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물원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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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구치 지로. 한때는 참 좋아하는 소설가인 아사다 지로와 종종 헷갈리기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작가 모두 공히 자신의 분야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분들이라는 점일 터다. 나는 [신의 봉우리]로 다니구치 지로를 만났더랬다. 무척이나 남성적이고 야성적인 '산' 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매우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었다. 화면 가득 펼쳐진 거대한 산들은 섬세한 터치와 훌륭한 기술로 능숙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주인공은 언제나 '사람' 이었다. 산을 보여주기 위해 '산' 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산 등성이에 점보다도 작게 박혀 있는 '사람' 을 그리기 위해 산을 택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웹툰이 큰 인기를 얻으며 소위 '일상툰' 이라는 자전적인 만화들이 난맥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만화계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는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나 가능한, 최후의 '밑천' 으로 여기는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만화를 처음 배울 땐 자신의 이야기나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습작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습작으로만 가능한 일, 철저히 '대중성' 을 담보하는 만화계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란 연출과 표현에 대한 완벽한 기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불필요한 과장과 허구가 잔뜩 들어간 무늬만 '자전적' 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겨울 동물원] 은 199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실제 섬유공장에 다녔고, 만화가 문하 생활을 거친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전적 픽션' 이다. 문학으로 치면 수필과 소설의 경계에 머물러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글의 첫머리에 언급했듯 사실적인 연출과 서정적인 드라마를 펼쳐내는 작품들로 잔뼈가 굵은 작가 답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잔잔하고 능숙하게 펼쳐내고 있다. 의류 잡화 공장 직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과 이후 만화가 문하에 있으면서 얽히게 되는 이야기들까지. 1인칭 시점으로 동료, 가족, 선생님 등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들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 하마구치의 곁을 스쳐간 여성들. 말 그대로 '스쳐갔을' 뿐인 사람들이었지만, 그녀들과의 순정적인 일화들이 평범한 일상을 매혹적으로 바꿔내고, 하마구치의 삶에도 알게모르게 변화를 이끌어낸다.  

특히나 이 작품의 안정적인 구도와 컷 연출은 특별히 눈여겨 볼 만 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의 흐름을 잡아 채면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은 오롯하게 그래픽 내러티브의 힘이다. 과장되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힘은 뺐지만, 한 컷 한 컷에 작가의 철저한 계산과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진정성은 언제나 통한다는 통설은 글월에서나 가능한 전제였다.

만화에서는? 

적어도 '자전적 이야기' 에서 만큼은 택도 없다. 자전적 이야기와 진정성은 기본적으로 폭넓은 공감을 전제한다. 그리고 폭넓은 공감이란, 디테일과 그 디테일을 극화로 활용하는 기법을 통한다. 하지만 바로 그 디테일을 잡아내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들을 활용하는 작품이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만화 연출과 표현에 대해 완벽한 기량을 갖췄다면, 통한다.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는(꿈꾸는) 모든 웹투니스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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