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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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는 아버지가 수십 년 전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좌우명처럼 여겼던 말을 기억하고 울기 시작했다.

"현실을 다시 만들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p. 13



황폐한 공동묘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총188페이지.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책장 안에 한 사람의 평생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들어있다.

첫 몇 페이지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무덤에 묻히는 순간을 묘사하는데 할애된다.

몇몇 회사 동료와 절친한 친형 가족.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과,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그리고 세번째 부인도 자리하고 있다. 감정이라곤 거의 실리지 않은 듯한 절제되고 담담하며 간결한 문장들을 통해 마치 실제 장례에 참석하고 있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수 있다. 엄청난 현장감. 참석자들의 의례가 끝나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은 현대 미국문학의 대표적인 특징들 중 하나이다. 특히 필립 로스는 그런 현대 미국문학의 거장 중에서도 손꼽히는 거장이다. 그의 문장들을 처음 접했을 때, 계곡만큼 주름이 깊이 패이고, 열과 빛으로 백내장이 심하며, 자기 나이만큼 오래된 흉터와 새로 생긴 화상들로 온몸이 덮인 단단한 체구의 대장장이가 끊임없이 쇠를 두드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정련'.

그의 문장은 그런 뛰어난 장인의 섬세하고도 억센 손길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그런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한 남자의 태어남과 죽음에 관한 서사시이다. 잘 나가는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풍족한 경제생활을 영위했고, 세번의 결혼을 했다. 수많은 수술을 거쳐 고비를 벗어났지만, 결국 마지막 고비는 넘어가지 못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수렴하는 그 곳. '살아있다'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것.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카운트 다운의 종착역. 그저, 오는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살아있음의 증명과도 같은. 

'메멘토 모리'.



참 희안하게도 나에게도 2012년의 시작은 '죽음' 이었다.

아니, '나에게' 라기보다, '나의 부모님께' ...라고, 정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011년 12월 말에 외할아버지, 나의 어머니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8월에는 아버지께서 수십년간 이어오신 고교 동창모임-이제는 구성원을 한손으로도 다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추려지고 추려진- 의 절친한 친구분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와 달리 학창시절부터 꾸준하게 이어온 절친은 딱 한 분 밖에 안 계셨던 우리 어머니는 바로 그 딱 한 분 밖에 안 남은 절친을 위암으로 잃으셨다.  

그런 와중에 만난 이 책은 거대한 위로이자, 또렷한 확인이기도 했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초반 몇페이지는 주인공의 장례식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부분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주인공의 지인들이 보내는 송사. 누군가에게는 추억속에서 간신히 끄집어 내야 할 존재이지만 -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어린 동생이었던 그에게 바치는 송사들. 원망을 담은, 추억을 담은, 사랑을 담은, 아쉬움을 담은, 슬픔을 담은 그들의 말들은 역설적이게도, 편안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후반부 - 주인공이 치열한 젊음을 소비하고 상처 투성이의 노년을 보내는 장면이 끔찍하리만치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각종 병으로 인한 고통과, 끔찍한 외로움 속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그 안에서 회한만 쌓아가다 쓸쓸히 죽음을 기다릴, 그 순간이 두려웠다.  



"그이는 살고 싶어했지만, 누가 무슨 일을 해도 그이를 더 살아 있게 할 수는 없었어요.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p. 149



문득, 죽고싶다는 마음이 밀려들었다.

치열한 버둥거림을 그만두고 일찌감치 관 안에 눕고, 새까만 무無의 세상속에 들어가고 싶었다.뭔가로 환생시키거나, 어디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런데로 보낸다면 신의 모가지를 붙들고 '무無'!!!!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결국 이 치열한 삶의 종착역은 흙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일들은 흙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들이다.

내 모든 환희와, 내 모든 고통과, 내 모든 슬픔과, 내 모든 좌절은 결국 모두 무無를 향해 달음박치는 기차 의 탑승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죽어버리기엔 남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그렇게 삶으로 눈을 돌리면, 다시끔 욕망들이 꿈틀꿈틀 일어난다.

욕망을 연료 삼아, 삶이라는 불을 계속 피워낸다.

비록, 종착역이 무無. 무덤역이라고 할지라도.

달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종착역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달리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삶은 그러하다.

죽기뒤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위해 사는 것이다. 





"힘차게 쿵쿵거리며 밀려들어오는 어두운 바다와 별이 가득한 하늘 때문에 피비는 환희에 젖었지만 그는 겁을 먹었다.

수많은 별은 그가 죽을 운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

그 때는 그런 것들이 한번도 조종(弔鐘)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p. 37



"종말과의 무시무시한 만남?

나는 이제 겨우 서른넷인데!

망각을 걱정하는 일은 일흔다섯에 가서 하면 돼!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머나먼 미래에는 궁극적인 파국 때문에 괴로워할 시간이 남아돌거야!"

 p. 39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p.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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