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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도 개천가에 커다란 고물상이 있었다.
항상 트럭이 드나들던 고물상의 대충 만들어진 울타리 뒤로 한가득 쌓여있는 폐품들은 어린 내 눈에 보물 산처럼 보였다.
한동안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터가 되어 주던 천변에 버려진 오래된 포니 승용차도 거기 어딘가 쳐박혀 있었고, 그렇게 갖고 싶던 다양한 자전거들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그렇게 보고싶던 아동 문학 전집이나 동화책 무더기도 언듯언듯 보였다.
내 첫 자전거도 그 고물상에서 사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보조바퀴를 떼어 주시고 체인에 기름칠을 하고 여기저기 조이고 닦아서 새 자전거처럼 만들어주셨고, 나도 신나게 동네 언덕에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한동안 동네 어디에나 고물상들이 있었고, 커다란 철가위를 철컥거리며 폐품을 수집하고 뻥튀기로 바꿔주는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고쳐쓰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내가 사는 동네엔 제법 큼지막한 고물상이 있다.
무심코 그 앞을 지나다가 지창씨 생각이 났다.
지창씨는 해미의 아버지고, 지창씨와 해미 부녀는 [소각의 여왕]의 주인공들이다.
일전에 읽었던 소설 중에 폴 오스터의 '선셋파크'라는 소설에 버려진 집의 내부를 정리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했었다. '주택보존 서비스' 라 명명되는 이 직업은 오랫동안 방치된 집을 주인이 다시 꾸며 팔기 위해 해묵은 가구와 장식, 쓰레기 따위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 소설을 읽으며 그 직업에 관한 흥미가 생겨 여러모로 정보를 뒤져보다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억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어린시절, 그렇게 가까웠던 고물상에 드나드는 트럭들 중 하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엊그제, 동네 어귀의 빌딩 고층에서 가구들을 내리는 큰 트럭에 [폐가구 수거차량] 이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그러니까 지창씨가 이런 트럭을 운전했겠구나.'
그리고 이윽고 해미가 물려받게 되겠지.
비슷한 시기에 읽은 [열광금지, 에바로드] 와 [소각의 여왕]의 아버지들은 대단히 닮아있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순박하게 일평생 자식을 돌보며 살아온 아버지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세대로구나, 우리가.
아버지의 직업을 이을 수 없는 세대로구나, 우리가.
[소각의 여왕] 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부녀를 구분짓지 않는 태도를 통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세대를 구별하지 않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지 불행한 것은 우리 세대만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 소위 386세대라고 하는 이들도 시절의 수혜를 받은 것은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은 함께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을 버텨낼 뿐이다.
폐휴지 줍는 할머니도,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도,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게 되는 해미도 단지 절망만을 향해 치달아갈 뿐이다.
물론 지창씨는 시절의 수혜를 잠깐 받았지만, 더한 해악을 입고 모두 잃어버린다.
그나마 작은 조각에 희망을 잔뜩 걸고 있지만, 해미는 그조차도 없었다.
절망을 향해 달려가는 큼직한 네발달린 철상자 안에서, 그저 절망할 밖에.
2016년. 눈과 귀를 막아버린 집권층은 여러 악법으로 절망적인 세대의 숨통을 움켜쥐고, 청년들은 헬조선에서 절망으로 신음한다.
방법은, 정말 없는 것 같다.
해미처럼 절망의 트럭 안에서, 절망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