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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3 세트 - 전3권 - 4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평점 :
로마 시대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문란하다 싶을 정도로 성적으로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정착되기 전의 서구 사회는 현대적 윤리의 관점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성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그러한 자유는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다.
하지만, 로마 사회에서 여성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도 높았다.
로마 사회가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였기 때문이고, 필연적으로 정계는 혈연으로 그물처럼 얽힌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권력가들이 힘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동맹은 혈연 동맹이었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이라면 어느 정도 재산 상속권이 인정되었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 시스템도 인권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상당히 합리적이어서 이혼당한 여성의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도 존재했다.
물론 이 작품이 다루는 주요 인물들이 사회의 최상위 계층이기에 그렇지, 평민 여성의 삶은 더더욱 괴로웠을 것이다. 이 작품이 크게 다루는 여성은 유력자의 딸이거나 그녀의 노예들뿐이니까.
로마 권력의 핵심층에서 여성은 단순히 가장의 재산에 불과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사실 많은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은 가문의 '재산'이었고, '결혼'은 가문 간의 '계약'이었다.
유력한 혈통의 딸들은 언젠가 자신에게 주어질 의무 -가문을 위해 어떤 남자에게 시집가서 헌신해야 한다는 내용의 -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그것은 카이사르의 딸인 율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의 4부인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다.
브루투스는 세르빌리아의 아들로 세르빌리아는 2부 [풀잎관] 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드루수스의 여동생인 리비아 드루사의 딸이다. 독자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리비아 드루사는 카이피오의 부인이었지만 불륜으로 이혼당한다. 어린 세르빌리아는 잔혹할 정도로 날카롭게 엄마인 드루사의 부정을 비난하고, 자신을 거부하는 친아버지 카이피오에게 인정받기 위해 큰아버지인 드루수스의 정보를 훔치는 등 그야말로 악녀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었다. 특히 엄마인 리비아 드루사가 카이피오에게 이혼당한 뒤 결혼한 카토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부형제 카토를 끔찍하게 싫어했다.('카토'는 정말 너무 많다...ㅠㅠ) 세르빌리아는 지독한 혈통주의자였고, 대단한 야심가인 동시에 정치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그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브루투스가 도무지 눈에 차지 않았다. 용모도, 체형도, 지적 능력도, 성격도 모두 부족해 보였기에, 그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들이 대부분이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켰음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쭉 따라온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콜린 매컬로는 종이를 낭비하지 않는다. 한 두 권 안에 죽어 없어질 인물이라면, 아예 등장시키지도 않는다. 가뜩이나 길고 어려운 이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부자, 모녀, 형제, 자매 간에 이름이 완벽하게 똑같아서 '작다' '크다' 등의 수식어를 앞이나 뒤에 붙이거나 로마식 닉네임이랄 수 있는 코그노멘으로라도 일단 등장했다면, 이야기의 흐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는 지금까지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서, 3권께에서는 사실 이름 기억하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1~3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자식들은 물론이고 손주뻘들이 등장해서 작가가 친절하게 누구의 아들이나 누구의 조카 등등을 소개해 주긴 하지만, 일일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서, 카이사르의 여자들을 원활히 즐기기 위해서는 딱 두 가지만 구분하면 된다.
카이사르의 아군인가, 적군인가 - 정도.
'포르투나의 선택' 에서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사이를 오가며 균형 잡힌 활약을 펼치던 카이사르는 어마어마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반드시 권력의 정점으로 다가가야 했다. 당시 로마의 중앙 정계의 수구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니파' 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연상시키는 변방 출신의 신진세력인 폼페이우스의 발호를 경계했고, 로마의 최대 갑부인 크라수스가 정계를 기웃거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보니파에게 있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사이를 오가며 이 둘의 중앙 정계 진출을 도왔을 뿐 아니라, 보니파의 중심축 중 한 명인 비불루스에게 오래된 원한까지 있는 카이사르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다. 심지어 하층민들의 주거지인 수부라에 살며 계급을 넘나드는 그의 어마어마한 인기 역시 계급과 혈통을 중시하는 보니파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카이사르 역시 보니파를 적으로 인식했다. 일찌감치 그들의 속성과 약점을 알아챘고, 보니파 의원의 부인들을 유혹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곯려먹기에 바빴다. 보니파 의원들의 지속적인 방해해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최고 신관 자리에 당선되고, 역시 어마어마한 권력 다툼 끝에 집정관에 당선되는 이야기가 숨막히게 펼쳐진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두 번째 삼두 연합을 하기도 하고, 이혼과 결혼을 되풀이하며, 카이사르가 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세르빌리아와 불륜으로 쌓아나갈 애증의 역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전쟁에 관한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서스펜스를 느꼈다.
권력 다툼이란 실제 칼과 창을 들고 뒹구는 전쟁만큼 치열하고 잔혹하다. 카이사르의 행보는, 비록 그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내 뒤통수가 근질거리며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과감하고 대담하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는 그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비전과 인간에 대한 철학에서 기인한다. 인간과 권력에 대한 그의 통찰은 비록 어딘가 비뚤어져 있음에도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과 로마의 발전에 대한 인상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로마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혈통과 로마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있었지만, 로마라는 거대하게 팽창한 국가가 더이상 계급과 지역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사실 역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기존의 수구 세력들에게 그의 비전은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고,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땅 전체를 뒤집으려는 시도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카이사르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자가 정계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크라수스라는 점이 참 재미있게 다가왔다. 크라수스는 오로지 돈의 흐름을 뒤쫓는 자였다. 어쩌면 크라수스는 변화하는 돈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나아가 카이사르가 제시하는 비전을 일부나마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크라수스가 일부나마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였다면,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가 사용해야 할 날카로운 창이었고 넓고 튼튼한 우산이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유용성을 일찌감치 인지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래에서 힘을 키운 술라, 그리고 술라를 등에 업고 힘을 키운 폼페이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폼페이우스의 우산 아래 들어가야 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을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키고 그가 경계를 푼 사이 동방에서 엄청난 부와 힘을 쌓을 터다.
'카이사르의 여자들' 까지 읽고 보니 새삼 BBC의 역사드라마 "ROME" 가 콜린 매컬로의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아직 등장하지 않은 카이사르의 심복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훗날 카이사르의 이름을 쟁취하고 왕좌에 오르는 옥타비아누스가 어떻게 묘사될지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주로 로마의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현실 정치와 맞물려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권력욕과 성욕의 적나라한 묘사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와 진부한 표현이지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의 이전투구도 그렇지만, 세력 안에서도 명예를 지키는 자들과 명예를 저버리는 자들의 대립이나, 법안을 통해 상대방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과정, 수많은 민중들이 관람하는 원로원 연설에서 특정 의원을 선동가라고 공격하는 장면도 포퓰리스트라 공격하는 현실 어딘가의 누군가와 무척 닮아있다.
저자도 밝히지만, 이 즈음의 이야기는 실제 보존되어 있는 사료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부터야말로 진정한 실재와 상상이 견고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일 터.
일단, 뒷권들을 기다리는 사이 다시 1권을 펴봐야겠다.
이번에는 카이사르 말고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어봐야지. 참고로 이번 작품에는 키케로의 분량도 대단하다. 사투르니누스의 국가 전복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으니, 1부 "로마의 일인자" 의 3권을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