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1 노아 1
대런 아로노프스키 & 아리 헨델 지음, 이현희 옮김, 니코 앙리숑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신화는 거대한 벽이자, 끊임없는 영감의 샘이다. 
인간이 겪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총아인 신화는 용감한 도전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수많은 작가들이 신화의 날개를 달고 전설이 되었고, 훨씬 더 많은 작가들은 눈을 떨구고 무릎을 꿇었다. 그 중 중세에 꽃을 피운 기독교 신화는 고대의 신화들과 역사의 질곡들을 먹어치우며 그야말로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으며 현대까지도 그 위명을 떨치고 있다.
 
 기독교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약 250개의 민족들에게 공통으로 전래되고 있는 대홍수 설화는 특히나 더 강렬한 영감을 주는 이야기이다. 특히, 보다 폭넓은 상상력을 적용시킬 수 있는 영화와 만화의 영역에서는 훨씬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기독교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만화천국 일본에서도 대홍수와 방주를 모티프로 삼은 만화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접했던 여러 작품들 중 기억에 탁 떠오르는 작품은 일본 만화 한편과, 미국 영화 한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히로시 다카하시의 [스프리건] 이라는 만화와 배꼽을 쥐고 웃었던 코믹 드라마 [에반 올마이티] 라는 영화였다. 두 작품 모두 배경은 현대였는데, [스프리건] 에서 방주는 지구의 대기에 영향을 미쳐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초고대문명의 비밀병기였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고, [에반 올마이티]는 기독교의 국가인 미국 영화 답게 종교색이 보다 짙지만 '현대 사회' 와 '노아 역할' 이라는 사회와 개인의 충돌이 꽤나 큰 웃음을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발 그래픽 노블인 [노아]는 판타지와 종교의 영역에서 묘한 중심을 잡고 있다. 그 배경은 성서에도 등장하는 수메르 문명이 절정에 이르렀던 바빌로니아 시대가 맞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한껏 가미된 독창적인 세계이다. 제목답게 이야기의 전반적인 색채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 농후하다. 등장인물들의 이름 모두 성서에 등장하는 그것들을 따르고 있고, 세상을 창조한 유일신 조물주가 등장하며, 창세기의 구절들이 인용된다. 노아가 받는 신의 계시 역시, 성경의 그것과 같다. 특히 2권으로 묶인 이 거대한 홍수신화의 도입부인 1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크게 특별한 점 없이 펼쳐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인' 들 역시 기독교 문화권 다운 설정을 지니고 있다. 도입부답게 여러 갈등의 도화선들을 준비하고, 복선으로 얼핏얼핏 내비추는데,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연출과 컬러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구도의 컷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컬러 역시 대담하고 화려하다. 미국발 그래픽 노블이나, 모니터에 특화된 우리 웹툰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의 색들로 보다 전통 회화 기법에 충실한  컬러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의 만화 제작 방식과 타겟층, 만화라는 컨텐츠에 대한 접근 방법은 물론, 탄생 배경마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물론 인쇄술의 역사와도 큰 관련이 있기도 하다. 무튼, 이 리뷰를 통해 그 이야기를 다룰 필요까지는 없고, 그저 작품을 맞닥뜨려보면 '다르다' 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만화와 많이 다르지만, '그림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는 본질은 같다. 
 
 1권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편이었지만, 2권이 기대되는 떡밥들이 잔뜩 뿌려져 있다. 
노아는 종말을 앞둔 세계에서 선택받은 단 한명의 인간이다. 그는 인류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대표해서 살아남았다. 그 고뇌의 깊이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의 결정에 한 개체 전체의 존멸이 걸려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고뇌하는 존재는 바로 인류. 자신이 낳고 기른 자녀들의 생과 사에 대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가장 깊은 고뇌를 안고 있다. 과연 인류에게 미래를 허락해도 되는걸까? 인간의 추악한 단면들을 베어내며 살아온 마지막 선인 노아에게 가장 깊은 고뇌는 바로 그것이었다.  

 홍수 신화는 인류의 멸망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절망과 희망에 대한 노래이지만, 노아가 갖고 있던 고뇌와 40일간의 정처없는 표류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절망과 희망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모두 공평하게 적용되었을 터. 과연 '선택받은 자' 를 아버지로 둔, 남편으로 둔 가족들은 40일간 어두컴컴한 방주 안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  특히 성경에도 등장하는 노아의 세 아들간의 갈등과 아버지와의 관계들 역시 능숙하게 다루어질 터다. 
죽음으로 사방이 막힌 어두컴컴하고 고립된 공간 안에서 기약없는 절망의 표류를 해나갈 인류 마지막 가족들의 이야기.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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