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재독 후 2012년 올렸던 리뷰를 수정 보완했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무거운 종잇장을 넘긴다.

하얀 종이는 분명 가벼웠는데, 꽉 채워진 글자들이 무거웠던 걸까, 글자를 읽어내려가는 내 마음이 무거웠던 걸까?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묵직하다 못해, 육중하다. 

산뜻한 제목과 표지에 속았던 [빛의 제국] 도 그랬고, 헌혈을 하면서 읽었던 [검은 꽃]도 그랬다.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단편은 가볍다 못해 낄낄거리다 넋이 나갈 정도였고,[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같은 단편도 페이소스가 잔뜩 묻어있긴 했지만, 헛웃음이 새어나왔더랬는데. 장편은 언제나 묵지근하다. 

김영하 작가의 5년만의 장편 신작이라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바로 전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에는 여전히 가볍고 위트있는 작품들도 보여서 방심했던 걸까. 책 말미에도 언급되는, 배꼽 밑에 화살 문신을 한 소녀가 등장하는 단편 [비상구] 를 읽었을 때 처럼 가슴 언저리가 묵지근해졌다. 


 언제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 세상을 고스란히 종이 위에 박제하는 김영하 작가는 이번엔 아예 논픽션을 토대로 한 픽션을 들고 왔다. 특히 이번 작품은 책의 말미에 르포 형식의 단락까지 실려 있어 더더욱 현실감있게 와닿았다. 한 소년이 다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화자가 제 3자에 대해 회고하는 듯한 서술법 또한 이 어마무지한 리얼리티에 일조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그 도입부터 독자들의 마음에 추를 던져놓는다. '길과 길이 교차하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태어났고,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아이 '제이'. 이 논픽션과 픽션이 교차하는 작품은 제이의 짧고도 긴 일대기이다. 작품은 시종일관 화자와 등장인물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 쓴 문장들로 조립되어있다. 바로 윗단락에 언급한 요소들처럼,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논픽션처럼 읽히기를 의도했다는 증거이다. 


 브릭의 갯수가 많은 복잡한 모형의 레고를 조립하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 브릭을 꽂을 공간도 딱 하나이고, 그 공간의 모양에 맞는 브릭도 딱 하나이다. 그래서 그 모양의 브릭을 딱 맞게 꽂는다. 그리고 나면 그 위에 또 하나의 공간이 생기고, 또 다시 그 모양에 딱 맞는 브릭도 눈에 들어온다. 그 브릭을 집어 그 공간에 끼워 넣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남아있는 브릭 하나 없이 모두 다 딱딱 맞춰서 완성시켰는데, 레고 박스에 그려져있는, 완성례의 그 모양이 아닌 것이다. 

 분명, 꽂을 자리도 딱 하나였고, 꽂을 부품도 딱 하나였는데, 그래서 갈등할 이유도 없이, 고민할 이유도 없이 딱딱 맞춰 넣었는데, 내가 원하는 완성품이 아니다. 아마 어느 순간 즈음에는 내가 지금 조립을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수도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은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브릭을 꽂아넣는 그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을테니.

 

 제이의 인생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돼지엄마에게 버림받고, 결국은 사회로부터도 버림받은 그는 딱 맞는 모양과 크기의 브릭처럼 척척 맞춰졌다. 그리고, 완성된 모형은 한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는, 아마도 경찰들의 진술서에나 한 문장으로 적혀질 수 있을, 그런 것이었다. 그의 브릭은 고통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 제이는 자신의 인생에 고통을 켜켜히 쌓아나간다. 쌓아나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딱딱 맞게 끼워져서 만들어진 레고 모형은 결국 폭력이었을터다. 고통 위에 딱 맞는 모양의 브릭은 분노이고, 분노 위에 딱 맞는 모양의 브릭은 폭력이니까.  


 그를 그렇게 만든것은 당연히 우리 사회이다.

우리 사회 역시 그런 레고 모형과 같다. 구멍의 모양에 딱 들어맞는 레고 브릭들을 쌓아가고 있다. 아니, 딱 들어맞는 모양이라고 우기는 브릭일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어 이러다가는 완전 다른 괴물이 나오겠는데' 싶지만, 멈출수가 없다. 이제는 아예 브릭의 모양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하다. 방법이 없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말하며 브릭을 쌓기에 급급하다.

 결국 이러다가는 우리 사회 역시 분노를 쌓아가고, 결국 폭력을 쌓아갈 것이다. 80년대는 육체적인 고통의 시기였다. 군화발로 채이고, 총칼에 찍히고, 피를 물처럼 쏟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말로 인한 정신적, 정서적 고통의 시기이다. 폭력을 행하는 주체는 80년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여전히 공권력은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있고, 사회 전체를 경쟁의 도가니로 만들어 수백 수천의 제이를 양산해내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와 군대 안에 쏟아낸다. 끊이지 않는 잔혹한 학원 폭력,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나리는 푸르게 멍든 잎파리들, 총과 칼을 쥐고 얼룩덜룩한 옷을 입혀 폭력과 고립의 공간으로 내몰리는 제이들, 제이들, 또 제이들.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쌓아가는 브릭들은 어떤 모양인가?

내 삶속에 꽉 채워져있는 브릭들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거야."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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