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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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소년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훌륭한 복서가 된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이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소싯적에 만화 좀 읽은 내 또래 친구라면 불멸의 명작 일본만화 "내일의 조" 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에서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까지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단순히 만화계 뿐 아니라 당시 일본 복싱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망가' 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고, 수십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영웅 서사의 플롯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수없이 재활용되고 변주되는 공공재이기때문에 오히려 창작자에겐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비교대상이 너무나 많기에, 말 그대로 수 없이 많은 도마 위에 올라 수 없이 여러번 난도질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클리셰와 내러티브, 플롯의 레퍼런스를 용납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가차없이 표절이나 도작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등돌리기 일쑤이다. 


그래서였을까, 40대를 훌쩍 넘어 수천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남겼던 블로거의 입봉작으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서사라고 느껴졌다. 

익숙한 플롯 안에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지만 신선하지 않은 대사를 쏟아낸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서사가 펼쳐지지만, 그 속도는 압도적이고, 독자의 호흡을 잡아끄는 특별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일까? 서사 중심이긴 하지만, 그를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은 때론 한번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관념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 꿈틀거리기 때문일까? 그런 문장들이 단순하고 단단하게, 무게가 실린 스트레이트처럼 감정에 쿡쿡 들이박히기 때문일까?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특별하게, 신선하게 보여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쉐프의 능력에 따라 완성도가 바뀌는 요리처럼 '소설' 을 완성하는 요소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태주는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남들보다 많은 불행을 안고 태어났다면, 세상의 섭리가 비합리적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그 불행으로 인해 삶 전체가 어그러진다면 이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복싱은 합리와 조화의 표상 같은 스포츠이다.

체중에 따라 세밀하게 나뉘어져 최대한 동등한 조건의 선수들이 맞붙는다.

트렁크 하나에 글러브 한 쌍. 선수들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눈으로 보고, 팔을 뻗는다. 모든 신경과 근육들이 조화를 이룬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방보다 한 발 더 뛰고, 한 번 더 뻗고, 한 숨 더 쉬어야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대부분은 노력을 통해 벼려진다. 

비합리와 부조리의 표상 같은 태주는, 링 안에서도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선수들이 보기엔 비합리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복싱에는 '기술' 도 존재한다. 재능 없는 자들이 재능 있는 자를 이기기 위한 특별한 기술. 그것까지 배운 태주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고, 그런 그를 꺾기 위해서는 링 밖의 권력을 끌어들여야만 했다. 

비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타고난 비합리로 간신히 삶을 살아내는 태주는 사회의 부조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서사는 예상 가능한 흐름대로 흘러가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휙 고개를 꺾는다.

익숙한 서사를 쫓아가던 나에게, 이 클라이맥스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로 다가왔다.

세 페이지에 불과한 이 클라이맥스를 위해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왔구나, 싶었다. 

온몸이 짜릿할 정도의 카타르시스가 등줄기를 타고 뒷목을 치고 정수리로 터져나왔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어...이곳은 당신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야!" p.355


한 때는 소설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 얻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는 답이 없다.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제" 일 뿐이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고, 영원을 찰나로 만들어 문장을 빚어 눈 앞에 보여준다.


"문제" 를.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작디 작은 사각의 공간을 찾아낸 태주.

하지만, 그 링은 태주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주가 찾아야 할 세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에게 어울리는 세계는, 어디있을까? 

무엇을 찾으면, 될까?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문제를 던진다.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글 안에는 없다. 그 곳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니까. 

일단은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불 밖으로 나가도, 그 안은 사각의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디 좁은 사각의 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불 속일지도 모른다. 

답은, 글 안에, 모니터 안에, 이불 안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 길위에 있다.

장지문과 대문을 지나,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저 큰 길 위에. 

 

 "먼저 덤벼서 자빠지는 거랑 남이 짓눌려 짜부라지는 거는 달라. 이놈 새끼야. 스스로 부딪쳐서 이겨내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더 센 놈이 짓누를 때 짜부라진다."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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