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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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만에 다시 읽게 된 카프카의 대표작인 작품 [변신].

내용은 아주아주 간단하다.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레가 되있는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 


고교 시절이었나... 처음 읽었을때의 감상이 떠올랐다. 초반 3페이지 정도만에 책을 덮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왈칵 치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때 즈음 주말의 명화를 통해 감상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플라이]가 겹쳤던 기억도 생생하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 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 영화는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벌레로 변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했었다. 특히, 이 책에도 등장하는 점액질을 묻히며 벽과 천장을 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기에 나에게 [카프카] 는 [데이빗 크로넨버그], 그리고 [변신] 은 영화 [플라이] 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난, 다른 것이 보였다. 

여전히,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읽기에 짜증이 날 정도였냐면, '불편함' 과 '아픔' 에 대한 묘사들이 너무너무나 리얼해서였다. 그레고리라는 한 사람의 몸이 정말로 벌레가 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제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불편함' 과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극심한 '통증'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 때문이었다. 그저 벌레가 되어서, 다리가 여러개 생기고, 몸이 딱딱해지고 - 그런 변화들이 '고통' 을 수반한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는 번번이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되돌아와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옆구리에서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가볍고 둔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p.8 


"몸을 일으켜세우려면 팔과 손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것  대신 가는 다리들만 수없이 많이 있었다.

그 다리들은 끊임없이 제각각 움직였고 그의 뜻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다리 하나를 구부려보려고 애쓰면 오히려 그 다리가 먼저 쭉 펴지는 식이었다."

p. 16


"곧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고, 그 통증은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지금으로선 하반신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p. 17


초반 몇페이지에 걸쳐 그레고리의 몸이 단순히 벌레의 모습으로 변한 것 뿐 아니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여기저기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 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해준다. 초반 뿐 아니라, 사실, 이야기의 대부분이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 '엄청나게 아프다' 는 것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이 묘하게 '사람이 벌레가 된다' 는 판타지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리얼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들 - 편의상, '마이너한 감정'이라고 하자.- 을 훨씬 강렬하게 받아들인다. 카프카의 '변신' 은 바로 그 마이너한 감정들을 너무나 절묘하게 잡아내어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장들은 모두 낚시바늘이 되어 내 마음 속 깊숙히 묻어둔 마이너한 감정들을 '상상력' 을 통해 줄줄이 꿰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만들었다.


어제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몸도 마음대로 못 가누고, 온몸 여기저기에서 통증들이 비명을 질러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설정에서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로크드 인 신드롬' 이라는 의학적 상태에 빠져들게 된 장 도. 정신상태와 육체상태가 너무나 멀쩡한데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병실 창문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팔이 타는 듯이 따가워도, 그 고통을 그냥 그대로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 알아채고 커튼을 쳐주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장 도는 잠수복에 갇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엄청난 절망과 공포로 인한 고통 속에서. 


[변신] 을 처음 읽었을 때 [플라이] 가 연상되었다면, 이번에는 [잠수복과 나비] 가 연상된다. 

그레고르와 장 도는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다른 점이라면, 그레고르는 완벽히 창조된 가상의 인물이고, 장 도는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진짜 사람이라는 것일터다. 하지만, 카프카의 [변신] 과 장 도의 수기인 [잠수복과 나비] 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리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절친의 부음 소식을 듣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전재산을 날리는 것은 토씨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인생속에서 '큰일났다!' 할때의 '큰일' 이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  '큰일났다!' 라는 생각조차 할 틈이 없을 정도로 그 큰일에 휘말려 들기도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팔다리를 마음대로 놀릴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팔 다리가 있어봤자 무에 쓸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터다. 

굳이 그런 사건과 사고를 예로 들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그레고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팔 다리가 마음대로 안 움직여지고, 한번 움직일 때 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상황 말이다.


'노화.'

이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어느날 갑자기 침대에서 몸을 한번에 일으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간신히 다리를 움직여 바닥을 디뎌도 몸을 세울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안타깝게도 난 노화도 되지 않은 주제에 벌써 그런 일을 겪긴 했지만. ;;;)


그레고르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 회사에서 해고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늙으신 부모님과 어린 여동생을 걱정한다. 그 대목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퇴행성 관절염이 시작된 무릎을 치료 받고, 어깨를 치료받고, 허리를 치료받으면서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간다. 통증에 익숙해지고, 노안이 시작되어 희미해지는 눈을 돋보기로 적응시키고, 순간순간 뻐근해지는 근육들을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풀면서, 좁은 운전석에, 기계 앞에, 사무실 안에, 책상 속에 육체를 구겨넣는 우리 부모님들.

그리고 당연히 그 모습들은 나의 미래. 우리의 미래이다. 


늙음.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대하는 모습에서 '덜 늙은' 사람들이 늙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식들이 늙은 부모님들을 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가장 마지막 단락. 거기에서는 더더욱 강렬하게 보였다.


십여년전 [변신] 에서는 끔찍함과 상상력이 보였다면, 

32살의 [변신] 에서는 통증과 노화가 보였다. 

우리는 누구나, 그레고르와 같은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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