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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평점 :
몇 년 전, 외국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대던 내가 김연수 작가를 만난건, 정말 우연이었다.
내가 읽어대던 책들의 비율은 외국소설이 8 정도면, 국내소설은 2 정도였는데, 그 2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나,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품 정도였다.
그러던 중, 어떤 인터넷 서점에서 '한국문학 브랜드전' 같은 기획행사를 하고 있었고, 문학동네가 주축이 되어 있었다. 그 행사 페이지에서 눈에 띄인 천명관 작가의 [고래] 와 다른 책들 몇권을 장바구니와 담아 결제했었고, [고래]를 읽고 한동안 그 놀라운 이야기의 힘에 허우적 대다가, 장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있어 가볍게 집어든 책이 결제한 줄도 까맣게 잊고 있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었다.
그렇게 김연수 작가를 만나,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청춘의 문장들] 을 부랴부랴 사읽었고, 그 뒤로도 [7번국도 REVISITED], [세상의 끝 여자친구]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까지 빠짐없이 챙겨보게 되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언젠가 김연수 라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정리할때 전-후반의 과도기를 느끼게 해줄만한 작품집이 아닐까 싶다. 2009년, 제 3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실상부 한국 문학계의 '어지간한' 문학상을 모조리 휩쓸게 해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을 포함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각종 문예지에 기고했던 1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니, 마치 김연수 작가의 처음 작품부터 [원더보이] 까지의 장편들을 모아놓은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꾿빠이 이상]이 떠오르는 작품도 있었고, [7번 국도] 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떠오르는 작품도 있었다. 물론 [원더보이] 와 비슷한 마음으로 쓰셨을 것 같아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고.
지난 작품집인 [세상의 끝 여자친구](2009)가 좀 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 작품집은 정석적이고 차분한 느낌이 많았다. 우선 책의 앞장부터 차근차근 읽었다가, 발표된 연도별로 다시 재독했다. 이미 충분히 성숙한 경지에 오른 김연수 라는 작가가 더욱 원숙해져가는 모습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자음과모음, 2008 가을_제3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은 밤, 기린의 말‥‥‥문학의문학, 2010 가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자음과모음, 2010 겨울
일기예보의 기법‥‥‥문학동네, 2010 겨울
인구가 나다‥‥‥현대문학, 2011 2월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세계의문학, 2012 봄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문학과사회, 2012 여름
동욱‥‥‥실천문학, 2013 봄
우는 시늉을 하네‥‥‥문예중앙 2013 봄
파주로‥‥‥21세기문학, 2013 여름
벚꽃 새해‥‥‥창작과비평, 2013 여름
이런 순서가 될까??
이번 작품집은 정말, 정말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러 직업군의 수많은 사람들의 색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특히, 많은 김연수 팬분들께서 발견하셨듯, 말기 암에 걸린 환자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세편이나 있기도 하다.
모든 작품들이 완연한 '김연수' 만의 냄새를 충분히 뿜어내고 있었다.
[일기예보의 기법] 같은 경우엔 조금은 생소한 직업인 바닷가 지역의 기상관측소 직원에 대한 충분한 취재가 돋보이기도 했고, 특히 날씨에 대한 묘사가 생생해서 몇몇 장면에서는 콧속으로 축축한 바닷내음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김연수 작가의 서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툭 하고 건드리는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이걸로 대체 뭘 어찌하려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종잇장을 넘기다 보면, 여지없이 툭 건드려진 작고 섬세한 터치가 동심원을 그리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즈음엔 마음 전체에 퍼져 흔들린다.
이번 작품집에는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쑥쑥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많이 등장한다.
사람은 죽음을 직시하면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누군가는 지극한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때로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통해 죽음을 직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 속에서 죽음을 곁눈질로 바라보곤 한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있다. 우리는 매순간 죽을 확률을 극복하고 살아가며,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죽는다.
반드시 사라지고 말 것, 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무의미하며, 또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은 암 선고를 받고 항암이라는 지난한 싸움에 돌입한 작가와 말기암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한 발을 이미 올려놓은 작가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반드시 없어지고 말 이 생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유의미한 행동이 아닐까 싶지만, 아이란 사실, 나와 동일시 할 수 없는 독립된 개체이다. 부모로서 최소한의 역할만이 가능하거나, 혹은 불가할 뿐. 그들에겐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죽음이 생긴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는 각자의 몫이 된다.
연도별로 작품들을 되읽어 봤지만, 사실 나는 한 작가의 원숙함을 읽어낼 깜냥이 되지는 않는다.
그냥, 혹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ㅋㅋㅋ ^^;;
그런건. 그냥. 평론가라는 멋진 전문 직업인들이 계시니 거기에 맡기고.
아마 김연수 작가님도 내 의견에 동의해 주지 않으실까?? ㅋㅋ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아둥바둥 해보면서, 그 안에서 작은 즐거움들을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면, 가슴을 꾹 누르고 있는 '코끼리의 발' 같은 죽음은 그렇게, 삶 속에서 희미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