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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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 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이 단어를 읽고 나는 우선 웃음이 먼저 나왔다. 황석영 작가의 [삼포 가는 길] 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군대에서 전자렌지에 돌려먹었던 [삼포만두]도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서 근무했던 부대의 이름도 177대대 3포대여서, 같은 대대 예하의 포대끼리 매일 아침 무선 통신망 점검을 할때 다른 포대원들이 '삼포,삼포' 하고 우리를 찾곤 했다.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는 기사를 읽는 순간 급격히 사라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삼포세대는 세가지를 포기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 기사에는 등록금을 충당하기위해 알바에 매진중인 20대 대학생과, 20대 말미에 간신히 취업에 성공해서 학자금 대출 갚기에 여념이 없고 몇년동안 연애하던 연인과는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을 할 수 없어 이별에까지 이른 30대 직장인과, 결혼비용과 전셋값 대출 갚기에 여념이 없는 신혼부부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20대와, 취업을 하지 못한  30대는 그나마 이런 고민조차 할 수 없을거라는 기자의 소감이 짤막하게 실려있었다. 

 윗세대 선배들 중 혹자는 우리 세대가 배부른 소리나 하고 앉아있는 나약한 세대라고 비웃기도 한다.

IMF를 중고등학교때 맞이했던, 우리들 88만원 세대는 이제 삼포세대로 진입했다.


 '체인지킹의 후예' 

이 책을 넘겨가던 나의 표정도, 삼포세대의 기사를 읽던 때 처럼 서서히 일그러져갔다.

작품의 초~중반까지의 이야기는 비교적 순탄하고, 매끄럽다. 

영호와 채연의 만남은 업무상 필연이었고, 머리를 싹 밀고 나타난 채연의 외모는 영호에게 당연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호는 채연에게 강렬한 인상, 그 이상을 남겼고, 그로 인해 영호에겐 느닷없이 8살 연상의 아내와 아들이 생긴다. 

그와 발맞춰 영호에게는 '안'이라는 사람과 업무상 껄끄러운 일을 함께 맡게 되고, 채연의 아들이자 이제 호적상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샘과 침묵의 갈등이 생겨난다.

그 갈등을 풀어낼 유일한 실마리는 샘이 탐닉하는 특촬 전대물 [변신왕 체인지킹] 이라는 허접한 아동용 드라마.  

그렇게, 작품의 중반쯤 부터 이야기의 흐름은 영호와 안 , 영호와 샘 그리고 영호와 체인지킹의 세 축으로 나뉘게 된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주인공 이영호와 비슷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사실 작품 안의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안에서도 충분히 할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 안 - 영호+민 - 샘으로 연결되는 세대의 흐름을 간과할 수 없었다. 결국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부분도 사회와 세대에 대한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공 영호는 보험회사의 심사팀 직원이다. '보험'이란 사고를 대비해 들어놓는, 일종의 공포를 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하고, 미리 걱정하고, 미리 고민해서, 미리 대비를 해 놓으라는 마케팅을 파생시킨다. 우리의 수많은 선인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은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워있을때 앉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앉아있을 때 일어설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일어섰을 때 달릴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고 했다. 수많은 종교들은 '현실에 충실할 것' 을 설파하지만, 보험은 그와 정확하게 반대편에 서 있는 '상품'이다.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보험에 쏟아붓는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과거 보험이라는 제도가 없을 때보다 더 위험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평균수명은 더 늘어났고, 삶의 질은 더 좋아졌으며, 인구도 훨씬 더 늘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워한다. 환경과 자연, 지구의 미래에 관한 걱정은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그만큼 많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병, 사고, 자연재해 등은 사실 돈으로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돈을 보험에 쏟아붓고, 그 돈은 고스란히 대기업들이 배를 불리우는데 사용된다. 우리가 내는 대부분의 돈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기보다 수많은 성과급, 행정처리업무, 주식투자등 대기업의 '현실' 을 위해 활용된다. 영호를 우리 세대 전체의 메타포, 아이콘으로 이해한다면 영호가 몸담고 있는 보험사는 지금 이 사회 시스템의 메타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돈은 물론 노동력마저도 고스란히 부조리한 사회에 바치고 있다. 보험 그 자체가 부조리이고, 비합리이며, 불공정이고, 무가치한 단순한 철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를 꽁꽁 얽어매고 있는 튼튼한 철조망. 그래, 영호가 무서워하는 바로 그 철조망. 


 자, 계속 그렇게 읽어나가보면, 영호와 함께 등장하는 보험사 직원 '안' 은 우리보다 10년쯤 윗세대, IMF를 신입사원으로 겪은 세대를 대변한다. '아버지' 보다는 약간 아랫세대로써 첫째 형님 같은 역할이다. 안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회가 주는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다해내지만, 언제나 사회로부터 내쳐지고 고통받는다. 영호가 우리세대의 아이콘이라면, 안은 지금의 40대. 학생운동의 말미를 장식했던 선배들의 아이콘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파헤치려고 노력했던. 결국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냈지만, 이명박 정권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던. 하지만, 언제나 우리 세대에게 자극을 주고, 싸우라고 조언하기를 그치지 않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회와 타협하고, 살길을 찾아나가는. 딱 10년 정도의 윗세대들. 영호도 안도 사회의 부조리함 안에서 헤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아버지 없는 세대의 마지막 생존자야."

p.276


안도, 영호도 모두 아버지 없는 생존자들이다. 안은 아버지 없는 생존자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인 셈이고, 영호와 우리 세대는 아버지 없는 세대의 마지막 생존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샘을 보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

광우병 파동때 촛불을 들고 나온 고등학생 아이들이다.


"변신왕을 보는 동안 그애는 직감했을 거야.

아버지가 없는 자신의 마지막을. 비로소 깨달은 거지. 자신에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없다는 걸.

그애는 이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는 거야. 맞설 준비를 하는 거지. 이 세계의 압력에. 그 확연한 질감에 맞서 자신의 인력을 찾으려는 거야.(...) 어쨌거나 그애는 이제 걸음을 뗀 거야. 굉장하지 않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누구의 인도도 받지 않고 스스로."

p.276


얼마 전 있었던 대선 결과처럼 우리 세대는 확실히 아버지가 없는 세대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세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의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위한 길을 밝히짐 못했다. 이번처럼 세대간 공약이 갈린 대선판도 없었다. 무엇이 자식들을 위한 길이었을지는 보수 지지층도 잘 알고 있었을터다. 

대통령 한명으로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바뀌는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대통령 또한 나라의 아버지라면, 분명 우리 세대는 그로부터도 버림받는 세대가 될 것이 자명하다.


 한 세대 전체가 비슷한 특질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당연히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역할이 크다. 급격한 산아제한, 마구잡이식 경쟁구도, 불합리한 권위주의, 불공정한 교육 시스템, 충분치 못한 최저 생계 보호 수단...우리 세대는 그 안에서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우왕좌왕 끌려다니기만 했다. 영호가 어린시절 엄마와 철조망에 관한 경험으로 치명적인 트라우마가 생겼듯, 우리 세대에게는 권위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 깊히 자리잡고 있다. 사회는 더 영악해져서 형님 세대처럼 권위에 대항할 마음의 싹을 잘라버렸다. 세대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밥줄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아버지처럼 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세상 안에 틀어 박혀야 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 혼돈의 세대였다. 귄위주의와 탈권위주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든게 조금씩 조금씩 다 섞여있는 혼돈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다행히 좀 더 진화한 세대였다. 그래. 체인지킹 처럼.

그리고 그들의 판은 우리의 형님 세대- 캐물어 따질 줄 알고, 때로는 몸에 칼빵을 맞을 줄도 알고, 소싯적엔 돌도 들어보고 각목도 들어보고, 경찰한테 욕도 해봤던 바로 그 - 와 우리세대가 확실히 연합하여 짜 주어야 한다. 영호는 안의 도움 덕에 조금은 '살벌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호와 같은 우리 세대의 또다른 아이콘인 '민' 역시 조금씩 스스로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세대간의 교류와 공감, 그리고 사회에 대한 대면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시청앞에서 수일동안 벌어졌던 반값 등록금 집회를 떠올리면 된다.

 40대인 탁현민 교수가 판을 벌여주었다. 30대인 김제동씨가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그 판 위에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웃으며 구호를 외치고, 춤추며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 시장을 바꾸었다. 서울 시립대학은 바로 반값 등록금이 시행되었고, 서울의 가난한 학생들은 물론 지방의 가난한 학생들까지 선호하는 대학이 되었다. 알바할 시간에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등록금을 위한 알바가 아니라 베낭여행을 위한 알바가 가능해졌다. 쪼들리는 돈을 메꾸기 위한 알바가 아니라 청춘의 풍요를 즐기기 위한 알바가 가능해졌다. 학자금 대출이 필요 없어졌다. 학자금을 갚는데 걸리는 기간은 졸업후 평균 2~3년이다. 평범한 남자가 대학 입학부터 군대, 졸업까지 공란없이 달렸을때, 그 직후 망하지 않을법한 회사에 입사해 열심히 일했을때 - 30살은 되어야 그나마 통장이 0 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정도로 뭔가 엄청나게 많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다고 '안' 과 형님세대를 무조건 옳다고 할 수 만은 없다. 

영호도 안을 보고 캐묻고 따지고 대들 수 있어야 한다. 영호는 윤필의 가족을 보며 의아함을 느끼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 때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체인지킹의 후예] 속에 등장하는 '변신왕 체인지킹' 은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까지 스스로 죽이게 된다.

무한 경쟁이란 바로 그런것이다. 내가 '마지막 생존자' 가 되어야만 하는 바닥.

다 함께 살 수 있다.


손을 내려 샘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작은 손이었다. 그 손은 땀에 젖어 끈끈하고 따뜻했다.

고개를 들었다. 입을 벌려 바람을 마신 후 샘이 말했다.

"심장소리가 들려."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내 소리와 다른 심장소리가."

샘일 말했다.

샘을 돌아봤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명의 힘으로."

가만히 있었다.

"힘을 모아."

샘이 말을 받았다. 우리는 피식 웃었다.

p. 388~389


그래. 그러면 된다.

손을 잡고.

서로의 심장소리를 듣고.

생명의 힘으로,

힘을 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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