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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수사대 박스 세트 - 전4권 - 진정한 협객의 귀환!
이충호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무림수사대]는 사실 아주 새롭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아주 익숙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풍을 쏘고, 하늘을 걸어다니는 환타스틱한 무협의 세계를 서울이라는 도시로 끌고 왔을 뿐이다. 녹림방, 흑룡방, 개방 처럼 무협지나 무협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무림 세력들이 존재하고, 치열한 암수와 화려한 무공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절정의 무공과 절세의 비급, 신묘한 무술들도 모두 등장하며, 세상의 일과 무림의 일을 구분짓는 무협물의 특색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림이 아닌 무림 바깥, 즉 세상일을 담당하는 '경찰' 이 주인공인 것이고, 이 경찰 내부에 '무림' 일에 관여하는 부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림' 이란 일종의 초인집단이다. 우리 사는 세상 속에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또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셈이다. 무공을 사용하는 인물들은 '초인' 으로서 일반 소시민들과 접촉하는 일을 줄여야 한다. "강호의 일은 강호에"(강호와 무림은 내용상 동의어이다.) 많은 무협물들은 고강한 무공을 이용해 정부와 역사에 관여하려는 집단과, 그것을 막으려는 집단간의 갈등을 그리기도 했다.
[무림수사대] 에서는 애초에 그런걸 막는 공권력을 지닌 무림인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목과 같은, 대한민국 경찰에 소속되어있는 무림수사대인 것이다. 이들은 무림인들이 무공을 사용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다. 무림인들끼리의 정당한 대결은 용인하지만, 그것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시민들에게 해악을 준다면 공권력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주인공 '지후'는 바로 무림수사대 소속 경찰이다.
1년 전, 파트너를 잃고 방황하다가 서울 마포구 소속 무림수사대에 파견된 지후. 그곳에서 지후는 새로운 파트너, 팀원들과 새로운 사건을 맡게 된다. 대한민국 무림의 최고수들인 '오대신군' 들이 한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무림을 떠받치는 큰 문파의 장문인들이기도 한 이들은 사실상 힘으로 모든것이 좌우되는 무림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적절하게 견제하면서 미묘한 균형을 이뤄내고 있기도 했다. 최고수들과 그들의 세력이 흔들린다면 무림은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 것이고 그것은 일반 시민들의 사회에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무림수사대는 그러한 점을 막기 위해 오대신군의 살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고, 지후와 팀원들 역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지후는 1년전에 죽은 파트너, '이현' 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의 큰 틀은 전형적인 무협물의 그것과 같다.
장르의 특성상, 클리셰는 피할 수 없다. 이미 '무협' 이라는 장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플롯은 모두 다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무공' 이라는 소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핸디캡도 있다. 결국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빚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결국은 클리셰를 얼마나 잘 갖고 노느냐가 관건이다.
'만화' 는 이야기의 클리셰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연출자의 역량이 너무나 크게 좌우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림 실력과 그림체, 컷의 모양과 크기, 배치, 앵글, 캐릭터 디자인, 디자인적 센스, 회화적 센스는 물론, 대사와 말 주머니 모양, 효과음의 레터링까지. 거기에 문학적인 연출기법까지 활용하면 한가지 플롯으로도 수백가지의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충호 작가는 오랜 필력답게 그 모든걸 다 활용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명랑 만화 [마이러브] 에서부터 시작되던 소년 만화틱한 그림체에 기괴할 정도의 변형을 대담하게 주고, 먹을 많이 사용해서 그림에 무게감을 얹었다. 비교적 어두운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그림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무협' 과 '경찰' 이라는 소재들과 어우러져 느와르 영화같은 분위기를 잔뜩 풍기게 됐다. 컬러의 사용 또한 탁월했다. 전에 웹에 연재할 당시 작가 본인이 직접 설명하기도 했는데,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컬러를 활용했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흑백의 나눔이 분명한 원화와 톤으로만 변화를 준 컬러링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마이크 미뇰라의 [헬보이], 마크 밀라의 [씬씨티] 등을 효과적으로 벤치 마킹하여 웹툰의 그래픽 노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웹툰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 - 그림 퀄리티의 하락 - 를 일소하는게 크게 기여했다.
가로 연출에 익숙한 출판만화 시대의 작가가 웹툰에 적응하기란 아주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훌륭하게 세로 연출 작품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다시 가로 연출로 편집한 애니북스 편집부측의 센스도 충분히 칭찬할 만 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라고 할만한 강렬한 도입부인데, 마지막 부분, 책의 양면이 나뉘는 부분을 활용한 모양새가 정말 빼어나다.
책 곳곳에 이런 센서블한 편집들이 눈에 띈다. 웹툰으로서도, 웹툰을 책으로 옮긴 작품으로서도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강렬한 색채의 대비.
작가는 의도적으로 테마 컬러를 적절히 활용한다.
캐릭터의 성격과 시퀀스의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며 그 안에서 작가의 함의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액션씬들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이 부분은 작가의 고집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훌륭하지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정련되고 무거운 느낌이라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세로 연출을 처음 하는 가로 연출 전문 작가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연재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픽 노블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한 듯, 구어체의 대사도 지나치게 사용한 감이 있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후속작들에서는 이러한 경향들이 많이 감소되었다.)
[무림수사대]는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임은 확실하다.
'무협' 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권선징악' 이다. 작품의 성패는 나쁜놈은 얼마나 악랄한가, 주인공은 얼마나 큰 고비를 겪어내며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그리고 나쁜놈은 어떻게 응징되는가에서 갈린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100점짜리 무협장르물은 아닐수도 있다. 권선징악보다는 주인공 지후의 내면적인 성장과 과거의 청산에 대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부분은 태생이 '소년'만화가인 작가의 본성일 터. 장르에 충실하지 못했다기보다, 장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주인공 지후는 몸은 어른이지만 소년같은 인물이다. 소년만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만, 가족처럼 따르던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이 깊게 박혀있다. 지후의 과거가 '이현' 이라면 지후의 현재는 '백운' 이다. 그리고, 지후는 '소년' 이기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과거를 직시하고 현재를 밟아야만 가능하다. 이충호 작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무협이라는 '과거' 와 웹툰이라는 '현재', 그래픽 노블이라는 '미래'로 담아냈다. 지후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일면이기도 하지만, 한국 만화가 처해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 출판만화 시장은 죽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일터다.
하지만, 언제나 생로生路는 사로死路 안에 있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나는 법.
웹툰은 새로운 만화의 활로로 발전해 나가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골방에서 종이와 펜과 잉크로, 타블렛과 모니터로 꿈을 그려가고 있다. 그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위로와,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ps. 비슷한 느낌의 무협만화를 한편 소개하자면, 단연 '브레이커'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충호 작가와 같은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스토리 작가 '전극진' 이 글을 쓰고 '카마로' 라고 필명을 쓰는 '박진환' 작가가 그림을 그린 '브레이커' 라는 작품이다. 1부가 10권으로 완결되었고, 2부[브레이커 N.W] 가 다음 웹툰에서 연재중이며 현재 3권까지 발간되었다. 강추!