선' 은 만화 안의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배경에 그어지는 선, 집중선, 컷과 컷을 나누는 컷선. 

심지어 텍스트를 담고 있는 말풍선과 흔히 '효과음' 이라고 부르는 의성어, 의태어까지.

때로는 말풍선 안의 텍스트조차 '선' 으로서 만화 안의 미장센으로 작용한다. 


'살아있는 선' 이란, 결국 '이야기를 담아내는 선'이고, 오랫동안 변치않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만화의 기본인 '선'이 부족할수록 '장식'에 치중하게 된다. 



아, 나도 빨리 그려야겠다.

나도 빨리 이야기를 캐러 가야겠다.

연장통도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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