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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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역사 소설을 꽤나 좋아하는 30대 남자로써 '로마' 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스의 뒤를 이어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된 로마 문명.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집정관과 호민관, 원로원이 어우러진 초기 공화정과 제국으로의 변모, 그리고 거대한 대제국. 다신교 문화에서 피어난 유일신교의 씨앗. 그리고 극적인 역전 등, 수박 겉핥기만으로도 충분히 달달한 이야기들이 죽죽 흘러 내린다. 나처럼 어설프게 아는 독자들도 '시저'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영어로는 줄리우스 시저, 원래 발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리고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리고 '부르투스 너도냐!' 까지. 실제로는 했네, 안 했네, 원래는 이런 말이었네, 저런 말이었네 말도 많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일 것이다. 키케르와 클레오파트라까지 덤으로. 


[로마의 일인자] 는 바로 그 '시저' 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이름의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노회한 정치가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눈에 무관 출신의 노숙한 정치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들어온다.


이 두 이름을 보는 순간 이미 가슴이 쿵쾅쿵쾅.

로마 공화정 말기의 이른바 '100년 내전 은 로마사에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동맹시들의 이탈과 반란, 로마 내부의 정쟁, 평민들의 불만과 궐기, 그리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대표되는 평민파와 술라로 대표되는 귀족파의 본격적인 충돌.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출현과 삼두정치, 그리고 루비콘강에서의 회군.

역시, 바로 그 시기의 이야기로구나!!!!   


어느 왕국이나 멸망 직전이 가장 화려한 법이다.

우리역사만 봐도 삼국시대가 삼국 모두가 그랬고, 통일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다. 특히 고려말~조선 초기로 이어지는 교체기는 로마의 공화정말기~제정초기와 상당히 닮아있다. 조금 나가 중국 역사만 봐도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 직전에 가장 빛난다. 복잡복잡한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 아주 작은 불씨 하나로 어마어마하게 타오른다. 


1권 초반에서부터 이야기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작품 속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이미 40세를 훌쩍 넘은데다가 로마의 귀족 혈통도 아니라 집정관이 될 수 없는 처지로 등장한다.

'어라, 이럴리가? 아니, 이럴수가?' 게다가 작품의 1/3쯤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술라는 애인에게 얹혀사는 기둥서방과 다름없는 건달처럼 보인다. 게다가 양성애자!!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처지였다니!! 

멀리서 봤던 숲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겉핥기만 했던 수박을 쪼개보니, 진짜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각 챕터가 당 해 연도로 되어 있다. 기원전 110년. 아...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본격적으로 붙기까지는 아직 수십년 더 지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시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나려면 아직 10년은 더 있어야 한다. 

서두를 장식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시저의 할아버지인 것이다.


1부 [로마의 일인자]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가 정치적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이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상황 묘사로 정말 재미있게 펼쳐진다. 당시 로마의 정치상황에 대한 설명도 간결하기 이를 데 없고,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정도로 주어진다. 특히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던 당시 로마정을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혈통과 돈이 필요하고, 권력을 얻으면 혈통과 돈을 그러모아야 한다. 정치의 이유는 오롯하게 자신의 욕망이며 정치 활동 자체도 피호민을 모아 세를 넓히기 위해서일 뿐이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 그리고 균형을 모토로 발전해온 공화정은 이미 시궁창 고인물이 되어 썩은내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타고난 군인인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돈만 많고 혈통이 별로라 중앙 정계에 들었음에도 좀처럼 로마 정치권력의 정점인 집정관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의 준동과 끊임없는 북방 이민족들의 위협으로 '타고난 군인' 인 마리우스는 지속적인 기회를 잡게 된다.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몇차례나 로마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지만 계속된 원정으로 해외와 지방에 있는 사이, 정작 로마는 사투르니누스의 쿠데타를 경험하게 된다.


2부 [풀잎관] 에서는 뜻하지 않았던 병과 사투르니누스의 의회 전복 사건 이후 모처럼 찾아온 평화의 시기를 맞아 더이상 권력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진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좀처럼 큰 찬스를 잡지 못하고 있는 술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관계는 예전만큼 친밀하지는 않아보였으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우정은 여전했고, 로마의 중앙 정계 또한 좀처럼 변할 줄 몰랐다.

마치 고인물처럼 로마 정계는 썩을대로 썩어있었고, 권력을 지닌 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재산을 불릴 마음 뿐이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몇 대 가 쌓은 어마어마한 황금과 번듯한 혈통이 필요했다. 권력을 잡은 뒤에는 자신이 그동안 투자한 금액을 몇배로 되돌려 받고자 노력했고, 자식들에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모으고 더 모아야 했다. 권력의 밖에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착취당했고, 권력의 안에 있는 자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애 쓸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아프리카와 북방민족의 전쟁위협을 통해 권력을 잡았듯, 술라는 이탈리아 속주의 반란과 아시아 속주의 군사적 위협을 통해 집정관위에 오르게 된다. 술라가 아시아 속주를 평정하고, 이탈리아 속주의 반란도 진압, 잔당을 정리하는 사이 로마 중앙 정계에서는 이제 반 은퇴상태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마지막 기회를 잡아 다시 한 번 집정관이 오를 계략을 세우게 된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의 정면대결. 집정관에 의한 첫번째 로마 시내 침공이 벌어지게 되고, 서두에 언급했던 '시저'. 젊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예고한다.  



1부 [로마의 일인자]와 2부[풀잎관] 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가이우스 마리우스이다. 

태생부터 로마의 전통적인 귀족 혈통이 아니었던 그는 뛰어난 능력에 비해 지지 세력이 전무했다. 숱한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많은 돈을 모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혈통이었기에, 가이우스는 바로 한 발 앞에 있는 최고 권력의 의자에 다가설 수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로마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과 충성심이 있었지만, 원로원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때문에, 극적으로 최고 권력을 차지한 이후부터는 원로원이 정한 원칙들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인의 권력으로 원칙을 깨뜨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공화정의 의미는 퇴색된다. 이후 벌어진 사투르니누스의 의회 전복 시도와 술라가 집정관위에 오른 뒤 행했던 행동들 모두 가이우스 마리우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의 반목은 훗날 공화정에 종말을 고하게 되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옥타비아누스)의 반목과 굉장히 닮아있다. 무엇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와의 관계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와의 관계와 무척 닮아있기도 하다. 비슷한 두 인물에 의해 로마 공화정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아마, 콜린 매컬로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 장대한 시리즈의 서막을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통해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역사소설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등장인물들이 정말 그 시대 사람처럼 생각하는가?' 이다. 물론 그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다른 계급을 대하는 태도, 옷차림과 습관, 말투나 리액션 등 개별적인 것들이 묘사하고 있는 그 시대에 맞는 것들이냐는 것인데, 의아함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원로원의 의원들을 통해 보여지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로마인들과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아우렐리아로 대표되는 새롭고 혁신적인 로마인들의 끝없는 대립을 바라보며, 우리 역사가 떠올랐고, 또 현재의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고대사회에서는 시간은 둥근 순환 고리와 같아서 쇠퇴와 발전의 사이클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생각하는 순환적 시간감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반면 직선의 시간축 위에서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발상은 신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인류의 시작과 끝이 명확한 기독교의 직선적 시간감각에 의해 태어났으며, 진보사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17세기 말에 고대인과 근대인 논쟁이 펼쳐진 이래 여전한 논쟁거리인 모양이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p.183 참조)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를 읽으며,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발전과 쇠퇴를 거듭한다는 순환적 시간감각 쪽에 마음이 더 갔다. 이처럼 대를 이어 긴 역사를 서술하는 시리즈는 보다 넓고 긴 호흡으로 삶을 조명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왕정으로 시작해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마무리되고, 결국 거대한 서구 역사의 바탕이 되는 로마의 역사 뿐 아니라,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 드루수스의 한 인생만 보아도 정체기가 있을지언정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개념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대하 역사소설은 호불호가 명확한 장르이다.

기본적으로 서사가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사건 전후의 논리적 인과관계가 한 눈에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 분량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건들이 끊임없이 중첩되며 인물들이 쉼없이 꼬여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과서가 스포일러' 라는 말이 있듯 기록이 이미 사건의 결과를 알려줄 뿐 아니라,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과 같은 엔딩이 없다는 점이다. 그 어떤 찬란한 업적은 세운 인물이 주인공이라 해도 이미 죽어 없어진 사람이며, 그 업적들 또한 먼지처럼 사라져 한줄의 글로 기억될 뿐이다. 박경리의 [토지] 나  이문열의 [변경] 그리고 콜린 매컬로의 이 [마스터즈 오브 로마] 시리즈처럼 몇대에 걸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식과 땅, 국가를 위해 인생을 다 쏟지만 결말은 언제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하 역사소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특히 작가적 상상력의 극치와 편집증적인 사료조사를 통해 작가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완벽한 '그 시대적 사고'를 종이 위에 구현해 낸 콜린 매컬로에 경외를 보낸다. 특히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족적이 비교적 뚜렷한 인물들을 다루는 대담함에 찬사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이미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충분히 알고 있으나, 너무너무 읽고 싶어지는 재미를 주고 있으니, 약간의 시샘이 섞인 거대한 존경과 애정을 보낸다. 

부디 7부까지 무사히 완간되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삶 전체를 즐길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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