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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ㅣ 십이국기 2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평점 :
십이국기 시리즈는 사실 대하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매 작품이 연속극처럼 맞아 떨어져 연결된다는 느낌보다 각 권 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기 때문인데, 초기의 세 편, [마성의 아이] ,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모두 주인공도 다르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국가도 다르며, 시점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히 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시간의 흐름은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의 주인공인 요코와 게이키가 만나 경국의 새로운 왕이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때문에 대하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과한 감이 있어도, 연작 시리즈라고 부르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원 저작자인 강담사의 넘버링대로, [마성의 아이] 는 외전으로 두고, 1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 뒤에 위치한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의 에피소드는 시간대상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보다 약간 앞선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에서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요코가 자신이 살고 있던 현대의 일본에서 십이국기의 세계로 밀려들어 이질적적인 세계와 문화, 문명에 맨몸으로 부딪혀 고생고생 생고생을 해가며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비범한 소년 다이키가 본래 자신의 세계에 돌아와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특별한 재능을 깨우쳐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와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이 두권을 통해 비로소 십이국기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왕' 과 '기린' 의 개념이 정립된다.
작가는 서사를 통해 친절하고 상세하게 십이국기의 세계관에 흐르는 정서와 철학을 풀어내는데, 동양 문학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이기에 그다지 어렵거나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린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존재.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에서 등장했던 경국의 기린 게이키의 압도적이고 단호한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반면,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은 어린시절을 봉래-일본 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소심하게 성장한 소년 다이키가 본래의 완전무결함과 강력한 능력을 되찾아가는 내용으로, 이 또한 대단히 흥미로웠다. 1권처럼 역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십이국기의 세계관에서 기린은 천의天意를 읽어내는 생명체이다. 한 국가에 단 한 마리가 태어나는 기린은 천의가 내리는 천계를 받아 왕기가 있는 사람을 택해 왕으로 삼는다. 왕과 기린은 불사의 존재로써 기린은 왕이 현명한 통치를 하게 돕는다. 만약 왕이 실정이나 폭정을 하면 기린은 왕을 잘못 택한 대가로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왕과 기린은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묘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관에서 생명은 특별한 나무를 통해 잉태된다.
부부나 성 역할구분은 지극히 사회적 선택의 결과물이고 기린은 무성의 존재로 읽히기도 한다. 때문에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왕과 기린의 페어는 상당히 독특한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서도 대국의 기린인 다이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당시 경국의 왕인 조 가쿠를 섬기던 게이키와 연국의 연왕과 기린 엔키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왕과 맺고 있는 관계도 상당히 재미있다.
십이국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권은 사실상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선 세계관의 해설편이라 해도 무방할터, 아직 남아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잔뜩이다.
약간의 상상력만 준비하면 이 경이롭고도 특별한 세계를 탐험할 준비는 끝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